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쇠창살만 보면 아픈 총수들

‘비틀비틀’ 그렇게 건강했던 영감이…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대형 사건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재벌그룹 총수들의 잔혹사엔 특별한 패턴이 있다. 일단 구속 후 이런저런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 풀려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휠체어는 꼭 등장한다. 무사귀환을 위한 일종의 필수 퍼포먼스다. 물론 혐의 내용과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법정을 거쳐 간 총수들의 귀환 사례는 거의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사법처리 앞둔 회장님들 잇달아 지병 악화 ‘병원행’
재판장 휠체어 타고 나타나…사건 마무리되면 멀쩡


청부 폭행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윤재 피죤 회장은 환자복을 입고 경찰에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소환된 두 번 모두 마스크를 쓰고 병원 환자복에 베이지색 점퍼 차림이었다. 이 회장은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에 들어섰다.

조사 전 돌연 입원
마스크에 부축받아
 
이 회장은 경찰 조사를 앞두고 갑자기 지난달 29일 지병인 뇌동맥경화 등을 이유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 회장 측은 “이 회장이 77세의 고령으로 지병이 악화해 응급실을 통해 입원 치료 중”이라며 “뇌동맥경화 등으로 올해 여러 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경찰은 이 회장이 고령인데다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구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해 지난 11일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천억원대 세금 탈루와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선박왕’권혁 시도상선 회장도 검찰 조사 도중 돌연 입원했다. 권 회장은 지난 7월 검찰이 출석을 통보했으나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권 회장은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기로 돼 있었지만, 당뇨와 고혈압 등을 이유로 출석에 불응한 채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11일 2200억원대 탈세와 900억원대 횡령 의혹을 받고 있는 권 회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거나 법정에 선 총수들이 자주 꺼내드는 카드가 바로 ‘아픈 척’이다. 동정심 유발로 곤란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묘책이다. 다리에 힘을 풀고 동공을 흐린 표정은 기본.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채로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링거 주사를 꽂기도 한다.

실제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이동해야 한다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안이 마무리되는 시점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닌다는 점에서 동정 여론을 미리 계산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휠체어 탄 총수들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총수들은 죄를 지으면 사법부의 관대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휠체어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그 속이 훤히 보이는 촌극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적중해 자유의 몸이 된다”며 “기업인에 대한 무차별적 봐주기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당연시되는 세태를 재확인시켜 대다수 국민에게 좌절감을 주는 한편 기업인들의 불법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휠체어 퍼포먼스’의 원조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정 전 회장은 정계와 관계, 금융계 등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엮었던 1997년 한보 비리 사태가 터졌을 때 마스크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청문회장과 공판장에 나타났다. 고령에 지병까지 겹쳤다는 사유를 갖다 붙였다.

정 전 회장은 매번 법정에 설 때마다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한때 재계를 주름 잡던 재벌 총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당뇨와 고혈압, 심장질환 등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변호인 측은 “정 전 회장의 혈당치가 355∼400㎎/㎗까지, 혈압은 170∼200㎜Hg까지 올랐다”며 “또 당뇨로 눈과 심장에도 이상 증세가 생겼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자신의 주치의에게 사례비를 주고 허위 소견서를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 소견서에 없던 내용을 추가하거나 병세를 과장한 것. 그는 1999년 8월과 2002년 6월 주치의 이모씨에게 형집행정지를 받기 위해 사례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주고 고혈압, 협심증 등의 소견서를 부탁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결국 1997년 1월 구속된 정 전 회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6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출소 이후엔 운동까지 할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항간엔 재기설까지 돌았다. 정 전 회장은 교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신병 치료를 위해 해외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정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휠체어에 앉는 총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1999년 10월 대우그룹 워크아웃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도피성 출국을 한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귀국해 분식회계, 횡령, 자산 국외 도피,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2개월 뒤 건강악화 이유로 구속집행정지처분을 받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심장수술과 담석제거수술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2대의 링거를 왼손에 꽂은 채 환자용 들것에 실려 법정에 나타났다. 줄곧 입원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2006년 11월 징역 8년6월을 최종적으로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징역형에 대해 사면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두 발로 잘 걸어 다닌다. 김 전 회장은 최근까지 ‘대우인’행사 등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원조는 한보 정태수
풀려나자 ‘팔팔’

앞서 2005년 6월엔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휠체어에 탄 채 인천공항 입·출국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 전 회장과 동반 귀국하기 위한 출국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이후 입국한 김 전 회장 역시 휠체어나 침대를 이용해 입국하려 했으나 여론 악화를 의식해 계획을 철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휠체어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삼성 X파일’과 ‘에버랜드 편법 증여’사건으로 한창 시끄럽던 2005년 9월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했던 이 회장은 이듬해 2월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입국했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허리엔 복대를 둘렀다.

일본에서 건강관리를 위해 산책하던 중 미끄러져 오른쪽 발목의 인대가 늘어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삼성 측은 “이 회장은 당분간 자택에서 요양할 계획으로 가급적 외부 출입을 자제, 대내외 행사에도 참석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일각에선 동정 여론을 일으켜 책임을 덜어보자는 계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 회장은 두 사건 때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 당시 이 회장은 서면조사만 받은 채 불기소 처리됐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때도 검찰은 이 회장 소환을 검토했으나 33명의 피고발인 중 이 회장만 조사를 면했다.

동정심 유발? “이제 씨알도 안 먹힌다”
십중팔구 환자복서 죄수복으로 갈아입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한 바 있다. 2006년 4월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정 회장은 그해 6월 보석 결정으로 석방된 뒤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열린 첫 공판에서 흰색 환자복에 한쪽 팔에 링거를 꽂은 채 휠체어에 실려 법정에 출석했다.

변호인 측은 “정 회장이 협심증과 관상동맥경화협착증, 고혈압과 함께 심장막에 물이 고여 있고 좌측 폐에 혹이 있는 것으로 진단받았다”며 “심하면 돌연사 가능성까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2008년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8월 광복절 특별사면 당시 면죄부를 받았다.

2007년 5월 ‘보복 폭행’사건으로 구속된 김 회장은 같은해 7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심한 우울증과 충동조절 장애 등이 있다고 주장해 구속집행정지가 떨어졌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김 회장은 2개월 뒤 열린 2심 선고 재판장에 환자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병원 응급차를 이용, 법원에 도착했으며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들어섰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상태였다. 항상 단정하게 빗어 넘겼던 머리도 전혀 손질을 하지 않았다. 법원은 김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김 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2008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MB정부 들어 최대 스캔들 메이커 박연차-천신일-곽영욱 ‘3인방’도 낯설지 않은 광경을 연출했다. 이들은 모두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08년 12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009년 11월 병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계속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섰다. 지난해 1월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박 회장은 최근 나무지팡이를 짚고 의사들의 부축을 받아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지난 6월16일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섰다. 그전에도 고혈압 증세 등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재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구속된 천 회장은 이날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구속기소)로부터 워크아웃 조기 종료 등 청탁과 함께 46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불법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천 회장은 건강 악화 등의 사유로 지난 1월 보석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도 휠체어를 탄 채 법원을 드나들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인사청탁과 함께 5만 달러를 준 혐의로 기소된 곽 전 사장은 손에 링거액 바늘을 꽂고 마스크를 낀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서고 있다.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이) 말도 잘 안 들릴 정도로 매우 건강이 안 좋다”고 전했다.

최근엔 태광그룹 오너 모자가 나란히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출석해 시선을 모았다. 지난 6월22일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태광그룹 전·현직 고위 간부들의 첫 공판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구급차를 이용해 법원에 도착한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은 환자복 차림으로 이동식 침대에서 휠체어로 갈아타고 재판장에 들어갔다. 지난 4월 간암수술을 받고 구속집행이 정지돼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이 회장은 헝클어진 머리에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 회장은 링거 주사를 팔에 꽂은 채 피고인석에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이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는 이보다 먼저 승용차를 타고와 역시 휠체어에 올라 법원 안으로 향했다. 이 전 상무는 지난 1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당시에도 구급차 환자 이송용 침대에 누운 채 검찰청사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점퍼에 달린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려 누구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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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