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모자 농락한 사이코패스 양아들 사건 전말

“어머니를 대신해 목숨 겁니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간암말기의 어머니가 그동안 당하신 고문과 위협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슬픔과 분노가 찹니다. 수개월 동안 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돈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을 종용했다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과연 이 사회에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사회에 최소한의 양심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한 글자 한 글자 슬픔과 분노를 가득 담은 이 편지의 발신자는 다름 아닌 아들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직장생활을 하지도 못한 채 외로운 싸움에 매달렸지만 그의 손을 들어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처갓집에서 어렵게 만난 그의 방에는 각종 증명서류들과 법원자료들이 빼곡했다. “난 이세상이 싫다! 이렇게 더러운 세상이 정말 싫어!”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아들의 가슴에 메아리로 남는다. 그 억울한 한을 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남자. 그의 눈은 흔들렸고 또 간절했다.

남편의 ‘결백’ 주장, 18년간 억울한 누명
45년간 묻힌 사건,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

지난 2009년 8월. 간암 말기로 치료 중이던 어머니 김순애(가명ㆍ2009년 사망)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어느 날 이었다. 김씨가 갑자기 토혈과 혈변을 하면서 긴급수혈이 필요한 위급상황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박영진(가명ㆍ44)씨 남매는 지금까지 O형인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남매는 의구심을 품었다. 평소 입버릇처럼 어머니는 박씨에게 “내 혈액형은 O형이고 네 큰 형은 엄마를 닮아 O형이며 그래서 성격이 좋고 활동적이다”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 후 김씨가 회복되자 남매는 어머니를 붙잡고 물었고,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렵게 입을 뗐다. 그리곤 지난 45년간 비밀로 묻힐 뻔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

비밀로 묻힐 뻔한
사건의 전말 ‘혈액형’

1965년. 김씨가 남편 박명일(가명)씨와 결혼 후 첫째 딸 박진희(가명ㆍ50)씨를 낳고 3년 동안 자식 소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김씨의 시아버지에게 10대 후반의 다방 레지(커피를 배달하는 여자를 일컫는 은어)가 찾아와 “자기 뱃속에 당신 아들의 자식을 임신하였다”며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도 없고, 키울 자신도 없으니 받아 달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의 시댁은 경기도 일대에서 알아주는 유지였고, 남편 박씨는 장손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이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시내에 손님을 만나러 그 다방 종업원이 일하고 있었던 다방에 몇 번 갔을 뿐, 그 여자와는 손 한번 잡아 본적이 없다”며 “그 여자 뱃속의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남편이 밖에서 실수를 해놓고 자신에게 미안하여, 엄했던 시아버지에게 혼 날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는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시절이었고 딸 낳은 죄인으로 3년 동안 애소식이 없었던 김씨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다툼이 잦아지자 그 애를 거둬 키우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다방 여종업원을 산부인과에 입원시키고 “이 애는 내 친아이와 다름없이 잘 키워 주겠다”고 약속하며 아직 어리니 모든 것을 다 잊고 새 출발하라고 돈까지 쥐어주었다. 김씨는 아이의 이름을 박영호(가명ㆍ47)라 지었고, 아이를 집에 데려온 3년 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박영진(가명ㆍ44)을 낳았다.

그렇게 박영호는 김씨의 집에서 친아들과 다름없이 길러졌고, 박영호가 7~8세가 되던 해 시아버지는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남편 박씨는 계속해서 그 아이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씨가 “이제 아버님도 돌아가신 마당에 좀 솔직해 질 수 없냐”고 다그쳐도 남편은 부인만 했고, 부부는 이 문제로 말다툼을 자주했다.

박영호가 고등학생이 되던 시절까지도 남편의 결백주장이 이어지자 김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김씨는 그 후 엄청난 결과를 확인했다. 박영호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 18년 동안 간직했던 남편의 억울한 누명을 벗은 것도 잠시, 부부는 이 사실을 어떻게 수습하나 많은 고민에 빠졌다.

18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을 하루아침에 너는 우리 자식이 아니니 집에서 나가라고 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렇게 한다면 그 이후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아이의 친 엄마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지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냐고 생각하여 자식들에게 모든 사실을 비밀로 덮고 친 자식과 다름없이, 또 집안의 장남으로서 키우기로 결정한다. 

너희 부부 때문에
난 친부모와 헤어졌어!

세월이 흘러 남편이 ㅅ떠났고, 1989년 박영호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후 김씨는 박씨가 원하는대로 뉴질랜드로 투자이민 길에도 함께 올랐다. 또 박영호가 낳은 자식을 친손자와 마찬가지로 애지중지 키웠다. 그러나 박영호의 결혼생활은 3년 만에 끝이 났다. 이혼 후 혼자 방황하는 박씨를 보다 못한 김씨가 두 번째 결혼을 시켜주었지만,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생활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다. 한인사회에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여기 저기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김씨와 부인 앞에 내연녀를 데려오기도 하는 등의 방탕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박영호는 자신이 김씨 부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어렸을 적 부부가 다투는 소리를 몰래 엿듣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양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 살아온 박영호는 이때부터 김씨에게 “너희부부 때문에 자신은 친부모와 헤어졌다”면서 “그로 인해 자신은 과연 누구의 자식인지 조차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고 원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매일 술과 여자문제로 두 번째 부인과도 싸움이 잦아지자 보다 못한 김씨는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느냐”고 물었고, 박영호는 한국에 돌아가서 사업을 하겠다며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승낙했고, 한국에 남겨두었던 재산 일부를 팔아 회사에 투자해 주었다. 그 후 김씨는 박씨의 둘째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뉴질랜드 생활을 이어갔고, 박씨는 한국에 홀로 귀국해 회사를 경영했다.

박영호는 한국에서 지내면서도 계속해서 회사 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김씨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였고, 김씨가 더 이상 돈이 없다고 거절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 갈취를 시작했다.


돈에 미쳐 키워준 어머니 협박폭행 일삼아
은혜와 노고를 패륜으로 갚은 양아들‘충격’

“한국에 어머니 명의로 남아있던 강남의 아파트 2채를 찾아내어 어머니 모르게 서류를 위조해 팔았고, 또 땅까지 대출 받았다. 또 그맘때 한국에서 술집여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둘째부인은 어머님 앞에서 회사 직원과 맞바람을 피우는 등 파렴치한 행위들을 서슴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박영호의 아이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박영호와 동거하던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살다 파주에 아파트를 장만하게 된다. 이 때 김씨가 그동안 자신의 회사에 모든 재산을 투자하여 돈 한 푼 없다고 했던 말이 거짓이라 확신한 박영호는 남아있는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김씨를 본격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한다.

또 친자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면 김씨뿐 아니라 친자식들까지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고, 김씨는 자신보다 친자식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김씨는 2007년 말 간암 선고를 받게 된다. 이를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박영호. 그러나 박영호는 김씨와 친자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숨겼고 이후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는 친자식들에게 “2007년 말에 종합건강검진을 받으셨고,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이때까지 만해도 친형제라고 믿고 있었던 박씨 남매는 박영호의 행동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평소 어머니가 장남인 박영호를 많이 챙겨왔고, 장남이기 때문에 또 장남으로서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다.

두 얼굴의 양아들
패륜행위…‘충격’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박영호는 2008년 12월, 김씨가 간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며 살 수 있는 날이 3~4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남매에게 전했다. 

박영진씨는 “박영호는 어머니가 아프신 데도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 남은 재산의 행방을 묻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ㆍ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또 그간 어머니 신분증을 위조하여 다른 사람이 어머니 행세를 하며 어머니의 명의의 모든 부동산과 토지를 팔아먹고 다녔다. 또 어머니가 직접 대출을 받는 것처럼 사인을 위조하는가 하면 아프신 어머니를 감금하여 유언동영상을 찍게 하는 등 45년 간 친자식보다 더 소중하게 양자임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신의 혈액형까지 속이시며 정성으로 키워온 어머니의 은혜를 상상하기조차 힘든 패륜행위로 보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영호는 남매의 이런 주장을 전면 일축한다. 현재 진행 중인 법적 공방에 대해서도 형제간에 벌어지는 ‘재산다툼’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2009년 8월 쓸쓸히 눈을 감았다. 핏덩이 때부터 데려와 아버지의 말류에도 불구하고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며 온갖 정성으로 키워냈고, 수백억의 사업자금까지 아낌없이 내주었던 양자에게 무참히 짓밟히면서….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라며 병실 주위 사람들 앞에서 김씨의 볼에 뽀뽀까지 해대던 박영호는 양어머니 김씨의 장례식장에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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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