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성형외과 수능생 ‘성형’ 유혹 백태

성형 요구하는 사회 “시간 만들어주고 깎아줄 때 많이 고쳐라?”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성형공화국, 성형을 쇼핑하는 나라. 한국 사회에서 성형은 일부 소수가 누리는 특권이 아니다. 이미 상당수의 여성들이 경험하고 열망하는 부분이 된 지 오래. 혹자는 한국 사회가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모가 연애, 결혼과 같은 사생활을 비롯해 취업, 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까지 좌우하기도 하니 이 주장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성형 열풍이 과도해져 이제 막 수능을 치른 고3 학생들을 비롯한 10대가 성형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맘때쯤이면 성형외과들은 ‘수험생 모시기’ 경쟁에 열을 올린다. 일부 성형외과는 수험생들을 겨냥해 무분별한 성형을 부추기는 할인이벤트를 벌이기도 해 눈총을 받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형수술은 얼굴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만큼 수험표를 보고 할인해주는 곳과 달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호! 공부시간 끝났다’ 이제 째고… 깎고…예뻐질 시간?
일부학생들, 가짜 진단서 발급받아 학교 안 가고 성형수술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 임모(19)양은 수능이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수능이 끝나면 부모님으로부터 “눈과 코 성형수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뒀기 때문이다. 임양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예약한 ‘수능 성형 프로그램’ 상담을 수능을 치른 직후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고 수술예약을 마친 상태다.

임양은 “몇몇 친구들은 이미 성형수술을 했고, 너도나도 성형수술을 하는 분위기에 동참하게 됐다”며 “12년의 답답했던 학생 수험생신분을 날려버리고 사회인으로 당당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눈과 코를 수능 후 성형으로 날려버리고 싶다”고 전했다.

수능시험 ‘끝’
성형시대 ‘시작’

‘2012 대학 수험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의 관심사는 매우 다양한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외모 변화’다.

‘수능 끝나면 다이어트 해야지’, ‘지겹도록 붙여온 쌍커플 테이프와 이별하고 수술해야지’ 등 수능 후 계획을 털어놓는 수험생들은 대부분 달라지는 외모를 꿈꾼다. 고3 수험 기간 동안 소홀했던 외모관리에 신경 써서 좀 더 예쁜 모습으로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고 싶은 바람에서다.

이에 최근 2~3년 전부터는 수능 후 성형수술을 하는 수험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친구들이 성형을 통해 변화한 모습을 보고, 또는 성형을 계획했던 학생들이 수험 후 넉넉한 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 성형외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며칠사이 강남이나 압구정 유명 성형외과에서는 교복차림의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담을 위해 성형외과를 찾은 김모(19)양은 “대부분 성형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친구들과 많이 공유했고, 예전부터 수술을 마음먹었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성형수술을 하려면 대학 입학 전에 해야 자연스럽고 좋다’는 인식이 퍼져있어 수능 끝난 뒤 많이 고친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이 이같이 성형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는 부모님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성형하면 우려부터 하는 부모들이 많았던 반면, 지금은 오히려 ‘외모도 경쟁력’이라며 실력 있는 병원을 함께 찾아주는 등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능 후 목표하는 점수를 넘을 경우 상으로 자식에게 성형수술을 약속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수능생은 봉’
성형상술 극성

이처럼 보다 확실한 외모 변신을 위해 성형에 관심을 갖는 수험생들이 늘면서 성형외과에서는 앞 다퉈 이들을 위한 ‘수험생 성형패키지’를 내놓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에 몰려 있는 미용성형병원들은 ‘친구 따라 강남 오면 할인이벤트’ ‘수험생 성형 시 부모님 보톡스 시술 할인’ 등 저마다 광고를 내걸고 있다.

H성형외과는 오는 12월 23일까지 상담신청을 하는 수험생들에게 ‘수능해방혜택’을 내놓았다. 쌍커플과 앞트임, 보톡스, 코 성형, 안면윤곽(사각+광대) 등 패키지를 공개한 후 수능 끝난 이후 몰리는 고객들을 잡기 위해 묶음판매에 나섰다.

강남구의 A성형외과의원은 홈페이지 공지글을 통해 “수험표를 가져오면 쌍꺼풀 수술, 부위별 지방흡입 수술, 피부 레이저 시술 등을 20% 할인해준다”며 수술을 권유했고 또 다른 성형외과는 “대학 가면 살 빠질 것 같죠? 안 빠져요!” “요즘 외모는 피부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등 대학 생활을 앞두고 더 예뻐지고 싶어 하는 수험생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구로 수험생들을 유혹했다.

압구정 A성형외과에서는 눈과 코 성형을 합쳐 239만원에 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성형외과 ‘수능 상술’의 진화 “많이 고칠수록 더 싸게 해줄게”
‘얼짱·몸짱’ 신드롬이 만들어 낸 외모지상주의 “수술 신중해야”


압구정 P성형외과는 늦깎이 수험생임을 가장해 성형상담을 간 기자에게 “‘쌍꺼풀은 수술 축에도 못 낀다’는 추세를 반영하듯 눈, 코 수술은 점차 수술이 아니라 학생들 졸업선물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고 안심시키며 “병원 내 수험생 성형 패키지 이벤트가 있긴 하지만 수술을 원하는 부위를 말하면 거기에 따라 맞춤형 패키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상담을 받은 당일에 우리병원을 선택해 주면 10% 추가할인 혜택까지 있다”라고 성형을 부추겼다.

이어 이 관계자는 “수시에 붙은 수험생들은 이미 10월에 수술을 다 마쳤고, 일반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상담하고 수술예약을 잡는데 12월까지는 수술 일정이 빡빡하다”며 “빨리 수술하고 싶은 학생들은 가짜 진단서를 끊어줘서 지금도 학교 안 가고 수술하는 애들도 많고…. 진단서가 안 통하는 학교면 12월, 1월 방학기간에 예약해서 하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코 성형수술에 ‘비염’ 진단서, 눈 수술에 ‘안검화수’ 진단서 등을 받아 학교에 제출한 뒤 수술을 하기도 했다.

강남의 또 다른 성형외과는 교복 입은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병원은 “친구들을 데리고 오거나 지인과 함께 오면 40% 할인을 해준다”며 “수험생 이벤트로 퀵매몰과 입체윤곽, 코 성형을 한꺼번에 하면 5백만원 짜리를 3백만원으로 해주겠다”고 강조했다.  

10대 성형수술  
“선택 신중해야”

예쁜 눈과 코, V라인 얼굴을 원하는 여학생들에게 성형외과의 수험생 할인 ‘수능마케팅’은 매혹적인 유혹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험생 할인을 무기로 한 무분별한 상혼이 자칫 어린 학생들에게 성형을 조장하고 외모 지상주의를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이렇게 성형을 유도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본인부담금을 면제 또는 할인을 해주거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병원을 소개ㆍ알선ㆍ유인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성형외과 진료는 대부분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데다 할인 쿠폰이나 홈페이지 광고를 알선 혹은 유인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한 의사가 여드름 약물치료를 50% 할인해준다며 병원 홈페이지에 광고를 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유권해석을 엄격하게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로는 법원의 논거에 따라 개별 사례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한다”라며 “대상과 시기를 정한 쿠폰 광고는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세태에 대해 닥터75성형외과 김기출 원장은 “일부 학생들의 경우 잘못된 상식으로 무리한 성형을 요구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정확한 정보 없이 수술을 선택한다”면서 “성형수술은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위해서 한 행위’가 지나쳐서 도리어 ‘자기를 망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성형을 원하는 10대들은 “성형을 왜 하나고요…. 세상이 그렇게 만들잖아요”라고 말한다. 이들의 성형수술 열풍 또한 우리 사회 특유의 ‘얼짱, 몸짱’ 신드롬이 만들어 낸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는 경계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면과 외모의 조화’라는 이 식상한 사실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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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