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성폭력 휴유증에 시달리는 여성 <격정토로>

“나는 결코 성추행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최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고통 속에 사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신고율이 저조한 성범죄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는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힘없고 여린 아이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파렴치한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라고 한탄만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성폭행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감당할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 특히 성범죄 피해자가 아동이나 청소년일 때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피해 정도를 떠나 심리적 충격 여부에 따라 치유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쉽게 치유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성범죄 피해자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 10여년전 고등학교 동급생에게 성범죄 피해를 입은 김아름(가명·29·여)씨의 삶을 통해 피해자들이 겪는 육체적, 심리적 후유증과 성범죄피해에 대응하는 우리사회의 현 주소를 들여다봤다.

18살의 기억과 10여 년의 침묵은 성폭력 상처 더욱 깊게 만들어
지울 수 없는 ‘그날의 악몽’…별다른 대책 없이 망가져가는 심신


“나는 더 이상 성범죄를 겪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어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던 김아름씨. 그러던 김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악몽 같은 기억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아이러브스쿨’, ‘다모임’ 등과 같은 동창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열풍이 불던 해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김씨는 사이트에서 만나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믿고 나갔다가 계획적인 강제성폭행을 당했다. 그날 이후 자책과 불안이 반복되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의도적인 범죄 ‘희생양’

“당시에는 그 친구가 분명 강제적으로 제 몸 이곳저곳을 만졌는데 그런 피해를 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어요. 경찰에 신고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알았고요. 부모님께도 털어놓으려고 했지만 말해봤자 부모님도 마음 아플테니 그냥 차라리 나 혼자 고통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별다른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의 후유증으로 원만한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없어 1학기만 다닌 후 자퇴했다. 그리곤 집에서만 생활했다.

“그날 이후로 대인관계기피와 경계가 심해져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요. 하루 종일 그렇게 몇 년을 집에만 있는 게 그나마 불안하지 않더라고요. 사람을 믿고 나갔는데 그런 피해를 당하고 나니 집만이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집 밖에 나가는 게 두렵고…. 남자친구를 한 번 만나봤지만, 그가 스킨십을 시도하려고 하자 옛 기억이 떠올라 연락을 끊었어요. 남자고, 여자고 사람만나는 게 저에겐 너무 두려운 일이에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김씨가 27살이 되던 해. 딸이 집에만 있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권유로 두 번째 대학에 들어갔다. 2년 동안 학교생활을 했지만, 그는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고 과거를 벗어나 살 수도 없었다. 대인기피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두 번째 학교도 그만두고 만다.

“과거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게 저도 너무 싫은데 언제쯤이면 잊혀 질 수 있을까요. 매일 밤마다 울고 잠도 잘 못자고…. 집에서 계속 누워만 있다 보면 속에서 울분이 끓어올라요. 그러다 소리 지르게 되고 울고 집에 있는 물건을 다 집어던지기도 하죠.”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던 김씨는 얼마 전 동창생이었던 가해자의 근황을 접하게 된다. 지난 10년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채 힘든 생활을 이어온 자신과 달리 너무 잘 지내는 듯한 가해자의 모습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가해자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사는데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웃고,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고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분명 성범죄자 기록을 갖고 살아야하는 가해자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멀쩡히 살아가고 피해자만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가는 게 너무도 불합리 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김씨는 10여년이 지난 후 가해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공소시효 7년이 지났지만 성폭력 상담소에서 상담치료를 병행하며, 상담사와 함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막상 고소를 앞두고 김씨는 더 막막하기만 하다.

“고소를 하기 위해 저와 비슷한 피해사례를 알아보다 성범죄 처벌이 공소시효 폐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많음을 알고 씁쓸해 지더라고요. 어렸을 때 당한 일이라 증거가 없어 검찰 측에서 공소제기도 안 하고 수사가 종결되거나 공소가 되도 유죄처리가 쉽지 않다는…. 이런 사례들을 접하면서 정말 대한민국 성범죄 처벌에 회의를 느끼고 피해자는 난데 내가 이렇게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힘들어야 하다니…. 이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 아닌가요?” 

성추행 규명 ‘가시밭길’

김씨는 피해자들이 두 번 상처받지 않도록 성범죄에 대한 법적인 조치와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역시 김씨 의견에 동의한다.

한 심리치료센터 관계자는 “김씨와 같이 드러나지 않았던 성범죄 피해자들이 장기간 방치되면 우울증이 심해지거나 사회에 대한 반감이 커져 자살이나 제2의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미성년자 성범죄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그들이 원하는 철저한 수사 등 성범죄 근절을 위한 사회적 성범죄 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다수의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들은 김씨와 같이 우울증과 성격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비록 어렸을 때 당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증상은 성인이 된 뒤까지 지속된다. 일

평생 지속되는 이런 후유증이 아동·청소년 성폭력의 잔인한 점이다. 그 상처가 남지 않도록, 남더라도 최소한이 되도록 과연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악몽의 그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지 사회적 시스템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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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