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베이비부머 실태

힘들고 지친 58년 개띠의 ‘개 같은 인생’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한 나라의 축을 이루던 세대. ‘베이비부머’가 벼랑 끝에 서있다. 1970~1980년대 한국 산업화의 주력계층이자 가정의 기둥인 50대 남성들이 급변하는 사회흐름에 떠밀려 조기 퇴직하고, 퇴직 후 준비 안 된 노후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자살과 이혼 등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경찰청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남성들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남성자살률은 20년 전 보다 무려 4배나 높아졌고, 거기에 이혼율까지 크게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인구의 이혼율이 감소한 것과는 반대여서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인식개선 및 노후 시스템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생활고에 지쳐 스러지는 50대 베이비부머
연령대 자살 1위 이어 이혼율까지 ‘설상가상’

베이비부머. 흔히들 58년 개띠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뒤인 1955년부터 1963년에 급격한 출산붐을 타고 태어난 우리나라 베이비부머는 삶의 질곡 속에서 그만큼 더 경쟁적 삶을 살아야 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로부터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라는 점에서 ‘샌드위치 세대’라고도 불린다. 7, 80년대 산업화 시대를 겪고 민주화, 외환위기 등 격변의 세월을 겪으면서 경제발전의 큰 몫을 감내한 이들.

자살률 ‘껑충’

그런데 최근 이러한 우리사회의 주역들이 흔들리고 있다. 전체 인구의 15%인 712만명에 달하는 이들은 50대 초중반으로 한창 일할 나이지만 정보화 등 사회의 빠른 시류에 밀려 퇴물 취급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사회 경쟁에서 탈락하고,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가정의 기둥들은 최근 경제위기 등에 따른 생활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과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추석 연휴였던 지난 11일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한 가구공장 옆 소각장에서 송모씨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분신했다. 송씨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숨졌으며, 경찰은 사업실패와 가정불화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던 50대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50대 가장이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소위 ‘58년 개띠’가 속해 있는 50~54세 남성의 2009년 기준 10만명당 자살률은 62.4명으로 20년 전인 1989년의 15.6명보다 300% 증가했다. 이는 2009년에 50~54세인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이 20년 전 같은 나이 또래인 남성들에 비해 자살을 선택하는 비율이 4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30~34세 남성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149% 늘었으며, 40~44세는 193% 증가했다. 같은 연령대(50~54세)라도 여성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5.2명에서 19.9명으로 절대적인 수치에서 적을 뿐 아니라 증가율도 283%로 남성보다 낮았다.

50~54세 남성 사이에서 자살률이 유독 높아지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와 연결된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많다.

통계청의 2010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에 대한 충동 여부 및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남성 44.9%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고 지병 11.3%, 외로움 11.0% 순이었다. 이 같은 가설은 50대 초반 남성의 자살률이 경제 위기 때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점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10만명당 자살률이 1997년에 29.5명에서 다음해엔 48.5명으로 급증했으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2008년 47.1명에서 2009년 62.4명으로 뛰는 모습을 보였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주력부대인 50대 초반의 자살률은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 역대 어떤 50대 초반보다도 심각한 수준으로 이는 아내와 자식 등 가족의 생계를 돌보는 가장으로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막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남녀 모든 연령층에서 이혼이 감소했지만 유독 50대 이상만 증가세를 띄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50∼54세 남성의 지난해 이혼 건수는 1만5813건으로 2006년 1만1729건에 비해 4084건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 11만6858건의 13.5%에 달하는 것으로 2006년의 9.4%에 비해서는 4.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더욱이 베이비부머 세대 남성의 지난 1990년의 이혼 건수인 1696건과 비교했을 때는 약 1만4000여건이 많아진 것.

이혼도 ‘급증’

지난해 같은 나이대 여성도 1만1689명이 이혼해 2006년 7628명에 비해 4061건 5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전체 이혼 중 가장 높은 비중의 연령층은 남성은 40대 초반, 여성은 30대 후반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2000년 이후 이혼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연령층은 남녀 모두 40대 후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평균 이혼연령은 남성 45세, 여성 41.1세로 2009년 대비 각 0.5세, 0.4세 상승했으며 2000년에 비해 남성은 4.9세, 여성은 4.6세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세대의 위기관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자살률과 이혼율의 증가는 이들의 준비 안 된 은퇴, 준비 안 된 노후가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로 퇴직 후 내지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부분에 있어서 이들에게 맞는 일자리 창출, 사회 안전망 확충 등 기본적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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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