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100일 소탕작전 풀스토리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경찰이 100일간 ‘조폭’ 집중 단속에 나섰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활개를 치던 조폭들이 줄줄이 검거되며 사실상 와해됐다. 경찰이 잡아들인 조폭들 중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연루설이 돌았던 조직도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조직들. 과연 누가 잡혔을까?
 

경찰청의 집중단속에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경찰청은 3월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100일간 폭력과 각종 이권개입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조직폭력배 집중단속에 나서 1385명을 검거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가운데 232명이 구속됐다.

4개 조직
점거난동

경찰청에 따르면 범죄 유형별로는 폭력 행사가 857명(61.9%)으로 가장 많았고, 도박 등 사행성 불법행위 65명(4.7%), 유흥업소 등 갈취행위 37명(2.7%), 마약 관련 범죄 22명(1.6%), 기타 404명(29.1%) 등이었다.

연령대는 30대가 551명(39.8%)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20대(413명, 29.8%), 40대(271명, 19.6%), 50대 이상(83명, 6%) 순이었다. 10대 청소년도 67명(4.8%) 포함됐다.

특히, 이 가운데 전과 6범 이상은 1019명(73.6%), 1범서 5범까지가 289명(20.9%)으로 조폭 10명 중 9명꼴로 범죄 전력이 있는 것을 분석됐다. 


경찰은 이 기간 강원 춘천지역 토착 폭력배를 통합해 보도방 등 각종 이권사업을 독점한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을 무더기 검거하는 한편 경남 양산서 유흥가 이권을 장악하려 불법행위를 저지른 조직을 와해시키기도 했다.

이번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세력 확장을 위해 20대 신규 조직원을 대거 영입하고 경쟁 조직원을 집단 폭행한 경기 성남지역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휩싸인 ‘조폭연루설’ 관련 조직폭력배도 이번 검거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5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성남 조폭 2개파 54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2개 조직 두목들을 포함, 14명을 구속하고 40명을 형사입건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성남 국제마피아파는 1970년대 중반 성남 모란시장을 거점으로 생겨났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관리하는 폭력 조직 23곳 중 한 곳이다. 조직원 수 규모만 따지면 도내에서 손꼽히는 큰 조직은 아니라고 한다. 

경찰 집중 단속…1385명 검거 232명 구속
수십명씩 무더기로…가장 많이 잡힌 곳은?

1970∼1990년대만 해도 성남의 폭력조직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국제시장(현재는 거의 사라짐)을 중심으로는 종합시장파가, 모란시장은 국제마피아파가 장악했다. 


이후 1990년대 종합시장파가 신종합시장파(국제시장)와 관광파(종합시장)로 분열되면서 성남지역 폭력조직은 3곳이 됐다. 이들은 지역 내 대표 전통시장과 유흥업소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를 키웠다. 

하지만 주 수익원이던 전통시장의 상권이 약화하고 경찰의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도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7년 성남 수정경찰서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61명을 폭력 행위 등 혐의로 적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마피아파는 2007∼2008년 신종합시장파의 잔당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고 한다. 유흥업소를 갈취하거나 건설현장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뜯어내는 방식서도 탈피해 새로운 수익처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폭력조직이 합법을 가장한 건설업이나 대부업으로 진출할 때, 국제마피아파는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도박사이트를 만들어 스포츠 결과에 돈을 걸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국제마피아파의 활약(?)으로 한때 불법 도박사이트 관련자들 사이에선 ‘성남이 불법 도박사이트의 메카’ ‘성남에서 시작해 돈을 벌어 강남 간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382억원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국제마피아파 조직 3명을 구속하는 등 국제마피아파는 불법 도박 사이트 사건에 주로 이름을 올렸다. 

나쁜 짓은 
손발 척척

이 지사, 은 시장과 연관성이 제기된 무역업체 K사의 대표 이모(38)씨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2007년 경찰 관리대상 조직폭력배로 이름을 올린 것은 맞고 사업 자금의 상당수도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하지만 이씨가 돈을 벌면서 조직과 거리를 뒀다는 말도 있어서 K사가 국제마피아파가 운영한 회사라고는 단정 짓긴 어렵다”고 했다. 

국제마피아파는 세를 늘리면서 ‘조폭 색’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처럼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유독 그랬다. 

지역 정계 관계자는 “이씨는 주로 사업가로 행세해 조폭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부는 친분이 있는 경찰을 자신의 사업체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K사에도 전직 경찰 3∼4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강원 춘천지역 4개 토착 세력이 합쳐진 ‘통합춘천식구파’ 두목과 조직원을 일망타진 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합춘천식구파’ 두목 A(48)씨와 고문 B(48)씨 등 12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범죄단체 구성·활동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통합춘천식구파는 2011년 춘천 승택파와 동기파, 생활파, 식구파 등 4개 조직이 뭉쳐 탄생했다. 경찰은 소규모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며 힘을 잃은 토착 폭력조직이 재기를 위해 손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조직은 2011년 6월 홍천군 모 리조트서 결성식을 개최하고 A씨를 두목으로 추대했다. ‘선배를 만나면 90도로 인사한다’ ‘선배가 부르면 즉시 출동한다’ 등의 행동강령도 갖췄다. 

이들은 이후 유흥업소·보도방·사채업 등 각종 이권 사업을 독점하며 다른 조직폭력배들과 대치했다. A씨가 이끌었던 통합춘천식구파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먼저 지난 2011년 두목으로 추대된 이후 A씨는 장례식장 조화 납품 사업을 시작했다. 조직원을 동원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 사업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결국, 조직은 춘천·홍천지역 일대 사업을 독점했다. 

2012년에는 보도방 영업에 손을 뻗어 독점을 시도했다. A씨는 조직원들을 시켜 노래방서 도우미를 불러 술을 마시게 한 다음 경찰에 ‘불법 영업’으로 신고해 가게 문을 닫게 했다. 


2013년부터는 고수익을 위한 사채업에 눈길을 돌렸다. 이들은 각종 흉기를 이용해 다른 지역 사채업자들을 협박해 영업하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A씨는 춘천지역의 소위 ‘밑바닥’을 장악해 나가는 한편 필리핀에 근거지를 두고 도박사이트도 운영했다. 2015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운영된 16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2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필리핀 리조트서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인해 도박사이트 관련 일을 시키고 여권을 빼앗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서울 강남
진출이 꿈

일부 조직원들은 조직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핵심 조직원 6명은 모두 자신의 새끼손가락 한마디씩 잘랐다. 맹목적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탈퇴한 조직원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야산으로 끌고 가 구덩이에 묻고 휘발유를 뿌릴 듯이 위협하고, 술집 등에서 조직원들을 동원해 흉기로 위협하는 등 위력을 과시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핵심조직원들은 두목인 A씨 보호에 열을 올렸다. 조직원들은 “‘큰 형님에 대해 진술하면 나중에 가만히 두지 않겠다.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고 협박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현재 통합춘천식구파의 부두목은 달아난 상태다. 경찰은 부두목과 조직원 4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른 조직폭력배에 대한 첩보 수집도 강화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각종 사행성 사업으로 조직 운영 자금을 확보한 만큼 조직 와해를 위해 몰수보전 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서는 젊은 조직원들이 허위 전세계약서로 신혼부부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조직 운영 자금을 마련하며 세력을 키워 온 조직폭력단체가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 6월 경남지방경찰청 형사과는 불법 보도방과 유흥주점 등을 운영하며 조직운영 자금을 만들어 온 양산지역 조직폭력배 두목 B(42)씨와 조직원 등 95명을 검거, 이 중 9명을 구속하고 86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경찰조사 결과 지난 1998년 양산지역 조직폭력배 간 집단폭행 사건으로 대다수 조직원이 구속돼 와해된 상황에서 두목 B씨는 2008년 4월께 남아있던 조직원들을 다시 결성해 위계 질서와 행동강령 등을 갖춰 옛 조직을 정비했다.

국제마피아파, 춘천식구파…
논란의 폭력조직들 일망타진

2010년 3월에는 울산 지역 저수지서 조직기강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선배가 후배 조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속칭 줄빳다)하는 등 조직원에 대해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6년 5월에는 양산지역 유흥가에서 퇴출한 조직원이 세력을 형성하려 한다는 이유로 조직원들이 퇴출한 조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후 차량을 파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13년 6월부터 10월까지 매매 불가능한 오폐수 공장을 매매할 것처럼 속여 1억8000만원을 받아 가로채고, 2015년 8월께 허위 전세 계약서를 작성해 은행에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해 3억5000만원가량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지역 내 이권장악을 위해 지역 보도방을 각 지부별로 나눠 관리하고, 2014년 3월께 음료수와 물수건을 납품하는 유통업체를 차려 유흥주점 업주를 상대로 물품구입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1월께 경찰의 보도방 업주 조사여부를 알고 보도방 업주들을 불러모아 ‘서로간의 지켜야 할 것’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위협을 가할 것처럼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대구와 울산 지역 조직원과 짜고 2016년 8월께 양산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도박장을 개설해 운영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 결성 과정부터 현재의 활동상까지 실체를 규명해 입증하고, 조직 구성과 활동에 가담한 주범부터 하위 조직원까지 모두 엄단했다”며 “특히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의 진술 회피와 조직원들의 증거인멸 시도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치밀하고 입체적인 수사로 증거를 수집해 폭력조직 두목의 범행 가담 사실을 밝혀내 처벌했다”며 “불법 보도방 운영과 유흥업소 물건 강매 등 주요 자금원을 차단해 실질적으로 조직을 와해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조폭들이 합세해 명동의 밀리오레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려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분양받은 호텔인 서울 명동 ‘르와지르호텔’ 수익률이 당초 약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시행사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난동을 피운 구분소유자와 동원된 조폭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유리파·대현파, 대전 신유성파·신한일파 등 4개 파 출신 조폭 10여 명은 지난 3월26일부터 명동 밀리오레 관리사무실과 기계실 등을 무단 침입해 점거했다. 무단 점거된 사무실은 명동 밀리오레 건물 지하에 위치한 르와지르호텔 사무실이다.

돈 되면 
이합집산

4월 3일에는 용역 30여 명이 더 투입돼 잠겨 있던 방재실 등 문을 부쉈으며 기계실과 주차 정산소에 있던 직원들을 쫓아내고 건물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무단 점거를 주도한 세력은 이 건물 호텔을 구분소유한 700여명 중 1명인 이씨가 이끈 이른바 ‘신관리단’이다. 2015년 건물 리모델링 후 ‘이 회장’으로 불린 이씨 측은 사드 여파로 수익금이 당초 약속한 월 수익의 7%에 못 미치는 4%에 그치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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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