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100일 소탕작전 풀스토리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경찰이 100일간 ‘조폭’ 집중 단속에 나섰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활개를 치던 조폭들이 줄줄이 검거되며 사실상 와해됐다. 경찰이 잡아들인 조폭들 중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연루설이 돌았던 조직도 있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조직들. 과연 누가 잡혔을까?
 

경찰청의 집중단속에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경찰청은 3월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100일간 폭력과 각종 이권개입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조직폭력배 집중단속에 나서 1385명을 검거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가운데 232명이 구속됐다.

4개 조직
점거난동

경찰청에 따르면 범죄 유형별로는 폭력 행사가 857명(61.9%)으로 가장 많았고, 도박 등 사행성 불법행위 65명(4.7%), 유흥업소 등 갈취행위 37명(2.7%), 마약 관련 범죄 22명(1.6%), 기타 404명(29.1%) 등이었다.

연령대는 30대가 551명(39.8%)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20대(413명, 29.8%), 40대(271명, 19.6%), 50대 이상(83명, 6%) 순이었다. 10대 청소년도 67명(4.8%) 포함됐다.

특히, 이 가운데 전과 6범 이상은 1019명(73.6%), 1범서 5범까지가 289명(20.9%)으로 조폭 10명 중 9명꼴로 범죄 전력이 있는 것을 분석됐다. 


경찰은 이 기간 강원 춘천지역 토착 폭력배를 통합해 보도방 등 각종 이권사업을 독점한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을 무더기 검거하는 한편 경남 양산서 유흥가 이권을 장악하려 불법행위를 저지른 조직을 와해시키기도 했다.

이번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세력 확장을 위해 20대 신규 조직원을 대거 영입하고 경쟁 조직원을 집단 폭행한 경기 성남지역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특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휩싸인 ‘조폭연루설’ 관련 조직폭력배도 이번 검거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5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성남 조폭 2개파 54명을 붙잡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2개 조직 두목들을 포함, 14명을 구속하고 40명을 형사입건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성남 국제마피아파는 1970년대 중반 성남 모란시장을 거점으로 생겨났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관리하는 폭력 조직 23곳 중 한 곳이다. 조직원 수 규모만 따지면 도내에서 손꼽히는 큰 조직은 아니라고 한다. 

경찰 집중 단속…1385명 검거 232명 구속
수십명씩 무더기로…가장 많이 잡힌 곳은?

1970∼1990년대만 해도 성남의 폭력조직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국제시장(현재는 거의 사라짐)을 중심으로는 종합시장파가, 모란시장은 국제마피아파가 장악했다. 


이후 1990년대 종합시장파가 신종합시장파(국제시장)와 관광파(종합시장)로 분열되면서 성남지역 폭력조직은 3곳이 됐다. 이들은 지역 내 대표 전통시장과 유흥업소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를 키웠다. 

하지만 주 수익원이던 전통시장의 상권이 약화하고 경찰의 대대적인 조폭 소탕 작전도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07년 성남 수정경찰서가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61명을 폭력 행위 등 혐의로 적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마피아파는 2007∼2008년 신종합시장파의 잔당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고 한다. 유흥업소를 갈취하거나 건설현장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뜯어내는 방식서도 탈피해 새로운 수익처를 찾기 시작했다. 

다른 폭력조직이 합법을 가장한 건설업이나 대부업으로 진출할 때, 국제마피아파는 인터넷 불법 도박사이트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도박사이트를 만들어 스포츠 결과에 돈을 걸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국제마피아파의 활약(?)으로 한때 불법 도박사이트 관련자들 사이에선 ‘성남이 불법 도박사이트의 메카’ ‘성남에서 시작해 돈을 벌어 강남 간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382억원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국제마피아파 조직 3명을 구속하는 등 국제마피아파는 불법 도박 사이트 사건에 주로 이름을 올렸다. 

나쁜 짓은 
손발 척척

이 지사, 은 시장과 연관성이 제기된 무역업체 K사의 대표 이모(38)씨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2007년 경찰 관리대상 조직폭력배로 이름을 올린 것은 맞고 사업 자금의 상당수도 불법 도박사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면서도 “하지만 이씨가 돈을 벌면서 조직과 거리를 뒀다는 말도 있어서 K사가 국제마피아파가 운영한 회사라고는 단정 짓긴 어렵다”고 했다. 

국제마피아파는 세를 늘리면서 ‘조폭 색’을 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이씨처럼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유독 그랬다. 

지역 정계 관계자는 “이씨는 주로 사업가로 행세해 조폭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부는 친분이 있는 경찰을 자신의 사업체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K사에도 전직 경찰 3∼4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강원 춘천지역 4개 토착 세력이 합쳐진 ‘통합춘천식구파’ 두목과 조직원을 일망타진 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합춘천식구파’ 두목 A(48)씨와 고문 B(48)씨 등 12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범죄단체 구성·활동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통합춘천식구파는 2011년 춘천 승택파와 동기파, 생활파, 식구파 등 4개 조직이 뭉쳐 탄생했다. 경찰은 소규모로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하며 힘을 잃은 토착 폭력조직이 재기를 위해 손을 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조직은 2011년 6월 홍천군 모 리조트서 결성식을 개최하고 A씨를 두목으로 추대했다. ‘선배를 만나면 90도로 인사한다’ ‘선배가 부르면 즉시 출동한다’ 등의 행동강령도 갖췄다. 

이들은 이후 유흥업소·보도방·사채업 등 각종 이권 사업을 독점하며 다른 조직폭력배들과 대치했다. A씨가 이끌었던 통합춘천식구파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먼저 지난 2011년 두목으로 추대된 이후 A씨는 장례식장 조화 납품 사업을 시작했다. 조직원을 동원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 사업을 포기하도록 협박했다. 결국, 조직은 춘천·홍천지역 일대 사업을 독점했다. 

2012년에는 보도방 영업에 손을 뻗어 독점을 시도했다. A씨는 조직원들을 시켜 노래방서 도우미를 불러 술을 마시게 한 다음 경찰에 ‘불법 영업’으로 신고해 가게 문을 닫게 했다. 


2013년부터는 고수익을 위한 사채업에 눈길을 돌렸다. 이들은 각종 흉기를 이용해 다른 지역 사채업자들을 협박해 영업하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A씨는 춘천지역의 소위 ‘밑바닥’을 장악해 나가는 한편 필리핀에 근거지를 두고 도박사이트도 운영했다. 2015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운영된 1600억원 규모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통해 28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필리핀 리조트서 일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인해 도박사이트 관련 일을 시키고 여권을 빼앗아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서울 강남
진출이 꿈

일부 조직원들은 조직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 핵심 조직원 6명은 모두 자신의 새끼손가락 한마디씩 잘랐다. 맹목적 충성을 맹세한 이들은 탈퇴한 조직원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야산으로 끌고 가 구덩이에 묻고 휘발유를 뿌릴 듯이 위협하고, 술집 등에서 조직원들을 동원해 흉기로 위협하는 등 위력을 과시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핵심조직원들은 두목인 A씨 보호에 열을 올렸다. 조직원들은 “‘큰 형님에 대해 진술하면 나중에 가만히 두지 않겠다. 무조건 모른다고 해라’고 협박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현재 통합춘천식구파의 부두목은 달아난 상태다. 경찰은 부두목과 조직원 4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른 조직폭력배에 대한 첩보 수집도 강화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각종 사행성 사업으로 조직 운영 자금을 확보한 만큼 조직 와해를 위해 몰수보전 조치 등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에서는 젊은 조직원들이 허위 전세계약서로 신혼부부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조직 운영 자금을 마련하며 세력을 키워 온 조직폭력단체가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 6월 경남지방경찰청 형사과는 불법 보도방과 유흥주점 등을 운영하며 조직운영 자금을 만들어 온 양산지역 조직폭력배 두목 B(42)씨와 조직원 등 95명을 검거, 이 중 9명을 구속하고 86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경찰조사 결과 지난 1998년 양산지역 조직폭력배 간 집단폭행 사건으로 대다수 조직원이 구속돼 와해된 상황에서 두목 B씨는 2008년 4월께 남아있던 조직원들을 다시 결성해 위계 질서와 행동강령 등을 갖춰 옛 조직을 정비했다.

국제마피아파, 춘천식구파…
논란의 폭력조직들 일망타진

2010년 3월에는 울산 지역 저수지서 조직기강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선배가 후배 조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속칭 줄빳다)하는 등 조직원에 대해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6년 5월에는 양산지역 유흥가에서 퇴출한 조직원이 세력을 형성하려 한다는 이유로 조직원들이 퇴출한 조직원을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후 차량을 파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013년 6월부터 10월까지 매매 불가능한 오폐수 공장을 매매할 것처럼 속여 1억8000만원을 받아 가로채고, 2015년 8월께 허위 전세 계약서를 작성해 은행에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신청해 3억5000만원가량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지역 내 이권장악을 위해 지역 보도방을 각 지부별로 나눠 관리하고, 2014년 3월께 음료수와 물수건을 납품하는 유통업체를 차려 유흥주점 업주를 상대로 물품구입을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 1월께 경찰의 보도방 업주 조사여부를 알고 보도방 업주들을 불러모아 ‘서로간의 지켜야 할 것’이라는 문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위협을 가할 것처럼 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대구와 울산 지역 조직원과 짜고 2016년 8월께 양산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도박장을 개설해 운영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 결성 과정부터 현재의 활동상까지 실체를 규명해 입증하고, 조직 구성과 활동에 가담한 주범부터 하위 조직원까지 모두 엄단했다”며 “특히 보복을 두려워한 피해자들의 진술 회피와 조직원들의 증거인멸 시도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치밀하고 입체적인 수사로 증거를 수집해 폭력조직 두목의 범행 가담 사실을 밝혀내 처벌했다”며 “불법 보도방 운영과 유흥업소 물건 강매 등 주요 자금원을 차단해 실질적으로 조직을 와해시키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조폭들이 합세해 명동의 밀리오레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려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분양받은 호텔인 서울 명동 ‘르와지르호텔’ 수익률이 당초 약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며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시행사 사무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난동을 피운 구분소유자와 동원된 조폭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유리파·대현파, 대전 신유성파·신한일파 등 4개 파 출신 조폭 10여 명은 지난 3월26일부터 명동 밀리오레 관리사무실과 기계실 등을 무단 침입해 점거했다. 무단 점거된 사무실은 명동 밀리오레 건물 지하에 위치한 르와지르호텔 사무실이다.

돈 되면 
이합집산

4월 3일에는 용역 30여 명이 더 투입돼 잠겨 있던 방재실 등 문을 부쉈으며 기계실과 주차 정산소에 있던 직원들을 쫓아내고 건물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무단 점거를 주도한 세력은 이 건물 호텔을 구분소유한 700여명 중 1명인 이씨가 이끈 이른바 ‘신관리단’이다. 2015년 건물 리모델링 후 ‘이 회장’으로 불린 이씨 측은 사드 여파로 수익금이 당초 약속한 월 수익의 7%에 못 미치는 4%에 그치자 앙심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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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