[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업들의 급식시장 잠식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물론 대학식당까지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급식업체들은 이를 기반삼아 높은 실적 성장세를 이어온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 독과점, 입찰 비리 등 계속되는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기준 인천공항공사의 구내식당 19곳 전부를 대기업 4곳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경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인천공항 구내식당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동원홈푸드, CJ프레시웨이 등이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 장악
누구의 편?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6년 입찰자격을 ‘자본금 50억 이상의 법인’으로 변경했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기존에 구내식당을 운영하던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교체됐다. 입찰 자격부터 대기업에 유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 의원은 “이 같은 입찰 자격이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들에게는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든 구조로 돼있다”며 “구내식당 4∼5곳을 한꺼번에 1곳 업체에 몰아주는 대기업에만 유리한 공개경쟁 입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천공항공사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상생 경제를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중견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사정은 공공기관 뿐 아니다. 대학교의 학생식당마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급식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75개 사립대학 중 36개 대학의 학생식당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를 비롯한 6개 국공립 대학의 학생식당까지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세대, 이대, 건대 등의 서울권 사립대학은 일부 대기업들이 급식 위탁을 조건으로 학교에 상당금액을 투자해 중소기업과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용역 입찰 기준도 논란이 됐다. 평가가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과 영업이익 등을 평가하는 선정 기준에 중소 급식업체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신용등급’만 평가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과거 기준을 내세웠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개정된 법을 무시하고, 구내식당 선정 기준에 중소 업체들이 불리한 항목들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공공기관 용역계약 입찰 공고 시 참여기업의 경영상태 평가는 ‘신용등급’만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은 신용등급과 부채비율은 물론 매출액과 영업이익·현금흐름 등으로 평가하게 돼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중복평가 요소를 제거하고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
삼성·SK·CJ 독식…설 자리 없는 중소기업
평가기준 대기업 편? 심사에 부채비율 포함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투자비중이 높을 경우 대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서류 심사에서 불리한 구조였던 셈이다. 그러나 경찰청 산하기관인 경찰수사연수원과 중앙경찰학교는 물론 산업은행까지 개정 전 기준으로 입찰공고를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경찰학교는 지난 29일 구내식당 위탁관리업체 제안요청서를 공고하면서 정량평가 배점한도를 40점을 배정해놨다. 정량평가에서는 주로 용역수행 실적이나 단체급식 경력은 물론 부채비율과 신뢰도 등을 따진다. 반면 정성평가에서는 업체들의 발표를 통해 운영 계획 등을 심사한다.
개정된 평가기준에 따르면 정량평가 점수는 20점 이하여야 하며, 신용평가등급 외에 부채비율 등을 심사 항목에 포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중앙경찰학교는 부채비율을 심사 항목에 포함시켰다. 이대로라면 중소업체들은 정량심사 단계서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정량평가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고배를 마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체급식 대기업인 삼성웰스토리(부채비율 54%)와 아워홈(부채비율 60%) 외에는 대부분 업체들의 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웃돈다. 국책은행 중 하나인 산업은행도 지난 25일 구내식당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에 관한 입찰 공고를 게시하면서 특정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서류심사서 탈락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기업 신뢰도 부문에 신용등급은 물론 부채비율과 유동비율을 추가 심사 항목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또 집단 급식소 운영실적(중식 기준 700식 이상)과 HACCP 인증자격(식약처인증, 집단급식소에 한함) 등의 평가 항목도 제시했다.
사실상 대기업 외에는 입찰해도 기준 미달인 셈이다. 중소업체들은 응찰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들러리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공공기관의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은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은 서류심사서 제대로 점수를 받을 수 없도록 평가 기준이 설계돼있어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과도한 기준을 제시한 것 같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경쟁 안 된다
커지는 논란
특히 법이 바뀌었음에도 공공기관이 지키지 않고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내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살펴야지, 참여하는 기업의 경영상태를 당락의 잣대로 삼는 것은 중소기업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법 준수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공공기관들이 과거의 기준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급식시장 잠식이 도마에 오르면서 업체들 내부의 문제점들도 지적됐다.
최근 SK의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6월 후니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2002억1300만원, 영업이익 108억4000만원을 올려 영업이익률 5.4%을 기록했다. 중소 급식업체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평균 2∼3%대 수준인 것과 달리 후니드는 삼성웰스토리(5.7%) 등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에 버금가는 5∼6%대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유지했다. 현대그린푸드(4.2%) 아워홈(3.7%) CJ프레시웨이(1.7%)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이는 후니드가 지분구조상 SK그룹 계열이 아님에도 SK그룹사 오피스·연수원·산업체·건설현장·외식사업 등 급식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덕분이다. 급식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미약함에도 매년 높은 수익성을 시현할 수 있는 이유다.
후니드는 SK그룹 계열사들의 오피스 및 연수원 식당과 SK하이닉스 이천·청주, SK이노베이션 울산·인천, SK케미칼 울산·청주·오산 등 산업체, SK건설의 건설현장 식당 등에 급식을 지원한다. 후니드가 SK그룹으로부터 급식 일감을 지원받는 이유는 주주구성 및 지분보유 현황에서 일정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후니드의 지분내역은 유한회사에스앤아이(49.19%), 최영근(9.10%), 최은진(9.06%), 최현진(9.06%), 허기호(8.46%), 김건호(6.80%), 윤석민(4.90%), 김채헌(1.78%), 김남호(1.65%) 등으로 주주관계부터 SK그룹과 관련이 깊다.
특히 주요 주주 가운데 최영근씨는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1남 3녀 중 외아들이자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5촌 조카, 당숙 지간이기도 하다. 최씨는 지난해 3∼5월 15차례에 걸쳐 고농축 대마 액상을 구매·투약하고 이후에도 신원미상의 마약 공급책으로부터 3차례 대마를 구매·투약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SK그룹 측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급식업체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향후 업체조정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도 알려졌다. 후니드는 2013년 태영그룹 계열사 중 내부거래 규제 대상이던 빌딩관리·조경관리업체 태영매니지먼트를 합병하는 등 태영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도 사업 기반을 넓혔다.
부당 내부거래?
법망 피해가기
합병 이후 후니드 지분 일부를 보유한 태영그룹은 계열사 위탁급식을 후니드에 맡겼고 후니드는 태영건설 본사, SBS프리즘 타워, 태영건설의 각 공사현장 등에 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은 후니드 지분을 4.90% 보유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3월 김상조 전임 공정위원장이 한 번 언급했던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업무계획’ 발표 자리서 ‘삼성웰스토리’를 직접 언급하며 식료품과 급식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 말대로 삼성웰스토리는 식자재 판매와 단체 급식 서비스가 핵심 비즈니스다. 국내 급식 업체 중 매출 기준 1위다. 덩치를 크게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배후로 깔려 있는 삼성그룹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직원 10만여명의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사 등 계열사 구내식당을 책임진다. 단체 급식 계약은 통상 1년 단위로 진행되고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내부거래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삼성물산 래미안 아파트에도 조·중식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사실상 그간 일감 몰아주기로 철퇴를 맞았던 다른 대기업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규제 대상서 벗어나 있었다.
삼성웰스토리 지분은 삼성물산이 100% 보유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가 31.16%를 보유해 현행법상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이다. 사익편취 규제는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사나 30% 이상인 상장회사가 대상이다.
이들 기업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율이 연 매출 12%를 넘으면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삼성물산은 규제 대상이지만,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는 자회사라는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대상서 빠졌다.
SK 급식업체 후니드 논란에 업체조정 검토
삼성웰스토리 공정위 압박에 몰아주기 비상
법망을 피한 삼성웰스토리는 문재인정부 공정위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내부거래 비중을 늘려왔다. 지난해 총매출액 1조8114억원 가운데 계열사 매출은 7100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39.2%에 달한다. 2016년(36.4%), 2017년(38.7%)에 이어 3년째 상승세다.
공정위는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다른 방안을 찾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사익편취가 아닌 부당지원 혐의로 직원 조사에 나선 것이 그 사례다.
그러나 부당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사익편취와 달리 내부거래가 정상가격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면밀하게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법 위반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단체급식 시장 규모는 약 5조원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지난해 기준 대기업 6개사가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은 단체급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대기업 점유 비율이 크지만 저렴하고 질 좋은 급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대기업 급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수익률이 5~10%로 낮은 단체급식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중소 급식업체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그룹 계열사 구내식당 운영 등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다. 대기업의 이 같은 ‘독식’ 행태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발전·공정경쟁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정부 역시 대기업의 단체급식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제기,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시장자율’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오는 2019년 12월까지 대기업의 단체급식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방침을 유지키로 했다. 정부가 중소업계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 나몰라
제도개선 시급
이동섭 의원은 “이미 민간 급식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대기업이 단가 4000원짜리 구내식당까지 독점하는 것은 4500여개 중소업체를 말살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의 국정기조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인데 이는 이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공정경쟁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