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로 본 북한 미사일 60년 개발사

김정은 깔봤다간 큰 코 다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60여년에 달할 정도로 오래됐다. 이제는 대기권을 재진입하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가장 고난도인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미사일과 핵기술 분야서 강성대국을 눈앞에 둔 셈이다. 과연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돼 왔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이 처음 탄도미사일 보유에 나서게 된 계기는 주한미군의 전술 핵미사일 배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고자 1960년대 말 옛 소련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및 FROG-5/7 미사일을 획득하고 1970년경에는 중국으로부터 지대함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및 기술지원을 제공받았다. 

1960년대부터…
자체개발 시작

북한은 1960년대 중반에 소련의 탄도미사일을 획득하려고 했었지만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S. Khrushchyov)는 스탈린과 같은 개인숭배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던 수정주의자 입장이었기 때문에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해 나가던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이후 1971년 북한은 탄도미사일 및 다른 무기체계를 획득, 개발 및 생산할 수 있도록 중국과 합의서에 서명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와 같은 미사일 기술 선진국으로부터 하드웨어 및 기술의 이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사일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다. 결국 북한은 역설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획득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이 한창이던 이집트에 MIG-21 전투기 1개 중대를 파병해주고 그 대가로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과 발사차량, 정비 매뉴얼과 운용교범까지 넘겨받는 데 성공한 것. 

당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소련의 충분치 않은 원조에 불만을 가지고 파견된 소련 기술자들을 추방하는 등 외교적으로 삐걱거리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허락 없이 북한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1984년경에 북한은 스커드-B 미사일의 독자개발 버전인 화성 5 미사일을 생산하고 비행시험을 수행했다. 1985년에는 미사일 개발 및 생산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얻기 위해 이란과 합의문에 서명했고 향후 이란은 북한의 미사일을 구매했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수행했던 이란에게 탄도미사일을 판매했던 북한은 외화를 벌고 미사일 생산의 경제성을 증진시키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화성 5 미사일의 대량생산 이후에 바로 북한은 화성 6(스커드 C) 미사일의 개발을 시작했다. 이후 1987년과 1989년경에 노동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이러한 급격한 개발은 놀라운 일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작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구소련 기술이전 거부
이집트에서 우회 입수

1980년대 후반에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Medium Range Ballistic Missile) 개발을 시작했다. 1990∼1991년경에 화성 6 미사일의 양산이 시작됐고 첫 번째의 노동미사일 시제품이 제작됐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은 중동 국가들에 기술이전 및 완제품 스커드 공장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1990년 5월에 미국의 정찰위성은 무수단리 미사일 발사장의 발사대에 장착된 노동미사일을 탐지했다. 그러나 당시 영상에선 발사대에 검게 탄 자국만 보였기 때문에 시험의 실패로 추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993년 5월 말, 북한의 유일한 독자적인 노동미사일 비행시험을 진행했다. 
 

지리적인 이유로 노동미사일의 완전한 사거리 시험을 할 수 없었던 북한이었지만 1995년부터 노동미사일을 전력화 배치하기도 했다.

북한 미사일이 전 세계에 각인된 것은 ‘대포동’ 시리즈부터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은 노동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훨씬 길고 한 차원 높은 대포동1호를 일본 상공을 건너 태평양을 향해 발사하며 대륙간탄도탄(ICBM)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포동미사일은 노동미사일과 스커드미사일을 조합한 3단 로켓으로 3단계 로켓은 첨단기술인 고체연료 로켓으로 제작됐다. 

미사일은 약 1600km를 날아갔지만 최종 단계의 3단계 로켓을 우주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미국의 충격은 컸다. 

그동안 북한 미사일 수준에 대해 ‘별 것 아니다’는 인식을 가졌던 미국은 북한의 기술력이 상당하다는 데 경각심을 느꼈고 미사일 잔해 일부가 베링해 알래스카 앞바다까지 날아가면서 미국과 일본을 경악시켰다.

전 세계에 각인
‘대포동’ 시리즈

북한은 2006년 7월 대포동1호를 개량한 대포동2호를 시험발사했다. 그러나 1단 추진체가 분리되기 전 42초 만에 기술적 결함으로 공중서 폭발했다. 대포동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6700km로 미국 알래스카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성능으로 추정됐다. 

북한 외무상은 이 발사를 자체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정규적인 군사훈련이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6년 7월15일 UN 안전보장이사회(UN Security Council)는 만장일치로 결의안 1695를 통과시켰고 북한이 미사일 관련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UN 회원국은 미사일 관련 소재 및 기술을 북한으로 이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간격은 좁혀진다. 2009년 4월5일 북한은 은하 2호 위성발사체를 발사했다. 이는 대포동 2 미사일을 변경한 장거리 로켓이었다. 비록 북한 언론매체가 위성이 궤도로 발사됐다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우주궤도서 북한의 위성 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3단 로켓의 발사는 1단 로켓이 한반도와 일본 사이의 수역에 낙하되면서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탑재체와 함께 나머지 단은 태평양 해역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2012년 4월12일 북한은 김일성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은하 3호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발사를 시도했다. 발사는 1단 엔진의 연소 종료시점에서 실패해 로켓 추진체는 서해 앞바다로 추락했다. 

미사일 기술의 이중용도 때문에 미국과 한국은 이 발사를 장거리미사일을 시험하지 않는다는 UN 결의안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식량 원조를 중단했다. 

3일 후 북한은 평양 시내서 김일성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군사퍼레이드를 했으며 여기서 KN-08이라는 이동식 ICBM의 목업을 선보였다. KN-08 이동식 ICBM은 6대의 중국제 8축 트럭인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에 실려 전시됐다.

2012년 12월에 북한은 서해발사장서 은하 3호 장거리로켓을 재발사해 성공적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놨다. 북한이 이 로켓을 우주발사체로 주장했지만 기술은 장거리로켓과 매우 유사했다. 

정치적 목적 위해
여러 가지 실험

핵탄두를 운반하기 위해서 로켓은 재진입체를 추가해야 하는데 이는 첨단기술 및 고급 소재를 필요로 하며 북한은 이러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대기권 재진입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2016년 3월15일 스커드 엔진으로부터 내뿜는 배기가스에 견디는 재진입체 형상의 소재 삭마 특성시험을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2013년 2월에는 북한이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6년 4월 새로운 타입의 ICBM용 엔진 지상연소시험을 수행했다. 엔진은 옛 소련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R-27의 4D10 엔진과 유사한 것으로 보였다. 이 엔진은 2015년에 무려 8차례나 발사를 시도했던 무수단미사일의 엔진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수단엔진은 고에너지 추진제를 사용하고 고성능의 엔진성능을 제공한다. 
 

하지만 무수단엔진 탑재 시뮬레이션 결과 250kg의 소형 경량 탄두를 장착해도 최대사거리는 9000km 이하였다. 2015년 9월 북한은 80톤급의 고추력 대형액체로켓엔진을 개발해 지상시험을 수행했다. 1기의 80톤 엔진 및 무수단엔진 탑재 시의 시뮬레이션 결과 1만2000km 이상의 사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무수단미사일은 2010년 10월에 외국 언론을 초청한 군사퍼레이드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퍼레이드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노동미사일의 파생 미사일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이란의 가더(Ghader)-1 미사일과 매우 유사한 삼중콘(Triconic Nose-Cone)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포동 위성 궤도에…늘어가는 기술
ICBM에 놀란 미, 군사 대응 가능성도

2016년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무수단미사일의 시험비행을 수행한 적이 없었던 북한은 2016년 들어 연속적으로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를 시도했다. 4월15일 첫 발사에 실패한 이후 13일 만인 4월28일 2∼3차 발사를 시도했다. 

5월31일에는 4차 발사를 시도했으며 6월22일 5∼6차 발사시험을 연속적으로 감행했다. 이 과정서 오직 6차 발사시험 한 차례만 성공했을 뿐이고 나머지 시도에선 모두 실패했다. 

10월15일과 20일에는 발사장소를 강원도 원산 인근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평안북도 구성시서 무수단미사일의 7번째와 8번째 발사시험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의 무수단미사일 시험발사가 미사일의 성능 검증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은 지난 5월14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KN-17)’ 발사에 이어 지난 4일 탄도 미사일 ‘화성-14형’을 쏴 올리며 문재인정부 출범 후 6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특히 이번 ‘화성-14형’은 최소 사거리 5500㎞ 이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분석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젠 ICBM 성공을 선언하는 단계에 이른 셈이다. 

화성-14형은 거의 수직으로 발사돼 2802㎞ 상공까지 치솟았고 약 933㎞ 거리를 날아갔다. 국방부는 각도를 조절해 북한 원산 지역서 발사한다면 최소 6000㎞서 최대 1만㎞를 날아가 알래스카(5800㎞)와 하와이(7500㎞)는 물론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미국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운반과 로켓단 분리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자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이라며 ICBM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사일 사정거리가 5500km에 달할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미사일이 ICBM이란 뜻”이라고 밝혔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ICBM에 재진입체가 탑재된 것은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평상형 트럭에 미사일을 실어 평안북도 방현 일대 공군기지로 옮겼지만 발사가 트럭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완성되면 사전에 발사를 감지할 수 없어 한미 양국은 이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다른 발사대로 옮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 사전탐지가 가능했다. 

데이비스 대변인은 “북한이 아직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북한을 면밀히 지켜봤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우리의 방어능력을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폭스뉴스>도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전 연료주입 단계부터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지켜봤다”며 “미 국방부는 역내 미사일방어(MD)시스템을 통해 북한이 발사한 ICBM을 격추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북미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격추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계속되는 도발
ICBM까지 성공?

항공우주연구기관 에어로스페이스의 존 실링 연구원은 이날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를 통해 “우리는 당초 북한이 2020년 초쯤 ICBM 능력을 갖출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북한이 가진 시간표는 이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며 “(북한이) 미국의 특정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위협이 되려면 1∼2년 더 개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미사일을 내려 다른 발사대를 활용한 것에 대해 “발사 시험 실패로 미사일이 폭발할 경우 값비싼 이동식 발사대가 파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며 실전에서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서 즉각 발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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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헌재,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헌정사상 두 번째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 사건을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은 또다시 정치적 격변기를 맞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전 11시22분께 서울 종로구 대심판정서 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 111일 만이자, 탄핵 심판 변론 종결 38일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이번 탄핵 심판은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것이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명시했다. 이날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을 낭독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은 국회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 판단했어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게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청구인이 취임한지 2년 후 이뤄진 총선서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다”며 “결과가 피청구인 의도에 부합하지 않아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했으면 안 됐다”고 판단했다. 문 권한대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계엄을 선포해 국가긴급권을 남용하는 역사를 재현해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정치·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초월해 사회 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상실하고 일반인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도 퇴거해야 한다. 다만, 사저 경호 문제 등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즉시 관저를 비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헌재 파면 결정 이틀 뒤에 청와대 관저를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긴 바 있다. 이번 파면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은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대부분 박탈당했다. 대통령 등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통상 최대 15년(10년+5년 연장)까지 경호를 받을 수 있으나, 임기만료 전 퇴임한 경우에는 최대 10년(5년+5년 연장)으로 줄어든다. 전직 대통령 예우 모두 박탈 정치권 ‘장미 대선’ 현실화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다면 받았을 대통령 연금 수령 자격도 상실됐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보수연액(월급여의 8.85배)의 95%를 12개월로 나눠 받는다. 올해 윤 전 대통령 연봉은 약 2억6258만원(세전)이고, 이 기준에 따른 매월 연금액은 약 1533만원(연 기준 1억8397만원)이다. 이 밖에 기념사업 지원과 개인 사무실 및 보좌진 지원도 중단됐으며, 사후 국립묘지 안장 대상서도 제외된다. 공직 취임의 기회도 제한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4조 2항은 ‘탄핵 결정에 의해 파면된 사람은 결정 선고가 있은 날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하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 결정이 선고된 날로부터 5년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 남은 건 형사재판 절차 뿐이다. 형사재판은 탄핵 심판 결과와 별개로 그대로 진행되는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 전 대통령은 오는 14일 첫 정식 공판을 받는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상실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장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헌법 제68조는 대통령 궐위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4일을 기준으로 하면 60일째 되는 날은 오는 6월3일이므로 이날까지 대선을 치러야 한다. 이에 따라 ‘오말육초’(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탄핵 결정으로 파면됐고, 정확히 60일째인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실시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선례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도 60일째 되는 날인 6월3일에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대선 시점이 6월3일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60일째 되는 날에서 가장 가까운 수요일인 5월28일이 조기 대선일로 유력하다는 예상도 나왔다. 어느 날짜에 선거가 치러지든, 정치권에서는 당분간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정국으로 급변했고, 이제 차기 권력을 향한 대권 경쟁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여야 잠룡들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물밑 경쟁을 벌여왔다. 여권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정권 재장출의 목표를 두고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덜어내며 독주 체제를 굳힌 바 있다. 이 외에도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도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없이 당선 즉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날 “국가 안보와 외교에 공백이 없도록 굳건한 안보 태세를 유지하겠다”며 “주권자인 국민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음 정부가 차질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