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공신’ 무적 7인방 비화

최강 드림팀…그들이 해냈다!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됐다. 2010년(2003년 선정)과 2014년(2007년 선정)에 이어 3번째 도전 끝에 이룬 쾌거라 더 값지고, 더 뜻 깊고, 더 감격스럽다. 하나로 똘똘 뭉친 국민들 모두가 성원한 결과로, 그 뜨거운 염원을 전 세계에 그대로 전한 7인의 일등공신 역할도 컸다. 대한민국의 꿈을 현실로 일궈낸 공로자들의 땀방울을 담아봤다.

하나로 똘똘 뭉친 국민들 염원 전세계에 전해
수년전부터 IOC 표심 잡기…빼곡한 일정 소화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데는 남다른 노력을 쏟았던 기업인들의 공로가 컸다. 일단 기업 경영은 뒷전. 수년전부터 IOC 위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빼곡한 일정을 소화해 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은 이번 유치에 크게 기여한 기업인들로 꼽힌다.

2003년부터 한 우물 ► 이건희
이 회장(IOC 위원)은 평창이 첫 출사표를 던진 2003년 전부터 동계올림픽 유치에 공을 들여왔다. 꾸준히 스포츠외교 활동을 펼치다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건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 회장은 지난해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이번 더반 IOC 총회 참석까지 약 1년 반 동안 모두 11차례에 걸쳐 170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 총 이동거리만 21만㎞에 달한다. 이는 지구를 5바퀴 넘게 돈 거리에 해당한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평창을 찾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실사단을 접견하는 것으로 본게임에 들어갔다. 당시 실사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영국 런던 ‘스포츠 어코드’(4월), 스위스 로잔 ‘IOC 테크니컬 브리핑’(5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7월) 등 유치전의 핵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110명의 IOC 위원 중 만나지 않은 위원들이 없을 정도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IOC 공식 행사가 있으면 하루 종일 IOC 위원과의 면담 일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회장은 “평창을 믿고 지지해 주신 로그 IOC 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IOC 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평창이 유치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체육계, 국민 모두의 열망이 뭉친 결과”라고 말했다.

지구 13바퀴 돈 ► 박용성 
박 회장(대한체육회 회장)도 이 회장 못지않게 전 세계를 발로 뛰었다. IOC 위원을 한 명이라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과거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IOC 위원 등을 역임하며 그동안 국제 활동을 통해 쌓아온 탄탄한 인맥을 활용했다. 박 회장이 지난해부터 지난 6월까지 평창 유치를 위해 비행한 거리는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1만376㎞다. 총 272일을 국외에서 머물렀을 정도다.

2009년 3월 대한체육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지난해 동안 지구 8바퀴에 해당하는 32만6000㎞를 비행했다. 이를 위해 1년의 반이 넘는 182일을 해외에서 체류했다. 올해도 더반으로 떠나기까지 지구 4.6바퀴 거리인 18만4370㎞를 이동하고 90일 간 해외에 머물렀다. 박 회장은 해외출장비를 사비로 지출하고 부족한 대한체육회 유치활동비를 지원하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은 하루에 한 국가씩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열리는 국제 스포츠행사에 모두 참석해 단 한번이라도 IOC 위원과 더 접촉하기 위해 아예 유럽으로 짐을 옮겼다. 각종 행사에 최대한 참석해 IOC 위원들을 닥치는 대로 만났다.
박 회장은 “유치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없었다”며 “늦었지만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나니 평생의 한을 푼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2년간 회사일 접은 ► 조양호 
지난 2년 가까이 한진그룹 회장실은 거의 비어 있었다. 조 회장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외부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2007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고문을 역임한데 이어 2009년 9월 김진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임대사(당시 강원도지사)와 함께 유치위 공동위원장에 선출됐다.

지난해 6월 김 특임대사의 퇴임으로 조 회장의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조 회장은 덴마크와 캐나다에서 열린 IOC 총회, 스위스 다보스포럼, 싱가포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등 각종 국제 행사에 참석해 평창 홍보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평창 관련 행사엔 거의 빠지지 않았다. 조 회장이 최근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몽땅 평창 얘기뿐이었다. 그는 2년간 34개의 해외 행사에 참석했다. 물론 모두 평창 유치를 위해서였다.

최근엔 더욱 바빴다. 조 회장은 지난달 토고에서 열린 아프리카올림픽위원회(ANOCA) 총회에 참석해 뮌헨(독일), 안시(프랑스)와 합동 프레젠테이션을 가졌다. 이후 40여명의 IOC 위원들이 대거 하객으로 참석한 모나코 알베르 2세 대공 결혼식에 참석해 맨투맨 식으로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이렇게 조 회장이 달린 거리가 지구 13바퀴 정도인 50만9000㎞에 이른다. 조 회장은 “저도 열심히 했지만 저 혼자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10년 동안 계속 90%가 넘는 지지를 해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끝까지 포기 않은 ► 김진선
지난 7일 더반 IOC 총회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호명되자 김진선 특임대사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유치 대표단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2번 통한의 눈물에 이은 환희의 눈물이었다. 김 특임대사는 개최지 발표가 결정된 직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고맙다. 너무 고맙다”며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1999년 당시 강원도지사였던 김 특임대사는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천명했다. 하지만 첫 번째 도전은 아쉽게 좌절됐다.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 IOC 총회에서 평창은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도 결선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역전을 당했다. 두 번째 도전이었던 2007년 7월 과테말라 과테말라시티 IOC 총회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초 강력한 유치 1순위로 꼽혔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앞세운 러시아의 막강한 물량공세에 밀려 또 다시 막판에 뒤집혔다.

김 특임대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3수에 도전했다. 지난해 6월 3선의 도지사 임기가 끝나 잠시 뒤로 물러섰다가 11월 정부로부터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치 특임대사로 임명되면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김 특임대사는 매일 유치에만 매달렸다. 그가 첫 도전부터 평창을 알리기 위해 움직인 거리는 무려 지구 22바퀴(87만6533㎞)에 해당한다.

위원들 사로잡은 퀸 ► 김연아
이번 평창의 유치 성공의 주역으로 단연 ‘피겨여왕’김연아 선수를 빼놓을 수 없다. 김 선수는 2009년 4월 유치위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평창 지원사격에 나섰다. 세계 최고기록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각종 공식행사에서 ‘평창의 얼굴’로 활동해왔다.

동계스포츠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선 김 선수는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서 빛을 발했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 직전 실시되는 후보도시 PT는 평창의 유치 여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어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여유 있는 모습과 제스처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김 선수는 직접연설 3분과 영상메시지 4분을 합해 모두 7분에 걸쳐 진심이 담긴 연설로 IOC 위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내 꿈은 내가 누렸던 기회를 새로운 지역의 재능 있는 선수들과 나누는 것”이라며 “내가 어릴 적 나가노 동계올림픽(1998년)을 보고 꿈을 키웠듯이 평창 동계올림픽이 아시아의 다른 선수들에게도 같은 꿈을 이루는 데 새로운 지평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가 ‘친애하는 IOC 위원 여러분, 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다른 이들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호소해 IOC위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더반의 ‘PT 여왕’ ► 나승연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은 이번 유치전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올랐다. 나 대변인은 PT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그는 유창하고 깔끔한 영어 실력과 함께 빼어난 미모로 IOC 위원들에게 평창의 뜨거운 열망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나 대변인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고 실패했다. 한국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꿈에 불과하다는 말에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인내와 끈기라는 단어가 한국인의 삶 속에 스며있다”며 “평창사람들의 꿈이었던 올림픽 유치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열망”이라고 말했다.

지구 돌고, 돌고, 또 돌고…
각국 위원들 ‘사로 잡았다’

나 대변인은 지난해 4월부터 유치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국제행사에서 PT를 도맡아 ‘평창의 입’역할을 톡톡히 했다. 나 대변인은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자마자 1995년 한국은행에 총재 비서로 입행했다. 이후 1996년부터 아리랑 TV 개국과 함께 공채 1기로 입사해 4년여 동안 방송 기자로 활동했던 나 대변인은 외교관 부친을 따라 캐나다, 영국, 덴마크,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어렸을 적부터 생활하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다.

나 대변인은 사업가 남편과 사이에서 외아들을 두고 있다. 남편은 한국타이어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현재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유치전 ‘깜짝 카드’ ► 토비 도슨
한국계 미국인 스키선수 토비 도슨(본명 김봉석)은 유치위의 ‘깜짝 카드’였다. 도슨은 PT에서 감성적 호소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난 프리스타일 스키선수이자, 올림픽 선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난 미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입양된 과거를 소개했다. 이어 “평창을 지원해 준다면 동계올림픽 선수가 되고 싶지만 기회조차 없었던 수만 명의 어린 아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난 도슨은 3세 때인 1981년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인파에 밀려 미아가 된 후 잠시 고아원에 맡겨졌다 미국 콜로라도주 베일의 스키강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평소 과묵했던 도슨은 스키를 배운 뒤 수다쟁이가 될 정도로 스키의 매력에 푹 빠졌고, 미국 국가대표로까지 성장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인공적으로 울룩불룩한 눈 둔덕으로 만들어 놓은 슬로프에서 타는 프리스타일 스키의 한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한국에 알려지면서 도슨은 이듬해 그토록 그리워했던 생부와 남동생을 만났다. 2014년에 이어 2018년 평창 유치를 위한 홍보대사로 위촉된 그는 유치가 확정되자 “한국인이라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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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