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패드립’ 수렁에 빠진 청소년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5.25 20: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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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뒷골목에선 지금…“아버지는 개고 엄마는 창녀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부모도 모르는 청소년들만의 사이버세상이 있다. 이곳은 엄마와 아빠의 눈을 피해 아이들만이 모여 노는 은밀한 공간.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청소년들의 공간이 으쓱한 동네 뒷골목에 비유할 만큼 위험천만하다는 데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면서 언어폭력을 저지르고, 또 폭력에 노출돼 있다. 자신의 부모나 상대방의 부모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패드립’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상태. 패드립이란 ‘패륜적 애드립’을 말한다. 부모들이 문지기처럼 지켜 줄 수 없는 그 장소에선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청소년들의 ‘패드립 문화’를 집중 취재했다.

“큰 할매미(할머니) 뒤져가꼬 4만원 줄었다. 원래 이×이 통이 제일 큰 ×이라서 팍팍 주는데 간경화로 뒈짐. 고3때까진 살아있어야지 왜 이렇게 빨리 뒈지냐. 돈주기 싫냐 ×××아! (인터넷 유머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 갤로그에 올라온 ‘패드립’ 글 )

“××야. 나를 욕하지 말고 차라리 내 매미(엄마), 애비를 욕해라.” “××아 니 애미 창녀고 니 애비는 개냐 ××” (유명한 ‘패드립’ 관련 글)

패드립 확산은
인터넷을 타고~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명 ‘패드립’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인 패드립은 부모나 웃어른을 욕설 및 성적 비하의 소재로 삼아 공격한다는 의미다.

과거부터 미숙한 청소년들이 부모형제를 향한 애증과 반항심으로 험담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있어왔지만 최근 유행하는 패드립은 일부 학생들에게 국한된 행태, 단순한 투정과 화풀이로 봐 넘기기에는 쏟아내는 욕설과 비난의 수위가 심각하다. 패드립을 전문으로 배워보자는 인터넷카페까지 생겨나고 있다.


패드립의 시작은 인터넷 유머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이하 디씨)’에서부터다. 디씨 안에 있는 ‘코갤(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의 대두와 함께 사이버공간 전역에 퍼져나가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무법천지 온라인, 10대들 모여 막말·욕설·패드립까지
부모를 지칭하며 욕설과 성적 비하하는 형태로 진화

그중에서도 코갤에 올라온 ‘울애비 장애자 인증’이라는 제목의 글은 ‘패드립 종결자’로 꼽힌다. 작성자는 정신장애3급이라는 복지카드 인증샷과 함께 “애비라는 놈은 맨날 지 장애인이라고 일 안하고 놀고먹고 엄마만 매일같이 일하러 나가고 애비가 빨리 고인이 됐으면 좋겠다. 정신병원에라도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거기 들어가는데 돈도 들어서 그냥 집에서 방치중”이라고 썼다.

또 코갤에서는 패드립을 모에화(모에 의인화)하여 그린 만화가 대세를 탄 적이 있다. 심지어 엄마의 코고는 소리를 녹음해 웃음거리로 만들어 힛갤(히트 갤러리)이라는 명예의 전당으로 간 패드립퍼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패드립이 만연하게 쓰이다보니 현재는 기존의 욕과 같은 한 종류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야구를 관람하면서 “스트라이크존 ××같이 잡네”를 “스트라이크존 애미없이 잡네”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게임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게임을 하던 중 상대를 비방할 목적으로 상대의 부모를 지칭하며 욕설과 성적 비하를 하는 형태의 욕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공격대상은 대부분 부모·친척·친구·교사 등 주변인들이지만 불특정 다수의 기성세대, 심지어 고인(죽은 사람)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증오’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키보드 배틀로
상대 제압하기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패드립은 다시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 채팅 프로그램인 ‘카카오톡’을 통해 서로 누가 더 패드립을 잘하는지 경쟁하는 ‘패드립 배틀’이 이뤄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포털사이트 지식공유 게시판, 또는 카페 게시판에는 “패드립 좀 가르쳐 주세요. 엄마 욕이나 심한 패드립 부탁드려요” “패드립 종결자로 거듭나고 싶어요”라는 질문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다.

“니 엄마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팔지?”라는 다소 농담 섞인 표현도 있지만, “니 할매미(할머니)가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니 매미(엄마) 키우고 니 매미(엄마)가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니년이 자랐구나!”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비하의 내용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단절? IT기술 발달이 원인
“오프라인상에서 사회화 될 수 있는 기회 가져야”

지난 주말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PC방에서 만난 중학교 2학년 손모(14)군은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막상 들으면 기분이 나쁘니 나도 하게 되고 그렇게 자연스레 오고가는 것 같다”며 “패드립이 일상이 된 한 친구는 학원에서 선생님과 얘기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패드립이 나와 당황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옆 자리에 있던 김모(16)군 역시 “게임카페나 안티카페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의견차에 싸움이 난무하고 꼭 쌍욕에 별 말도 안 되는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아야 상대를 이긴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라며 “대부분 패드립이 특별히 심한 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키보드 배틀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함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버 세상의
새로운 룰 만든 것

이런 세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정에서는 부모·자식 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성적을 강조하는 입시교육 위주의 학교생활에서 받게 되는 상처와 스트레스가 욕설에 심각하게 오염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 인터넷, 휴대폰 등 IT기술의 발달이 확산 배경이라고 꼬집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현재는 과거보다 가족의 결속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어렵고 또 IT기술 발달로 인터넷 중독,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중독된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청소년들 세상이 사이버 세상 속에 존재하게 됐다”면서 “사회구조가 이점을 잘 인지하지 않은데서 문제가 비롯됐고 청소년들의 패드립 문화는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일종의 반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종류의 반항 심리와 반항 행동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청소년들의 이런 사고를 했다 치더라도 오프라인 접촉, 즉 부모님 혹은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잘못된 점을 수정하고 다시 사회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교수는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고, 적대적 혹은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정상적인 발달이고 전형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만 하고 마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며 “지금은 인터넷, 휴대폰에 중독된 청소년들이 늘어났고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부모와 자식이 눈 한번 마주칠 기회가 없어지면서 부모들이 모르는 혹은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됐고, 그 세상에서 자기들만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 교수는 오프라인 상에서 청소년들이 제대로 사회화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들이 부모와 함께 밥을 먹으면서 사회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등 일련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과하게 사이버 공간 상에만 빠져있고 그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가치체계가 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문제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IT에 중독되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방치했던 우리의 잘못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오늘날 결과적으로 청소년 범죄의 폭력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신촌에서 일어난 10대 살인사건 등 청소년 흉악범죄는 사이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사이버 공간에서 푸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데 부모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사이버공간상에서 비슷한 또래들끼리 말도 안 되는 대화를 통해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학교의 기능이 너무 아쉽다. 청소년들이 훈육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인 학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 교육에 개입해야한다”며 “학교의 규율을 원칙 있고 타이트하게 운영했다면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도 덜하고, 또 그런 기회를 거치면서 사회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들은 막상 내 눈 앞에선 컴퓨터와 휴대폰에 빠져 조용하다고 방치할게 아니다. 그 안의 세상은 훨씬 크며 부모들이 생각하는 상상이상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화나 활동을 통해 잘못된 점은 바로잡아 주는 등 자라나는 아이들의 생활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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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