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로 본 북한 미사일 60년 개발사

김정은 깔봤다간 큰 코 다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60여년에 달할 정도로 오래됐다. 이제는 대기권을 재진입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가장 고난도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미사일과 핵기술 분야서 강성대국을 눈앞에 둔 셈이다. 과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돼 왔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이 처음 탄도미사일 보유에 나서게 된 계기는 주한미군의 전술 핵미사일 배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고자 1960년대 말 옛 소련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및 FROG-5/7 미사일을 획득하고 1970년경에는 중국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및 기술지원을 제공받았다. 

1960년대부터…
자체개발 시작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 소련의 탄도미사일을 획득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S. Khrushchyov)는 스탈린과 같은 개인숭배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던 수정주의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나가던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이후 1971년 북한은 탄도미사일 및 다른 무기체계를 획득,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도록 중국과 합의서에 서명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와 같은 미사일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하드웨어 및 기술의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사일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북한은 역설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획득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한창이던 이집트에 MIG-21 전투기 1개 중대를 파병해주고 그 대가로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과 발사차량, 정비 매뉴얼과 운용교범까지 넘겨받는 데 성공한 것. 

당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소련의 충분치 않은 원조에 불만을 가지고 파견된 소련 기술자들을 추방하는 등 외교적으로 삐걱거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허락 없이 북한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1984년경에 북한은 스커드-B 미사일의 독자개발 버전인 화성 5 미사일을 생산하고 비행시험을 수행했다. 1985년에는 미사일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얻기 위해 이란과 합의문에 서명했고 향후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을 구매했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했던 이란에게 탄도미사일을 판매했던 북한은 외화를 벌고 미사일 생산의 경제성을 증진시키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화성 5 미사일의 대량생산 이후에 바로 북한은 화성 6(스커드 C) 미사일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과 1989년경에 노동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이러한 급격한 개발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작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구소련 기술이전 거부
이집트에서 우회 입수

1980년대 후반에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개발을 시작했다. 1990∼1991년경에 화성 6 미사일의 양산이 시작됐고 첫 번째의 노동미사일 시제품이 제작됐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중동 국가들에 기술이전 및 완제품 스커드 공장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0년 5월에 미국의 정찰위성은 무수단리 미사일 발사장의 발사대에 장착된 노동미사일을 탐지했다. 그러나 당시 영상에선 발사대에 검게 탄 자국만 보였기 때문에 시험의 실패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3년 5월 말, 북한의 유일한 독자적인 노동미사일 비행시험을 진행했다. 
 

지리적인 이유로 노동미사일의 완전한 사거리 시험을 할 수 없었던 북한이었지만 1995년부터 노동미사일을 전력화 배치하기도 했다.

북한 미사일이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은 ‘대포동’ 시리즈부터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은 노동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훨씬 길고 한 차원 높은 대포동1호를 일본 상공을 건너 태평양을 향해 발사하며 대륙간탄도탄(ICBM)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포동미사일은 노동미사일과 스커드미사일을 조합한 3단 로켓으로 3단계 로켓은 첨단기술인 고체연료 로켓으로 제작됐다. 

미사일은 약 1600km를 날아갔지만 최종 단계의 3단계 로켓을 우주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의 충격은 컸다. 

그동안 북한 미사일 수준에 대해 ‘별 것 아니다’는 인식을 가졌던 미국은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데 경각심을 느꼈고 미사일 잔해 일부가 베링해 알래스카 앞바다까지 날아가면서 미국과 일본을 경악시켰다.

전 세계에 각인
‘대포동’ 시리즈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1호를 개량한 대포동2호를 시험발사했다. 그러나 1단 추진체가 분리되기 전 42초 만에 기술적 결함으로 공중서 폭발했다. 대포동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6700km로 미국 알래스카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성능으로 추정됐다. 

북한 외무상은 이 발사를 자체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정규적인 군사훈련이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6년 7월15일 UN 안전보장이사회(UN Security Council)는 만장일치로 결의안 1695를 통과시켰고 북한이 미사일 관련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UN 회원국은 미사일 관련 소재 및 기술을 북한으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간격은 좁혀진다. 2009년 4월5일 북한은 은하 2호 위성발사체를 발사했다. 이는 대포동 2 미사일을 변경한 장거리 로켓이었다. 비록 북한 언론매체가 위성이 궤도로 발사됐다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우주궤도서 북한의 위성 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3단 로켓의 발사는 1단 로켓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수역에 낙하되면서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탑재체와 함께 나머지 단은 태평양 해역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2년 4월12일 북한은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은하 3호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발사를 시도했다. 발사는 1단 엔진의 연소 종료시점에서 실패해 로켓 추진체는 서해 앞바다로 추락했다. 

미사일 기술의 이중용도 때문에 미국과 한국은 이 발사를 장거리미사일을 시험하지 않는다는 UN 결의안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식량 원조를 중단했다. 

3일 후 북한은 평양 시내서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군사퍼레이드를 했으며 여기서 KN-08이라는 이동식 ICBM의 목업을 선보였다. KN-08 이동식 ICBM은 6대의 중국제 8축 트럭인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 실려 전시됐다.

2012년 12월에 북한은 서해발사장서 은하 3호 장거리로켓을 재발사해 성공적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북한이 이 로켓을 우주발사체로 주장했지만 기술은 장거리로켓과 매우 유사했다. 

정치적 목적 위해
여러 가지 실험

핵탄두를 운반하기 위해서 로켓은 재진입체를 추가해야 하는데 이는 첨단기술 및 고급 소재를 필요로 하며 북한은 이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2016년 3월15일 스커드 엔진으로부터 내뿜는 배기가스에 견디는 재진입체 형상의 소재 삭마 특성시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에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6년 4월 새로운 타입의 ICBM용 엔진 지상연소시험을 수행했다. 엔진은 옛 소련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R-27의 4D10 엔진과 유사한 것으로 보였다. 이 엔진은 2015년에 무려 8차례나 발사를 시도했던 무수단미사일의 엔진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수단엔진은 고에너지 추진제를 사용하고 고성능의 엔진성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무수단엔진 탑재 시뮬레이션 결과 250kg의 소형 경량 탄두를 장착해도 최대사거리는 9000km 이하였다. 2015년 9월 북한은 80톤급의 고추력 대형액체로켓엔진을 개발해 지상시험을 수행했다. 1기의 80톤 엔진 및 무수단엔진 탑재 시의 시뮬레이션 결과 1만2000km 이상의 사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무수단미사일은 2010년 10월에 외국 언론을 초청한 군사퍼레이드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퍼레이드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미사일의 파생 미사일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이란의 가더(Ghader)-1 미사일과 매우 유사한 삼중콘(Triconic Nose-Cone)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포동 위성 궤도에…늘어가는 기술
ICBM에 놀란 미, 군사 대응 가능성도

2016년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무수단미사일의 시험비행을 수행한 적이 없었던 북한은 2016년 들어 연속적으로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를 시도했다. 4월15일 첫 발사에 실패한 이후 13일 만인 4월28일 2∼3차 발사를 시도했다. 

5월31일에는 4차 발사를 시도했으며 6월22일 5∼6차 발사시험을 연속적으로 감행했다. 이 과정서 오직 6차 발사시험 한 차례만 성공했을 뿐이고 나머지 시도에선 모두 실패했다. 

10월15일과 20일에는 발사장소를 강원도 원산 인근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평안북도 구성시서 무수단미사일의 7번째와 8번째 발사시험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의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가 미사일의 성능 검증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지난 5월14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KN-17)’ 발사에 이어 지난 4일 탄도 미사일 ‘화성-14형’을 쏴 올리며 문재인정부 출범 후 6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특히 이번 ‘화성-14형’은 최소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분석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젠 ICBM 성공을 선언하는 단계에 이른 셈이다. 

화성-14형은 거의 수직으로 발사돼 2802㎞ 상공까지 치솟았고 약 933㎞ 거리를 날아갔다. 국방부는 각도를 조절해 북한 원산 지역서 발사한다면 최소 6000㎞서 최대 1만㎞를 날아가 알래스카(5800㎞)와 하와이(7500㎞)는 물론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운반과 로켓단 분리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자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이라며 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사일 사정거리가 5500km에 달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미사일이 ICBM이란 뜻”이라고 밝혔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ICBM에 재진입체가 탑재된 것은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평상형 트럭에 미사일을 실어 평안북도 방현 일대 공군기지로 옮겼지만 발사가 트럭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면 사전에 발사를 감지할 수 없어 한미 양국은 이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다른 발사대로 옮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사전탐지가 가능했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아직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을 면밀히 지켜봤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우리의 방어능력을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폭스뉴스>도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 연료주입 단계부터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지켜봤다”며 “미 국방부는 역내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통해 북한이 발사한 ICBM을 격추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북미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격추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계속되는 도발
ICBM까지 성공?

항공우주연구기관 에어로스페이스의 존 실링 연구원은 이날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를 통해 “우리는 당초 북한이 2020년 초쯤 ICBM 능력을 갖출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북한이 가진 시간표는 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북한이) 미국의 특정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위협이 되려면 1∼2년 더 개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미사일을 내려 다른 발사대를 활용한 것에 대해 “발사 시험 실패로 미사일이 폭발할 경우 값비싼 이동식 발사대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며 실전에서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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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