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살인형량 기준 논란

똑같은 이유로 똑같이 죽여도…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동거녀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3년형이 선고돼 거센 논란이 일었다. 딸을 성추행했다는 말에 분노해 교사를 살해한 어머니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된 것과 비교돼 형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 일색이다. 피해자가 사망하는 같은 결과를 초래한 사건을 놓고 법원이 선고 형량을 달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하고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30대는 징역 3년, 고3 딸을 성추행한 상담교사를 살해한 40대 여성은 징역 10년형. 

최근 나온 두 개의 법원 판결을 놓고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다. 누리꾼들은 동거녀 폭행치사범에게는 관대한 반면 딸이 성추행당했다는 말에 격분해 범행을 저지른 어머니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을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네티즌 울린
가혹한 처벌

동거녀를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혐의로 기소된 30대는 항소심을 거치면서 형량이 크게 줄었다. 대전고법 청주제1형사부(이승한 부장판사)는 지난 1일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모(39)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2012년 9월 중순께 충북 음성군 대소면의 동거녀 A(사망 당시 36세)씨 원룸서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A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인근 밭에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씨는 자신의 친동생과 함께 A씨의 시신을 암매장하고 범행을 은폐하고자 콘크리트로 덧씌우기도 했다.


범행을 벌인 지 4년 만에 꼬리가 밟힌 이씨에게 검찰은 살인죄가 아닌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순간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해 벌인 우발적 범행으로 본 것이다.

형법상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살인죄와 달리 폭행치사죄는 3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심 재판부는 폭행치사와 사체은닉죄를 합쳐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과 합의한 점을 들어 2년을 감형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하고 사체 은닉까지 했지만 유족이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징역 3년으로 감형이 선고된 배경에는 20년 넘게 연락이 끊긴 피해자 A씨의 아버지가 합의한 뒤 선처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사실상 남과 다름없는 유족의 합의가 감형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계획적이다” 중형 “합의했다” 감형
범죄 질에 상관없이 합의하면 그만?

검찰 관계자는 “법원에 합의서가 제출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가족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통상적인 합의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며 “20년 넘게 왕래가 없었던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의 요소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이현우 부장판사)는 “노래방서 성추행당했다”는 고3 딸의 말에 격분해 커피숍서 만난 고교 취업지원관(산학겸임 교사)을 흉기로 살해한 김모(46·여)씨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씨는 “딸이 성추행당했다는 말을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전 피해자와 자신의 동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 흉기를 미리 준비한 점 등을 비춰보면 계획적인 살인”이라며 우발적이었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범행 동기가 피해자에 있다 하더라도 사적인 복수는 중형을 선고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두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결과만 같을 뿐 범행하게 된 정황이 다르고 특히 범행이 우발적인지 계획된 것이었는지가 양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딸의 성추행이 범행의 발단이라는 점에서 정상 참작의 여지가 큰 김씨에 비해 동거녀를 숨지게 하고 콘크리트 암매장한 ‘엽기’ 범죄자인 이씨의 처벌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주장이 많다.

한 누리꾼은 “살인죄를 저질렀으면 처벌받는 게 당연하지만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하고 암매장까지 한 사람보다 딸 성추행범을 처단한 엄마가 3배 이상 높은 형량을 받은 것은 국민 정서상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적인 복수는 
중형선고 마땅

또 다른 누리꾼은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되더라도 자식이 못된 짓을 당했다면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겠느냐”며 “공감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사건마다 정황이 다르고, 범행 동기·과정·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리적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국민정서법’과 법원 판결이 같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상담교사를 살해한 김씨 사건은 우리 법질서에서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적 복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법원이 판단한 것 같다”며 “정상을 참작할 경우 자칫 사적 복수를 용인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어 재판부가 더욱 엄중히 판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형이 확정된 또 다른 실사례들을 살펴보자. 아들에게 지원한 주택구입 자금 1억원 때문에 평소 이 문제로 다툼이 많았던 B씨와 아내. 아내는 결국 이혼을 언급했다. 화난 B씨는 아내를 넘어뜨리고 목졸라 숨지게 했다. 이후 B씨의 자녀들이 법원에 “아버지에게 만이라도 효도하게 해달라”고 탄원했다.

C씨는 무일푼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불이 켜진 옆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 집에서 자던 여성을 위협해 재갈을 물리고 양손 양발을 묶은 뒤 승용차·휴대전화·신용카드를 빼앗았다. 


C씨는 이후 여성이 강하게 저항하자 둔기로 머리를 마구 내려쳐 숨지게 했다. 범행 당시 술을 마셨지만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

D씨는 한 유부녀와 내연관계에 있었다. 이 내연녀의 남편이 D씨에게 “내 아내를 더 이상 만나지 말라.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전화하자 D씨는 욕설과 함께 찾아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D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그를 두 차례 찔렀다. 이 남성은 다음 날 숨졌다.

E씨는 술을 마시며 여러 사람과 함께 도박을 하던 중 돈을 잃은 한 남성이 화를 내며 도박판을 뒤엎었고, 둔기로 E씨의 이마를 때린 뒤 E씨의 돈 40만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격분한 E씨는 흉기로 그 남성을 찔러 숨지게 했다. 

E씨는 이후 둔기로 맞고 돈을 빼앗긴 데 대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했다. B씨는 징역 4년, C씨는 7년, D씨는 12년, E씨는 30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4년형이 선고된 B씨의 범행은 참작동기 살인(동기에 있어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살인범행)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유족인 B씨의 자녀들이 탄원한 점은 특별양형인자로서 감경요소가 됐다. 이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징역 3∼5년을 권고한다. 

재판부는 B씨가 범행 직후 죄책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꾀한 점, 고령인 B씨가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도 참작했다.


사유가 있으면
참작동기 분류

흉기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내연녀의 남편이 찾아오길 기다렸던 D씨의 경우는 보통동기 살인(원한관계, 가정불화, 채권채무관계 등으로 인한 살인범행) 유형에 해당한다. 양형기준에 따라 권고되는 형의 범위는 징역 10∼13년이었는데 계획적 범행이라는 점은 특별가중요소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D씨가 피해자 아내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순한 동기서 저지른 살인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D씨가 먼저 얼굴을 한 대 맞는 폭행을 당하자 이에 대응해 몸싸움을 벌이다 다소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점, 진지한 반성이 있다는 점 등이 감경요소가 됐고 결국 징역 12년형이 선고됐다.

법조인들이 4가지 사례 가운데 가장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본 C씨의 범행은 판결문서 중대범죄 결합 살인으로 드러나 있다. 잔혹한 범행 수법 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었고 이때 권고형은 징역 25년 이상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C씨가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소년보호처분 이외에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할 만한 사정으로 꼽았다. 판결문마다 나름의 양형 이유가 있고 상급법원서 재차 판단을 거쳐도 형량은 결국 같았다.

10명 중 8명 “양형기준이 낮다” 
반성하면 봐준다? 감경요소 애매

하지만 대검찰청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이렇게 살인범죄에 대해 제시돼 온 법원의 결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살인범죄에 대한 법정형과 양형기준이 모두 낮은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국민적 법 감정만큼 돌출된 인식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법조인들도 현재의 살인범죄 처벌 수준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 중 51.8%는 법정형 처벌 수준이 낮다고, 68.2%는 양형기준 처벌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다. 

변호사와 교수 집단에선 법정형 처벌 수준이 적정하다는 응답 비중이 과반이었다. 다만 이들 집단에서도 위의 사례서 적당한 처벌 수준을 물었을 때는 법원의 실제 판단보다 높은 형량을 제시했다.

살인범죄는 여타의 범죄에 비해 피해 회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중대성을 띤다. 이 살인범죄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정형은 1953년 9월 형법 제정 이후 계속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라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명 훼손이라는 중대성에 비춰보면 ‘5년 이상 징역’으로 제시되는 법정형 자체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많다.

구체적인 사례서 살인범죄 처벌에 고려돼야 할 가중요소와 감경요소는 의외로 많다. 하지만 고려할 인자가 많다고 해서 최종 처벌 수준의 판단을 현행법과 법관의 재량에만 맡겨야 하느냐는 목소리도 크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나친 작량감경(법관 재량의 형 감경)이 이뤄지는 게 아닌지 법원 스스로도 반성해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낮은 살인형량
재범률 높다

과연 사회적 안전망이 일반적인 인식만큼이나 잘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은 나날이 커진다. 경제 상황의 악화와 스트레스의 가중 속에서 연쇄살인과 ‘묻지마 살인’이 계속되는 문제도 크다. 살인범죄로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비중은 2011년 이후 1%대를 기록 중이다. 동시에 해마다 50명 안팎은 살인을 저질렀던 이들의 재범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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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