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승부사’ 김기태 기아 타이거즈 감독

‘V11’ 호남은 지금 축제 중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달 30일,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기아 타이거즈는 우승까지 1승만 남겨놓은 상황. 이범호의 만루포로 앞서 나가던 기아는 두산 베어스의 거센 공격에 9회말 7 대 6까지 몰렸다. 그러자 김기태 기아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6차전 선발로 예정돼있던 에이스 양현종을 마운드에 올린 것. 팬조차 반신반의했던 카드는 기아의 11번째 우승으로 되돌아왔다.
 

6회까지는 기아 타이거즈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한국시리즈에 올라가기만 하면 무조건 우승을 거머쥔 ‘코시 불패’의 기아로선 기록을 이어갈 절호의 기회였다. 3회초 타자 이범호가 두산 베어스의 투수 니퍼트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치면서 대거 5점을 뽑아냈을 땐 KBO리그 2017 시즌이 싱겁게 마무리됐다는 성급한 결론도 나왔다. 시리즈 전적 3 대 1, 6회 말까지 7점차, 이대로 가면 가을야구는 기아의 최종 승리로 끝날 참이었다.

9회 승부수
5차전서 끝

극장은 7회에 열렸다.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4경기 중 3경기서 10점 이상을 올리며 폭발적인 타선 응집력을 발휘했던 두산의 반격이었다. 두산은 7회 말에만 6점을 뽑아 기아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잠실구장에 모인 팬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시리즈 전적서 기아가 여유롭게 앞선 상황이었지만 기세 싸움인 단기전서 역전패는 치명적이었다.

그때 기아 불펜서 투수 양현종이 몸을 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양현종은 지난달 26일 2차전서 두산 타선을 9회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좌완 투수 사상 두 번째로 한국시리즈 완봉승을 거둔 기아의 에이스다. 


그가 불펜서 몸을 푸는 모습이 실제 중계에 잡히자 야구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 포털 사이트 중계로 경기를 보고 있던 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6차전 선발로 예정돼있던 양현종을 5차전서 당겨 썼다가 패하면 분위기 자체가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김기태 기아 감독은 양현종을 마운드에 올렸다. 시리즈를 5차전서 끝내겠다는 의지의 승부수였다. 

실패하면 엉켜버린 투수 운용 문제로 두산에 우승을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태였다.

양현종이 1사 만루에 몰리면서 김 감독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기아는 적시타 하나로 끝내기를 당할 위기였다. 하지만 양현종이 두산의 타자 김재호를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내면서 5차전은 기아의 승리로 끝났다. 

기아의 11번째 우승이자 8년 만에 통합 우승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던 김 감독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담긴 기쁨의 눈물이었다.
김 감독은 우승 직후 기자회견서 “너무 좋다. 우리 선수들, 두산 선수들 추운 날씨에 열심히 했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고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기자가 ‘경기 중 아찔했던 순간’에 대해 묻자 “좋은 날에는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그 선수의 가족들이 보고 있지 않나. 오늘 같은 날은 잘했던 선수들이 부각됐으면 한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 “모든 선수를 칭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이 팀을 맡은 지 3년 만에 우승을 이룬 것은 물론 두산의 한국시리즈 3연패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김기태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그의 리더십을 소개할 땐 형님, 큰형님, 동행, 지게 등의 단어가 단골로 등장한다. 감독으로서 구단을 이끌기보다는 ‘선수들과 함께 간다’는 의미가 담겼다.


선수, 코치…우승과 인연 멀어
프로 발들인지 27년 만에 영광

김 감독은 2014년 11월 기아 감독으로 부임할 때부터 ‘나보다는 우리’를 강조했다. FA(자유계약 선수)와 트레이드를 통해 수혈한 선수들, 기존 기아 선수들, 신인 선수들로 조합된 팀을 하나로 묶는 게 시급했다. 

김 감독은 ‘동행 야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선수들과의 교감을 중시했다. 소통을 통해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성적 향상을 꾀한 것이다.

감독이 나서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서로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베테랑들을 대우해주면서 그들이 팀을 이끌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미디어를 대할 때 특히 두드러졌다. 선수들의 장점은 얘기하되 단점은 말하지 않았다. 특정 선수가 실책을 저질러도 질책보다는 칭찬을 우선시했다. 기아 선수들은 김 감독의 비호 아래 자신 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다.

2017 시즌 전 기아로 이적한 타자 최형우는 “프로야구 지도자 가운데 ‘형님 리더십’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감독님은 많다”며 “그런데 선수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분은 우리 감독님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한국시리즈서 기아와 맞붙은 김태형 두산 감독도 “김기태 감독은 친화력이 좋다. 내가 못 가진 친형과 같은 리더십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선수를 믿고 맡기는 김 감독의 스타일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경기 중 부진했던 선수들도 ‘감독님의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서고 마운드에 올랐다. 팀의 승리와 패배에 일희일비하는 팬들조차 김 감독의 방식에는 토를 달지 않을 정도. 

대를 이어 기아를 응원 중인 광주의 김은지(29)씨는 “나를 포함해 많은 팬들이 감독님의 장점으로 ‘사람이 좋다’를 꼽을 것”이라며 “가끔 사람이 너무 좋아 속이 터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감독님의 리더십 덕분에 11번째 우승을 이뤄냈다”며 기뻐했다.

통합우승 비결
큰형님 리더십

김 감독의 리더십은 곧장 성적으로 나타났다. 김 감독 부임 전 2년 연속 9위에 그쳤던 기아는 2015년 7위로 시리즈를 마감하며 가능성을 드러냈다. 순위는 7위였지만 마지막까지 포스트시즌 진출 다툼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정규시즌 5위를 기록,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올랐다. 1승1패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저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최형우를 영입하며 단숨에 우승 후보로 지목됐다. 그리고 김 감독 부임 3년째 기아는 왕좌에 올랐다. 


2009년 이후 8년 만에 정규시즌에 이은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통합 우승이었다.

김 감독에게 이번 우승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선수 시절을 포함 27년간 프로야구 판에 있으면서 처음 얻은 우승 반지기 때문이다. 1982년 6개 구단으로 시작한 프로야구 리그는 2015년 10개 구단 체제가 되기까지 수많은 감독들이 각 구단을 거쳤다.

이들 중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가장 높은 고지에 올라봤던 감독은 35년 프로야구 리그 역사상 13명에 불과하다. 혼자서 무려 10번의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을 포함, 김재박·류중일 감독(4회), 김성근 감독(3회) 등 일부 감독들이 우승을 독식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름을 새기기 힘든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명단에 김 감독의 이름이 추가됐다. 김 감독은 기아의 연고지인 광주서 태어나고 자라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해태나 기아에선 한 번도 선수나 코치 생활을 한 적이 없다. 이번 우승이 김 감독에게 값진 이유다.

현역 시절 레전드
좌타 거포로 명성

김 감독은 현역 시절 남부럽지 않는 선수 생활을 보냈다. 팬들 사이서 ‘레전드’라고 회자될 정도의 활약이다. 올해로 48세인 그는 광주서림초-충장중-광주제일고를 거쳐 인하대를 졸업한 후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신생팀 특별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데뷔 첫 해부터 홈런 27개를 쳐내 장종훈에 이어 홈런 2위에 오르며 좌타 거포의 등장을 알렸다. 다음해인 1992년엔 출루율 1위로 첫 개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1994년에는 홈런 25개로 홈런왕에 올랐다. 현재 상황과 비교했을 때 홈런 25개는 홈런왕을 차지하기에 적은 수치였지만 당시 김 감독의 신분은 방위병이었다.

김 감독은 방위병 신분으로 원정 경기에 제약을 받아 126경기 체제였던 리그서 18경기를 결장한 108경기만 뛰고도 홈런왕을 따냈다. 1997년에는 타율 0.344로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쌍방울서 활약하던 8년간 무려 6번의 개인 타이틀을 따내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다.
 

부침이 시작된 건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이었다. 모기업이 부도나면서 쌍방울은 핵심 선수들을 팔아야 했다. 이 과정서 김 감독 역시 1998 시즌이 끝난 후 팀 동료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삼성서도 2년 동안 홈런 54개를 때려내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2011년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출장 수가 44경기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현금 11억원이 포함된 6대 2 대규모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겼다.

신생팀이었던 SK는 거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 감독은 고참으로서 2003년 팀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고, 이듬해에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웠다. 

2005년 SK서 은퇴할 때까지 15시즌 통산 1544경기에 출전, 타율 2할9푼4리, 1465안타, 249홈런, 923타점의 기록이 그의 찬란했던 선수 생활을 방증한다. 또 홈런왕, 타격왕, 4차례의 골든글러브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1년 프로야구 리그 출범 30주년에는 투수 선동열, 포수 이만수 등과 함께 올스타 10인으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지난 2월 일본의 훈련장을 찾은 김 감독에게 “확실한 좌타 강타자가 없는 대표팀 상황에 김기태가 있었으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김 감독은 뛰어난 개인 성적은 물론 현역 시절 거쳐 갔던 모든 팀에서 주장을 역임할 만큼 이미 리더십으론 정평이 나 있었다. 은퇴 후에는 SK서 1군 타격보조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일본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서 육성코치와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LG감독 시절 성적 부진으로 나락
기아 부임 3년 만에 ‘특급사령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대표팀 타격코치로 한국의 퍼펙트 우승에 기여했다. 베이징 올림픽서의 금메달이 이번 우승 전까지 김 감독이 경험한 사실상 유일한 우승 경력이었다. 2010년에는 국내로 복귀, LG 트윈스의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그러다 2012년 LG의 사령탑에 오르면서 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LG서의 감독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런(Run)기태(도망가는 기태)’ ‘포기가 빠른 남자’ 등의 오명을 얻었던 것도 이 시기다. 김 감독이 팀을 맡을 무렵 LG의 전력은 누수가 상당한 상태였다. 

FA 자격을 얻은 이택근, 조인성 등 주전 선수들이 모두 이적을 택했고, 투수 2명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면서 영구제명당했다. 전력 보강이 필요한 시기에 전력 약화 상태로 시즌을 맞이한 LG는 그해 8개 구단 중 7위에 머물렀다.

김 감독이 부임하고도 가을야구에 실패하자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부임 다음해 LG는 정규시즌서 2위를 차지하며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LG 감독 시절에도 특유의 형님 리더십과 코팅 스태프와의 철저한 분업화는 야구판 전체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의 지휘 아래 성적이 향상된 LG의 2014년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2014년 4월23일 김 감독은 삼성과의 시즌 2차전이 열린 대구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독이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온갖 추측과 억측이 난무했다. 

이날 LG 측은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사의를 표명할 당시 LG는 시즌 개막 후 18경기에서 4승1무13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선수단은 삭발식을 갖고 투혼을 불살랐지만 경기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에 팬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팀의 성적 부진을 책임졌다고는 하나 아직 많은 경기가 남은 상황서 일찌감치 포기한 게 아니냐는 원성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서 김 감독과 기아의 만남이 이뤄졌다. 기아는 당시 선동렬 감독을 선임했다가 팬들의 반발에 부딪혀 방향을 선회한 상태였다. 선 감독은 팬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스스로 감독직서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계약까지 마친 감독이 전격적으로 사퇴하자 입장이 난감해진 기아가 선택한 게 김 감독. 김 감독은 기아의 요청에 오랜 고민 없이 감독직을 받아들였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2억5000만원, 연봉 2억5000만원으로 총 10억원의 계약조건이었다.

LG서 자진사퇴
기아선 우승감독

기아에 부임할 무렵 김 감독의 어깨엔 ‘명가 재건’이라는 팀의 목표와 명예회복이라는 개인의 목표가 얹힌 상태였다. 2014년 김 감독이 기아 유니폼을 입을 무렵 “팬들에게 박수 받는 감독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3년 만에 김 감독은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김 감독과 기아는 앞으로 3년 더 함께 동행한다. 그는 “우승에 만족하지 않고 꾸준하게 강한 팀으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김 감독의 마음은 벌써부터 2018 시즌을 향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8시즌 10개 구단 감독은?' 사령탑은 정해졌다

KBO리그 2017 시즌이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10개 구단은 5개월여의 담금질을 거쳐 2018 시즌을 준비한다. 2017 시즌이 끝난 지 1주일 남짓이지만 10개 구단의 다음 시즌 감독은 모두 정해진 상태. 경기만 없을 뿐 2018 시즌이 시작됐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8년 만에 통합 우승으로 V11을 달성한 기아는 김기태 감독과 재계약했다. 계약 조건은 기간 3년에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 등 총액 20억원의 초특급 대우다. 김 감독의 몸값은 3년 전 기아로 올 때와 비교해 두 배나 뛰었다.

류중일·김기태 최고 대우 1·2위

삼성 라이온즈서 LG 트윈스로 자리를 옮긴 류중일 감독은 3년 계약에 총액 21억원으로 KBO리그 최고 대우를 받았다. 한용덕 전 두산 수석 코치는 한화 이글스의 새 사령탑을 맡았다.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승부욕과 포용력이 있어 내년 시즌이 기대된다는 평가다.

조원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올해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하며 2012년 이후 5년 만에 가을 야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 외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 트레이 힐만 SK 와이번스 감독, 장정석 넥센 히어로즈 감독, 김한수 삼성 감독, 김진욱 kt 위즈 감독은 계약기간이 남아 2018년에도 팀을 이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