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한국 사회상

서점에 가면 대한민국이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한 권의 책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 이 책은 교보문고, 예스24 등에서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반일 불매운동과 맞물려 높은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옮겨 붙어 대중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취미로 꼽는다. 오프라인 서점은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 아이디를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중고서점은 책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규모 주는데
신작 늘어나

한국의 출판시장은 독특한 구조를 띤다. 전체 시장 규모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새로 나오는 책의 종류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내놓은 2017년도 출판산업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서적출판업 규모는 201312490억원, 201412238억원, 20151840억원, 201611732억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361548종서 2015791종으로 처음 7만종을 넘어선 데 이어 2017년에는 8130종으로 8만종을 돌파했다. 2년에 1만종씩 늘어나는 추세다. 말 그대로 매일 새 책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쏟아지는 책들 사이서도 사회 상황에 따라 일정한 흐름이 생긴다는 점이다. 교보문고나 예스24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서 1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서 내놓는 한 해 결산 자료를 보면 그런 흐름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매년 열풍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판매 순위가 형성되는 것.


최근 반일 불매운동이 국민들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서점가에서 일본 관련 서적이 영향을 받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대표적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지난 7월에 출간됐지만 그때보다 현재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서 한일 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이 과정서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친일 발언을 이어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치권으로 번진 책에 대한 논쟁은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반일 종족주의>는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에서 1주일간(8511)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떠올랐다. 반일 불매운동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은 셈이다.

실제 베스트셀러는 사회의 상황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이 많다. 시대상을 알고 싶으면 그해 베스트셀러를 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베스트셀러를 시대상의 거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새 책 쏟아져도 일정한 흐름
사회 상황 따라 쏠리는 현상

지난해 출판시장을 먹여 살린 장르는 에세이다. 특히 힐링 에세이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서점에 가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한 책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괜찮아라며 독자를 위로하고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들이 지난해 최고 인기를 누렸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11, 11일부터 11개월 동안 에세이 도서 판매량이 같은 기간보다 171%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후속작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의 힐링·공감 에세이가 지난해 서점가를 달궜다.

실제 교보문고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등극했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간 베스트셀러 결산자료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외에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6종의 힐링 에세이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힐링 에세이 열풍은 올해 상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에세이 도서 출간 종수는 1220종으로 1102종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여종 이상 늘었다. <연필로 쓰기> <여행의 이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등 소설가와 시인이 쓴 에세이가 다수 출간됐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에 6번이나 이름이 올라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3위를 차지했다. 혜민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2위였다. 지난해 출간됐던 힐링 에세이도 여전히 강세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힐링 에세이 열풍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등의 사회 현상과 결부시킨다. 많은 젊은이들이 급변하는 사회 상황에 불안정함을 느낀다. 또 좁아진 취업시장으로 인해 빈번하게 상처받는다. 이런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힐링 에세이로 치유 받는다는 것.

힐링 에세이
위로 필요해

특히 최근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종교인 등이 내놓은 에세이보다 친구나 동료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듯한 말을 담은 책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이 읽은 힐링 에세이의 일부 구절이나 표지 등을 공유한다. SNS를 통해 확산된 정보는 판매량으로 직결된다.

20162017년 사이에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 서적 열풍은 이제 서점가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서 따온 메갈리아가 등장했고, 서울 강남역 화장실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에 출간됐다가 대중의 관심에 밀렸던 책들도 재조명됐다.

특히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에 이어 스테디셀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201610월에 출간한 <82년생 김지영>201811월 누적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 1982년생 김지영의 탄생과 성장, 연애와 결혼, 사회생활, 출산과 육아 등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담았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출판계를 강타한 것은 마이클 센델 하버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한 인문학이다. 당시 출판계는 유례없는 불황 상태였고 인문학은 여러 장르 중에서도 독자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장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서점가에 불어 닥친 정의 열풍은 역설적으로 정의에 대한 결핍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 행태, 인사청문회 과정서 불거지는 후보자의 비위,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 등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실망이 센델 교수의 책으로 분출됐다는 분석이다.

페미니즘·정의
시대상 반영

자기계발서 열풍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힐링에도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려고 생각할 때쯤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린다. 2013년 서점가에 불었던 힐링 열풍이 잠잠해진 틈을 타 2015년 자기계발서 열풍이 다시금 불기 시작했다.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시도를 넘어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계발로 이동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

교보문고는 지난 2017, 1980년대 이후 베스트셀러 분석을 통해 시대상이 독자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소개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대중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억압을 느끼던 시대다.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대표적이다. 22살의 법대생 장총찬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누적 판매 560만부를 기록했다.


1980년대 하반기는 시와 소설의 전성시대였다. 이해인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5,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년과 1988년에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88년에는 종합 베스트셀러 1~3위가 모두 시집이었다.

교보문고는 출판물에 대한 검열과 탄압의 수위가 올라가던 시기에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는 시가 시대정신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이 시기의 베스트셀러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독자들의 니즈가 다양해졌다. 문학에 쏠려 있던 독자의 관심이 인문, 자기계발, 컴퓨터, 실용서 등으로 확대됐다. <반갑다, 논리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8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에는 에세이가 흥했다. 가정이 붕괴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사회 전체가 어두운 때였다. 따뜻한 느낌의 소설이나 위로를 담은 에세이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가시고기> 등이 판매량 부분에서 호조를 보였다.

힐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

2000년대에는 부자성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2006<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스토리형 자기계발서가 크게 늘었다. 2007년과 20082년에 걸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시크릿>은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자기계발서로 꼽힌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자기계발서 열풍은 이어졌다.


2009년에는 <엄마를 부탁해>, 2012년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2013년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교보문고는 “2010년 하반기부터는 정치 이슈가 베스트셀러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 ▲▲ ▲ 이영훈 교수가 쓴 &lt;반일 종족주의&gt;와 신경숙 장편소설 &lt;엄마를 부탁해&gt;

서점가에선 매년 반짝 특수를 누리는 시기가 있다. 노벨문학상 선정 시기나 국내작가가 해외서 큰 상을 탔을 때다. 20165월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국내 작가가 탄 건 한강이 처음이었다.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판매량이 폭발하면서 2016년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노벨문학상 발표는 매년 10월경 이뤄진다. 후보자조차 공개하지 않고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수상작을 비롯해 이전 작품들까지 높은 관심을 받는다.

반짝 특수
미디어셀러

방송을 통해 언급되거나 유명인사가 추천한 책의 판매량도 반짝치솟는다. 미디어와 베스트셀러를 합쳐 미디어셀러라고 부른다. 2004년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는 지난해 4월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 소개되면서 방송 직후 판매량이 12배 이상 뛰었다드라마 <남자친구>서 언급된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스카이캐슬>에 등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도 미디어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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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