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하는 기관들 백태

새 정부 눈치 보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기관들이 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뤄왔던 일들을 뒤늦게 처리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바뀐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뒤늦은 수사와 사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경찰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회삿돈을 횡령해 자택 인테리어 비용으로 쓴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법상 횡령·배임)를 잡고 지난 7일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경찰]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본사에 보관 중인 계약서, 공사 관련 자료, 세무자료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비슷한 혐의로 수사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건에 견줘 조 회장 건은 수법이 복잡하지 않아 수사 속도는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 일가는 2013년 5월서 2014년 8월까지 서울 평창동 자택의 인테리어 비용을 한진그룹 계열사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최소 5억원 이상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영종도에 세운 호텔의 신축 공사 기간에 맞춰 조 회장 자택 공사도 진행됐다”며 “자택 인테리어 비용을 호텔 공사를 위해 쓴 것처럼 서류를 꾸몄을 가능성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5월 이건희·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부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에도 회삿돈이나 비자금이 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문재인정부로부터 ‘인권경찰’로 거듭나라는 주문을 받은 경찰은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뒤늦게 사과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격 물대포에 피격된 지 581일 만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달 16일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서 “이 자리를 빌려 그간 민주화 과정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종철님, 이한열님 등 희생자분들과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집회시위 과정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경찰청장 “진심으로 사과” 태세 변환
흐지부지 사건들 수면위로 꺼내는 기관들

이 청장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경찰은 일반 집회, 시위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 사용 요건 또한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내용을 대통령령인 위해성 장비 등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해 철저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도 일을 시작했다. 2013년에 있었던 의혹을 이제야 풀기 시작했다. 문체부는 2013년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 대표와 A심판(현재 퇴직) 사이에 돈이 오간 것과 관련 내용을 은폐한 의혹을 받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대해 이제야 검찰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 

문체부는 지난 6일 최근 언론서 제기된 프로야구 심판 금전수수 및 사업 입찰비리 의혹에 대해 KBO에 대한 검찰 고발과 회계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KBO서 제출받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 A심판이 두산, 넥센 구단 외 여러 구단에 금전을 요구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해당 구단의 답변만으로 조사를 마무리한 것을 확인했다. 
 

아울러 2016년 8월 구단과 A심판의 금전거래를 확인한 뒤에도 A심판의 소재지를 파악한다는 명목하에 약 6개월간 조사를 지연한 점과 송금 계좌를 확보하고도 계좌 추적 등을 수사기관에 의뢰하지 않은 점, 승부조작 등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사항에 대해 충실히 조사하지 않은 점, 상벌위원회 결과를 비공개로 결정한 점 등 KBO가 이 사건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해 검찰에 수사 의뢰를 결정했다. 

문체부는 2013년 10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경기를 앞두고 두산 구단 관계자가 A심판의 요청에 따라 300만원을 제공했고, 2016년 8월 KBO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KBO는 올해 3월 상벌위원회를 열어 이 사건을 '대가성이 없는 당사자 간 금전 대차'로 결론짓고 구단 관계자에게 경고조치만 내린 후 비공개로 사안을 종결 처리했다고 문체부는 전했다.

임영아 문체부 스포츠산업과장은 “심판 금품수수 사건은 프로야구계의 구조적인 폐해를 묵인한 KBO의 직무유기서 비롯된 것”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KBO에 대한 검찰 고발과 회계감사를 실시해 잘못된 일은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또 국고지원 사업 관련 의혹에 대해 KBO 보조금 사업 감사를 실시하고 위법 사실이 발견될 경우 추가 고발과 보조금 삭감 등 법령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감사원]

감사원이 최근 면세점 선정비리 내용을 발표했다. 특허권을 쥐고 있는 관세청이 2015년 두 차례에 걸린 면세점 선정 과정서 점수를 조작해 롯데 대신 한화와 두산을 뽑은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면세점의 매장 면적과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율 등 정량평가까지 왜곡해 특정업체를 밀어줬다. 당시에도 특혜시비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선정 과정의 투명성도 논란거리였다. 심사위원을 어떻게 뽑았는지는 물론 평가점수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관련 비리 혐의는 검찰 수사 과정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에 쏟아지는 ‘뒷북 감사’라는 비난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감사는 작년 말 국회가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요구한 결과다. 2015년 두 차례의 면세점 선정 때도 감사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 감사원의 ‘뒷북 감사’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감사원은 2015년 초 자원외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등의 감사를 통해서였다. 자원외교가 한창 벌어지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 선제적으로 문제점을 제기했다면 국가적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지난달 최순실 국정 농단 사안을 위법 또는 부당하게 처리한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에 대해 무더기 징계를 요구한 것 역시 뒷북 감사의 전형이다. 이 역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상황에서 국회의 감사 요구에 따라 진행한다. 

비난 속 계속되는 ‘뒷북 감사’ 의혹 
‘고발요청권’ 행사후 뒤늦게 조치

대우조선해양 부실도 선제적 감사부재의 결과다. 작년 6월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감사원이 2011년 한 해를 빼고 최근 6년간 매년 산업은행을 감사했지만 대우조선해양 관리 부실을 지적한 적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업무 소홀로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 회계사실을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감사원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손실이 드러난 지 3개월 뒤 전격적으로 감사에 착수했다. 2012년에는 영역을 뛰어넘는 월권 감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감사원은 신한은행이 개인 신용대출 금리 산정을 할 때 대출 신청자의 학력 수준에 따라 이자를 차등 적용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본연의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민간 영역까지 침해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점주들을 상대로 ‘치즈 통행세’ 등 각종 갑질을 일삼은 혐의 등으로 구속된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69) 전 MP그룹 회장에 대해 검찰이 ‘고발요청권’을 행사하고 나서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가 뒤늦게 고발 조치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이준식)는 지난 4일 봉욱(52·사법연수원 19기) 검찰총장 직무대행 명의로 공정위에 독점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정 전 회장과 MP그룹에 대한 고발을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이튿날인 5일 정 전 회장과 MP그룹을 대검찰청에 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칙적으로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수사를 통해 불공정거래 혐의를 입증해도 기소할 수 없다. 

다만 공정거래법 제71조는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조달청장, 중소기업청장이 공정위에 불공정거래 기업의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고발을 요청받으면 공정위원장은 해당 기업을 반드시 수사기관에 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총장 명의로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사상 세 번째다. 지난 2015년 김진태(65·14기) 당시 검찰총장은 새만금방조제 담합 사건에 연루된 SK건설을 고발해달라는 내용으로 사상 처음으로 공정위에 대해 검찰총장의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바 있다. 

작년 11월에는 화약 가격 담합 사건과 관련해 당시 김수남(58·16기) 검찰총장이 한화와 고려노벨에 대해 고발요청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앞서 공정위는 미스터피자 가맹점주들의 잇따른 진정으로 ‘치즈 통행세’ 등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점을 조사해왔지만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정 전 회장의 갑질에 견디지 못한 가맹점주들은 검찰에도 고소·고발장을 내는 등 수사를 촉구했고 결국 공정위가 머뭇거리는 사이 검찰이 전격적인 수사에 들어가면서 공정위는 ‘뒷북 고발’을 하게 됐다. 

지난해 공정위가 처리한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는 총 407건으로 이 중 190건이 경고 이상의 조치를 받았지만 형사 처분 중 하나인 고발 결정이 내려진 사건은 1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 전 회장 고발은 지난달 14일 김상조 신임 공정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첫 고발 사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공정위원장은 취임사서 경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재벌 개혁도 중요하지만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는 횡포를 시정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지난 정권하에서 각종 민원에도 불공정한 시장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만큼 새 정부서 공정위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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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