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

15년 ‘변방지킴이’ 접고 중심으로 도약한 ‘홍반장’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홍준표 대표가 좌초 위기에 빠진 한나라호의 새 선장으로 당선됐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지 15년만의 일이다. 홍 대표는 치열한 선두권 경쟁이 예상됐던 7·4전당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결과, 4만1666표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2위와의 표차는 무려 1만표. 압도적인 승리였다. 지난해 7·14전대에서 조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상수 대표에 밀려 고배를 마신 지 1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내내 비주류에 머물다 신주류로 급부상하게 된 홍 대표, 그의 ‘A to Z’를 낱낱이 공개한다.

아버지 억울한 누명에 검사되기로 마음먹어
변호사 개업 후 조폭들 협박에 정치권 입문

1954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달비(가발을 만들기 위한 부녀자나 처녀들의 머리카락)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일당 800원을 받고 조선소 앞 철근 조각을 지키던 아버지 밑에서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다섯 번 전학을 다녀야 했다. 매번 도망치듯 이사를 했고, 도시락을 쌀 형편이 되지 않아 점심시간에는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 뒤엔 늘 학교 뒷산에 올랐다. 밥과 반찬냄새를 맡으면 허기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친구집에서 머슴처럼 일을 하기도 했다.

가난했던 유년기
물로 주린 배 채워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가족은 낙동강과 가야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터를 잡고 땅콩을 심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과 장마가 이어지면서 밭은 물에 잠겨버렸다. 이 일로 홍 대표 가족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가야강 둑이 무너지면서 집도 없어졌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그의 가족엔 늘 가난이 따라붙었다.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홍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홍 대표는 미친 듯이 학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학창시절 내내 홍 대표는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당초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의대 진학을 계획했다. 그러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이 가운데 홍 대표가 ‘검사’에 뜻을 품게 되는 사건이 터졌다.

농협에서 배급을 받던 그의 아버지가 당시 농협조합장의 부정을 숨기기 위해 누명을 쓴 것. 홍 대표는 그날로 1만4000원을 손에 쥐고 상경,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사법고시 24회에 합격해 당당하게 검사가 됐다.

홍 대표는 5년차 평검사로 서울지검에 근무하던 지난 1988년 이른바 ‘노량진 수산시장 사건’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친형과 현직 법원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중단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강행, 고위급 인사들의 옷을 줄줄이 벗겼다. 수사를 만류하던 검찰총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년 뒤 해당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오르면서 그는 광주지검으로 좌천됐다. 그곳에 있던 1년3개월 간 홍 대표는 광주일대 조직폭력배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조폭들에게 홍 대표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이에 조폭들은 윗선에 꾸준히 로비(?)를 감행했고 그는 결국 다시 서울지검으로 오게 됐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서울지검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른바 ‘빠찡코 사건’ 수사 때문이었다. 빠찡코 사건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2인자로 불리던 박철언씨를 비롯해 법무부 차관, 경찰청장, 안기부(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정권 실세들이 빠짐없이 연루된 사건이다. 조폭도 끼어있었다.

이 사건이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되면서 홍 대표는 일약 스타검사 반열에 오르게 됐지만 검찰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계속해서 ‘윗선’을 건드리다보니 검찰 조직 내에서 그는 부담스러운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빠찡코 사건이 마무리 된 직후, 그에겐 사퇴 압력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39살이 되던 1995년 결국 사표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가 정치권 입문을 결심하게 된 일이 벌어진 건 이때였다.

당시 광주와 서울에서 잡아넣었던 조폭들이 출소를 해서 가족을 협박했다. 석궁테러에 납치협박, 살해협박 등이 줄을 이었다.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이게 바로 홍 대표가 정치인이 된 이유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입문한 홍 대표는 15년간 내리 4선을 했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늘 ‘변방’이었다. 야당 시절 ‘대여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데 이어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잇따라 출마해 특유의 재치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비주류’였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타기도

당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지만, 본인 표현대로 ‘당직다운 당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불장군’ ‘돈키호테’ 등으로 불리는 홍 대표의 자유분방한 성품과도 무관치 않다.

고려대 선배이자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형, 동생’ 할 만큼 가까운 사이면서 친이계에 불참한 점도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런 홍 대표가 중심으로의 진입을 시도한 건 18대 국회에 들어서다. MB정부 첫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그는 정권 초반 인사 파동과 쇠고기 파동, 친이·친박 갈등 등 수많은 난제를 차례로 풀어가며 신주류로 두각을 드러냈다.

정치권 입문 후 15년간 변방 자리만 지켜와
발군의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

당시 1년간 원내사령탑을 맡으면서 홍 대표는 발군의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을 보여줬다. ‘홍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조직’의 벽에 가로막혀 2위에 머물러야 했다. 당연히 주류를 향한 행보엔 제동이 걸렸다.

대신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내공을 쌓는데 주력했다. 17대 때 ‘반값 아파트법’ ‘이중국적자 병역기피 봉쇄법’ 등에 이어 ‘친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고 나선 것. 주류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친서민 행보에 몸 바친 점은 홍 대표가 이번 7·4전당대회에서 당선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런 홍 대표가 ‘한나라호’의 키를 잡은 만큼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이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선 직후 홍 대표의 라디오 연설은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홍 대표는 지난 6일 “그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 대기업이 특혜를 누려왔다”며 “이제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자를 비롯해 서민가계에 파급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이어 홍 대표는 “실효성 있는 서민정책을 적극 추진해 늦어도 올 연말에는 서민가계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나라당이 ‘웰빙정당’의 멍에를 벗고 ‘서민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별위원장 시절 내놨던 정책들을 재검토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 추가 인하와 전월세 상한제, 든든학자금(ICL) 이자율 인하, 택시의 버스전용차로 진입 허용 등이 그것이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당 원내지도부가 이미 일부 친서민 정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홍 대표까지 가세할 경우 한나라당의 ‘정책 좌 클릭’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여기에 유승민, 남경필 최고위원 등 개혁 성향의 지도부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

홍 대표는 또 당내 화합을 위해 고절적인 병폐인 계파활동의 해체에도 양팔을 걷어붙였다. 홍 대표는 “계파를 해체해야 한다”며 “앞으로 계파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대표는 “(계파 해체는) 국민이 바라는 것이며, 국민이 보기에도 중요한 일”이라며 “이를 발 빠르게 하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남경필 최고위원 등 40대의 젊은 당지도부들도 홍 대표의 계파 해체에 힘을 보탰다. 나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계파가 엷어졌다는 평가와 짙어졌다는 평가가 교차하는데 홍 대표도 계파 해체를 말했으니 함께 뜻을 모아 꼭 이뤘으면 한다”고 가세했다. 남 최고위원도 “새 지도부가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이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상당수의 최고위원들이 공천 잡음 등 후유증이 없도록 당내 계파를 해체하자는 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서민정책 가속
계파활동 해체

하지만 한나라당이 계파정치를 청산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이 홍 대표의 계파 해체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유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계파활동에 치중하면 공천을 안 주겠다는 말씀을 했는데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계파보다는 민생”이라고 당 대표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어 “계파활동을 한다고 공천에 불이익을 준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그러면 나부터 공천이 안돼야 하는 것 아니냐. 계파 화해는 당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신임 대표 프로필>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영남중학교 졸업
영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제24회 사법고시 합격
신라대학교 명예법학박사
영산대학교 명예부동산박사
청주지방 검찰청 검사
부산지금 울산지청 검사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광주지방 검찰청 검사
서울지방 검찰청 검사
15대 국회의원
16대 국회의원
17대 국회의원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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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