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소울아트스페이스는 오는 6월22일까지 지석철 작가의 ‘부재 - 시간, 기억’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극사실주의 1세대 대표 작가이자 현 홍익대 회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 중인 지석철의 근작 30여점을 공개한다.
지석철 작가의 작품을 보다보면 사진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그만큼 그의 묘사력은 뛰어나다. 한국의 1세대 극사실주의 화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인 지석철의 작품에는 작은 의자가 자주 등장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의자 작가’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바닷가 돌무더기 옆이나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의자는 언제나 비어 있다.
사진 같은 그림
지석철이 그린 의자 위에 누군가가 앉았던 적은 없다. 거대한 자연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높은 구조물과 대조되는 작고 굴곡 있는 의자는 그 자체가 부재를 표상하는 아이콘이 됐다. 작은 의자는 살아 있는 생명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의자는 작품의 주인공인 ‘존재’를 위한 부차적인 도구지만 부재하는 존재를 향하는 갈망이자 그리움과 서정성을 드러내는 주제가 돼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의자는 1982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처음 등장했다. 한국 대표로 파리 비엔날레에 참가했던 그는 배나무 가지로 만든 손바닥 크기의 의자 300개를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그가 늘어놓은 의자에 흥미를 보였다. 이후 설치작품뿐 아니라 회화에도 의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작은 의자’
작가의 아바타·트레이드마크
지석철은 “일상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발생하고 스러지는 그곳,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물의 이미지와 나의 의자가 만나게 되고 교감하면 새로운 사연들이 비로소 화면에 자리를 잡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소 생경하고 낯선 장면이 연출되고 또 다른 연상을 자극하는 나의 화면은 다양한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무언의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며 “존재의 생생한 현존과 비일상적 상상들과의 특별하고 애틋한 마주침”이라고 덧붙였다.
의자는 지속적으로 작품에 등장하며 시대의 상실과 아픔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최근작에서는 마치 다큐멘터리 작가가 세계 곳곳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것처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영국의 브라이튼 해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캄보디아 메콩, 페루의 나스카 광장 등에 의자를 놓았다. 의자가 바라보는 낯선 부재의 에피소드가 세계 곳곳에 열거되고 있다.
극사실주의 1세대 화가
탁월한 묘사력으로 주목
작품에는 보통 하나의 의자가 등장하지만 산처럼 포개져 더미를 이루거나 좌우로 도열하는 구도로 부재의 가중이 심화된다는 점을 암시하는 경우도 있다. 잔뜩 쌓인 의자를 통해 종교, 정치, 자연, 개인 등 어디에나 있는 부재의 보편적 현상을 이야기한다.
지석철은 그동안 여러 전시를 통해 부재를 표현해왔다. 전시 타이틀인 시간과 기억 역시 의자와 마찬가지로 부재하는 존재를 드러내는 주제로 사용한다. 시간의 흐름, 기억을 나타내는 풍경과 사물을 사진처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오히려 미니멀하게 완성된 화면은 작가만의 계획된 구성으로 단단하고 힘 있게 부재를 표현한다.
고향 마산에 대한 추억, 세계 곳곳에서 만난 이국의 인물들,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랜드마크 등 다양한 소재를 접하면서도 특유의 모노톤과 고독함이 묻어나는 부재의 스토리는 놓지 않는다.
지석철은 한 언론과 인터뷰서 “내가 영화감독이 된 듯 의자를 세계 여러 곳에 데리고 다니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며 “의자는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내 심상을 표현하는 배우이자 나 자신”이라고 말했다.
작가=의자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사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매끈하게 묘사돼 있는 화면은 그의 탁월한 재능뿐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치밀한 노동의 결과”라며 “극사실기법은 서구의 영향과 아카데믹한 교육을 통해서 습득된 것이지만 지석철을 통해 한국적인 리얼리즘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지석철은?]
1953년 출생
▲학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1978)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1982)
▲경력
파리 비엔날레(1982)
와카야마 비엔날레(1987)
한국의 현대미술전(1989)
까뉴국제회화제(1992)
▲수상
석남미술상(1983)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1992)
▲소장
대영박물관
와카야마현립근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페루한국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