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의 2019 마스터스 '풀스토리'

골프 황제, 그가 돌아왔다

오랫동안 ‘골프 황제’라는 칭호를 달고 전 세계 골프 팬들을 움직여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빨간 티셔츠의 사나이 타이거 우즈. 그런 그가 부상과 스캔들로 시달린 몇 년간 미국프로골프(PGA)의 시계는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15일 끝난 2019년 마스터스에서 43세의 노장 우즈가 14년 만에 그린재킷을 어깨에 걸치며 PGA의 시계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타이거 우즈는 몇 년간 음주운전, 성추문 등 세간의 이슈를 몰고 다녔지만, 신기하게도 대중들은 언제나 타이거 우즈를 주목했다. 그는 보이는 행보마다 그 어떤 선수보다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2019년 마스터스에 우즈가 참가한 것 자체가 골프팬들을 열광시키긴 했지만, 그를 우승후보로 거론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우즈의 우승에 자신의 전 재산인 8만5000달러(약 1억원)를 베팅한 골프팬이 14배의 수익을 올렸을 정도다.

최고의 샷감
위대한 우승

연습 라운드부터 구름 관중을 끌고 다닌 우즈는 1라운드에서부터 단연 압도적인 인기 속에서 산뜻한 출발을 시작했다. 그의 샷감은 최고였고, 흥행은 초반부터 대박 조짐을 보였다.

우즈는 지난 4월12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마스터스 1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2언더파 70타를 기록, 6언더파 66타를 기록한 공동선두 브룩스 켑카(28·미국), 브라이슨 디섐보(26  ·미국)와 4타차 공동 11위에 올랐다.


마스터스에 22번째 출전하는 그는 전성기를 떠오르게 하는 드라이버 샷과, 정교한 아이언 샷을 보이며 자신에게 유독 몰려든 갤러리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사회자가 티잉그라운드에 선 우즈를 소개했을 땐 이날 오거스타GC에서 가장 큰 함성과 환호가 울려퍼졌고, 우즈만 바라보며 이동하는 갤러리가 워낙 많아 같은 조의 욘 람(25·스페인), 리하오퉁(24·중국)이 되레 소외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우즈가 티샷을 마치면 갤러리 상당수가 다른 두 선수의 티샷을 기다리지 않고 움직였다. 우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로 꼽히는 로리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도 우즈의 인기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타이거 우즈는 2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쳐 공동선두에 1타차로 따라붙으며, 공동선두 그룹에 불과 1타 뒤진 공동 6위(6언더파 138타)로 올라섰다. 1라운드 때 방향이 자주 바뀌는 바람 때문에 샷이 조금 흔들렸다던 우즈는 2라운드에서는 더 정교한 아이언 샷으로 버디를 6개나 뽑아냈다.

17번홀(파4) 3m, 18번홀(파4) 4m 거리 버디 퍼트가 홀 바로 앞에서 비켜나거나 멈추는 등 아쉬운 장면을 고려하면 더 많은 버디도 가능했다. 우즈는 이날 딱 두 번 그린을 놓쳤을 뿐이다. 그는 3라운드에서 버디 6개를 잡아내며 5언더파 67타를 쳐 선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37·이탈리아)에 2타차 공동 2위(11언더파 205타)로 뛰어올랐다.

전 세계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로
경쟁자·유명인들의 예찬 쏟아져

첫날 2언더파, 2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쳤던 우즈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샷과 퍼트가 더 정교해졌다. 강력하면서 정확해진 드라이버에 아이언 샷도 똑바로 날아 16차례나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1, 2라운드 때 보였던 짧은 퍼트 실수도 없었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천적이나 다름없는 몰리나리와 맞대결을 펼쳤다. 선두 몰리나리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4라운드를 시작한 우즈는 오거스타의 악명 높은 아멘코너(11∼13번홀)를 힘겹게 넘은 뒤 15, 16번홀에서 연속 버디로 역전에 성공했다. 결국 마지막 날 2타를 줄인 끝에 합계 13언더파로 우승했다.
 

승부는 역시 아멘코너에서 갈렸다. 신이 우즈에게 우승을 허락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잰더 쇼플리(이상 미국·12언더파) 등 공동 2위 그룹을 1타차로 따돌린 우즈는 우승 상금 207만달러(약 23억5000만원)를 받았다. 메이저 대회로는 2008년 US오픈 이후 11년 만의 우승이다. 그는 또 PGA투어 통산 81승으로 최다 우승 기록(82승·샘 스니드)에도 1승 차로 다가섰다. 


나이키 골프는 우즈의 추락과 함께 골프용품 사업에서 철수하고도, 우즈에 대한 의류 후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마스터스 우승으로 나이키 골프는 헌정 광고를 게재해 또 한 번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나이키의 철수 후 새 후원사로 선택된 테일러메이드, 브리지스톤 등도 우즈의 우승으로 우즈가 사용한 클럽을 불티나게 팔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우즈 아이언세트 스페셜 에디션’은 일반 아이언보다 40% 비싼 2000달러에 판매되고 있지만 주문 폭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마스터스를 주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매년 우승자의 마지막 퍼트 짧은 동영상을 트위터로 내보낸다. 지난해 패트릭 리드의 우승 장면은 4월24일을 기준으로 1년이 지나는 동안 39만3000명이 봤다. 그러나 4월15일 우즈의 우승 장면은 9일 만에 820만명이 시청했다. 스무 배가 넘는 시청률이다.

‘좋아요’ 숫자는 1만4800배 차이다. 지난해 리드의 우승 퍼트 트윗에는 45명이, 우즈의 우승 퍼트에는 66만6000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시청률 대박
스폰서 잔치

미국 스포츠매체인 ESPN은 지난 4월23일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 경제효과를 보도했다. 우즈가 쓰는 골프 공을 만드는 댄 머피 브리지스톤 사장은 “올해 마스터스 대회 때는 지난해에 비해 트래픽이 트위터가 209  %, 페이스북이 400%, 웹사이트가 205% 늘었다”고 말했다.

미국 중계방송사인 CBS에 따르면 올해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는 3720만명이 봤다. 지난해에 비해 41% 늘어난 숫자다. 컴퓨터를 활용해 TV와 소셜 미디어의 노출을 분석하는 검검스포츠의 브라이언 김은 “지난해 대회 노출효과 4억5000만달러에 비해 최소 1억달러 늘었다”고 봤다.
 

국내에서 경기를 중계한 SBS골프 채널의 시청률도 대박을 쳤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4월14일 SBS골프에서 방송된 2019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분당 시청률이 최고 1674%(최종 라운드 타이거 우즈 2번홀 플레이)까지 치솟았다. 골프팬들의 관심에 힘입어 최종 라운드 1부 중계는 1026  %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대회 평균 시청률은 0.486  %로 집계됐다. 이는 2018년 대회 평균 시청률 0.171%의 세 배 가까운 시청률이다. 골프팬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SBS골프도 42시간 최장시간 중계를 했다. 

한편 미국 뉴욕의 명소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건물을 녹색으로 장식해 화제를 모았다. 빌딩 측은 우즈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다음 날 빌딩 상단을 녹색으로 물들였다. 동시에 붉은색 등으로 ‘NO.5’라는 글씨를 새겼다. 우즈의 5번째 마스터스 우승을 뜻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골프광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우즈를 축하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챔피언”이라면서 “얼마나 환상적인 인생 복귀인가”라고 박수를 보냈다.

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우즈, 우승 축하한다. 가장 높은 곳과 바닥을 경험한 후 마스터스에서 다시 우승했다는 건 그의 탁월함과 인내, 그리고 결단의 증거”라고 말했다.

일으켜 세운 힘은 ‘가족’
그리고 체육관서 흘린 땀


메이저대회 통산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잭 니클라우스(18승·  미국)도 우즈를 축하했다. 니클라우스는 “정말 잘했다. 우즈와 함께 골프를 할 수 있어 나는 정말 행복하다. 이건 정말 환상적”이라고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함께 경기한 동료들도 빠지지 않았다. 최고령 메이저 우승에 도전했던 필 미켈슨(49·미국)은 “골프 인생에서 정말 대단한 순간이다. 우즈의 믿을 수 없는 성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또 다른 그린재킷을 입었다. 골프 역사에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축하했다. 세계랭킹 5위 저스틴 토마스(미국)도 “위대한 승리다. 타이거가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른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도 찬사를 보냈다. 미국프로농구(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픈 커리는 “스포츠에서 가장 위대한 컴백 스토리”라고 축하했고, ‘테니스 스타’ 세레나 윌리엄스는 “경기를 지켜보다 눈물을 흘렸다”며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함이다. 백만번 축하한다”고 감격해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56)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두고 “지금까지 본 최고의 재기”라며 박수를 보냈다.

우즈를 일으켜 세운 힘은 ‘가족’과‘체육관서 흘린 땀’이다. 황제의 위대한 부활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국의 골프매체 골프매직에 따르면 우즈의 하루는 오전 4시30분부터 시작된다. 먼저 4마일(약 6.4km)을 달린 우즈는 체육관으로 이동한다. 곧바로 웨이트트레이닝에 돌입하면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에 40여분간 온몸의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중량감 대신 횟수를 늘렸다. 최대치를 들기보다 적정 무게를 가급적 많은 횟수(최대 50회)로 나눠 들기를 반복했다. 그래야 부상을 막으면서 신체의 근육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식이요법도 병행했다. 수분은 근육 신경전달물질이 많은 이온음료(게토레이)로 보충했고, 근육 재생에 필수적인 고단백의 식단을 고수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마친 뒤에는 연습장에서 3시간씩 샷 훈련을 했다. 필드 훈련의 마지막은 쇼트게임이며 1~2시간이 소요됐다. 이후 우즈는 한 번 더 4마일을 달린 뒤에 하루 훈련을 마무리했다.


우즈를 일으켜세운 또 다른 힘은 가족이었다. 우즈는 2007, 2009년에 낳은 딸 샘과 아들 찰리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수술한 뒤 자녀들과 낚시를 하거나 스포츠 경기 관람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우즈는 여유를 되찾았다.

운동 늘리고
식이요법 병행

또한 현재 우즈의 연인인 허먼 역시 우즈의 부활을 이끈 인물로 꼽힌다. 우즈보다 9살 어린 허먼 역시 한때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만나는, 이른바 ‘골드 디거(gold digger)’라고 조롱받았다. 하지만 우즈가 자신의 차 안에서 약물에 취해 잠든 혐의로 법원에 출두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도 그를 옆에서 충실히 보좌하며 ‘그림자 내조’를 이어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