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화제 뿌린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총결산

‘별들의 침묵’은 ‘달구벌의 저주’ 때문?

[일요시사=류도경 기자] 지난달 27일 성대한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 간의 열전을 펼친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9월4일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많은 우려와 기대 속에 진행된 이번 대회는 기존의 절대강자들이 실격으로 추락하는 등 이변이 속출하며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후커,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 ‘미녀새’ 이신바예바 등이 그 주인공. 이들은 우승이 무난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를 저버리고 예선과 결선에서 탈락해 이른바 ‘달구벌 저주’의 제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장대높이뛰기 후커, 예선에서 3차례 시도 끝에 탈락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 결승전 부정출발 실격 충격

이변은 대회 첫째 날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9년 베를린대회에서 5m90을 넘으며 우승을 차지, 이번 대회 2연패가 유력했던 스티븐 후커는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5m50에 세 차례나 도전했으나 연거푸 바를 넘어뜨리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점프조차 하지 못했다.

부진의 원인으로 훈련부족이 지적됐다. 후커는 올시즌 7월말이 돼서야 본격적인 훈련에 임했으며, 다소 이른 13일에 선수촌에서 현지 적응에 나섰으나 계속되는 우천으로 오히려 컨디션 회복에 지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스타 선수들의 잇따른 실격
신기록 부재의 원인은?

한편, 바뀐 규정에 의해 자메이카의 육상영웅 우사인 볼트도 실격의 고배를 마셨다.


국제육상연맹은 지난해부터 부정출발 규정을 강화해 첫 번째 부정 출발 시 경고를 주고 두 번째 적발된 선수만을 실격시키던 이전과는 달리, 단 한번의 부정출발도 바로 실격 처리했다.

남자 100m 결승전이 있던 지난달 28일, 우사인 볼트는 어이없는 부정출발로 실격을 당해 전 세계인들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단 한차례의 실수로 실격당한 볼트는 자신의 훈련 파트너였던 요한 블레이크에게 100m 왕좌를 내줬다.

이에 관해 영국의 <가디언>지는 “블레이크의 작은 움직임이 볼트의 부정출발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됐다.

볼트의 부정출발 영상을 통해 6번 레인에 위치한 블레이크의 왼쪽 다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장면이 포착됐고, 그 순간 5번 레인에 위치한 볼트의 몸이 반응하며 스타팅 블록을 튀어나갔다는 것이다.

국제육상연맹의 스타트 규정에 따르면 세트포지션에 들어간 선수가 움직일 경우 실격된다.

때문에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블레이크 역시 실격의 대상이라고 주장하지만, 볼트는 블레이크에게 축하메시지를 전하는 등 자메이카 영웅으로서의 모습을 보였다.

110m허들 류시앙 제친 로블레스, 비디오 판독결과 실격
이신바예바,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41cm 낮은 초라한 기록


29일 남자 허들110m 결승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현 세계랭킹 1위의 올리버, 세계기록 보유자 데이런 로블레스, ‘황색탄환’이라 불리는 류시앙의 치열한 경쟁으로 주목받는 경기답게 마지막 허들을 남기고서야 승부가 결정됐다.

세계랭킹 1위 올리버는 세 번째 허들에 발이 걸리며 일찌감치 순위에서 멀어졌고 류시앙과 로블레스, 복병으로 꼽히던 리차드슨의 3파전으로 압축됐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류시앙이 조금씩 앞으로 치고 나오며 황색탄환의 진가를 드러내는 듯했으나, 마지막 허들에 발이 걸리며 급격히 처졌고 로블레스가 리차드슨을 간발의 차이로 꺾으며 13초14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경기가 끝난 뒤 로블레스의 실격을 발표했다.

류시앙 측의 항의로 비디오 판독에 들어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옆 레인의 로블레스가 류시앙의 레이스를 방해했다는 결론을 내리며, 로블레스를 실격처리, 금메달을 박탈했다.

그 결과 복병으로 평가받던 미국의 리차드슨이 13초16의 기록으로 생애 첫 메이저대회 금메달을 목에 거는 행운을 누렸으며, 4년 만에 타이틀 제패를 코앞에서 놓친 류시앙은 13초27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의 미녀새’라 불리며 뛰어난 미모와 함께 세계기록을 27차례나 갱신한 장대높이뛰기의 여신 이신바예바 또한 대구의 저주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30일 열린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이신바예바는 결선 첫 번째 시기인 4m30과 이후 4m45와 4m55를 모두 건너뛰며 무난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4m75의 도전에서부터 시작됐다. 한 차례 실패 후 ?긴 이신바예바는 4m80으로 올려 두 번 뛰었지만 모두 바에 걸리며 경기를 마쳤다.

이처럼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각종 이변을 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가장 특이한 점은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모델을 장식한 선수들이 하나같이 실격을 당하거나 탈락을 하는 불운을 맛봤다는 것이다.


데일리 프로그램은 대회조직위원회가 매일의 경기 일정과 기록 등을 정리해 소개하는 책으로, 해당 일에 출전하는 선수 중 가장 확실한 우승후보자나 스타, 매스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선수를 소개하고 있다.

데일리 프로그램 표지모델 선수
잇따른 탈락·실격 이변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데일리 프로그램을 제작·배포하는 조직위 입장에서는 표지를 장식한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줄지어 나가떨어지자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대구의 저주’ 혹은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라 부르며,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를 장식할 다음선수를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표지를 장식했던 선수를 떨게 했던 저주도 닷새를 넘기지는 못했다.

31일 표지모델을 장식했던 카니스키나는 여자 20km 경보에서 1시간 29분 42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끈질긴 데일리 프로그램의 저주를 봉인했다.

이변이 속출한 이번 대구 대회는 교통, 숙박, 급식 대란에다 취재진 감금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미숙한 대회운영과 부실한 경기장 음향시스템으로 총체적 부실을 노출하며 관람객들의 불쾌지수까지 동시에 높아져 아쉬움이 남았다.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 방송사 관계자 90여명은 대구스타디움까지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주에서 출퇴근 했고, 주관방송사인 KBS도 대구 동구 율하동 미디어촌과 경북 경산시의 한 연수원에 분산 투숙했다.

일부 외신기자들은 숙소를 못 구해 어려움을 겪었다.

내외신기자만 3000여명이나 되지만 미디어촌 수용 인원은 650명에 불과, 18개 호텔(1,855실)은 선수, 임원 등 대회관계자들이 일찌감치 다 차지했고, 모텔은 식사와 언어소통 문제로 외신기자들이 이용하기 어려웠다.

조직위가 미디어촌 아파트단지(14개동 651가구 2,000명 수용) 중 5개동 223가구 650여명 규모만 확보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취재진들이 27, 28일 이틀 연속으로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빠져 나오다가 출입문이 잠겨 우왕좌왕하는 대소동도 벌어졌다.

조직위는 지난달 28일 오후 8시45분에 열린 남자 100m 결승을 끝으로 경기가 끝나자 27일 개회식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오후 11시 스타디움 출입구를 걸어 잠그고 철수했다.

당시 MPC에는 국내외기자 수 백명이 기사 송고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취재진은 조직위 관계자를 수소문해 겨우 개구멍을 열고 나갔으며, 당시 경기장 내외부에는 안내요원이나 보안요원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대구스타디움 직원과 취재진, 프리미어석 이용자들을 위한 구내식당은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대구스타디움에는 인터불고호텔이 운영하는 직원용 구내식당과 미디어식당, 프리미어석 관중과 VIP를 위한 식당이 있지만, 가격은 비싸고 질은 형편없었다.

더구나 주변에는 이렇다 할 식당가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원용 구내식당 한 끼 가격은 7000원. 하지만 메뉴는 밥과 콩나물국, 김치, 오이무침, 오징어볶음, 닭고기찜이 전부로 직원들은 "시내 식당의 4000원짜리도 안 된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미디어식당 한끼 식대는 무려 1만3000원. 하지만 식사 질은 대구시내 7000원짜리 정도에 불과했다는 평이다.

세계대회 운영 미숙
부실한 경기시설도 한몫

일부 지역에서 빚어지는 교통대란과 불합리한 셔틀버스 운행도 불만을 샀다.

교통통제 해제시각을 잘못 정해 수성구 범어네거리 등 일부 지역에 교통대란을 초래 한 반면, 교통통제 해제시각을 믿고 나온 운전자들은 낮 12시30분까지 50분이나 차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더구나 셔틀버스 운행은 너무 부실해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원성을 샀다.

42억원이나 들여 교체한 경기장 음향시설은 "클래식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는 조직위 주장과 달리 장내 멘트조차 알아듣기 어렵고, 경기장 안에는 여성경기운영요원이 부족, 여자선수들이 트랙에서 탈진하자 남자요원들이 허둥지둥하다 안고 나오기도 했다.

한 외신기자는 "OECD국가에서 열리는 대회라곤 믿어지지 않는다"고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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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