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상’ 서남표식 개혁이 화 불렀다?

<심층진단>사상 초유 카이스트 사태 몰고 온 문제점 셋

사상 초유의 사태로 내홍을 앓고 있는 카이스트에도 봄꽃은 피었다. 하지만 아직도 체감온도는 쌀쌀하다. 언론은 물론 정계, 시민단체 등은 카이스트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고, 일부 재학생들은 면학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모든 일에는 징후가 있기 마련, 카이스트 사태가 발생하기 전 카이스트에는 어떤 징후가 있었을까. 카이스트 학생들은 학교와 학생간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고, 징벌적 등록금의 폐해와 미래에 대한 불안, 전 수업 영어 강의에 대한 불만, 신입생 서약서의 부정당성 등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개혁을 앞세운 서남표 총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언론과 사회 역시 학생들의 이 같은 절규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제와서?"라는 학생들의 반문이 들리는 듯하지만 이제와서라도 한 번 짚어보기로 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카이스트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짚어봤다.

잇따른 학생 자살에 교수 1명도 자살 충격 
입학하면 입 막고 눈 가리는 서약서 싸인

예비 과학자들의 요람, 카이스트의 이번 사태는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에서 비롯됐다. 올해 들어 4명의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했고, 가장 최근에는 교수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들의 자살 배경을 추적하면서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했던 카이스트, 그들만의 세상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사자 아님 다음에야 정확한 배경과 그 효과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만 알려진 그들만의 세상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국민들은 서남표 총장이 이루고자 했던 교육개혁에서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징벌적 등록금 문제
"성적별로 돈 내라?"
 
가장 먼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 사건의 발단으로 지목되고 있는 징벌적 등록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스트 총학은 이번 사태가 빚어지기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3월 초 수업료 폐지 및 인하를 위한 총투표를 실시했다.

전체 학부생 4000여명 가운데 2800여명이 참여한 선거에서 96%인 2680명은 폐지 혹은 인하에 찬성했다.

당시 총학은 "이번 투표는 지난 2006년 서 총장 취임 뒤 학생들에게 자극을 준다는 명목아래 책정된 수업료에 대한 것"이라면서 "직전 학기 평점 3.0 이하 학생들에게 서울대나 포스텍의 2배가 넘는 1500여 만원의 수업료를 부과하라는 것은 학우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학은 앞선 2009년 10월에도 등록금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도 응답자 74%는 평균 42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카이스트 재학생에 따르면 카이스트의 한 학기 등록금은 150만원이다. 게다가 학점이 3.3만 넘으면 150만원의 등록금도 면제해주고, 학점에 관계없이 모든 재학생들에게 한 달 13만5000원의 식대가 제공된다. 알려진 부분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학점이 3.0 이하인 학생들은 3.0에서 0.01점이 낮아질 때마다 6만3000원을 더 내야 한다. 학점이 2.0일 경우 630만원이라는 거금을 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이는 기본 등록금 150만원에 더해지는 벌금 개념이기 때문에 단순 계산만으로도 딱 한 학기만 설렁설렁 공부했다간 780만원이 한방에 날아가는 것.
실제 2006년 서 총장이 취임한 이후 카이스트 학생들의 학자금 및 생활비 대출 규모가 해마다 증가했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서 총장이 도입했다.

징벌적 등록금 도입 이후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진 학생들은 은행 대출을 통해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마련했고, 성적이 나빠 장학금이 잘리는 소위 장짤은 주홍글씨처럼 학생들의 자부심에 상처를 줬다.

결국 "징벌적 등록금은 학우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던 총학의 주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현실이 됐다.


100% 영어 강의
"정확한 정보전달 안돼"

카이스트 사태의 이면에는 징벌적 등록금 외에 글로벌화라는 미명아래 진행된 100% 영어 강의도 존재한다. 이 역시 서 총장이 도입한 제도다. 서 총장은 부임 이후 학과수업을 전면 영어수업으로 전환하게 했고, 비영어 강의가 생기면 학생들의 몰린다는 이유로 예외도 없앴다. 중국어, 일본어도 영어로 강의하게 한 것. 때문에 현재 카이스트 모든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듣고 있다.

서 총장은 이와 관련 "카이스트와 같이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연구대학의 경우, 언어적 장벽이 큰 데미지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대부분 영어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면 그만큼 이 분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경쟁구도 조성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도 문제 
중국어·일본어도 영어로 강의…황당한 정책


하지만 실제 영어강의에 대한 학생과 교수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기본적인 내용 전달이 어렵고, 영어로 개설된 과목을 이해해야 다른 전공과목들을 들을 수 있는 점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내용들을 영어로 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교수 역시, 영어강의를 하게 되면 전해줄 수 있는 정보의 30% 정도밖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또 다른 교수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에 따라 격차가 커서 수업이 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외국계 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아이들도 있지만 커뮤니케이션도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는 것.

심지어 카이스트 최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 영어수업은 한 마디로 미친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영어강의는 수학시간에 영어공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영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읽기, 쓰기, 서양문화의 이해 등을 세분화해서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어를 중시하는 세태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젠 우리가 새로운 문화, 기술 등을 만들어 나눠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양문물을 얻으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

마지막으로 그는 "총장에게 등록금 문제, 영어 문제 등을 놓고 몇 차례 고언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미국에서 혼자 공부를 한 분이라 한국정서를 잘 이해하기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눈 가리고 입 막는 서약서
카이스트 ‘기밀문서’인가?

마지막으로 카이스트에는 입학하자마자 써야하는 서약서가 존재한다. 모든 학생이 무조건 작성해야 하는 황당한 서약서는 연대보증인까지 있어야 하고, 대부분의 보증인은 부모가 된다. 부모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연대책임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학생들의 입을 막고 눈을 가리는 서약서의 내용을 살펴봤다.
"본인은 KAIST 재학 중 학칙 및 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고 교내외 활동에 있어서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아니한 집단행위 등 학생 본분에 어긋난 행동으로 우리학교의 명예를 손상했을 경우에는 어떠한 조치도 감수할 것을 보증인 연서하여 서약합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카이스트 학생들은 입학할 때 신입생 안내문에 동봉된 이 같은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한다. 그 아래에는 보증인의 주소와 성명, 주민번호와 관계도 적어 넣고, 통상적으로 부모가 보증인이 되어 연대책임을 지는 형식이다.

문제는 서약서를 작성하고 나면 학생들은 모든 학내활동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데 있다. 자칫 해를 입을까 두려워진 학생들은 교내외 집회나 행사에 참가하는 것을 꺼리게 되고 학교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이와 관련 한 학생은 "헌법에도 보장된 자유를 대학교에서 막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카이스트 측은 "서 총장 취임 전부터 해오던 전통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약서에 서명하는 상황이라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서약서는 입학을 위한 필수요건으로, 이 서약서가 학생들의 창의력과 비판정신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한편, 카이스트 학칙 59조에도 허가 없이 집단적 분위기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면학 분위기를 파괴하는 자는 징계대상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실제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카이스트 참가단으로 참석한 학생은 위신 손상을 이유로 경고를 받고 주기적으로 감시를 받았고, 2009년에는 한 학생이 한 인터넷 포털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과 학교의 횡포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학교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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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