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판’ 국내 급식시장 실상

돈으로 들이대는 대기업 ‘식판까지 싹쓸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업들의 급식시장 잠식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공기관 구내식당은 물론 대학식당까지 독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지원을 받은 급식업체들은 이를 기반삼아 높은 실적 성장세를 이어온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 독과점, 입찰 비리 등 계속되는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기준 인천공항공사의 구내식당 19곳 전부를 대기업 4곳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최경환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인천공항 구내식당은 삼성웰스토리, 아워홈, 동원홈푸드, CJ프레시웨이 등이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대기업 장악
누구의 편?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016년 입찰자격을 ‘자본금 50억 이상의 법인’으로 변경했다.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입찰에 참여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기존에 구내식당을 운영하던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교체됐다. 입찰 자격부터 대기업에 유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 의원은 “이 같은 입찰 자격이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들에게는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든 구조로 돼있다”며 “구내식당 4∼5곳을 한꺼번에 1곳 업체에 몰아주는 대기업에만 유리한 공개경쟁 입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천공항공사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상생 경제를 위해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은 중소·중견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사정은 공공기관 뿐 아니다. 대학교의 학생식당마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급식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75개 사립대학 중 36개 대학의 학생식당을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를 비롯한 6개 국공립 대학의 학생식당까지 위탁·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연세대, 이대, 건대 등의 서울권 사립대학은 일부 대기업들이 급식 위탁을 조건으로 학교에 상당금액을 투자해 중소기업과 불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용역 입찰 기준도 논란이 됐다. 평가가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과 영업이익 등을 평가하는 선정 기준에 중소 급식업체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신용등급’만 평가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과거 기준을 내세웠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이 개정된 법을 무시하고, 구내식당 선정 기준에 중소 업체들이 불리한 항목들을 여전히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정된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공공기관 용역계약 입찰 공고 시 참여기업의 경영상태 평가는 ‘신용등급’만으로 해야 한다.

그동안은 신용등급과 부채비율은 물론 매출액과 영업이익·현금흐름 등으로 평가하게 돼있었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 상태에 대한 중복평가 요소를 제거하고 중소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법이 개정됐다.

삼성·SK·CJ 독식…설 자리 없는 중소기업
평가기준 대기업 편? 심사에 부채비율 포함

중소기업은 신용등급이 좋더라도 투자비중이 높을 경우 대기업에 비해 부채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서류 심사에서 불리한 구조였던 셈이다. 그러나 경찰청 산하기관인 경찰수사연수원과 중앙경찰학교는 물론 산업은행까지 개정 전 기준으로 입찰공고를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경찰학교는 지난 29일 구내식당 위탁관리업체 제안요청서를 공고하면서 정량평가 배점한도를 40점을 배정해놨다. 정량평가에서는 주로 용역수행 실적이나 단체급식 경력은 물론 부채비율과 신뢰도 등을 따진다. 반면 정성평가에서는 업체들의 발표를 통해 운영 계획 등을 심사한다.

개정된 평가기준에 따르면 정량평가 점수는 20점 이하여야 하며, 신용평가등급 외에 부채비율 등을 심사 항목에 포함하면 안 된다.

그러나 중앙경찰학교는 부채비율을 심사 항목에 포함시켰다. 이대로라면 중소업체들은 정량심사 단계서 대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정량평가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고배를 마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체급식 대기업인 삼성웰스토리(부채비율 54%)와 아워홈(부채비율 60%) 외에는 대부분 업체들의 부채비율이 100%를 훌쩍 웃돈다. 국책은행 중 하나인 산업은행도 지난 25일 구내식당 위탁운영사업자 선정에 관한 입찰 공고를 게시하면서 특정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서류심사서 탈락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운영 능력을 검증하는 기업 신뢰도 부문에 신용등급은 물론 부채비율과 유동비율을 추가 심사 항목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또 집단 급식소 운영실적(중식 기준 700식 이상)과 HACCP 인증자격(식약처인증, 집단급식소에 한함) 등의 평가 항목도 제시했다.

사실상 대기업 외에는 입찰해도 기준 미달인 셈이다. 중소업체들은 응찰한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들러리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발표한 공공기관의 기준을 충족하는 중소기업은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은 서류심사서 제대로 점수를 받을 수 없도록 평가 기준이 설계돼있어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과도한 기준을 제시한 것 같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토로했다.

경쟁 안 된다
커지는 논란

특히 법이 바뀌었음에도 공공기관이 지키지 않고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내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살펴야지, 참여하는 기업의 경영상태를 당락의 잣대로 삼는 것은 중소기업은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법 준수를 가장 먼저 해야 할 공공기관들이 과거의 기준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급식시장 잠식이 도마에 오르면서 업체들 내부의 문제점들도 지적됐다.

최근 SK의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6월 후니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2002억1300만원, 영업이익 108억4000만원을 올려 영업이익률 5.4%을 기록했다. 중소 급식업체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평균 2∼3%대 수준인 것과 달리 후니드는 삼성웰스토리(5.7%) 등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에 버금가는 5∼6%대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꾸준히 유지했다. 현대그린푸드(4.2%) 아워홈(3.7%) CJ프레시웨이(1.7%)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이는 후니드가 지분구조상 SK그룹 계열이 아님에도 SK그룹사 오피스·연수원·산업체·건설현장·외식사업 등 급식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덕분이다. 급식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미약함에도 매년 높은 수익성을 시현할 수 있는 이유다.

후니드는 SK그룹 계열사들의 오피스 및 연수원 식당과 SK하이닉스 이천·청주, SK이노베이션 울산·인천, SK케미칼 울산·청주·오산 등 산업체, SK건설의 건설현장 식당 등에 급식을 지원한다. 후니드가 SK그룹으로부터 급식 일감을 지원받는 이유는 주주구성 및 지분보유 현황에서 일정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후니드의 지분내역은 유한회사에스앤아이(49.19%), 최영근(9.10%), 최은진(9.06%), 최현진(9.06%), 허기호(8.46%), 김건호(6.80%), 윤석민(4.90%), 김채헌(1.78%), 김남호(1.65%) 등으로 주주관계부터 SK그룹과 관련이 깊다.
 

▲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특히 주요 주주 가운데 최영근씨는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1남 3녀 중 외아들이자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과 5촌 조카, 당숙 지간이기도 하다. 최씨는 지난해 3∼5월 15차례에 걸쳐 고농축 대마 액상을 구매·투약하고 이후에도 신원미상의 마약 공급책으로부터 3차례 대마를 구매·투약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SK그룹 측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급식업체 후니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향후 업체조정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도 알려졌다. 후니드는 2013년 태영그룹 계열사 중 내부거래 규제 대상이던 빌딩관리·조경관리업체 태영매니지먼트를 합병하는 등 태영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도 사업 기반을 넓혔다.

부당 내부거래?
법망 피해가기


합병 이후 후니드 지분 일부를 보유한 태영그룹은 계열사 위탁급식을 후니드에 맡겼고 후니드는 태영건설 본사, SBS프리즘 타워, 태영건설의 각 공사현장 등에 급식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은 후니드 지분을 4.90% 보유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 3월 김상조 전임 공정위원장이 한 번 언급했던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업무계획’ 발표 자리서 ‘삼성웰스토리’를 직접 언급하며 식료품과 급식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업종을 중심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 말대로 삼성웰스토리는 식자재 판매와 단체 급식 서비스가 핵심 비즈니스다. 국내 급식 업체 중 매출 기준 1위다. 덩치를 크게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배후로 깔려 있는 삼성그룹이다.

삼성웰스토리는 직원 10만여명의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삼성생명·화재·카드·증권사 등 계열사 구내식당을 책임진다. 단체 급식 계약은 통상 1년 단위로 진행되고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내부거래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삼성물산 래미안 아파트에도 조·중식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사실상 그간 일감 몰아주기로 철퇴를 맞았던 다른 대기업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지만 삼성웰스토리는 규제 대상서 벗어나 있었다. 

삼성웰스토리 지분은 삼성물산이 100% 보유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가 31.16%를 보유해 현행법상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이다. 사익편취 규제는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사나 30% 이상인 상장회사가 대상이다. 

이들 기업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내부거래 비율이 연 매출 12%를 넘으면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삼성물산은 규제 대상이지만,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인 삼성웰스토리는 자회사라는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대상서 빠졌다.

SK 급식업체 후니드 논란에 업체조정 검토
삼성웰스토리 공정위 압박에 몰아주기 비상

법망을 피한 삼성웰스토리는 문재인정부 공정위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내부거래 비중을 늘려왔다. 지난해 총매출액 1조8114억원 가운데 계열사 매출은 7100억원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39.2%에 달한다. 2016년(36.4%), 2017년(38.7%)에 이어 3년째 상승세다.

공정위는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다른 방안을 찾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사익편취가 아닌 부당지원 혐의로 직원 조사에 나선 것이 그 사례다.

그러나 부당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사익편취와 달리 내부거래가 정상가격에 비해 유리한 조건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면밀하게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법 위반을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단체급식 시장 규모는 약 5조원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지난해 기준 대기업 6개사가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은 단체급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수치만 놓고 보면 대기업 점유 비율이 크지만 저렴하고 질 좋은 급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대기업 급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점유율이 높아졌다는 주장이다.
 

▲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

수익률이 5~10%로 낮은 단체급식 특성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중소 급식업체들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그룹 계열사 구내식당 운영 등 내부거래를 통해 확보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부터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다. 대기업의 이 같은 ‘독식’ 행태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발전·공정경쟁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문정부 역시 대기업의 단체급식 독과점에 대한 우려를 제기,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시장자율’ 쪽으로 선회했다. 정부는 오는 2019년 12월까지 대기업의 단체급식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방침을 유지키로 했다. 정부가 중소업계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 나몰라
제도개선 시급 

이동섭 의원은 “이미 민간 급식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대기업이 단가 4000원짜리 구내식당까지 독점하는 것은 4500여개 중소업체를 말살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의 국정기조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인데 이는 이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과 공정경쟁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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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