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계기록 세운 파인텍 농성자들

그들은 왜 굴뚝에 올랐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얼마 전 파인텍 고공농성이 ‘세계 최장 기간’이라는 씁쓸한 기록을 남겼다. 두 노동자는 400일이 넘는 기간을 굴뚝 위에서 버텨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노사의 갈등은 최고조를 달렸다. 이런 상황에 이뤄진 410일 만의 노사 첫 만남은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들은 언제까지 굴뚝 위의 농성을 해야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25일,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서 세계 최장 고공농성 기록이 새롭게 쓰였다. 이날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에 단체협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굴뚝에 오른 지 409일째를 맞았다.

두 번째 농성
씁쓸한 기록

이들의 농성은 모회사의 공장 가동 중단과 정리해고에 반발해 2014년 5월27일부터 2015년 7월8일까지 408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차광호 지회장에 이은 두 번째 농성이다.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 차 지회장은 모두 ‘한국합섬’ 출신 노동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 높은 굴뚝서 장기 농성을 벌여야 했을까? 

노조에 따르면 장기간 노사분규를 겪던 한국합섬은 2007년 5월 파산했고 2010년 7월 새 인수자를 찾게 됐다.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한 뒤 ‘스타케미칼’이라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이듬해 공장이 재가동됐지만 스타케미칼은 2013년 1월 경영난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멈추고 말았다. 

이에 차 지회장 등 일부 노조원은 회사가 이익을 챙기고 빠지는 식으로 ‘먹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때문에 차 지회장은 2014년 5월27일 새벽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스타케미칼 공장 45m 높이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굴뚝 농성이 시작된 지 408일이 흐른 2015년 7월8일 사용자 측과 노조는 고용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과 관련한 합의를 이뤘고 차 지회장은 농성을 풀었다. 당시 합의서에는 회사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노조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신설법인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며 단체협약은 2016년 1월 내 단체교섭을 진행해 체결을 완료하기로 했다. 이에 이들은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만든 새로운 회사인 ‘파인텍’으로 복직해 2016년 1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2014년 첫 번째 고공농성…약속 흐지부지 
두 번째 고공농성 강행 “이번에는 확실히”

하지만 1월 안으로 맺기로 한 단체협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노조는 같은 해 10월 파업에 들어갔으며 회사는 또 다시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에 2017년 11월12일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은 다시 고공농성을 결심했다. 

당시 합의 내용을 두고 노조와 회사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파인텍 노조 측은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책임은 명백히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에게 있다”며 “김 대표는 공장을 헐값에 인수해 2년 만에 폐업하며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그에 맞선 408일의 고공농성으로 이룬 노사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맞섰다.


스타플렉스 관계자는 “한국합섬 시절 5년간 가동을 멈췄던 공장을 180억원을 들여 재가동했다”며 “초기에 30억원씩 발생하던 적자 폭을 4억원대로 줄였지만 노조가 또 파업을 벌여 영업이익이 급전직하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으로 공장 운영이 어려워져 가동을 멈춘 것이지 공장을 위장폐업했다는 노조 측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노조 측 주장과 달리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은 게 없다”며 “공장은 아직 폐업하지 않고 회사는 여전히 살아 있다. 회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종교·정치권
각계각층 관심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의 고공농성이 크리스마스에도 계속된 가운데 두 사람의 건강도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청년한의사회 등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두 사람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의료진은 두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우려했다.

심희준 한의사는 “위는 매우 좁다.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있는 수준도 안 된다. 노동자들이 허리 통증, 목 통증을 호소했다. 공장이 가동되면 아침저녁으로 떨림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굴뚝이)많이 흔들려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규진 의사는 “정말 사람이 있을 공간이 아니었다. 건강 유지란 말이 적용될 수 없는 공간서 어떻게 버텼는지 의학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며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했는데 진찰을 위해 겉옷을 올리자 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활력 징후가 모두 매우 안 좋다. 심장 소리도 불규칙하고, 혈압과 혈당도 너무 낮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진으로서 매우 불안하다. 당장 내려와서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의료진으로서 위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오히려 여기 계신 분들한테 부탁하고 싶다. 저분들이 하루빨리 내려와서 건강을 체크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두 노동자의 고공농성이 올해 안에 마무리될 수 있도록 강력한 연대행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단체들을 대표해 나선 송경동 시인은 “현재 시민사회, 종교계, 정치권까지 나선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참혹과 비참의 상징인 75m 굴뚝 고공농성을 해지하기 위해 마음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연내에 문제 해결하고 고공농성 풀고 저들이 내려오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사람이 많지도 않고 5명이다. 충분히 고용을 보장할 공장도 있고 자본력도 충분하다.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 한 사람의 고집, 아집 때문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피눈물 흘리고 아파해야 하는 현실이 분노스럽다. 본인이 과거에 했던 (고용)약속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는 ‘12월29일 노동인권 사수의 날-스타플렉스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2011년 희망버스 운동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복직시켰듯,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이번에도 두 사람을 땅 위로 내려오게 할 것으로 기대했다. 


411째 첫 만남
의견 차이 극명

내년부터는 스타플렉스의 해외 거래처들에게 이들의 노동 탄압 실태를 알리는 사업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송 시인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짧은 시간이지만 간절함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참여토록 할 것”이라며 “차광호 지회장도 단식 16일 차, 시민사회 인사들의 무기한 동조단식도 8일째를 맞고 있다. 힘을 모아달라”고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고공농성을 시작 한 지 411일째가 되는 지난 27일 드디어 노사는 교섭을 위한 첫 만남을 가졌다.

천주교·불교·개신교 3개 종단 사회노동 기구 연합인 ‘3개종교노동연대’는 411일간 노조 고공농성으로 갈등하는 파인텍 노사가 마침내 교섭에 나선 것과 관련해 “노사가 부정적 감정의 유혹을 이겨내고 상호 진지한 대화를 통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종교노동연대는 이날 ‘파인텍 고공농성 장기화 관련 종교계 중재에 대한 입장’을 통해 “하루빨리 진솔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나가길 기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노사 간 교섭 재개는 이들 3대 종단 노동기구의 중재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노동연대는 “종교인들은 당사자 간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사 양측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마음의 불을 조금 꺼트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번에 걸쳐 대화로 설득했다”며 “구체적 해결책을 만드는 일은 노사 당사자의 의견 조율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각계각층의 관심 이어져…정치권도 들썩
교섭 성사됐지만 극명한 의견차이만 확인

종교노동연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로 구성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이번 교섭은 서로 간의 의견 차이만 확인한 채 끝이 났다. ‘스타플렉스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중구 프란치코 교육회관서 3시간에 걸쳐 노사교섭이 진행됐다. 

노조 측에서는 2014년 408일간 굴뚝 농성을 했고 현재 무기한 단식투쟁 중인 차광호 지회장과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사 측에서는 김세권 사장과 강만표 전무 등이 자리했다. 
 

고공농성 이후 410일 만의 첫 만남이었지만 3시간의 교섭에선 큰 진전 없이 서로 간의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공동행동 측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공방이 있었고 입장차만 다시 확인했을 뿐”이라고 했다. 

차 지회장은 첫 교섭을 마치고 오후 1시30분경 기자들과 만나 “의견 차이만 확인했다. 이견이 명확해 다시 협상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굴뚝 농성을 해제할 것이냐는 물음엔 “(그런 계획은) 전혀 없다. 마무리돼야 내려올 수 있다”며 “고생하는 분들이 있기에 단 한 시간이라도 빨리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 노사가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선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교섭 한 번 더?
“쉽지 않을 것”

다만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협상을 재개할 방침이다. 양측은 지난 29일 다시 만나 해법을 찾기로 했다. 협상은 2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서 진행된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홍기탁 파인텍지회 전 지회장은 한 매체와의 통화서 “전날 교섭이 확정됐다고 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여론과 정치적 압박 등에 못 이겨서 나왔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29일에 다시 한 번 만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빠른 시일 내 해결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