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사상최악 전산장애 최원병 리더십 ‘흔들’

고객들은 “내돈 내놔” 회장님은 “직원들 때문”

농협의 뒷목이 뻐근하다. 최근 벌어진 전산장애 사태에 연신 머리를 조아려서다. 이번 사고로 농협의 모든 금융업무가 마비됐다. 사고 발생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복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덕분에 3000만 고객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사상 최악의 전산장애’라고 명명하는 데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농협이 이번 사고의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내부자 연관설, 해킹설 등 온갖 억측과 의혹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총부리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미간에 정조준 됐다. 다급한 최 회장은 부랴부랴 위기수습용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세인들의 눈초리는 한층 싸늘해졌다.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다.


정상화 차일피일…정확한 사고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해
전산망 관리체계 총체적 부실 적나라하게 드러나

농협에 전산장애가 처음 일어난 것은 지난 12일 오후 5시10분이다. 현금자동인출기(ATM) 서비스를 비롯해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이 모두 중단됐다. 3000만에 달하는 고객들은 말 못할 불편에 시달려야 했다.

본격적인 문제는 사고 발생 이튿날인 지난 13일 발생했다. 전체 창구거래가 먹통이 된 것. 모든 은행업무가 마비된 셈이었다. 농협은 창구 입출금 거래를 오전 10시까지 복구하기로 했으나 약속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정상화시키지 못했다. 고객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농협 각 지점에는 고객들의 항의와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3000만 고객들 발만 동동 굴러


사흘째인 14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농협은 ATM, 인터넷 뱅킹 등 일부 기능을 복구했다고 했지만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농협은 “12일 저녁까지 복구하겠다”고 호언했으나, 이후 13일 오전, 14일 낮 등으로 시한을 미뤘다. 하지만 사고 나흘째인 15일까지도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를 이용한 현금인출 등 일부 서비스는 여전히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다.

이번 사태로 고객들은 금융거래에 큰 차질을 빚어야 했다. 일부 고객은 “농협이 제대로 복구하지 않고 거짓 해명을 낸다”고 비판했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은행권에서 과부하 등에 따른 전산 장애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지난해 말 강추위에 서버가 동파된 씨티은행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두세 시간 내 복구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농협은 복구는 물론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은 물론 전산업계에서도 복구가 늦어진 이유와 사고의 배경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농협의 전산장애는 중계서버의 운영체제(OS)가 손상돼 벌어진 일이다. 중계서버는 은행 지점에서 보낸 입출금 등의 기록을 메인 원장 데이터베이스(DB)와 백업용 원장 DB에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이곳의 운영체제가 손상돼 먹통이 되자 모든 전산망이 마비됐다는 게 농협의 설명이다.

농협 중계서버는 수십개의 개별 서버로 구성돼 있다. 한두 개 서버에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서버들이 잘 작동하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서버의 운영체제가 일제히 손상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부자 혹은 협력사 직원이 고의 또는 실수로 사고를 일으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전산업계 관계자는 “아무 일도 안 했는데 한꺼번에 모든 서버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실수든 고의든 무언가 잘못된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12일 오후 5시쯤 농협 IT본부 분사에 파견된 한국IBM 직원의 노트북에서 IBM 중계서버에 대한 파일 삭제 명령이 내려진 사실이 드러났다. 농협은 이것이 장애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농협의 전산시스템은 IBM과 HP 등 여러 제조사 서버를 사용하고 있지만 IBM 서버 100여대에서만 실행파일이 삭제된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직원은 “누군가에 의해 노트북을 통해 파일 삭제 명령이 내려졌을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해명에도 해당 직원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이 직원이 의혹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 질 수 있었던 건 농협 서버에 접근한 사람이 최고관리자권한(Root)을 취득해 주 서버와 백업서버(재해복구서버)까지 파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내부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 아직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파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고관리자 권한을 취득하고 백업서버까지 파괴한 점으로 미뤄 고의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킹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내부직원 또는 협력사 직원의 실수라고 보기엔 장애의 범위와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전산전문가들은 “복수의 시스템에 대해 파일삭제 명령이 내려지고 DR 데이터마저 훼손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의도적 해킹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고객 신용 거래내역 손실돼

농협 역시 해킹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내부자의 PC를 통해 파일 삭제와 서버 파괴 시도가 이뤄졌지만 PC 소유자가 직접 시도한 것인지 외부에서 접근한 해커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아무리 협력업체인 한국IBM이 자사 서버에 대한 유지보수를 전담한다 하더라도 전체 전산시스템을 교란하는 파일삭제 명령이 아무런 제지 없이 자유롭게 내려졌다는 것은 그만큼 농협의 IT보안체계가 허술하다는 뜻”이라며 강한 질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농협의 전산망 관리 체계가 ‘부실덩어리’였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14일 열린 전산장애사태 사과 기자회견에 참가한 농협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서다. 이들의 증언은 ‘최고의 은행’을 자부해왔던 농협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농협은 지난 2004년부터 전산업무의 상당부분을 협력업체에 의존해왔다. 경영효율화라는 명목에서였다. 사고가 발생한 양재동 농협IT본부분사에도 협력업체 직원 1~2명이 농협직원들과 상주하며 전산시스템을 모니터링 해왔다.

문제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노트북 PC를 통해 전산시스템을 감시했고, 얼마든지 외부로 이를 반출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농협은 노트북PC를 반출입할 경우 정해진 보안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보안각서에 서명한 사실도 강조했다. 하지만 외부로 반출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해킹이나 바이러스 오염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사람을 믿었다는 게 농협 측의 항변이다. 기술적 문제보다 사람에 대한 관리가 더 큰 금융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농협은 이날 업무를 재개할 때 노트북PC에 대한 보안점검을 실시했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문제의 노트북PC가 개인의 것인지, 농협에서 제공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내부자 연관설, 해킹설 등 온갖 억측과 의혹 양산
최 회장, “직원들 말만 믿었다 당했다”며 책임전가


다만 “협력사 직원이 모니터링 할 때 필요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허가 등록된 PC로 직원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개인소유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리는 말이다. 문제의 노트북 PC가 외부 인터넷과 연결됐을 가능성에 대해선 “내부만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외부인터넷망과 접속돼 해킹이 이뤄졌을 개연성은 없다는 것이다.

노트북 PC에서 시스템 파일 삭제 명령이 떨어져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문제의 노트북 PC를 누가 보고 있었고,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만큼 관리가 소홀했다는 말이다. 하나의 노트북 PC로 320개 서버를 연결해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한 관리체계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총부리는 농협을 이끌고 있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돌아갔다. 전산 시스템 관리에 소홀했다는 문책의 화살이 쏟아졌다. 리더십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최원병 회장 사건 은폐 의혹도

이에 최 회장은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최 회장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를 “나도 사고 관련 보고를 바로 못 받았다. 곧 복구될 거란 직원들 말만 믿었다가 당했다”며 직원에게 호통을 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오히려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뒤늦게 사고 사실을 전해 듣고 담당 직원에 전화를 걸었다. 최 회장은 “직원으로부터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내일 시스템 문제없이 해결하겠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전산장애 사태에 손을 놓고 있었단 얘기나 다름없다. 사방에서 싸늘한 시선이 꽂혔다.

또 최 회장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 회장은 “고객정보와 금융거래 원장은 모두 정상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확인결과, 신용거래 내역이 손실된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은 현재 카드거래 내역과 원장의 거래내역이 맞지 않아 수작업으로 확인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즉, 농협 서버에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거래 내역이 손실돼 수작업으로 기록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다. 농협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거래를 재개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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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