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국민보양식’ 개고기의 무한변신 백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7.13 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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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부터 순대까지…“안되는 개(犬) 어디 있니?”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몸에 좋다면 먹지 못하는 게 없는 세상. 이미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개, 물개의 성기, 지네 등 아끼지 않고 먹는 한국인의 보신행각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누군들 건강이 중요하지 않으랴만 특히 한국인의 ‘몸보신’은 유별난 데가 있다. 최근엔 개고기로 만든 파스타를 판매하는 레스토랑까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쉽게 지치는 여름철, 원기회복 솔루션으로 쏟아져 나오는 개고기의 무한변신과 국내 보신문화를 들여다봤다.  

“한국의 전통 식재료 개고기를 서양식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개고기 수육 샐러드’는 새콤달콤한 들깨 비네그렛을 곁들인 개고기 수육으로 약 12시간 동안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것입니다. ‘개고기 크림 파스타’는 장시간 수비드 조리한 개고기와 부추를 곁들인 크림 파스타입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입니다. 한국은 개를 먹는 민족입니다. 날씨가 더울 때 원기회복을 위해 보양식으로 먹던 개고기, 이젠 개고기 보양식도 서양식 스타일로 즐겨보세요.”

‘개고기 스파게티’
팔겠다고?

 
최근 인천의 한 레스토랑이 개고기를 주재료로 한 음식들을 판매하다 인터넷에서 논란이 거세지자 판매를 중지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S레스토랑은 지난 6월 12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고기를 주재료로 한 파스타와 피자, 수육 등을 판매한다”는 홍보글과 함께 음식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 소식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동물애호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해당 구청에는 ‘개고기 요리’ 판매 중지를 요청하는 민원이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판매를 개시한 지 이틀 후인 14일, 해당 레스토랑 측은 홈페이지에 판매 중단 방침을 밝히고 사과문을 올렸다.

자신을 레스토랑 대표라고 밝힌 글쓴이는 “개고기 파스타로 인해 인터넷 상에 물의를 일으킨 점, 그에 대한 잘못된 언행으로 대응한 점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며 “(개고기 요리를) 요리사의 열정으로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었으나 많은 분의 견해가 저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중략) 지금까지 저희가 진행해 오던 개고기에 관련된 모든 메뉴를 없애겠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개고기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복날 대비, 개고기 파스타와 피자, 수육 등 파는 레스토랑
‘개고기 박사’가 개발한 개고기 식품부터 화장품까지…

마지막으로 대표는 “저희로 인해 상처받은 애견애호가분들과 많은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 다시 한 번 사죄드린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네티즌들이 레스토랑 블로그에 방문해 개고기 요리 판매를 항의하자 대표는 “너 같은 쓰XX 하고는 격이 달라, 우리 손님들이 어떤 분들인데 감히 개들이 사람한테 맞을라고, 당당하면 전화해” 등의 댓글을 달아 논란을 일으켰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개고기로 요리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주변에 수없이 많은 보신탕집이 널려있는데 이 식당만 비난을 받는 이유가 뭐냐? 고상한 이탈리안 음식에는 천한 개고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소리인가. 개고기 먹는 한국인 비하한 프랑스 여배우랑 다를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개고기 파생식품
양산도 머지않은 듯

이 논란은 예부터 이어져온 ‘개고기 식용’에 대한 일종의 음식문화에서 출발한 듯 하지만 몸에 좋다면 뭐라도 찾아 먹는 삐뚤어진 보신풍습이 낳은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고기 박사’로 알려진 안용근 교수(충청대학 식품영영학부)가 개고기 소화액으로 발효한 고추장·된장, 개고기 순대, 죽, 개고기 화장품 등을 내놓은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안 교수는 서울 송파구 송파동 모 레스토랑에서 ‘개고기 가공식품 및 화장품 발표회’라는 이색행사를 열고 외신기자들을 초청, 개고기에 대한 외국의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이날 전시된 제품은 개고기와 관련된 가공식품 등 총 28가지.


개고기 소화액으로 발효한 고추장, 된장, 간장, 김치, 식초, 장아찌, 무술주 등 전통식품을 비롯해 개고기를 이용한 순대, 칼국수, 죽, 통조림 등이 소개됐다. 또한 개고기를 첨가한 마요네즈, 케첩, 빵, 햄버거, 미트볼, 수프 등도 다채롭게 선보여 몰려든 100여명의 외신기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특히 이날 발표회에서는 다른 동물성 기름보다 칼슘 함유량이 3배나 많고 피부친화성이 우수한 개기름을 이용해 ‘You&I화장품㈜’이 산학 컨소시엄으로 개발한 크림(개기름 함유율 5%), 에센스(10%), 에멀전(15%) 등의 시제품도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당시 행사에서 안 교수는 “전통음식인 개고기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해 서구로부터 개고기 식용에 대한 비난을 받고 있다”며 “개고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식용 합법화를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즐겨 찾던
보양식품들

현재 안 교수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로 된 개고기 관련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사람보다 개를 더 섬기라는 주장’, ‘개고기 식용 반대의 비논리’, ‘개고기 식용 반대 세력’ 등의 장에서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정연한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존의 음식에서 차별화 된 보신식품은 앞으로도 물밀듯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개’ 외에도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양음식들이 정말 효능이 있는 것일까?

보신식품의 효능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무더위에 벌써부터 보신음식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더위에 지친 남성들은 무엇보다도 정력에 좋다는 보양식을 먼저 찾는다.

인간의 잘못된 탐욕이 만들어 낸 막장보신문화 어디까지?
‘묻지마 몸보신’…입증되지 않은 속설 맹신 “화를 부른다”

뱀이나 뜸부기 같은 동물들, 남근(男根)을 빼닮았다는 송이버섯, 바다의 산삼이라는 해삼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것 말고도 뱀탕, 해구신, 웅담, 쓸개즙 등 몇몇 것들은 예로부터 애용하는 정력제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음식들이 정력과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오히려 고열량, 고단백, 고지방 식품이다 보니 과잉섭취 시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진 민간요법 중 하나인 ‘동종요법’이 잘못 해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종요법이란 쉽게 말해서 어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의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는 약제를 써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김소형 혜민한의원 원장은 “우리가 우려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이열치열’ 동종요법의 원리가 민간에서 잘못된 속설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예를 들면 해구신은 물개의 성기라서 남성의 성기와 동일시되고, 뱀은 그 형태에서 남성의 성기와 동일시하여 정력보강을 위해서 먹거나, 도가니는 인체의 관절과 같은 부위니까, 고양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관절이 유연하니까 막연하게 관절염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먹는 것 등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은 질병의 근본치료가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병세를 약화시킬 뿐이다. 특히 고양이의 경우에는 한마디로 관절염 치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따라서 민간요법에 의지하기보다는 전문가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함께 그에 따른 적절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치료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신이 유별나다 못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바퀴벌레 박멸을 위한 최상책은 ‘바퀴벌레가 몸, 특히 정력에 좋다더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까.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보신왕국’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시선은 여간 따갑지 않다. 웅담을 먹겠다고 태국에 갔던 몇몇 사람들이 웃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강제 출국 당해 돌아오고, 국내에선 보신탕 애호가 3명이 5대에 걸쳐 순종 혈통을 이어온 남의 집 천연기념물 진돗개까지 잡아먹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한국인의 보신식품 선호와 맹신은 정말 못 말릴 지경이다. 갑자기 나타나 반짝 몸에 좋다고 하면 떠들썩하다가 금방 잊거나, 건강에 치명적인 경우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은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고 하면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 도전부터 하고 보니 말이다. 

‘보신왕국’오명
벗어날 수 있을까

자양강장에 효과가 있다든가 몸을 보호해주고, 수술 후 체력회복에 좋다고 하는 등 한마디로 몸에 좋다고 하면 전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음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고 매매가 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근거도 없는 과장광고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거기에 현혹되어 비싼 값을 지불하며 그것을 복용하고, 보양과 보신에 좋다고 한다면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나라의 보신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언제까지 인간의 잘못된 탐욕이 만들어내는 이 끔찍한 보신문화와 이에 편승하는 악덕 상혼을 지켜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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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