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교’ 사건으로 본 신흥종교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4.25 1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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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의 노예로 전락한 신도들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한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최근 국내에선 신흥 종교가 핫이슈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신흥종교가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신흥종교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국내에 존재하는 신흥종교들은 기성의 종교들을 교묘하게 배합하고 추출하여 만들어낸 이른바 ‘비빔밥 종교’가 대부분. 내용을 잘 살펴보면 모순되고 상치하는 이론과 주장, 그리고 급조한 신화들이 엇갈리면서 혼선을 빚고 있기도 하다. 특히 이들은 ‘종말론’, ‘집단 자살’, ‘성추문’ 등 비합리적인 행위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단시비와 더불어 커지고 있는 신흥종교의 폐단. 최근 빚어진 사건들을 통해 그 실태를 추적해봤다.

비정한 모정(母情)이었다. 사이비종교인 ‘기계교’에 빠진 엄마가 두 딸을 살해하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4일 부안경찰서에 따르면 권모(38)씨는 지인 양모(33)씨의 꼬드김에 넘어가 기계교라는 기괴한 믿음에 빠져들어 빚을 내 생활하다 결국 7세, 10세 두 딸을 살해했다. 자신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한 횟집 여자화장실에서 숨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기괴한 믿음에
빠져들어

권씨는 지난 2010년 학부모 모임에서 양씨를 알게 됐다. 당시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했던 권씨는 양씨와 대화를 나누며 위안을 받았고, 급기야 “시스템에 등록하면 부부관계도 좋아지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양씨의 제안을 받았다.

그 ‘시스템’이란 양씨가 꾸며낸 가상의 사이비종교인 기계교였다. 양씨는 권씨가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약점을 이용해 “지령하는 대로 잘 따르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기계교의 교리를 주입시켰다. 양씨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기계’의 지령을 권씨에게 전달했다.

양씨는 처음에는 “집 앞에 피자를 사다 놓으라”는 등 사소한 지령을 내리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의 잠을 재우지 마라”, “소풍을 보내지 마라”, “목욕을 하지 마라”, “역에서 노숙하라”, “딸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마라”는 등 가학적인 지시를 따르라고 요구했다.


지령 내리고 벌금 물리고…사이비 종교 ‘기계교’ 충격
신흥교주 말이라면 ‘돈’ 바치고 여동생까지 ‘살해’

지령을 어기면 벌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양씨는 또 권씨의 큰딸이 공부를 잘해 자신의 딸과 비교된다며 폭행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권씨는 처음 기계교 시스템 등록비로 양씨에게 천만원을 건넸고 이후 벌금 등의 명목으로 사채를 내면서까지 2년간 모두 1억4천여만원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양씨는 이 돈을 쇼핑 등에 모두 탕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기막힌 사건은 이른바 사이비종교에 빠진 비정한 엄마의 무지 때문에 발생했다. 그리고 어린 두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짧은 생을 마감해야했다.

앞서 13일에는 신도들에게 영제기도를 올린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고 빼돌린 혐의로 종교인 문모(46·여)씨가 구속됐다. 문씨가 소속된 종교단체는 일본에서 들어온 신흥종교. 

문씨는 지난 2008년 10월 피해자 A씨에게 “아들에게 귀신이 씌었는데 영제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속이고 영제기도 명목으로 2500만원을 받아 빼돌리는 등 모두 7명으로부터 총 9억여원을 가로챘다. 또 문씨는 영제기도를 올릴 때 필요한 돈을 주면 기도가 끝난 뒤 2배로 돌려주겠다고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주 지령 받아
기계처럼 움직여

지난 2007년 11월에는 사이비 여교주가 내연관계에 있던 남성 신도와 이 내연남의 어머니와 짜고 자신의 집에서 내연남의 여동생을 살해했다는 사실이 검찰의 재수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교주 김모(53·여)씨 등은 같은해 10월5일께 김씨 자신과 내연관계에 있던 오빠 임모(39)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말하는 한편,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 임모(37·여)씨의 어머니 정씨에게 임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게 한 뒤 내연남과 함께 흉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

당시 김씨가 교주로 있던 사이비종교는 30여명에 이르는 신자를 가진 신흥종교였으며 정교한 교리는 없으나 사월초파일에 절에 가고 크리스마스 때에는 교회나 성당에 가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는 종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교주 지시에 따라 오빠와 어머니가 친여동생이자 딸을 무참히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교주를 보호하기 위해 허위진술을 할 정도로 사이비종교가 인간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조정하는 등의 피해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9월에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멀쩡한 남의 집에 쳐들어와 주인을 쫓아내고 성전을 세우겠다고 소동을 피운 신도가 구속됐다.

동작구에 사는 A씨 가족에게 악몽이 시작된 것은 3월 중순경. 난데없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모(36·여)씨가 찾아와 “꿈에서 당신 집이 내가 이사할 집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집을 팔라는 것도 아니라 ‘비워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는 이씨는 거의 매일 찾아와 ‘이곳에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해괴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이사할 것을 거듭 요구했고 A씨 가족은 극심한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이씨는 급기야 신학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남편도 끌어들였고 5월 중순부터는 아예 이삿짐을 싸 들고 A씨 집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4월부터 6월 사이 무려 50여 차례나 이어진 이씨 부부의 행패는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된 뒤에야 막을 내렸다.

2000년 1월에는 시한부 종말론을 앞세워 신도들에게 1500억원을 헌납 받고 그 중 일부를 횡령한 사이비 교주 부부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천부(모씨), 천모(박씨)라 칭하며 최고신인 ‘천존’의 지상 대리인으로 행세했는데 종말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성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신도들에게 맞보증 대출을 조장해 거액의 성금을 모았다. 당시 대부분의 신도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으며 직장, 가정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사이비 종교 사상 최대의 사기 피해로 기록된 이 사건은 교주 부부가 각각 징역 8년, 5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일단락된 듯 보였다. 하지만 2005년 출소한 박씨는 옛 신도들을 규합해 또 다른 종교단체를 설립해 교주로 활동하고 있었다.


신흥종교 우후죽순
사회불안 증폭 탓

그렇다면 이러한 신흥종교가 발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성 종교의 한계가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워낙 기성종교의 입지가 작았고 정통 교리를 확산하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성황 이유로 시대 변화를 꼽았다. 은행 빚, 자녀 교육비, 고용 불안 등 먹고 살기 힘들어진 ‘불안한’ 현실이 포인트라는 것.

우후죽순 신흥종교의 범람은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다면 신흥종교에 현혹될 확률이 낮다.

한 종교계 관계자는 “일부 문제가 되는 신흥종교는 물질의 어려움이나 불치병 등 인간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세뇌와 주입식 교리 교육으로 차츰 빠져들게 만든다”며 “또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 겁박과 공포심을 심어주고 상대적으로 약한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교를 믿으면 모든 게 형통하게 된다는 허망한 희망을 심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비빔밥 종교의 늪에 빠진 사람들…‘불안 사회’가 원인
“욕심 버리고 처해진 환경과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이럴 경우 자연스럽게 신도들은 ‘돈으로라도 고난을 피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현세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삶을 다음 생에는 잘 살 수 있다’는 달콤한 교리에 빠지게 되고 이는 신흥종교의 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종교피해고발센터 관계자는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한국의 신흥종교들은 현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흥종교에서 제공하는 구제재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삶의 의미와 방향 그리고 방법을 얻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흥종교들은 소수집단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기성종교와 기존 사회체제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편견과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일부 신흥 종교의 피해는 물질적·정신적 피해뿐만 아니라 폭력, 실종 등 인명 피해가 뒤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신흥종교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먼저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지금 처해진 환경과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가족을 해하려 하거나 재산을 바쳐야만 구원을 얻으며 교주 본인을 신처럼 추앙 받고자 하는 종교는 모두 사이비종교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이 세상에서 건강한 종교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개인과 가족 그리고 허망한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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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