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어린이 보육시설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 가는 요즘. 유치원 어린이사망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일터에 나가는 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지난 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치원생 발레 수업 후 의문의 사망’도 그랬다. 당시 유족들은 발레강사의 체벌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유치원 측은 우발적인 사고라는 입장을 보였으나 사건의 진상은 결국 미궁에 빠졌다. 그 후 6개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가고 있는 한 아이의 죽음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품은 채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한으로 남았다. 지난 11일 아이 아버지인 김승주씨를 만나 의문점과 논란을 들어봤다.
“아빠 잘 갔다 와.”
아침에 웃으며 인사하고 유치원에 간 아이가 오후에 병원에서 싸늘하게 식은 채로 부모와 마주했다. 유치원 발레수업 중 눈물을 훔치며 춤을 추고 손 모아 빌면서 애원하는 마지막 CCTV영상을 남긴 채 말이다.
지하 강당에선
대체 무슨 일이?
눈이 많이 내리던 지난 1월31일, 서울 창동에서 일어난 유치원 어린이사망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발레 수업이 한창인 한 유치원의 지하 강당.
김나현(6세)양은 유치원 재롱잔치 발표회를 위해 마지막 수업을 받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레강사는 무슨 이유인지 나현이를 따로 불러 1분 간 훈계를 한다.
이후 자리에 돌아온 나현이는 친구들보다 한 박자 빠르고 동작을 크게 하려고 애쓰다 친구들과의 간격이 벌어지고 만다. 이를 본 강사는 떨어져 있는 나현이를 세차게 밀어붙이며 자리를 잡아준다.
발레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른 아이들이 주변을 뛰어놀며 자유시간을 가지는 사이 나현이와 친구 한명은 보충수업을 받는다.
나머지 수업이 끝난 후 강당 구석에 위치한 간이그네를 탄 친구를 뒤에서 밀어주던 나현이는 그곳을 빠져나오려다 그네에 걸려 넘어진다.
이에 나현이 쪽으로 강사가 다가가자 나현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진 그네를 일으킨다. 강사는 그네를 세워주며 나현이에게 무언가 말을 한다.
그 말에 놀란 나현이는 강사를 따라다니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뭐라고 말을 한다. 나현이는 쩔쩔매며 강사를 쫓아다니지만 강사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자신의 짐을 챙긴다.
홀로 남겨진 지하 강당에서 쓸쓸한 죽음 맞은 나현이
강사 평소에도 체벌 있었다? 유아보육자격증도 없어
잠시 후. 수업이 모두 마무리 된 듯 아이들은 줄을 서서 나갈 준비를 마쳤다. 갈아 신기 위한 실내화를 챙기려던 나현이는 강사의 어떤 말을 듣고 열의 제일 끝에 서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뒤 쓰러지고 만다.
이후 나현이만 혼자 남은 채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강당 불이 꺼지고 철문이 닫힌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강당 불이 다시 켜지자 강당 바닥에 쓰려져 있는 나현이의 모습이 보인다. 강사가 아이를 일으켜 세워보려 하지만 힘없이 축 늘어진 나현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별 다른 조치를 취할 새도 없이 숨졌다. 이것이 바로 지난 2월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발레 수업 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나현이 사망사건의 전말이다.
7살 소녀의
미스터리한 죽음
사건 이후 지금까지 나현이의 유족들과 강사 측의 엇갈린 주장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유족측은 “나현이가 교사의 체벌에 의해 강당에 홀로 남겨졌고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강사 측은 “수업이 끝났음에도 나현이가 더 놀겠다고 버티다 혼자 있게 된 것일 뿐 교사도 나현이가 홀로 남겨진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나현이 아빠 김승주씨는 강사 측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CCTV화면 상 강사가 맨 끝에 스위치를 누르고 쳐다보는 시야각에서 아이를 못 봤을 리가 없다는 것.
김씨는 “병원에서 만난 아이의 바지가 축축해 봤더니 소변을 지린 상태였다. 분명 죽음에 이르기 전에 극심한 공포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이가 그네를 넘어뜨리자 강사가 ‘가둘 거야’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라며 “아이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진 않았을 테지만 다음부터 그러지 않게 고의성을 가지고 혼내야 겠다는 의도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창문하나 없는 캄캄한 강당에 어린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는 당시 같이 발레수업을 받았던 아이들의 진술 녹취록에도 나온다. 전문 상담가를 동반해 실시한 증언에 따르면 아이들은 “(나현이가) 그네 타다가 넘어졌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놓고 간다 그래서 아니야 아니야 나현언니가 그랬는데 갑자기 쓰러졌어요” “(나현이가) 그네에서 떨어졌을 때는 놓고 간다는 소리만…”이라고 진술했다.
‘나현아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카페지기 이용진씨는 “나 역시 두 아이를 나현이와 같은 유치원에 보내고 있었다. 발레강사는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가둘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며 “사고가 나기 몇 달 전에도 발레시간 때 클레임이 걸린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아이가 화요일, 목요일 발레수업만 있는 날이면 같은 자리에 멍이 들어 온 것이다. 해당 부모는 유치원 측에 클레임을 제기했고, 원감으로부터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넘어 갔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미흡한 조치를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유치원 측에서는 적절하고 충분한 조치를 했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해당 강사는 유아를 보육할 수 있는 자격증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현이 아빠 김씨는 사건 후 응급조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이가 쓰러졌지만 초기에 응급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숨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김씨는 “눈이 많이 와 119를 부르지 않았다고 했지만, 119는 유치원과 불과 200m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며 “아이가 심각해지자 데리고 간 병원이 응급실조차 없는 일반 정형외과였고, 아이엄마의 요구에 의해 뒤늦게 119에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CCTV화면에 나타난 발레강사의 유연한 태도를 지적했다. 이씨는 “발레강사가 아이를 안고 2층에 올라간 후 정형외과로 옮겨질 때 바로 따라가지 않고 지하 강당으로 내려가 자기 짐을 챙긴 뒤 뒤늦게 도착하는 모습이 확인됐다”며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수업 중 일어난 사고인데 아이의 심장이 멎었다거나 했다면 짐을 챙기는 여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숨져서 병원에 도착했다는 주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의성 있지만
형사처벌 못한다?
이밖에도 김씨는 발레강사의 고의성이 충분함에도 경찰 측 송치 소견서에서는 ‘불기소 무혐의’로 나온 데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지금까지 발 벗고 뛰어다니는 이유는 발레강사의 감금성에 대한 고의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건강하던 아이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발레강사의 고의성이 다분하며 부검감정서 상에도 급성심장사로 고려해볼만하다고 나왔는데 발레강사의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체벌·응급조치 등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
‘나현이’로 시작된 모두의 문제…진실 가려야
이어 김씨는 “검찰은 고의성이 인정되지만 과연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가 죽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는 입장이지만 만 5년11개월 된 아이일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아무리 짧은 시간이었다 해도 공포감을 느낄 나이인데 아이에게는 그 자체가 육체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믿었던 경찰 측의 터무니없는 결과에 없는 돈을 쪼개 변호사를 샀다. 그리고 잔업은 물론 주말에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 피해자가 경찰을 못 믿어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을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며 뛰어다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씨는 “내가 바라는 건 발레강사가 진실을 얘기해 정당하게 벌을 받고 내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뿐”이라며 “아이의 발자취만 봐도 먹먹해지고, 사실상 가정은 파탄에 이른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는데 내 아이의 죽음이 이렇게 억울하게 묻혀버리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울먹였다.
이씨 역시 “나현이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사실상 이는 모든 아이들의 문제”라며 “어느 날 내 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도 모를 일인데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넘어가기보다는 관련자들이 뼈저린 경각심을 느낄만한 조치를 취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해야 한다”고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제2의 나현이 사건
일어나지 않도록…
선생님이 꿈이던 일곱 살 나현이.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채 난데없이 주검으로 돌아온 어린 딸 앞에서 아직도 부모는 비통한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수많은 의혹들이 난무한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함은 분명하다. 경찰 측에서는 무혐의 소견을 냈지만 검찰과 법원의 최종 판결에선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있음을 반드시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