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교육당국이 고액 사교육을 근절하기 위해 미인가 국제학교들에 대해 특별단속에 나섰지만 상당수 학교가 법망을 비웃으며 배짱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법상 제주도와 일부 경제자유구역을 제외하고는 국제학교를 세울 수 없다. 하지만 자녀를 외국 대학에 보내려는 부유층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그 수는 점차 늘어나는 실정이다.
학원으로 정식 등록한 후 외국인학교와 유사한 형태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과정까지 운영하는 ‘변종 국제학교’가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인가를 받지 않은 사실상 학원이나 마찬가지다. 교습비는 연 3000만원을 넘어 웬만한 외국 유학비 수준에 버금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나섰지만…
국내서 정식 국제학교로 인정된 곳은 채드윅송도국제학교(인천), 대구국제학교(대구)와 브랭섬홀 아시아,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한국국제학교(이상 제주) 등 5곳에 불과하다.
서울 소재 A 국제학교는 학원으로 신고한 것과 달리 ‘외국인학교’처럼 운영하고 있다. 이 학원의 교육과정은 외국인학교와 매우 흡사했다.
강사진은 각각 교장, 유치부 담임, 초등부 1∼5학년 담임, 중·고등부 영어·수학·사회·과학, 음악, 미술, 체육, 중국어, 서반아어, 도서관 사서, 카운셀러 등의 담당교과와 보직을 맡고 있었다.
현행법상 이 같은 교과목 구성과 교원 편성은 외국인학교만 가능하며 학원으로 등록한 교육기관은 할 수 없다. 외국어학원은 현행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에서 보통교과에 속하지 않는 ‘실용 외국어’ 교습만을 허용한다.
영어가 포함된 보통교과를 가르치는 입시·검정·보습학원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심지어 A 국제학교는 SNS를 통해 ‘고등학교’라는 정보를 올려놨다. 학생들은 교복으로 추정되는 동일한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왼쪽 가슴에 부착된 마크까지 동일했다. 1∼9학년 등 외국인학교서 사용하는 학년제 표기와 함께 과학·음악 과목 등 학교 교과교육 수업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소재 B 국제학교의 경우 교육청의 폐원 결정(영업허가 취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규모 신규 외국인 강사 채용과 학생 모집에 나섰다.
B 국제학교는 지난해 5월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서 해당 시설 외국인 강사들이 영어회화 강사 비자(E2)를 받아 교과 수업을 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후 교육청은 폐원 결정 조치를 했다.
그러나 B 국제학교는 학부모들에게 “다른 대안학교 시설과 통합을 앞두고 있다”고 공지하며 다시 홍보에 나섰다.
해당 시설을 운영하던 이모씨는 재판을 받고 있고 추가로 경찰 수사까지 진행 중인 상태지만 짝퉁 국제학교의 ‘메뚜기식’ 영업은 계속됐다.
B 국제학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교육청 단속이 뜨면 재학생을 다른 곳으로 미리 빼돌리거나 지역만 옮겨 다시 학교를 개설하는 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학교 아닌 학원…법망 비웃으며 배짱영업 중
교습비 연 3000만원…부유층 학부모들에 인기
외국인 강사로 재직했던 C씨에 따르면 교육청 단속 공무원들이 들이닥치자 3박4일간의 ‘필드 트립(수학여행의 일종)’을 마치고 돌아오던 학생들을 수도권 인근 휴게소에 묶어두기도 했다.
C씨는 “학생들이 하릴없이 휴게소서 배회하게 만들어 학부모들 항의가 쏟아지는데도 학교 측에서 단속반이 빠질 때까지 무조건 대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속을 나온다고 하면 서울시 내 박물관 등으로 견학 일정을 만들어 급히 나가기도 했다”며 “강사들에게는 ‘그냥 영어 회화만 가르친다’고 이야기하도록 거짓말도 시켰다”고 증언했다.
국제학교가 법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경기도 부천에 있던 한 종교 계열의 미인가 고가 사교육 시설도 2014년 교육청의 시정 명령으로 운영이 어려워졌지만 고교 과정과 초·중등 과정을 따로 분리한 후 인천에 별도 시설을 개설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짝퉁 국제학교는 엄연히 불법 미인가 교육시설임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수천억원 혈세를 투입해 만든 국제교육지구까지 발을 뻗치고 있다.
한 국제학교 관계자는 “학력 인증같은 경우에는 외국 아이들하고 똑같은 졸업장을 12학년(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면 받게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연히 국내 학력은 인정되지 않는다.
한 학부모는 “자신의 욕심이 아이의 인생을 망쳤다”고 한탄했다. 학교 측은 성적표와 교장의 추천서만 있으면 국내 국제학교는 물론이고 영국 현지 학교로 전학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전학을 알아보던 그에게 국제학교 측은 “학력 인증이 안 된다. 받아줄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각에선 학교로 인가되지 않은 학원의 경우 갑자기 문을 닫거나 무자격 교사를 쓰더라도 규제할 방법이 없어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변종 국제학교들이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10여 곳이나 생겨나자 교육부가 긴급 실태점검에 나섰다. 교육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명백히 학원이고, 학교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에선 학교설립 인가 또는 분교설치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사실상 학교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 관계자는 “학교도 안 보내고 종일반으로서 사실상 학교형태로 운영된 것이 확인된다면 학원법에 따라 등록말소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난항 예상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항이 예상된다는 반응이다. 폐교 조치를 내기에는 당장 갈 곳을 잃을 학부모와 학생들의 원망을 살 게 뻔하고, 수사를 의뢰해 재판에 넘기더라도 벌금 수백만원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전문가는 “음성화된 교육시설서 낳은 각종 불법 교육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고 말지 하는 ‘버티기 영업’,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다시 문을 여는 ‘메뚜기 영업’, 단속이 뜨면 학생들을 빼돌리는 ‘널뛰기 영업’ 등 국제학교들의 ‘법꾸라지’ 행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