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에도 안 잡히는 범죄용의자 5人 전격공개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었나?"

2008년을 끝으로 공중파에서 방송되던 공개수배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폐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결국 폐지되고 만 것. 그 후로 3년이 흐른 지금 과연 모방범죄는 줄었을까. 물론 아니다. 또 당시 공개수배했던 범죄자들 중 잡히지 않은 수배자도 부지기수다. 경찰청에서는 매년 2회에 걸쳐 20명의 전국 지명수배자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를 일일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해당 포스터는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 중심으로 배포되고 있으며, 사이버경찰청에서 지명수배자 확인이 가능하지만 일부러 사이트에 접속해 지명수배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국민은 드문 이유에서다. 이에 <일요시사>는 2011년 상반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검거된 지명수배자를 제외한 15명의 수배자 가운데 5명을 긴급 공개수배한다.

경찰, 1년에 2번 지명수배범 포스터 물갈이
강력·주요 범죄 피의자 종합수배 ‘총력’

경찰청은 매년 2회(상·하반기)에 걸쳐 전국 지방경찰청의 요청을 받아 범죄자 20명을 지명수배한다. 이는 각 경찰서에서 수배이후 6개월이 지나도 검거 되지 않은 범죄를 대상으로 구성되며 경찰청 선정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공개수배에도 오리무중
"못 찾겠다 꾀꼬리"

범죄가 발생하면 관할 경찰서는 용의자를 확보하고 뒤를 쫓는데 주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검거되지 않으면 각급 경찰서는 용의자를 공개수배한다.

하지만 공개수배의 효과가 단 기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 뒤로 용의자의 행방이 오랫동안 오리무중인 경우가 많아 우리사회 치안망에 대한 우려와 함께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살인 등 강력사건 범인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것. 또 이들은 공개수배라는 굴레 안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손쉽게 추가범행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 시민들은 언제라도 추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2011년 상반기 지명수배자는 총 20명, 이중 시민들의 제보로 5명이 검거됐고 하반기 지명수배자가 선정되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검거되지 않은 지명수배자는 15명이다.

살인, 성폭행, 사기, 폭력 등 강력사건의 용의자인 그들은 과연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①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
- 두 얼굴의 남자

2003년 3월, 충북 제천의 배수로 공사 현장에서 김장용 비닐봉투에 싸인 한 여자의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 지문 복원 끝에 드러난 그녀의 신원은 4개월 전 경기도 용인에서 실종된 50대 여성 .

실종 전까지 평범한 생활을 해오던 그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경찰은 그녀의 휴대전화에 남아있는 통화기록을 토대로 한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제주, 부산, 대구, 서울, 경기 등 전국을 무대로 사기 행각을 벌여온 전과 11범의 신명호(51)가 바로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의 용의자다.

충북 제천경찰서에 따르면 신씨는 사업가를 사칭하며 돈 많은 주부들을 골프 동호회에 가입시킨 뒤 고가의 명품으로 유혹, 사랑과 결혼을 빙자해 금품을 갈취하는 등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경찰 추산 그 피해자만 전국에 걸쳐 수 십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의 달인이다.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신씨는 사기전과 11범. 골프 동호회를 운영하며 여성 회원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그는 평소 피해자가 사채로 돈을 굴려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접근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신씨의 사기 행각을 눈치 챘고 "사기생각을 폭로 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신씨는 피해여성을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 2002년 12월16일 경기도 용인에서 피해자를 감금해 결박한 후 목 졸라 살해하고 공구를 이용해 토막 내 충북 제천의 배수로 공사 현장에 유기했다.

살인과 토막도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범행 이후 생활은 더 끔찍했다. 같은 동호외에서 3개월을 더 활동하는 등 침작한 모습을 보인 것. 그는 3개월의 시간 동안 그동안 사기 행각을 벌였던 여성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갖고,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아이디로 동호회에 접속해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피해 여성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② 택시기사 살인사건
- 여성 승객 살해 후 방화


2005년 10월18일 새벽 4시40분께 전북 전주시 전미동 진기마을 부근 제방에서 불에 탄 택시 안에서 여자 변사체가 발견됐다.

최초 발견자는 "일행 4명이 차를 타고 지나는데 길 가에 세워진 택시에서 불길이 솟고 있어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경찰은 택시운전자 임대욱(44)의 시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택시 뒷좌석에 있던 사체는 신원과 성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식 결과 여성으로 판명됐고, 사체가 심하게 탄 점으로 미뤄 살해 흔적을 감출 목적으로 휘발성 물질을 뿌린 뒤 불을 질럿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어 경찰은 사건 발생 당일 운전자 임씨가 집과 연락이 두절된 채 영업이 끝난 이후에도 회사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회사 측의 말에 따라 임씨를 사건의 용의자로 추정하고 수사에 나섰다.

당시 임씨는 사건 발생 1개월 전에 택시 회사에 입사했고, 3년 전 이혼, 노모와 어린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유류품을 확인한 결과 피해 여성(당시 35세)은 전주 모 호프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으로 밝혀졌다. 피해여성은 사건 발생 당일 자정 퇴근을 하면서 남편을 만나러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다.

하지만 6년지 지난 현재까지 임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이에 경찰은 공개수배를 하고 임씨 검거에 총력을 다 하고 있지만 수사에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태다. 피해자마저 불에 타 숨져 임씨가 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 살해 동기조차 불분명하다.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임씨는 과연 현재 어디에 있는 것일까.

검거 목적이지만 검거 이후 관리에도 ‘신경’
경찰의 검거 노력은 물론 시민 관심도 필요

③ 노원구 상계동 곗돈 사기사건
- "돈을 갖고 튀어라"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00억원대 곗돈 사기사건의 주인공 김애경(58·여) 역시 아직까지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있다.

경기불황이 한창이던 당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불경기에 이어 피땀 흘려 모은 목돈까지 하루아침에 떼였기 때문이다. 상계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계모임을 이끌던 큰 손 김씨가 작정하고 자취를 감춘 것.

2008년 4월2일 김씨는 그동안 끌어 모은 곗돈 100억원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이에 피해자들은 같은 달 7일 서울 노원경찰서에 김씨를 고소해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씨가 지난 20년 동안 시장 상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계모임을 성실히 이끌었다는 데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많은 상인들은 김씨를 믿고 계에 가입 꼬박고박 돈을 부었다.

하지만 일부 계원들이 곗톤을 탈 차례가 다가왔지만 김씨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지자 계원들은 덜컥 겁을 집어먹고 김씨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피해자 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김씨는 계원들에게 김정숙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김씨의 행방을 오리무중이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에 자주 드나들던 김씨가 돈을 챙겨 밀입국 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100억원대의 피해금액은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적어도 150명 이상의 계원들로부터 100억원대의 곗돈을 빼돌렸다는 것. 하지만 경찰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피해액은 32억원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④ 희대의 사기꾼
- 이종룡 그는 누구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크고 작은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경찰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사기 범죄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집계됐다.

그 중에서도 경찰청에서 공개수배한 이종룡(55)은 희대의 사기꾼이라 불릴만한 인물이다. 단골 택시기사, 단골 식당주인, 가족처럼 일하던 가사도우미와 자신의 모친 묘를 이장해 준 이장업자까지 인연이 닿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서다.

사기 수법도 다양했다. 사찰공사 투자, 아파트 전세계약, 아파트 상가분양, 납골당 건설을 미끼로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하게 범행을 즐긴 것.

이와 관련 그의 수법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그가 전형적인 거물 사기꾼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까운 사람을 시작으로 대상을 넓혀 목표물을 넓힌 뒤 문어발식으로 사기를 친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피해자만 100여명, 피해액은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사기로 갈취한 돈을 단 한푼도 자신의 명의로 해놓지 않아 그를 검거하더라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씨 역시 이종상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건실한 사업가인 냥 피해자들에게 접근했고, 피해자 중에는 길게는 7년 동안 그와 친분을 쌓은 사람도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씨의 파렴치한 범죄 행각 때문에 경찰도 공개수배로 전환해 이씨 검거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생업까지 뒤로 한 채 그를 쫓고 있다. 경찰의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사기 범죄는 입증이 어려운데다 수사 인력의 한계로 인해 강도나 절도 등의 강력범죄에 비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마냥 경찰 수사만 믿고 기다릴 수 없는 피해자들이 직접 이씨를 붙잡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

지난해 연초 <SBS 뉴스추적>에서 다룰 만큼 탁월한 사기 능력을 가진 이씨의 검거 소식이 기다려진다.

⑤ 춘천수렵장 접수
- "짝퉁조폭 게 섰거라"

2009년 한 30대 남성이 강원도가 운영하는 춘천시 서면 오월리 강원도립춘천수렵장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7~8명을 협박해 2007년 말부터 1년 5개월여 동안 3억여원을 갈취한 사실이 밝혀졌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수렵장에서 공익근무를 했던 이상진(32)이 2007년 12월 중순께 수렵장에 침입해 자신을 조직폭력배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뒤 사냥용 엽총에 실탄을 장전에 공무원들의 입 속에 넣고 협박하는 당 2009년 4월 중순까지 갖가지 폭력을 행사해 돈을 뜯고 입장료 일부도 챙겼다.

당시 이씨는 수렵장 측으로부터 잠자는 방은 물론 사무실 내에 자신이 쓸 수 있는 책상과 컴퓨터까지 제공받고 무전취식하며 기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4월부터 1년간 총 3200만원을 갈취당한 한 피해자는 "밤중에 휴양림 내 계곡으로 끌고가 흉기를 목에 들이대며 돈을 안주면 가족까지 죽여버린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1200만원까지 4차례에 걸쳐 모두 320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총 피해자는 수렵장 근무 직원 7명 가운데 6명, 인근 자연휴양림과 관할사업소인 산림개발연구원 내 직원 일부 등 7~8명에 이른다. 이씨는 이들을 대상으로 흉기와 둔기 등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며 돈을 뜯었고, 이들 중 일부 피해자는 이씨에게 맞아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008년 상반기 피해를 당한 한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돼 벌금형을 받고도 다시 수렵장 내에서 계속 범행을 저질렀다는 데 있다. 1년 5개월 동안 범행을 계속하던 이씨는 도산림개발연구원 내 한 중간간부를 대상으로 갈취를 시도하다 거세게 반발하자 2009년 4월 중순께 수렵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들은 이씨가  "수렵장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한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강원도는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관련 공무원 3명을 직위해제하고 직원을 새로 바꾸는 인사를 단행했으나, 춘천수렵장은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지난해 간판을 내렸다.

적게는 2년에서 많게는 10년 동안이나 도주생활을 하고 있는 공개수배자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찰은 수배 뒤 잠적하다 검거된 범인들을 보면 대부분 신원공개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선을 타거나 축사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일반 사회와는 어느 정도 격리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일부 범죄자들은 뻔뻔하게도 신원을 감춘 채 위장취업하거나 막노동 생활을 하며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경제적 궁핍으로 인한 추가 범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경찰이 치안력을 더욱 강화하고 신속하게 범인을 검거할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인권문제로 인해 물심 검문이 제한되는 등 경찰력만으로는 잠적한 범인을 붙잡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경찰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어야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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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