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민주자유당(현 자유한국당과 바른 정당의 모태) 중앙당 사무처 당직자로 근무하던 지난 14대 대선 때 일이다. 당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권력에 상납하는 돈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권력을 잡겠다고 통일국민당(이하 국민당)을 창당하고 급기야 대선에 출마했다.
그리고 동 선거 초반부터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 김영삼(YS), 민주당 김대중(DJ), 국민당 정주영 후보 간 삼파전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역선거 풍토가 고착화된 상태서 변변한 지역 기반 없는 정 후보 측에서 막강한 금전을 바탕으로 보수층을 잠식하기 시작했던 터였다.
국민당의 돈 장난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이미 오랜 전 일이지만 독자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필자가 직접 경험했던 일화를 한 토막 소개한다. 동 선거 기간 중에 국민당서 고작 2시간이 되지 않는 유세에 고등학생들을 동원하고 한 학생당 2만원을 준 일이 필자에게 적발됐었다.
이를 접하고 난 고민에 휩싸였다. 당연히 고발조치해 당내에서 나의 입지를 강화해야 할 일이건만, 그 철없는 고등학생들을 살피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하여 필자에게 적발된 고등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곧바로 국민당 핵심당직자에게 연락을 취해 동 상황에 대해 경고를 줬다.
여하튼 국민당의 금전력으로 정 후보가 보수층의 표를 잠식하자 YS는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YS가 큰 격차는 아니지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YS와 DJ간에 뿌리 깊은 경쟁심이 YS를 자극했다.
하여 민자당은 그냥 밋밋한 승리가 아닌 완벽한 승리를 위해 DJ의 의지를 완벽하게 꺾어버리고자 마타도어를 펼치기 시작했다. 바로 ‘정주영 후보를 찍으면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 된다’였다.
이 얼토당토않은 마타도어가 국민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자 정 후보 측은 곤혹에 빠져들게 된다. 한창 승승장구 기세를 올리던 정 후보의 기세가 눈에 띌 정도로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표 결과 YS 42.0%, DJ 33.8%, 정주영 16%를 기록한다. 한마디로 YS의 완승, 더불어 정 후보의 완패라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민자당이 획책했던 마타도어가 제대로 먹혀든 결과였다.
그런데 이게 가능했던 주요 요인은 철저하게 지역주의로 흐른 선거 풍토 때문이었다. DJ가 당선될 수 있다는 논조로 인해 비호남 사람들의 표가 YS에게 급격한 쏠림 현상을 보였기에 그러한 결과가 도출된 게다.
이제 현실로 시선을 돌려보자. 외양은 이와 유사하지만, 이면을 살피면 그야말로 택도 없는 소리가 국민들을 희롱하고 있다. 즉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찍으면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는 이야기다.
무슨 의도로 이 같은 논리를 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한 언론에서 금번 대선과 관련하여 서울 시민을 상대로 청취한 민심을 인용해본다.
“제가 정말 마음이 가는 분들은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TV토론을 보니 4번(유승민), 5번(심상정) 쪽에 마음이 가는데 찍으면 사표가 될 거 같아서요. 그래도 이번 한 번은 미래에 투자하고 싶어요.”
이런 수준의 국민을 대상으로 허접한 논리로 장난치고 있으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