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위로 전철 다니는 사연

사고 나면 대형사고…시한폭탄 안고 열차 운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하철 1호선 북쪽 시종착역인 소요산역에는 출구가 한 개뿐이다. 열차가 멈추면 소요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이 출구 밖으로 쏟아진다. 출구 오른쪽으로 걷다보면 ‘쇠둔치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과 철도가 보인다.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오가는 철도다. 그리고 철도서 채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재의 A주유소는 2006년 처음 영업을 시작했다. 주유소는 도로와 철도 사이에 있다. 주유소 정면으로 뻥 뚫린 도로에는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얇은 담 너머 철도로 통근 열차와 지하철 1호선이 수없이 오갔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신호로 울리는 ‘땡땡’ 종소리도 쉬지 않고 들려왔다. 세 가지 소리가 한데 섞일 때면 옆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철도와 주유소 뒤편 담벼락 사이에는 제멋대로 자란 풀이 가득했다.

주유소 옆 철도
1일 수십회 운행

B씨는 2013년 주유소를 인수해 운영하는 과정서 늘 소음과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열차가 다니다보니 소음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밤이면 열차가 오가면서 튀는 불꽃에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B씨는 “주유소에는 5만 리터의 무연 휘발유를 포함해 25만 리터 용량의 기름 저장 탱크가 있다”며 “승용차 기준으로 6200대를 동시에 주유할 수 있는 양”이라고 말했다. 정전기나 작은 불꽃으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주유소 특성상 열차 운행이 대형 사고의 불씨가 될까 두려웠다는 것.


B씨의 문제 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공사와 관련해 주유소 뒤편으로 고가가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다. 경원선 동두천~연천 복선전철 건설사업(총연장 20.87㎞)은 단선 비전철 철도노선을 단선 전철철도로 만드는 사업으로,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10월31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공단)은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했다. 이 노선은 동두천-소요산-초성리-전곡-연천 등 5개 역을 지난다. 

이 중 초성리역은 이전되고 기존 한탄강역은 없어지며, 소요산·전곡·연천역은 개량된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 등 대륙철도와 연계까지 고려한 대형 사업이다. 교통망이 부족한 연천 지역 주민들의 기대가 큰 사업이기도 하다.

주유소 주인 안전 진단 요구
공단·감리단 측 ‘절레절레’

전체 2개 공구 중 초성리역을 기준으로 동두천-초성리 구간(1공구)은 한화건설과 가야 경남기업, 초성리-연천 구간(2공구)은 포스코건설, 태평양건설, 포스코 엔지니어링이 맡아서 각각 시공 중이다. 

A주유소는 1공구 구간에 일부 포함된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A주유소 주변 일부 공사 구간의 고가화 때문이다. 이른바 소요고가의 시공이다.

현재 열차 건널목 관리는 직원 1명이 20∼30분마다 흰색과 빨간색 깃발을 들고 나와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열차가 지나간다는 종소리와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면 자동차가 멈춰 길게 늘어서는 모습이 1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직원과 차단기 외에 사람과 자동차의 통행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 4월18일에는 해당 건널목서 70대 경비원 이모씨가 승용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건널목 간수 일을 하던 이씨는 운전자 곽모씨가 몰고 가던 아반떼 승용차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운전자는 “건널목을 지날 때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운전자가 차단기가 내려오기 직전 차를 빨리 몰아 건널목을 통과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공단은 교통 정체, 안전 문제 등 열차 운행 과정서 드러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소요고가의 시공을 추진했다. 고가 위로는 철도, 아래로는 자동차가 지나가도록 만들어 교통 순환을 원활하게 하려는 의도다. 

소요고가는 현재 철도 위치보다 A주유소 쪽으로 가깝게 설계돼있다. 고가가 완성되면 열차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수평으로 가까워지는 대신 위로 높아진다. 최종 완성될 경우 철도와 A주유소 사이의 거리는 약 19m 정도다.

공단은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 제15조 규정에 의거, 언론사에 공고하고 보상 계획의 열람을 안내 통지했다. 이번 사업에 편입되는 토지의 보상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2014년 2월 초 <문화일보>에 공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토지 보상 안내 과정서 우리 주유소 일부가 공사 지역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도 철도와 주유소 간 거리가 멀지 않은데 고가가 생기면 너무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우려했다.

이때부터 A주유소와 발주처·감리단·시공사 사이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불거졌다. 앞서 공사 시작되기 전에도 소음이나 안전 문제 등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던 B씨가 공단이나 동명감리단(이하 감리단), 시공사 등에 좀 더 적극적으로 요구 사항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B씨가 문제 삼은 부분은 ▲안전 검사 여부 ▲설계 과정에서 위험물 처리시설(주유소) 고려 여부 ▲작업 조건 변경과 선로 변경 가능 여부 ▲주유소 진입 동선 대책과 보상 방안 ▲사고 발생 시 대책 마련 여부 등이다.

B씨에 따르면 A주유소 내 위험물은 인화성이 강하고 발화점이 낮기 때문에 순식간에 발화해 화염과 폭발 등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열차는 대형 운송수단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과 재산 피해 규모가 큰 대형 사고로 번질 수 있다. 또 사고가 발생하면 도로처럼 우회 노선이 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씨 입장에선 2013년부터 제기한 소음 및 안전 문제가 소요고가의 시공으로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온 셈이다. 

B씨는 “주유소 운영은 생업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명확한 답변을 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가 시작점 부근에 위험물 처리시설이 위치하는 만큼 대형 사고나 안전사고에 노출돼있는 현 상황을 공단 등이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게 골자였다.


바닥에 깔린 철길
교통 정체 심각

오랫동안 철도 전기 관련 사업을 해온 전문가는 “화재 발생 여부를 단언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아무래도 위험물(기름)을 취급하기 때문에 화재 가능성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수 있고, 일단 사고가 나면 큰 피해가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씨는 “내 요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전 여부를 판단해달라’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면 확답을 달라’ 정도”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전화로 상황 파악과 대책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돌아온 답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B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을 당시 공단이나 감리단은 B씨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또 “안전하다. 문제없다”며 “개인의 요구로 안전 진단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민원 제기 사항을 최대한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A주유소 측에서 제기한 안전 관련 사안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고 체계가 시공사-감리단-공단 순으로 돼있는 만큼 건설사는 지시사항을 이행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고가화 과정서
안전문제 불거져


시공사 측은 지난 3월27일 B씨와 마주앉았다. B씨가 3월23일 공단에 민원을 접수하고 나흘 뒤 시공사와 면담이 진행된 것이다. 공단에 들어간 민원에는 안전상의 문제와 소요고가 시공으로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영업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포함됐다.

먼저 공사가 완료될 경우 유조차 진입이 어려워 유류공급을 받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와 동시에 대형차 진입도 불가능하며 교각 끝점과 주유소 캐노피(덮개 부분) 끝점 간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감전 위험이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고압선과 인접해 있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전기안전진단보고서’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다.

민원 내용을 검토한 시공사 측은 민원인의 요구사항과 (공단·감리단 측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대형차 진입 문제, 시야 확보, 고압선 지장 여부 등에 대해 추후 정밀 조사를 실시한 후 요구 사항 반영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취재 들어가자 “검사 의향 있다”
초기 허가 과정서 협의도 누락돼

시공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받은 감리단 측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감리단 측은 지난 5월 B씨와 감리단 사무실서 만나 민원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감리단 관계자가 “국가서 진행하는 사업이라 결국 진행될 것” “계속 민원을 제기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B씨”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 검사를 진행했다는 감리단 측의 주장에 “감리단서 했다고 주장한 ‘안전 검사’는 주변 주유소 관계자 몇몇에게서 나온 의견일 뿐”이라며 “주유소 몇 군데를 돌아다녀 얻은 답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실제 감리단 측은 “공사 구간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뿐, 전문가가 포함된 제3기관에 용역 발주 절차를 거쳐 수행한 정식 안전 검사를 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공단 측 역시 안전 진단 요구 등 B씨의 민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민원을 제기하는 과정서 공단 수도권본부 재산지원처 용지부 차장만 만났을 뿐, 공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담당자나 안전 관련 전문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B씨는 “공단 관계자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추측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면서도 상상이 현실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질문에는 말을 얼버무렸다”고 설명했다.

B씨와 이야기를 나눴던 공단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가 취재를 시작하자 “나는 토지 보상 문제만 담당하고 있다”며 “해당 사안에 대한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답했다. 

공단 측은 민원인의 요구가 계속된다면 안전 검사를 해줄 의향이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B씨가 지난 3월 민원을 제기한 이후 묵묵부답이었던 공단이 3개월이 지난 후에야 답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공단은 소요고가 시공이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단 수도권본부 수도권사업단 경원선진접선PM 관계자는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에 의거, 소요고가와 A주유소 간의 이격거리는 확보된 상태”라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전기설비 기술기준의 판단기준 108조 ‘특고압 가공전선과 지지물 등의 이격거리’ 항목에 따르면 특고압 가공전선과 그 지지물, 완금류, 지주 또는 지선 사이의 이격거리는 사용전압이 15kV 이상 25kV 미만일 경우 20㎝ 이상 확보하면 공사가 가능하다.

또 공단과 감리단 측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바는 주유소 영업보다 철도 운행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주유소가 처음 운영을 시작했던 2006년에도 철도는 운행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이다. 

소요산의 이름을 딴 소요산역은 1976년 1월11일 영업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수도권전철이 들어왔다. 시기상으로 수도권전철이 들어온 시기와 A주유소 영업 시작 시기가 겹친다.

이 때문에 공단과 감리단 측은 철도안전법 제45조 ‘철도보호지구에서의 행위제한’ 조항에 따라 A주유소 허가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도안전법 제45조는 철도경계선(가장 바깥쪽 궤도의 끝선)으로부터 30m 이내의 지역에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또는 인공구조물의 설치 등의 행위를 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에게 신고해야 한다. 

감리단 측은 “A주유소가 철도보호지구 내에 있기 때문에 허가 과정서 ‘민원 제기를 할 수 없다’는 등의 단서 조항이 붙었을 것”이라며 “당시 허가 조건에 대해 확인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동두천시에 확인한 결과 A주유소 허가 과정서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A주유소의 경우 철도경계선서 30m 이내인 철도보호지구 내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 쪽에서 코레일 혹은 공단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이 누락됐다는 얘기다.

동두천시청 건축과 관계자는 “협의 과정이 누락된 게 맞다. A주유소 허가 과정서 단서 조항이 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요구해도
답 없어 ‘분통’

B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지만 한국은 아직도 ‘위험공화국’이 맞는 것 같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법,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탁상행정, 여전히 만연해 있는 공무원의 안전 불감증 등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안전한 나라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답답해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차’ 하면 불붙는 주유소
정전기만으로도 폭발

지난달 13일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주유소서 기름 탱크 교체 작업을 하던 중 공기 중으로 기화된 기름, 이른바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용접 작업 중이던 작업자 한 명이 숨졌다.

위험물을 취급하는 주유소는 정전기만으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는 정전기 발생이 잦아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소방당국은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주유소에선 유증이 많이 발생한다. 춥고 건조한 시기에 정전기로 인해 유증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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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