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법시험의 추억

사라진 개천…돈이 용을 키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인생 역전의 사다리’라 불렸던 사법시험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21∼24일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시험에 불합격한 인원을 대상으로 2차 사법시험이 치러졌다. 사법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도입 이후 존폐 논란에 시달렸다.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 1947년 조선변호사시험 시행 이후 사법시험 70년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
 

김씨 할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평생 ‘판·검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새벽 4시 밭일을 나서기 전 아들 박씨를 깨우면서 한 말도 “얼른 일어나서 공부해. 판·검사 돼야지”였다. 아들 박씨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가난한 시절
유일한 희망

김씨 할머니의 바람은 손자에게로 이어졌다. 손자가 태어나자 김씨 할머니는 계룡산 중턱에 있는 절의 스님에게서 ‘법중(法中)’이라는 아명을 받아왔다. 법의 한가운데라는 뜻으로, 손자가 판·검사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을 담은 이름이었다.

예전에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두고 ‘개천서 용 났다’고들 했다.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이른바 전국이 ‘개천’이었던 시절에는 사시 합격이 상류층으로 가는 초고속 열차나 다름없었다.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허리가 휘어도 부모는 그저 합격만 하라며 일에 매달렸다.


자녀가 사법시험서 1차라도 합격하면 동네 어귀에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OO의 아들, OO사법고시 1차 합격’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날에는 동네 회관에 잔치가 벌어졌다. ‘소를 잡는다, 돼지를 잡는다’ 난리가 난 상황서 동네 사람들은 ‘합격턱’을 내는 부모를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47년 조선변호사시험 후 70년 역사
보통 사람들의 출세 ‘희망 사다리’

사법시험은 아직까지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가세가 심하게 기운 집을 일으키기 위해 주인공이 도전하는 시험은 대부분 사법시험이었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더 킹>서도 주인공은 지긋지긋한 현실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법시험을 선택한다. 사법시험은 합격에 이르기까지 힘들지만 일단 사다리에 올라타면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덕에 사법시험은 지금껏 우리나라 최고 시험으로 인정받아 왔다.
 

사법시험의 시초는 1947∼1949년 3년간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이다. 이후 1950년부터 1963년까지 고등고시 사법과가 시행되다가 ‘사법시험령’ 제정과 함께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초기 사법시험은 합격자 모두 판·검사로 임용되는 사실상 임용시험이었다. 정원을 정해두지 않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균 60점 이상이면 모두 합격하는 시스템이었다. 1967년에는 합격자가 5명에 불과했다.


선발 인원 늘어
2만 법조인 양성

그러다 1970년 합격 정원제가 도입된 후 합격자가 매년 60~80명으로 늘어났다. 1980년에는 합격자가 300명에 이를 정도로 문이 넓어졌다. 1995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선발 인원이 단계적으로 증원되면서 2000년대 초반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시작됐다. 1963년 이후 55년간 사법시험으로 배출된 법조인은 2만여명에 이른다.

사법시험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신림동 고시촌이다. 1980년대 초 신문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고시촌’이라는 말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공부방과 거주 용도로 사용하던 고시원이 밀집한 지역을 말한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던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관악산 기슭 여러 하숙집에 거주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말 그대로 전국 각지서 고시생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증가하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원자 역시 급증했다. 과거 선발 인원이 소수일 때 절에 들어가 머리를 싸매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풍토는 문호가 넓어지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학원서 나오는 족집게 요점정리 등 시험 정보가 고시생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고 시험 출제 경향에 대해 함께 스터디를 진행하는 일도 늘었다. 그 과정서 신림동 고시촌은 1990년대 고시생 숫자가 20만명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고시생이 모여들자 고시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했던 곳이 전 국무총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과 가족이 운영했던 광장서적이다. 

광장서적은 1978년부터 2013년까지 35년간 신림동 고시촌의 상징이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도 1988년부터 서울대생들의 세미나실 역할을 톡톡히 하며 명소로 자리 잡았다. 거대 상권이 형성된 신림동 고시촌에는 값싼 밥집과 술집이 들어섰고, 학원과 독서실 등이 얽혀 특유의 문화를 형성했다.
 

고시생들의 시간은 철저하게 사법시험 일정에 맞춰 돌아갔다. 신림동 고시촌의 시간 역시 고시생들의 시간에 따라 움직인다. 사법시험은 1차 시험에 합격하면 두 번의 2차 시험 기회가 주어진다. 1차 시험 합격 발표 후 바로 치러지는 2차 시험서 합격하긴 쉽지 않다. 보통 1년을 기다려 2차 시험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도 안 되는 합격률
대다수 고시낭인으로

두 번째 2차 시험서 떨어지면 다시 1차 시험에 도전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4∼5년도 훌쩍 지나가 있다. 대입 시험처럼 재수, 삼수를 하다보면 10년도 금방이다. 그 사이 고시생들은 장수생이 돼있다. 고시촌 바깥에서 보기엔 ‘고시 낭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간이 흘러 있는 것이다. 일반인에겐 긴 시간이지만 고시생에게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흐른 세월이다.

100명 중 3명만
합격의 영광을


이렇게 해도 사법시험의 합격률은 3%가 안 된다. 100명이 도전해도 97명은 떨어지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극소수 고시생을 제외한 절대 다수는 기약 없는 전쟁터에 내던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시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다. 청춘을 다 바쳐 사법시험에 매달려도 결국 대다수는 ‘낭인’으로 남는다는 것.

노무현정부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이른바 로스쿨법을 제정했고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열었다. 국회는 변호사시험법을 제정해 사법시험 선발 정원을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여 올해 전면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사법시험 폐지를 예정한 변호사시험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법시험의 폐지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부터 사법시험 존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바 있어 큰 흐름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30년간 고시생들과 울고 웃은 신림동 고시촌은 사법시험 존폐 논란이 불거진 시점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그 바람이 조금 더 거세졌다. 서점, 독서실 등 신림동 고시촌의 명소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광장서적은 부도가 난 뒤 ‘북션’으로 바뀌었고 18년간 자리를 지켰던 한국서점의 주인 아주머니는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로 변신했다.

고시 서적의 인쇄·복사를 담당했던 가게들 역시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있던 독서실은 원룸으로 바뀌었다. 고시생이 빠져나간 자리엔 값싼 방을 찾는 직장인들이 찾아오고 있다. 
 

젊은 대학생을 위한 커피전문점과 주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고시촌의 색채가 옅어지면서 새로운 성격의 건물도 생겼다.

일각에선 사법시험 폐지로 신림동 고시촌이 사라지기보다는 최근 늘고 있는 공시생이 고시생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들이 노량진에서 신림동으로 옮겨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발 빠른 상인들은 법전 대신 공무원 수험서로 책장을 채웠고 사법시험을 대비하던 학원은 노무사나 법무사 등 다른 자격증 대비 광고로 전단을 바꿨다.

신림 고시촌
새바람 불어

변화의 바람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고시촌을 보존하려는 시도도 있다. 김태수 대학동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고시촌 풍경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지난해 고시촌 기념관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며 “고시원을 개조해 30년의 고시촌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번에는 뜻대로 안됐지만 올해 다시 한 번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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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