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모친 살해 양부에게 유산까지 빼앗긴 아들

“피해자 목에 ‘방울’다는 사회?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지난 2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살인자가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1만 건이 넘는 조회기록을 남기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슬픔과 분노가 가득 담긴 글을 올린 사람은 바로 살해당한 여성의 아들이다. 글에서 아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계부에게 어머니가 평생 동안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 이 거액의 상속자가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이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법원, “부인 살해한 계부에게 아들재산도 넘겨라?”
아들, “삶의 보금자리도 잃고, 빚만 수억원 떠안아”

지난 2008년 3월 모텔을 운영하는 재력가의 한 여성이 재혼한 남편에게 살해됐다. 그런데 이 살인범은 반성은커녕 자신이 살해한 부인의 재산이 모두 자기 것이라며 양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이라고 생각한 양아들은 이내 뒤통수를 맞았다. 법원이 이 계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계부의 손에 어머니를 잃은 아들은 재산마저 모두 계부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전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안게 생긴 아들. 지금부터 그 기막힌 사연을 들여다봤다.

재혼으로 행복 꿈꾼 엄마
양부에게 무참히 살해돼

아들 김모(33)씨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어머니 홍모(2008년 사망)씨는 남편과 이혼했다. 그 후 홍씨는 강남의 아파트와 위자료로 횟집과 모터보트임대업, 목욕탕업 등의 사업을 운영하며 홀로 외아들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지난 1995년 서모(54)씨를 알게 되었고, 둘은 97년 재혼했다. 당시 양부인 서씨는 세 번째 결혼이었고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있는 상태였다.

서씨와 재혼을 하고 홍씨는 그동안의 사업을 정리하면서 그 돈으로 인천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모텔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홍씨의 두 번째 결혼 역시 순탄치 못했다. 재혼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터 홍씨와 서씨의 말다툼이 자주 일어났고 이내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당시 양부인 서씨가 결혼 전부터 갖고 있던 노름의 습벽을 버리지 못했고, 외도를 하는 등 혼인파탄을 초래하는 행동들을 서슴지 않았다는 게 아들 김씨의 주장이다. 

부부싸움이 자주 일어나자 홍씨는 군대 전역 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김씨를 찾아와 양부와의 불화관계 등을 설명하면서 “인천에 내려와 모텔을 함께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김씨는 2005년부터 어머니 홍씨와 함께 모텔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김씨가 모텔사업에 합류한 이후에도 양부인 서씨와의 불화로 어머니 홍씨는 늘 괴로워했다. 서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이혼해 줄 테니 위자료로 10억을 내놓으라”는 말 뿐이었다. 터무니없는 위자료 요구에 홍씨는 이혼절차를 밟을 수 없었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2008년 어느 날, 어머니 홍씨는 양부와 최종적인 담판을 하겠다며 홍씨의 친정인 춘천으로 서씨와 함께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날 김씨는 외삼촌으로부터 어머니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두 사람에게 별채의 방을 줬는데 다음날 점심 때까지도 인기척이 없어 식사하라고 찾아갔더니, 양부는 없고 어머니는 침대에서 떨어진 채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내연녀의 집에 머물러 있던 양부 서씨는 이틀 뒤 자수했다. 서씨는 경찰 조사에서 “말다툼을 하다 좀 세게 밀었을 뿐이다. 그런데 숨을 쉬지 않았다”고 진술했으나, 부검결과 거짓진술임이 들통 났다.

아들 김씨는 “부검결과 어머니는 목 설골이 부러졌는데, 그것은 강한 힘으로 아주 오랫동안 눌렀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며 “결국 양부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를 살해사실을 인정한 후 내연녀의 집에 숨어있었다고 진술하는 등 스스로 문란한 사생활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살인 저질러 놓고
재산까지 탐내는 양부

그 후 남편 서씨는 부인 홍씨를 살해한 혐의로 징역 7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유책배우자로서 재산상속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부인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상속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씨는 부인의 재산은 명의신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즉 자신의 돈을 줬고 그 돈으로 모든 재산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아들 김씨는 “어머니 장례식장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던 양부의 가족은 어머니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어머니와 제가 함께 운영하던 모텔을 점령하면서 이제부터 모텔은 자신들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들은 어머니가 맨몸으로 양부와 결혼했고 건물을 지었을 때 투자한 돈은 모두 양부의 돈이었으며, 그러니 이제 이 건물의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김씨는 실랑이 끝에 경찰을 불러 그들을 일단 몰아내긴 했지만 이때부터 민사소송이 시작됐다. 그리고 열린 1심과 2심 재판. 날벼락 같은 판결이 떨어졌다. 양부의 명의신탁이 인정돼 모텔을 포함한 어머니의 재산을 양부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이었다.


살해 후에 재산 가로채는 행위, 법이 정당화 시켜
유사범죄로 악용되지 않도록 끝까지 진실 밝혀야


1심에선 총 재산 중 양부에게 90%, 아들 김씨에게 10%의 재산을 나눠 가지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지난 9월19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재판은 1심보다 더 한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아들 김씨가 명의신탁된 모텔을 무단으로 점유했으니 3년간 운영했던 모텔 임대료 역시 양부에게 줄 것을 판시했다. 또 모텔업을 하면서 생긴 리모델링 비용이나 채무관계 등은 모두 아들 김씨에게 떠넘겨졌다.

김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던 모텔을 상속받아 상속세까지 납부하며 영업하고 있었고, 모텔을 담보로 낡은 인테리어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내부공사를 하는 등 최근까지 영업해 왔었다. 

그러나 2심 재판의 판결은 “상속세까지 내고 상속받은 모텔을, 어머니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부 서씨의 재산”이라 판결하고 “양부 서씨의 모텔을 양아들 김씨가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어 내부 수리비 6억원은 양아들 김씨가 갚고, 2009년 8월부터 이사건 판결 확정일까지 매월9850만원(약3억원)을 어머니를 죽인 양부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법원의 입장은 이렇다. “양부는 부동산 취득 자금의 근거를 제시했고 양부의 아들은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양부는 경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상대 측의 어머니는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동산 취득에 필요한 자금은 양부가 제공했음을 짐작케 한다”는 것이다. 

판례 없다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이 되어서야

하지만 죽은 홍씨의 아들은 법원의 판결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어머니 재산을 나라에 세금으로 다 내야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분하고 억울하진 않을 것이다”라며 “이번 판결대로라면 배우자에게 재산을 주기 싫으면 배우자를 죽인 뒤 막말로 7년만 교도소에서 살고 나오면 그 재산이 다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냐”고 하소연했다.

이어 “살인을 한 자가 피해자의 재산까지 차지하게 되는 형국이라니….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냐”며 “재판의 결과는 하나의 판례로 남고 비슷한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저와 같은 유사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널리 알려지고 바로 잡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아들 김씨는 어머니가 직접 모텔부지를 매매한 흔적을 제시했다. 그리고 오히려 양부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건물을 지을 당시 계약서, 등기권리증 등 각종 서류가 모두 어머니 이름이었고 직원들 월급까지 어머니 명의로 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는 법정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양부가 어머니 홍씨에게 쓴 각서도 발견됐다. ‘결혼 이후 형성된 모든 재산은 어머니의 것’이라는 내용의 양부의 친필각서(양부 스스로도 인정)였지만, 공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과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양부인 서씨의 가족들은 모든 재산이 자신들의 것이 맞고 법원으로부터 정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홍씨 명의로 된 재산은 가족들의 토지보상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들 김씨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달 7일 G법무법인을 피고의 소송 대리인으로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다른 한 쪽은 침묵하는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져야 함은 분명하다. 주머니에 든 칼은 언젠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정의’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