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목줄 잡은 ‘구로식구파’ 배씨 실체

문 정권, 조폭에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측근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데 조폭 배모씨가 핵심 역할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도박 혐의로 조사를 받던 배모씨의 휴대전화서 전 수석의 측근 윤모씨를 도와 ‘돈세탁’을 한 정황이 담긴 녹취파일을 발견했다. 배씨는 폭력조직 ‘구로식구파’ 소속으로 향후 전 전 수석 사건의 실마리를 풀 ‘키맨’으로 급부상했다. 배씨가 주목을 받자 사람들은 그의 소속 조직인 구로식구파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측근들이 롯데홈쇼핑의 한국e스포츠협회 후원금을 빼돌리는 데 조직폭력배 배모씨가 핵심 역할을 한 사실이 지난 12일, 확인됐다. 배씨는 폭력조직 ‘구로식구파’ 소속으로 전 전 수석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서 활동했다. 검찰은 배씨가 전 전 수석의 측근 윤모씨를 도와 ‘돈세탁’을 한 정황이 담긴 휴대전화 녹취파일을 확보하고 돈의 흐름을 쫓고 있다. 

수상한 통화
꼬리잡힌 수석

지난해 9월 검찰은 롯데홈쇼핑이 2015년 초 방송 재승인 심사를 받을 때 정·관계 로비를 한 의혹을 수사하다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57)으로부터 ‘전병헌 500’이라고 적힌 메모를 압수했다. 또 강 전 사장이 재승인 심사 문제로 당시 국회의원이던 전 전 수석과 그의 비서관 윤씨를 만났다는 내용이 담긴 롯데그룹 정책본부 보고서도 입수했다. 

전 전 수석은 홈쇼핑 채널 재승인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었다. 당시 수사에선 롯데홈쇼핑이 구입한 기프트카드를 전 전 수석 가족이 사용한 정황이 확인됐다. 

하지만 기프트카드 사용 금액이 크지 않았던 데다 전 전 수석이 롯데 측에서 추가로 금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아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 직후 국정 농단 사건이 본격화하면서 전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잠정 중단됐다. 전 전 수석의 금품 수수 의혹 수사가 재개된 것은 올 1월 배씨가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이용일)서 수사를 받으면서라고 한다. 

검찰은 당시 도박 사건을 수사하다 배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검찰은 배씨의 휴대전화를 살펴보다가 배씨가 전 전 수석의 측근 윤씨와 수상한 통화를 한 녹취파일을 발견했다. 녹취파일에는 배씨가 평소 ‘동네(서울 동작구) 친구’로 알고 지내던 윤씨에게 “‘돈세탁’한 현금 8000만원을 차 안에서 전달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씨의 휴대전화 녹취파일은 전 전 수석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 롯데홈쇼핑이 낸 후원금 3억원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 
 

배씨는 한국e스포츠협회서 1억1000만원을 빼돌려 돈세탁을 한 뒤 세금 등 각종 비용을 뺀 8000만원을 윤씨에게 돌려줬다. 돈세탁에는 배씨와 관련된 업체 두 곳이 동원됐다. 롯데홈쇼핑이 한국e스포츠협회에 낸 후원금이 배씨를 거쳐 다시 전 전 수석의 측근에게 흘러간 윤곽이 확인된 것이다. 

전 전 수석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 “어떤 불법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며 측근 윤씨 등과 선을 긋고 있다. 결국 전 전 정무수석은 지난 16일 자진 사퇴했다. 

‘돈세탁’ 정황 녹취파일 입수 
측근 비리 조폭이 핵심 역할


전 전 수석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서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며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정무수석으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고 다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게 되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염원으로 너무나 어렵게 세워진 정부, 그저 한결같이 국민만 보고 가시는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없어 정무수석의 직을 내려놓는다”며 “국민께서 문재인정부를 끝까지 지켜주시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전 전 수석은 그러면서 “제 과거 비서들의 일탈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게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당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한국e스포츠와 게임산업을 지원 육성하는 데 사심없는 노력을 해왔을 뿐, 그 어떤 불법행위에도 관여한 바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제든 진실규명에 적극 나서겠다”며 “불필요한 논란과 억측이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현직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에 이어 새 정부 들어 두 번째다. 

악화일로
결국 사퇴

전 수석 사건의 키맨으로 꼽히는 배씨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전해졌다. 그의 SNS 계정은 민주당 정치인, 전 수석 지역사무실 관계자 다수와 연결돼있었다. 배씨는 전 수석의 보좌진을 통해 그를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의 한 지인은 배씨가 수년 전부터 전 전 수석의 일을 도왔다고 했다. 총선 때 이른바 ‘병풍’으로 동원됐고, 전 전 수석 딸이 모 대학교 총학생회장을 할 때도 도왔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후원금 자금세탁에 동원된 T사와 S사 대표도 배씨와 지인이거나 인척 관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S사 대표는 전 전 수석 지역구인 서울 동작갑 청년위원장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배씨가 속해있는 구로식구파에도 관심이 쏠리는 모양새다. 2005년 김모(46)씨를 두목으로 내세운 구로식구파는 오류동과 구로동 일대의 폭력배들을 규합, 100여명에 이르는 조직원을 거느린 대규모 폭력조직으로 재탄생했다. 
 

이들은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서울과 경기, 인천지역에 하부조직원의 숙소를 마련해 두는 것은 물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수도권 인근의 유원지 등에서 조직원 정기모임을 매달 가졌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불법 오락실과 도박사이트다. 

일당은 권력서열에 따라 엄격하게 역할을 분담하고 수익을 나눴다. 두목을 포함한 우두머리 급은 불법 오락실과 도박 사이트 투자자를 모집하고 장소를 선정했으며, 행동대장 등 중간급 조직원은 불법 오락실 관리부장을 맡아 수익금을 정산하고 도박 사이트 가맹점을 운영했다. 


또 하부 조직원은 종업원을 관리하고 경찰 단속 등을 감시하는 문방 역할을 담당했다. 범행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두목부터 하부조직원까지 체계적으로 역할을 나눠 ‘기업형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경찰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바지사장을 내세워 불법 오락실을 운영했다. 금전적 어려움에 직면한 실업자나 전과가 없는 친인척, 지인에게 월 300만∼500만원을 주고 바지사장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실업자 등을 바지사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구속될 경우 변호사 선임비는 물론 3000만∼5000만원을 지불하겠다”며 금전 제공을 담보하는 등 달콤한 제안들을 늘어놓았다. 또한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감금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도박 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 도박 사이트 프로그램 개발자 A(41)씨를 2006년 8월부터 2개월간 감금한 것. 

공포에 질린 A씨를 몰아세워 도박 사이트를 강제로 만들게 해 개발비를 갈취했다. 또 단속을 교묘히 피하기 위해 도박 사이트 서버를 중국 등 해외에 두고 하부 조직원을 정기적으로 파견해 관리하는 치밀함을 보이는 한편 불법 오락 기계는 직접 제작·판매했다. 

조직 정체는?
배씨는 누구?


이들 조직의 폭력 역시 조직적이고 잔혹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 조직원은 물론 ‘기강을 잡는다’는 이유로 하부 조직원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서울 금천구 등지서 각종 대형유흥업소와 성매매업소 등을 운영하며 이권 개입과 관련한 폭력을 행사했다. 
 

영업이익금 등 투자수익을 노린 일반인들도 이들 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오락실 투자에 참여했다. 투자자 중 B(58)씨가 불법 오락실에 투자했으나 약속 받은 영업이익금을 받지 못하자 급기야 부천지역 폭력배를 동원했다. 

결국 서울 강서구 화곡동 ○○오락실의 게임기 이전 과정서 부천지역 폭력배와 구로식구파 조직원 8명이 집단으로 뒤엉켜 패싸움을 벌였다. 

유흥업소 이권과 관련한 집단 패싸움도 벌어졌다. 2009년 6월경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구로식구파가 관리하고 있는 유흥주점서 봉천동 지역 조직원이 업소보호 명목을 빌미로 난동을 피웠다. 

이 난동은 두 폭력조직간 집단 대치로 번졌다. 봉천동 지역 조직원의 난동에 격분한 구로식구파 조직원들이 둔기를 손에 쥐고 유흥주점에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해 일대에 소란이 일었다. 

이권개입뿐만 아니라 조직원 영입경쟁으로 인한 집단폭력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배씨 속한 폭력조직 관심 급증
2005년 생긴 기업형 범죄단체

타 조직원이 구로식구파 하부 조직원을 포섭하려는 정황을 포착한 이들 조직은 2009년 5월 서울 구로구 구로동 공원서 패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를 비롯해 불법 오락실 등 업소를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해 다수의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여긴 이들은 조직원 영입을 위해 둔기 등을 동원해 가차 없이 폭행을 가했다. 

이들은 조직원들에게도 수시로 둔기를 휘둘렀다. 2009년 11월 서울 구로구 고척동 공원서 불법 오락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며 하부조직원 5명을 둔기로 수십 회에 걸쳐 때리는 등 일명 ‘줄빠따’ 폭행을 했다. 

하부 조직원들은 구로식구파 결성 이후 5∼6년 간 지속적으로 수십 회에 걸쳐 무분별한 폭행을 당했으나 저항이나 반발은 커녕 일방적 폭력으로 점철된 조직체계에 순응했다. 이처럼 대담한 범행을 저질러온 구로식구파는 수도권 일대의 불법 오락실 33곳과 도박 사이트 운영으로 110억원 상당의 부당 수익을 거뒀다. 

불법 수익금을 밑천삼아 각종 대형 유흥업소와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며 조직의 위세를 과시하고 세를 결집했다. 또 이들 업소를 운영하며 세금을 탈루해 거액의 조직자금을 축적했다. 

이들은 이 같은 범죄 수익금으로 고급 외제차와 아파트, 주유소, 부동산 등을 사들이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불법 오락실의 경우 평균적으로 매월 1억∼1억5000만원 상당의 부당 수익을 얻으며 성업 중인 불법 오락실의 경우 월 3억원 상당의 범죄 수익금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현재까지 확인된 구로식구파의 범죄 수익금은 110억원 상당”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배씨와 윤씨, 전 전 수석의 또 다른 측근 김모씨를 업무상 횡령과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지난 10일, 구속했다. 

여죄 가능성
강도 높은 수사

또 배씨를 상대로 자금세탁을 맡은 경위 등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배씨가 향후 전 전 수석 사건의 실마리를 풀 키맨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은 배씨와 전 전 수석의 측근 윤씨의 관계 등으로 볼 때 한국e스포츠협회 자금 횡령 건 외에도 배씨가 전 수석 측 정치자금 관리에 추가로 도움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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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