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관으로 본 한국 룸살롱의 역사

달라도 너무 다른 기생과 아가씨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역사강사 설민석이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태화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논란으로 인해 태화관이란 곳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런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그 당시에도 룸살롱은 존재했을까?' '존재했다면 어떠한 형태였을까?'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일요시사>에서는 광복 이전부터 현재까지 룸살롱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룸살롱(Roomsalon)은 사전적으로는 칸막이가 있는 방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술집, 폐쇄적인 구조의 방 안에서 비싼 술을 마시고 주로 여성 접대부들이 손님 접대를 하는 곳이다.

어디서 시작?
요정정치 몰락

룸살롱의 시초 격인 요정(料亭)은 고급 음식점을 일컫는 말로 요릿집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요정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료테이’라는 요릿집이 바다를 건너와 자리 잡은 식품접객업소다.

일본의 료테이는 귀한 손님을 귀한 요리로 접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요정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잠자리까지 서비스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1907년 조선시대에 이어져온 관기제도가 폐지됐고 이때 정리해고된 기생들이 관청서 풀려 나와 요릿집에서 일했다. 기생 조합인 ‘권번’이 있어 요정이 연락하면 필요한 기생을 불러 흥을 돋우게 하는 형태였고 이후 요릿집에 전속계약으로 소속되어 일하는 기생들도 생겨나게 됐다.


이 형태는 오늘날 보도방이 있어 접대 여성들을 룸살롱에 공급하는 인력용역 송출 영업을 맡거나 룸살롱에 전속되어 있는 형태와 비슷하다.

1950년대 말 서울의 북악산에 ‘요정 3각’이라고 불리는 요릿집들이 있었는데 청운각, 대원각, 삼청각이었다. 청운각에선 1956년 한일회담이 성사됐고 성북동 삼청각은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와 남북적십자회담에 사용됐다.

정치 권력이 은밀히 애용했다 해서 드라마에도 흔히 등장하곤 한다. 이 때문에 이 당시 정치를 '요정정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당시 요정정치에 대한 국민 반감은 엄청났다.

그해 5·16반혁명사건으로 체포된 국가재건최고회의 전 공보실장 원충연 대령은 쿠데타 모의 이유 중 하나로 요정정치를 들었다. 그는 법정서 “5·16군사혁명 후 원대 복귀한다던 공약을 어겨 국민을 배신한 점, 요정정치로 정부가 극도로 부패한 점을 개혁하려 했다”고 말했다.

시초는 일본 ‘료테이’ 바다 건너 상륙
청운각·대원각·삼청각 3대 요정

깨끗한 정치를 주장하며 나온 5·16세력이 배금주의에 빠져 음습한 요정정치나 하고 있다는 신랄한 지적이었다.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대규모 투자 없이도 달러를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이 기생관광임을 간파하고 부분적으로 추진했다.


처음의 요정은 요리와 공연관람 위주이고 관광요정은 여기에 성접대를 연계시키고 룸살롱은 요리보다는 술, 관람하는 가무보다는 직접 즐기는 가무와 성적 접촉을 위주로 해 영업형태를 변형시켜 나간 것이다.

그러던 가운데 당시 최대 요정이었던 선운각 등에서 일하던 정인숙이라는 접대부가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요정은 일명 ‘정인숙 피살 사건’을 계기로 국가적인 논란거리가 됐고 이후 쇠퇴기를 걸었다.

국내에 룸살롱이 생긴 건 1970년대 초반이다. 서울 광화문 ‘이명싸롱’과 후암동 ‘민의집’ 등이 1세대 룸살롱으로 전해지며 이후 중구 퇴계로와 충무로 일대에 ‘하마’ 등 몇 개 업소가 몰려 있었다.

요정에 온돌방과 한복 입고 가야금을 타고 전통춤 추는 여종업원이 있었다면 룸살롱은 소파와 양장 입은 여종업원과 1인 악사(밴드)가 나오는 곳이었다. 적은 자본과 인원으로 창업이 가능하기에 룸살롱은 요정에 비해 업종 경쟁력이 뛰어났다.

2000년 들어 호황
유흥산업 전국으로

룸살롱은 1980년 전후 강남 개발과 함께 그 세를 급격히 불렸다. 강남대로 좌우의 서초동과 신사동, 역삼동 일대에 룸살롱이 생겼고 이후 테헤란로를 따라 서쪽서 동쪽으로 룸살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최대 룸살롱 밀집지는 테헤란로 동쪽의 선릉역 일대다.

이 무렵 룸살롱을 각인시킨 큰 사건이 벌어진다.

1986년 8월14일 오후 10시30분 역삼동 서진룸살롱서 폭력조직 맘보파(원섭이파) 일행 7명과 서울목포파(진석이파)가 술을 마시다 난투극을 벌여 맘보파 4명이 끔찍하게 살해됐는데 이 서진룸살롱 사건으로 전 국민이 룸살롱의 존재를 알게 됐다.
 

19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시·군 단위까지 룸살롱이 퍼졌고 이후 요정을 밀어내고 유흥업계 정점을 차지했다. 고위층뿐 아니라 일반 회사원들도 접대 명목으로 룸살롱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룸살롱은 접대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비리성 회합이나 불법 청탁이 이뤄지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룸살롱은 밀실형 성산업을 양산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룸살롱이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보다 더 질펀한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인해 손님들의 발이 뚝 끊기자 ‘북창동식’ 룸살롱 등 이른바 ‘하드코어’ 업소들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울 북창동과 무교동 일대에서 싹트기 시작한 ‘하드코어 서비스’는 강남으로 옮겨갔다.

그 같은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은 유흥업소를 선택할 때도 본전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룸살롱들은 날이 갈수록 화끈한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그 뒤를 이은 형태는 일명 ‘텐프로’란 업소다. 텐프로는 룸살롱서 일하는 여종업원들 중 자신의 수입의 10%만 업주에게 주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팁의 10%만 업주에게 줘도 업주들이 서로 데리고 갈 정도의 출중한 외모와 몸매를 가진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얼짱’ 여종업원들로 구성돼있다고 광고하는 곳이 텐프로다. 텐프로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탤런트 오지호의 옛 연인의 자살사건이었다.

당시 전 애인으로 알려진 여성이 텐프로서 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 이를 통해 일부 부유층의 ‘그들만의 룸살롱’이었던 텐프로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텐프로는 빠르게 몰락해갔다. 이유는 ‘짝퉁 텐프로’ 업소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실망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무늬만 텐프로인 업소를 찾았다가 실망했다는 손님들의 말이 입소문을 타면서 텐프로를 찾는 이들이 자연스레 줄어들게 됐다.

2차는 기본?
손잡은 성매매

2000년대에는 IT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벤처기업인들이 룸살롱의 신규 고객으로 유입됐다. 이후 몇 년 동안 대세를 이룬 것은 이른바 ‘풀살롱’이란 형태의 룸살롱이다.


이는 룸살롱의 여종업원들과 손님간의 2차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을 말한다. 풀살롱은 성매매를 하기 위해 장소를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달아오른 기분을 그대로 2차로 가져갈 수 있다는 매력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변종 룸살롱인 풀살롱은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또 경기불황으로 인해 비교적 싼 가격에 2차까지 가능하다는 매력에 이끌려 손님들이 늘면서 이 같은 업소는 더욱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일부 업소들은 아예 룸살롱의 방 안에서 여종업원과 손님이 성매매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눈총을 받기도 한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손님들이 비싼 술은 적게 먹는 대신 같은 값으로 더욱 기억에 남을 만한 유흥을 즐기길 원하고 있고 이를 맞추려는 업소들이 도를 넘어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 같은 업소들이 오랫동안 인기몰이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한 유흥업소 관계자는 “엄연히 불법인 성매매를 알선하는 풀살롱은 사실 업계 물을 흐리는 업소인데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경기가 호전되고 유사한 업소들이 더욱 늘어나면 결국 이런 업소들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끈질길 생명력
성매매 묶인 80∼90년대 전성기

최근에는 호텔이나 모텔 등의 숙박업소와 계약을 맺어 성매매를 알선하는 룸살롱들이 속속 생겨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특급호텔이 지하 룸살롱에 객실 58개를 임대해 성매매를 알선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호텔은 전체 객실 246개 중 5층과 7층에 있는 방 58개 전부를 A주점에 임대해 일반 투숙객은 받지 않고 2차 손님만 받게 했다. 업주는 방 한 개에 하루 8만8000원씩 객실료로 매일 510만원을 호텔에 지급했다.

호텔 지하 1·2층에 60여개의 룸을 갖춘 A주점은 성매매 여성 150명 등 250여명의 종업원을 고용해 하루 평균 320명의 손님에게서 1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유흥업소와 인근 호텔 사이에 비상통로까지 만들어 성매매를 알선해 수십억원을 챙긴 룸살롱도 적발됐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빌딩 지하에 유흥업소를 차린 업주는 바로 옆 건물인 호텔을 지하 통로로 연결한 뒤 성매매를 알선해 45억원을 챙겼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호텔 객실을 장기임대한 뒤 간판을 끈 채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단속을 피해오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종업원 300여명을 고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기업형 룸살롱이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B유흥주점과 H호텔을 단속, 업주 이모(44)씨 등 술집·호텔 관계자 32명과 성매수 남성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유흥주점과 호텔 주인인 이씨는 호텔 지하 1층 유흥주점과 호텔을 연계해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여종업원 300여명을 고용해 유흥주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소유인 호텔 3개 층 객실을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년간 한국 사회와 룸살롱의 연관관계를 연구해온 강준만 교수는 “한국은 ‘음주공화국’ ‘접대공화국’인 동시에 ‘칸막이공화국’이다. 칸막이 현상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라며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필요로 하며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칸막이를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엔 정당, 국회, 검찰 등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와 기구보다는 룸살롱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더 은밀하게∼
뿌리내린 칸막이

강 교수는 조직 평가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막이 문화는 자기 조직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기존 평가 시스템의 개선 없이 칸막이 문화 자체만을 개혁 대상으로 삼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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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