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구린내 나는 김재철-무용가 J씨 관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6.05 0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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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철이가 집에 안 들어간 이유를 알겠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김재철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MBC 파행이 장기화되고 있다. MBC 노조는 이 과정에서 김 사장이 사적 목적을 위해 공영방송인 MBC를 농단해온 여러 정황증거를 공개했다. 그 중 하나인 법인카드 사용내역. 특급호텔, 명품가방 등 2010년 취임 이후 2년 동안 그가 쓴 법인카드 결제금액은 무려 7억여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7억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7년간, 총 27차례 20억원 이상의 특혜지원금 지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그뿐 아니라 최근에는 수억원대 아파트 투기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리고 그 배후엔 모두 재일교포 무용가 J씨가 있었다. 김 사장의 유별난 J씨 사랑, 관련 의혹을 집중 파헤쳐봤다.

김재철 MBC 사장과 무용가 J씨의 관계가 갈수록 수상하다. 회사 법인카드로 액세서리, 명품화장품, 여성의류, 명품가방, 마사지숍, 특급호텔 등을 이용한 사실이 확인돼 의혹을 키우더니 이번에는 J씨에게 수십억 원대의 특혜를 몰아준 사실 등이 속속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석연치 않은 J씨 관련 의혹들은 다음과 같다.

무명 무용가의
대박 드라마

MBC노조에 따르면 김 사장이 울산 MBC 사장 등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7년에 걸쳐 20억 원이 넘는 ‘MBC 돈’이 J씨에게 건네졌다. 물론 확인된 것만 그 정도다.

이 기간 J씨 ‘특혜’ 의혹 공연은 모두 27건. 이 가운데 16건의 공연으로 J씨에게 20억 2000만원이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사장은 J씨 측에 기획, 제작, 홍보 등을 한 기획사가 책임지는 ‘턴키’ 방식으로 공연을 맡기는가 하면, 회사 관련 행사에 “J씨를 섭외하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용가 J씨는 김 사장이 울산, 청주MBC 사장으로 재직했던 2005년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2007 대한민국 장애인 축제' '제21회 지용제' '제1회 국궁 페스티벌' 등의 공연으로 적게는 200만원에서 최대 4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김 사장이 서울MBC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수익의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11월 20일 MBC 창사 50주년 <북한민속예술제> 공연으로 3000만원을 벌어들인 것이 최저금액이며,  올해 2~3월 MBC 방송 51주년 기념공연 <한국 뮤지컬 이육사> 11억8900만원 등 수십억 단위 금액도 눈에 띈다. 노조는 알고 보니 <뮤지컬 이육사>는 김 사장이 J씨에게 약 12억원의 공연을 밀어주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회사와의 계약을 급조했다고 주장했다.


무용가 J씨 공연, 7년 동안 20억 넘게 밀어줘
법인카드, 심야시간대 J씨 집주변서 집중사용

더욱이 J씨는 지난해 6월 전주MBC 주최의 <전주대사습놀이>에서 1시간 공연을 하고 4300만원을 받아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도 울고 갈 대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용계에서 J씨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한다면,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지난 5월 14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J선생은 재일교포 무용인 가운데서 손꼽히는 분이며 J선생의 출연은 이 분의 역량과 경험, 행사의 성격과 특성을 두루 고려한 결과”라고 해명했지만 이 둘의 사이는 단순한 후원관계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김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처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황당하게도 MBC 법인카드가 심야시간대, J씨의 거주지 주변 반경 3㎞에서 집중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MBC 노조에 따르면 김 사장의 법인카드가 J씨 집 주변 3㎞에서 2년간 162차례 2500여만 원이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법인카드는 서울 구기동의 한 일본식 주점 S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됐는데, 이 S주점은 J씨의 집과 30m정도 떨어진 장소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주점에서 김 사장은 2년간 22차례의 카드 지출이 있었다. 또한 김 사장의 S주점 결제는 주로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 심야시간대에 이뤄졌다.

아파트 주변
맴맴 돌기


MBC 노조는 S주점 사장이 “김재철 사장이 차도, 수행원도 없이 혼자 와서 30분 정도 자연산 전복과 홍합 등을 먹었다”며 “김 사장은 매번 회를 포장해서 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MBC 노조는 김 사장이 13차례 결제한 인근의 다른 B전복전문점에선 김 사장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결제내역을 보여주자 “이 정도 금액이면 전복을 포장해 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MBC 노조는 “음식을 포장한 것으로 보이는 이런 결제는 상당수가 주말에 이뤄졌다”면서 “김 사장의 자택은 서울 반포의 서래마을인데 왜 J씨 집이 있는 이 동네까지 와서 늦은 밤 음식을 포장해 간 것일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 사장은 또 구기동과 멀지 않은 홍제동의 모 횟집에서는 7차례 법인카드를 결제했는데 이중 네 번은 회를 포장해간 것으로 나타나 파업 도중 얻은 ‘숙박왕’ ‘명품왕’ ‘징계왕’ 등의 별칭에 이어 ‘회셔틀’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얼마 전에는 김 사장과 J씨가 아파트를 나란히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충북 오송 신도시에 위치한 김 사장의 아파트와 J씨의 아파트는 바로 이웃이었다. 두 사람은 부동산중개업소에 함께 찾아와 오누이 행세를 하며 계약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MBC 노조는 이를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한 몸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J씨에 대한 석연치 않은 ‘몰아주기’가 결국 김 사장의 “자기 이익 챙기기”였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문제는 김 사장과 J씨의 아파트 구매 행태가 ‘투기’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재산관리 함께?
실질적인 한 몸

김 사장과 J씨의 아파트가 있는 충북 오송은 당시 KTX역사 준공,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 등의 호재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곳으로, 두 사람의 아파트 3채는 모두 KTX역사로부터 1km 안에 있다.

김 사장 명의의 A아파트 602동은 2007년 12월 첫 분양 이후 2010년 9월까지 ‘딱지(분양권)’의 주인이 무려 3번이나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 정황도 드러났다.

사측은 지난 22일 특보를 통해 “김 사장은 2010년 9월 오송 신도시 소재 아파트 한 채를 지인 J씨로부터 구입했다”고 밝혔는데 다음 날 ‘계약신고필증’을 보니 김 사장에게 A아파트 602동을 판 사람은 J씨가 아니라 부동산중개업자 S씨로 나온다고 밝혔다.

노조 취재에 따르면, 김 사장과 J씨는 중도금 무이자 대출을 받기 위해 김 사장이 아닌 부동산 중개업자 S씨 앞으로 분양권 명의를 돌려놓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 뒤, 소유권 등기 이전 시기가 다가오자 김 사장은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명의를 변경했다.

노조는 이러한 행위를 명백한 부동산 실명제법 위반으로 보고 김 사장을 세 번째로 고소했다.


석연치 않은 혜택은 J씨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J씨의 친 오빠가 MBC 직원들도 모르는 MBC 동북3성 대표라는 직책을 맡아 월급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김 사장이 취임한 직후 J씨의 친오빠는 ‘MBC 동북3성 대표’ 명함을 들고 다니며 MBC 해외통신원 행세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J씨 오빠 취직부터 아파트 공동 투기 의혹까지
“돈이나 여자 문제 떳떳하다” 해명…노조 ‘황당’

월 활동비가 200만원씩 지급됐으며, 활동비 외에도 2011년 3월과 2012년 1월 MBC 자회사인 (주)나눔이 개최한 ‘연변 장애인 초청행사’ 때 행사 진행비 명목으로 각각 600만원과 100만원을 따로 주는 등 2년 가까운 기간 중 수천만원이 J씨 친오빠에게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MBC 사측은 “대북 돌발상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접경지역 취재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인력을 채용한 것일 뿐이고, 터무니없이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친오빠 J씨는 횡령 등의 전과로 실형을 산적도 있는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미스터리를 안고 김 사장 및 사측과 노조 측의 진실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김 사장이 무용가 J씨와의 관계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MBC 노조는 지난달 30일 총파업특보 제82호를 통해 “김재철 사장은 최근 열린 임원회의에서 ‘구설에 오른 건 자신의 처신이 신중치 못했기 때문이지만 돈이나 여자 문제는 떳떳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사장은 “친하게 지낼 때는 자신이 지나치게 잘해주는 면이 있다”며 “어쨌든 다 내 탓이다. 지금은 혹독한 검증의 시간을 거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가 거짓투성이
이제는 ‘하차’만 남았다?

노조 측은 김 사장의 이같은 해명에 대해 “황당한 변명”이라며 “김 사장이 이성과 현실감각을 되찾아 자진사퇴라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길 충심으로 권고한다”고 밝혔다.

한 네티즌은 “MB 낙하산 사장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김 사장은 이미 공영방송 사장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며 “자리지키기가 마지막 남은 임무인지 몰라도 더 추한 꼴을 보이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다. 아직 남아있다면 그의 자존심을 지킬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죽하면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됐는지 김재철 사장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명품을 사들인 법인카드 내역, 각종 특혜 의혹 등으로 횡령?배임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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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