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 줄여서 ‘R&A’로 칭한다. 영국 왕실골프협회, 혹은 영국 왕립골프협회로 해석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기관은 협회가 아닌 프라이빗 클럽이다. 하지만 골프에 관한 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쥐고 있는 21세기 골프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통한다. 260년간 골프를 통치하는 이 기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9년 <월스트리트저널>의 골프 전문기자 스테파니 웨이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 취재차 참석했다. 클럽하우스 2층에서 창문을 통해 그녀는 올드코스의 1번 홀 티업과 18번 홀 퍼팅 그린을 바라보면서 기사 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에 그녀는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왕실의 후원
‘곁에 있는 R&A 멤버가 건방진 태도로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말을 건넨다. “어디서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벨벳 가죽소파에 앉아서 디 오픈의 경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골프가 시작된 이래 R&A클럽 하우스 내에서 출입조차 금지된 여성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빈정대는 투로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이다.’
여자가 NBA농구 경기나 메이저 야구대회의 로얄박스에 초대될 수는 있지만 수백년 역사와 전통의 신비스런 R&A 클럽하우스에는 비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 현재까지도 이 건물에 출입이 허용된 여성은 오직 엘리자베스 여왕과 앤 공주 등 몇 사람뿐이다.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R&A빌딩의 2층 다이닝룸에서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경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전 세계에서 2400명뿐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R&A는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을까?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프리메이슨들이 골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중심에 있던 그들은 1754년 올드코스에서 모임을 갖고 22명의 회원을 기초로 ‘GENTLEMEN’S GOLF CLUB OF ST. ANDRWES’를 결성한다.
단순히 골프동우회를 조직한 것이지만 당시의 멤버들은 이 클럽이 수백년 후 전 세계 골프를 지배할 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 혹은 의도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골프에 대한 모든 것을 정비하고 체계화하던 동우회는 80년이 흐른 1834년 영국왕 윌리엄 4세를 후원자, 즉 패트론으로 추대하면서 ‘ROYAL & ANCIENT’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았다.
ROYAL은 왕실의 명예를 상징하고 ANCIENT는 천년도시 ST. ANDREWS를 뜻했다.
1754년 올드코스 모임 갖고
22명의 회원을 기초로 결성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멤버들은 20년 뒤인 1854년 클럽하우스를 짓고 그동안 제도화시켰던 골프에 관한 모든 것들을 관장한다. 동우회가 만들어진지 140년이 흐른 1894년에 결성된 미국골프협회 USGA와 함께 세인트 앤드루스 동우회는 양대산맥으로 전 세계의 골프를 감독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골프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동우회는 수백년간 사적모임에 그쳤던 클럽을 조직화하기 위해 2004년 새로운 독립기관인 R&A를 조직하고 그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골프 장비에 관한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클럽과 볼의 사용을 허가 또는 금지하기도 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개최되는 디 오픈을 비롯해 아마추어 대회, 시니어 대회 등도 주관하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R&A는 138개국에 152곳의 연계된 지부를 두고 3000만명에 이르는 골프선수들까지도 관리·감독하며 제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여성들을 차별했던 R&A는 260년이 흐른 2014년에야 겨우 약간의 문호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2009년에 부임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루이스 리차드슨 여성 총장마저 멤버로서 거부를 당해 조롱거리가 됐지만, R&A도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다.
아니카 소렌스탐을 비롯해 20여명의 여성들이 새로운 멤버가 되어, 신비스럽기만 했던 클럽하우스에서 남녀차별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22명의 프리메이슨으로 시작됐던 멤버들이 260여년이 흐른 현재는 세계 150여 군데의 지부에 2500여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프리메이슨들은 명성과 전통에 있어서 충분한 상징성과 함께 비록 정치적으로는 세계 단일국가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골프에 관해서만큼은 세계통일이라는 천년의 위업을 달성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종결정 권한 쥔 골프 최고 권력기관
‘금녀의 공간’ 철저히 베일에 싸인 조직
북해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올드코스 1번 티 뒷편에 번듯하게 세워진 R&A건물에 대해,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인트 앤드루스 시민들은 ‘우주에서 봐도 위대한 건축물’(THE GREAT ARCHITECT OF THE UNIVERSE)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건축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비롭고 오묘한 기운까지 감돌게 만든다는 게 시민들의 생각이다.
1754년 22명의 멤버로 출범한 이래 100년간 건물 없이 지내던 왕실협회는 정확히 100년이 지난 1853년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다. 프리메이슨의 상위계급이자 R&A의 멤버이던 존 화이트 멜빌이 초석을 올린다. 돌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석공조합인 프리메이슨들로 하여금 순전히 대리석 등 돌로만 건물을 세우면서 그들만의 건축물은 11개월 뒤인 1854년 6월22일 완공된다.
R&A 1층의 대형 로비에는 영국만이 간직하고 있는 수백년 동안의 골프에 대한 귀중한 보물들, 희귀한 골프채, 왕들과 귀족들, 유명 선수들이 사용했던 각종 클럽과 기념품들, 그리고 초상화들이 장식돼있다. 일반에게 공개돼도 좋은 골프 골동품들은 좁은 길을 건너 마주하는 영국박물관에 전시돼있다. 2층 다이닝로비에서는 멤버들만 창문을 통해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디 오픈을 관람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2500여명의 남성으로만 구성되던 조직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대세에 밀려 260년간 이어오던 전통을 깨고 여성들을 멤버로 영입한다고 했지만,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만 세계 골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2명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
정식 회원이 되려면 기존 멤버 30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많은 여성 멤버들이 가입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부 여성만 개방
미국 조지아 어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이 2012년 전 미국 국무장관 곤돌리자 라이스와 달리 무어 여성 갑부, 그리고 2014년 IBM의 CEO인 빅토리아 로메티 등 단 3명의 여성에게만 개방한 것과 영국의 행보는 무관치 않아 보인다. 디 오픈을 관장하는 R&A와 마스터즈를 개최하는 어거스타 내셔널의 멤버 전원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감안하면 무언가 상호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