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시 부른 변영주 감독

“일본서 반응이 더 뜨거웠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이수 아트나인서 뜻 깊은 상영회가 열렸다. 변영주 감독의 1995년작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가 22년 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객들의 부름에 다시 답한 것.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극장의 불이 꺼지자 숨을 죽였다.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이 전파를 탔다. 50여년간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에 묻혀있던 상처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합의의 이면

할머니들의 투쟁은 자신들에겐 또 다른 전쟁과도 같았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는 시민, “조용히 좀 계시라”며 만류하는 가족들,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한 정부까지 할머니들은 두껍고 높은 벽을 오랜 시간 경험해야 했다.

그 사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315회(12월27일 기준)가 됐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일인 8월14일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됐다. 2007년 미국 하원의회 공개청문회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서 위안부 피해 여성을 연기한 배우 나문희씨가 영화제서 여우주연상을 타는 등 과거에 비해 거부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위안부 합의가 맺어졌다. 박근혜정부서 진행된 한일 위안부합의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민의 70%가 반대할 정도로 공감을 얻지 못했다. 


할머니들이나 관련 시민단체 역시 한일 위안부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이후 지난 27일 한일 위안부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위안부TF) 보고서가 발표됐다. 위안부TF 보고서에는 국내외 소녀상·위안부 표현·위안부 관련 단체 설득 등을 둘러싼 비공개 부분 즉, 한일 간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해자와 소통이 부족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2년 만에 다시 상영된 <낮은 목소리>
버스 타고 수요집회 가던 할머니 담겨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위안부TF 보고서에 대해 “(보고서 결과를)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특히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인권 보편적인 문제가 불충분하게 반영되면서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지원한 시민과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안긴 점, 외교부 장관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만큼 피해자 중심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에 등록된 239명의 피해 할머니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32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서 피해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낮은 목소리> 3부작이 다시 수면 위에 등장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 8일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 상영회서 변영주 감독과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대표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윤 대표는 “최근 피해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도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직접 버스표를 사서 수요시위에 참석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 털어놨다. 이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DVD 제작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낮은 목소리>는 서울 근교 나눔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할머니들, 중국에 살면서 고국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할머니들이 작품의 화자로 등장한다. 집회 현장에 모여 시민단체 관계자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목소리, 중국으로 찾아간 제작진을 맞아 노래를 부르는 구슬픈 목소리는 상영 내내 관객의 귓가를 울린다.

역사적 사실보다 삶 집중
할머니 나신으로 끝맺음

<낮은 목소리> 3부작을 만든 변 감독은 “정말 긴 9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인 기생 관광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주도서 생활하던 중 당시 요정에 근무하던 성매매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 여성은 어머니 자궁암 수술비 마련을 위해 성매매를 하게 됐는데, 그 어머니가 과거 위안부 피해 여성이었던 것.

이후 변 감독은 윤 대표를 따라다니며 할머니들의 생활을 눈에 담게 된다. 

변 감독은 “<낮은 목소리>는 역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50년 만에 자신을 드러낸 이 여성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작품이 할머니들에게 일종의 심리치료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당시 작품이 극장에 걸렸을 때 할머니들은 매일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 할머니들에게 일종의 ‘환호’를 보냈고 그런 반응은 할머니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 “관객들이 자신의 별 것 아닌 모습을 좋다고 말해주고, 자신을 성적으로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자 할머니들은 카메라 앞에서 더 많은 말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낮은 목소리> 3부작은 모두 일본서 개봉했고 국내서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는 후원을 해준 사람들의 명단이 자막으로 처리됐는데 편수가 거듭될수록 일본어가 많이 보인다. 일본인 후원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윤 대표는 “일본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여성들의 인권이나 포르노 영화에 강제로 출연해야 했던 여배우 문제 등과 하나로 연결돼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작은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낮은 목소리>도 작게 시작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나”라며 “내년에 <낮은 목소리>를 일본에서 상영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낮은 목소리>는 할머니 한 분의 나신을 천천히 조명하며 끝을 맺는다. 카메라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할머니의 몸을 고요하게 응시한다.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엔딩이다. 


피해자 목소리는?

변 감독은 “작품을 준비할 때부터 엔딩은 할머니의 나신이라고 생각했다”며 “젊을 때의 할머니가 아니라 이미 늙어버린 몸, 다시 말해 이제는 끌려가지 않는 몸, 해방된 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들은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이제는 안전한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할머니의 나신은 피해자의 피해가 아니라 피해자의 현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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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