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판결> ‘기사 폭주 vs 만취 손님’ 택시사고 공방전

수상한 택시사고, 정말~ 미스터리한 일입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수많은 사건·사고. 어쩌면 확인된 것보다 ‘미스터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감시의 눈’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거짓말은 불과 몇분 만에 들통 나는 첨단 멀티미디어 시대라지만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의혹’이 둥둥 떠다니는 나라, 진실을 가리는 법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 가운데 지난해 추석 연휴 첫 날 일어난 교통사고 판결이 1심과 달리 2심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기사와 잠만 잤다고 주장하는 손님. 법원은 1심에서 택시기사의 손을 들어 손님에게 징역형을 내렸지만 2심에선 손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날 밤, 좁은 택시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추석 연휴 첫 날 일어난 교통사고 판결, 2심에서 전혀 다른 결과!
기사 “손님이 때려 사고 났다” 손님 “술에 취해 자고 있었을 뿐”


지난해 추석 연휴 첫 날인 9월21일 새벽 3시30분. 오래전 막차가 떠난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인근에서 한 남자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술에 취해 비틀대며 택시를 잡던 회사원 A(41)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B(70)씨가 운전하는 택시 조수석에 몸을 싣고 귀갓길을 재촉했다.  

적막한 거리, 부쩍 차가워진 밤공기를 가르며 달리던 택시는 장한평역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고 천천히 속력을 높여 달리던 얼마 뒤, 택시는 갑자기 옆 차선의 택시와 부딪친 뒤 인도로 돌진해 가드레일과 가로수, 지나가던 여성 C(28)씨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C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뇌출혈로 사망했다.
 
손님이 때려서?

사고로 말미암은 피해는 명확했지만, 사고 직전 좁은 택시 안에서 벌어진 상황은 애매모호했다. 처음 사고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 건 택시에 탔던 회사원 A씨였다.

택시운전자 B씨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조수석에 앉은 손님 정씨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더니 멱살을 잡고 마구 때렸다”며 “폭행을 피하려고 머리를 숙이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사고를 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A씨는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었을 뿐 때리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운전자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 A씨의 운전자폭행치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 지난 2월 징역 3년6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단에는 B씨가 사고 직후 뇌진탕 등 상해를 입은 상태로 A씨의 허리를 붙잡고서 “살려주세요, 112에 신고해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도 주요한 근거가 됐다.

한편 B씨는 별개의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데 대해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으며, 항소하지 않아 올해 5월 확정됐다.

잠만 잤을 뿐!

하지만 A씨와 검찰의 쌍방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조경란)는 지난달 22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재판이 진행될수록 사고에 대한 B씨의 증언이 달라진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택시 안에서 A씨가 했다는 욕설의 내용과 맞았다고 주장하는 부위의 순서 등에 대한 B씨의 진술이 경찰, 검찰, 원심과 항소심 법정에서 계속 달라지는 점을 이상하게 여겼다.

또 사고로 오른쪽 눈 부위가 붓고 피가 날 정도로 다친 B씨와 달리 A씨가 거의 다치지 않은 것에 비춰보면 당시 A씨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폭행이 이뤄지는 동안 정상적으로 가속페달을 밟기 어려웠을 텐데도 차량이 완만히 가속된 사실도 B씨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속력은 시속 52㎞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상당한 상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B씨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직전의 또 다른 교통사고도 영향을 미쳤다. B씨가 신호가 바뀐 뒤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옆 차로 택시를 스치는 사고가 났지만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 억울함을 호소하는 B씨가 이 사고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고도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은 점도 무죄 선고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정황상 B씨의 주장은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고, 원심에서 제시된 유죄의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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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