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달인’ 조희팔 떠오르는 사망 음모론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30 11: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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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는데…4조원은 하늘로?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 사건이라 불리는 ‘조희팔 사건’의 주범인 조희팔(55)씨. 그가 도피중인 중국 현지에서 급체로 사망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그는 3만명의 고객에게 4조원을 떼먹은 뒤 중국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조씨가 숨질 당시 상황과 처리 과정에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사망을 둘러싼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조씨는 진짜 사망한 것일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의 또 다른 사기일까. 떠오르는 음모론을 <일요시사>가 파헤쳐봤다.

2006년에서 2008년까지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씨가 지난해 12월 18일 중국에서 사망했다고 경찰청이 발표했다. 그는 피해자 3만여명, 피해금액만 4조원에 달한다는 대형 피라미드 사기사건의 주범이다.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조씨는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한 뒤 53세 조선족 조영복으로 위조한 신분증으로 살아왔다.

나훈아 ‘홍시’
부르다 급체

경찰에 따르면 밀항 3년만인 2011년 12월 18일. 조씨는 자신을 만나러 온 여자친구 김모씨 등과 함께 중국의 한 고급호텔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후 호텔 내 노래주점으로 자리를 옮겨 양주를 마셨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던 조씨는 가수 나훈아의 ‘홍시’를 부르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평소에도 급체를 자주 했다는 그는 호텔객실로 돌아와 복부 통증을 호소했다. 함께 있던 김씨가 한국식으로 손을 따줬지만 소용이 없었고 중국 구급전화인 120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중국 인민해방국 404병원의 의사가 동승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 중이었다. 그러나 밤 11시 15분쯤 이미 구급차 안에서 동공이 풀리고 맥박이 정지됐다.

약 한 시간 뒤 중국 의료진에 의해 사망진단서가 발부됐다. 사인은  ‘췌사 및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박동 정지’. 유족들은 다음날 긴급비자수속을 밟아 출국한 뒤 시신을 화장하고 국내의 한 공원묘지에 안치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달까지 조씨의 사망 소식을 알지 못했다. 경찰은 조씨와 함께 달아난 공범 2명을 최근 국내로 강제 송환했지만 이들도 조씨의 사망 사실을 숨겼다.

천문학적인 다단계 사기 몸통 ‘조희팔’ 중국서 급사?
장례 장면 촬영·DNA확인 불가능…위장사망 의혹

경찰은 지난 8일 조씨의 가족과 내연녀 정모씨 등 28명이 지난해 12월 긴급비자를 발급받아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씨의 아들이 긴급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 발급 사유를 ‘부친의 사망’으로 기재했다.

경찰은 지난 12일 정씨와 자녀가 살고 있는 대구의 집과 조씨의 측근이자 외조카인 유모씨의 집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조씨가 생전에 썼던 중국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응급진료기록증, 사망증명서, 화장증이 나왔다.

또 조씨 딸의 컴퓨터에 저장된 51초 분량의 장례식 동영상과 딸이 쓴 일기장을 확보했다. 경찰은 이를 조씨의 사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사망관련
의문투성이

그러나 조씨에게 다단계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조씨가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사기극을 펼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들은 조씨의 사망 발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의혹을 제기하며 ‘사망자작극’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 역시 여러 정황으로 미뤄 돌연사에 무게를 두면서도 ‘위장 사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선 조씨의 사망 후 과정이 일반적인 정서에 맞지 않는다. 수배된 피의자의 사망 증거를 남겨놓는다는 점이나 장례식장에서 입관돼 있는 시신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51초짜리 이 동영상은 장례식 진행상황이 아니라 조씨의 얼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경찰은 “사망증명서를 발급한 의사로부터 조씨 본인임을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했지만 조씨의 유골에 대한 유전자정보결합체(DNA) 대조작업은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공원묘지에 안치된 유골의 DNA와 조씨 자녀들의 DNA를 대조해 가족관계가 인정된다면 조씨의 사망은 확인할 수 있게 되지만 수천도의 고온에서 화장된 유골은 DNA 정보가 파괴돼 분석이 불가능하다.

경찰 역시 사망이 100% 확실하다고는 이야기 하지 못하나 “어느 정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까지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조씨가 사망할 당시 구급차 안에 있었다는 목격자들도 증인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조씨가 호텔에서 쓰러질 당시에는 여자친구 김씨만 곁에 있었다. 구급차 안에는 중국 현지에서 동업해온 조선족 박모씨와 중국의사 한 명이 전부였다.

이 중국인 의사는 조씨의 응급처치부터 사망진단까지 전 과정을 맡았다. 그가 작성한 간이영수증 크기의 사망의학증명서(사망진단서)는 ‘망자성명/조영○’ ‘민족/조선’ ‘연령/53세’와 확인도장이 전부다.

또 국내에서 심장질환 진료를 받은 적이 없던 조씨가 갑자기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점도 의심을 사고 있다.

비리커넥션…제3세력 개입한 타살 가능성도 제기
전·현직 공무원 연루 비리와 자금 추적 수사 불투명

이 같은 의문에 이어 22일 ‘조희팔 계약사기 사건진상 규명위원회’가 운영하는 다음카페 ‘바른가정경제실천시민연대(바실련)’에는 한 네티즌이 조씨의 사망과정에 대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조희팔이) 청도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120에 신고해 구급차를 불러 해방국404병원으로 가던 중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건 뭔가 석연치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선 해방국404병원은 위해시에 있고 조씨가 술을 마시고 복통을 일으킨 지역은 청도시라는 사실을 첫 번째 의문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두 도시 간 거리는 306㎞나 떨어져 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응급환자를 청도시의 가까운 병원을 두고 편도 3시간 이상 걸리는 먼 지역으로 옮겼다는 건 상식적으로 어불성설이라는 해석이다.

또 위해시에 있는 해방국404병원에서 사망한 조씨를 또다시 해당 병원이 아닌 109㎞나 떨어져 연대시에서 장례식과 화장을 치렀다는 사실도 또 다른 의문점으로 꼽았다. 위해시에서 연대시까지는 차로 이동할 경우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이다.


글쓴이는 “위해시에 공항도 있고 화장터도 있는데 굳이 연대시에서 화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가족들이 조씨의 사망사실을 접하고 바로 다음날 여권과 비자를 만들어 중국에 입국한 사실과 관련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가족이 해외에서 사망할 경우 긴급히 여권과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해당 영사관과 국내 외교부에 조씨의 사망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가 있어야 하루 안에 발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당시 조씨는 지명수배돼 있었는데도 조씨의 사망증빙서류를 검토했을 외교부와 영사관이 지명수배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여권과 비자를 발급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경찰이 조씨의 집을 수색하던 중 조씨가 죽은 사실을 알았다고 밝힌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비자금 조성, 중국 도피과정에서 연계된 커넥션 등을 숨기기 위해 제3의 세력이 개입해 타살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단계 수사
난항 예상

조씨의 실제 사망여부 논란은 뒤로 하더라도, 사망설이 굳어진 상황에서 다단계 사건에 대한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됐다. 피해자들은 왜 하필 이 시점인가에 대한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조희팔 사건의 핵심 공범 2명의 신병을 중국에서 넘겨받아 조사에 들어가면서,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씨가 거액의 범죄수익을 어디에 어떻게 숨겼는지 밝혀내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병도 아닌 예기치 않은 사망으로 은닉해 놓은 거액의 범죄 수익금에 대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에 대한 변제도 더욱 힘들게 됐다. 피해자들 중에는 이 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린 채 자살하거나 화병으로 사망한 사람만도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상당부분 뇌물공여자의 자백에 의존해야 하는 뇌물 비리 의혹 수사도 난관에 부닥치게 됐다. 조씨는 다단계 사기행각을 벌이고 중국으로 밀항하기까지,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광범한 금품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씨가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조씨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은닉재산 환수작업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현직 공무원 연루 비리와 자금 추적 수사가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씨 주변에 대한 전방위 계좌추적에 나서는 등 범죄 수익 및 공범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문학적인 다단계 사기의 몸통이 사라진 상황에서 경찰이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을지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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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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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