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야동왕’ 본좌들의 세계

“100억 금방 벌어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제2의 소라넷’이라 불리는 ‘꿀밤’의 운영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의 검거 소식에 뭇 남성들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한 남자를 추억했다. 범죄자였지만 남성들로부터 추앙받았던 남자. 인터넷에 수만건의 음란물을 유포해 야동신화를 작성했던 ‘김본좌’다.

그는 이미 법의 철퇴를 맞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후예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화를 거듭하며. 아무리 법적인 제재를 가해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그들의 활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06년 10월, 혜성처럼 등장한 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성의 검거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들로부터 ‘김본좌’로 불린 이 남성은 음란물을 웹하드와 P2P 사이트에 업로드해오다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네티즌들은 김본좌의 검거를 알리는 언론보도에 신약성서를 인용해 ‘김본좌께서 연행되시매 경찰차에 오르시며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하시니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도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더라 (본좌복음 연행편 32절 9장)’는 댓글을 달았다.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다”

이 외에도 “조사실에 계시던 김본좌께 담당 형사가 물을 건네매 ‘목이 탈 것이니 드시오’ 하니 본좌께서는 ‘아니오. 빨리 수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업로드를 마쳐야 하오. 나를 기다리는 수십만명의 사람이 있소’ 하시니 담당 형사와 조사관들이 이내 숙연해지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본좌복음 수사편 25절 3장)” 등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해냈다.


뭇 네티즌들이 ‘음지의 슈바이처’로 불린 이 남성이 업로드한 음란물은 1만4000건으로 단일 사건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후로도 몇몇 음란물 업로더들이 김본좌의 아성에 도전하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그 파급력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전북 경찰이 구속한 ‘박본좌’는 김본좌의 그것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았다. 박본좌가 제작해 유포한 음란물은 무려 23만건. 김본좌의 16배에 달하는 규모다.

박모(35)씨는 2011년 10월부터 부산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인터넷에 ‘촬영모델을 모집한다’는 광고글을 올렸다. 한 시간에 3만원에서 5만원까지 지급하겠다는 광고를 보고 용돈이 필요했던 가출 청소년들은 스튜디오를 찾아 모델을 자처했다.

처음에는 평상복을 입은 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이뤄졌지만 ‘다른 옷을 입고 찍어보자’는 박씨의 요구에 모델들은 수영복과 속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 중에는 나체로 사진을 찍거나 성행위 동영상을 촬영한 여성들도 있었다.
 

박씨는 모델들이 노출을 꺼리자 “얼굴은 찍지 않겠다”며 가면을 착용하도록 한 뒤 촬영을 계속했다. 또 탈의실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성들의 동의 없이 탈의장면까지 촬영했다.

최대 음란사이트 운영자 적발
잡고보니 평범한 30대 법무사

박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사진 23만장과 동영상 819편, 몰카 250편 등 음란물을 제작해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뒤 가입한 회원들에게 월 15만원을 받고 음란물을 제공했다. 처음 촬영이 시작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박씨가 회원들에게 음란물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금액은 2700만원에 달했다.


3년 가까이 지속된 박씨의 범행은 음란물 모니터링을 하던 경찰에게 사이트가 발각되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음란물을 게재한 스튜디오 사이트를 확인하고 사이트 이용대금 결제 계좌와 이메일 등을 추적한 끝에 박씨를 붙잡았다. 박씨는 “스튜디오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모델들을 모집해 사진을 찍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박본좌 이후에도 ‘김본좌의 후예들’은 계속해서 활동했다. 지난해 8월에는 웹하드에 대량의 음란물을 유포해 수천만원을 챙긴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새롭게 등장한 본좌 김모(40)씨는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웹하드 사이트 3곳에 130GB에 해당하는 음란물 150여편을 올렸다.

김씨는 자신이 올린 자료를 다른 사람이 내려받을 때마다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포인트가 생긴다는 사실을 이용, 약 200회에 걸쳐 포인트 현금 전환을 요청해 본인 명의 계좌로 2000여만원을 입금받았다.

“AV 저리가라”
직접 찍어 올려

같은 범죄로 69번이나 경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김씨는 2015년 2월 법원서 음란물 유포 및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집행유예 기간에도 범행을 이어갔고 심지어 조사를 받으러 경찰에 출석한 당일에도 웹하드에 음란물을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처벌되지 않는 수위의 성인물 수천편을 올리면서 음란물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 교묘히 단속을 피했다.

얼마 전에는 음란 사이트 ‘소라넷’ 폐쇄 이후 국내 최대 규모 음란사이트 ‘꿀밤’ 운영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지난 17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법무사 정모(33)씨와 IT회사 프로그래머 강모(22)씨를 구속하고 김모(32)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 등은 2013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꿀밤’이라는 음란 사이트를 운영하며 4만여건의 음란물을 게시하고 성매매 업소 등의 광고 수수료를 챙겼다.

이들은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촬영한 성관계 사진이나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사이트에 게시했다. 또한 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내부 이벤트도 벌여 회원들이 올린 성관계 사진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회원에게 200∼500만원의 시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려고 서버를 미국에 두고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거래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이어 대포폰을 쓰는가 하면 성매매 업소 업주들과 텔레그램이나 사이트 내부 쪽지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정씨 일당이 2016년 한 해에 비트코인을 현금화한 규모만 15억원에 달했다. 현직 법무사인 정씨는 음란 사이트 외에 불법 대마 재배에도 손을 댄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100억원 정도의 많은 돈을 벌어 화려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본좌들이 활동하는 웹하드는 일정 공간을 이용자에게 제공해 자유롭게 파일 업로드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서비스다. 다른 이용자들이 올린 파일 역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데 이때는 다운로드 용량에 따라서 유료 포인트로 결제해야 한다.


소라넷 폐쇄 후
대세였던 꿀밤

지급된 포인트는 웹하드 업체와 파일 업로더가 나눠 가지는 시스템이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에 등록된 웹하드 사이트는 총 107개. 거의 모든 웹하드는 성인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하고 있다.

한 업체의 경우 시간당 70∼80개 이상의 게시글이 낯뜨거운 제목을 달고 올라오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로 간단히 성인인증만 하면 많은 양의 ‘야동’을 접할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로 인증한다고 하지만 미성년자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사용할 경우에는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성인 카테고리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90% 이상은 일본 AV다. 상당수가 근친상간이나 강간 등 비윤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국내선 유통이 금지된 불법 영상물임에도 이미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한 편에 200∼300원 정도로 결제할 수 있다.
 

국내에 저작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음란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렴하게 다운로드 할 수 있어 아이러니하다. 실제 우리나라는 일본산 AV의 가장 큰 수요층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정식으로 수급할 수 없음에도 AV는 웹하드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음성적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 유명 AV배우인 아오이 소라가 방한했을 당시의 뜨거운 관심, 미국과 일본의 포르노 제작사들이 국내 소송을 준비했던 사건 등은 국내의 포르노 유통 규모에 대한 방증이다.


이들은 공통으로 ‘성적 욕구를 제한하는 나라’에 분노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관계 영상이 유출되어 고통을 겪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 음란물 규제를 계급 문제로 치환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자유롭게 유통돼 범람하는 음란물이 왜곡된 성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법도박·성매매 광고로 수익
방문자 늘리기 위해 이벤트도

수원 20대여성 살인 사건이나 경남 통영 살인 사건의 피의자들 경우 음란물에 탐닉했던 것으로 드러났는데 전문가들은 이들의 음란물 탐닉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웹하드 업체 관계자는 “성인물은 회사의 가장 큰 수익이다. 또한 경쟁이 심한 웹하드 시장서 회원들을 유인하는 미끼이므로 규제에 있어서 아무래도 눈감아주는 부분이 많다”면서 “대부분의 업체가 불법 성인물에 대해 방조한다. 일부는 ‘헤비 업로더’들과 일종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업로더들은 다운로드 수익의 20∼30%를 가져가며 때에 따라서는 월 수익이 200만∼300만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소라넷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소라넷 접속이 불가능해지자 유사 사이트들이 생겨났다. 이번에 붙잡힌 법무사 정씨의 사이트도 기존 소라넷 회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몸집을 키웠다. 이들의 검거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의 남초 사이트에서는 과거 ‘김본좌’나 ‘소라넷 폐쇄’ 등을 언급하며 슬퍼하는 댓글과 반응을 보였다.

김본좌는 야동의 유통과 생산이 불법인 한국에서 마치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한 몸을 희생한 선구자 같은 사람으로 추앙받았고 소라넷은 김본좌 이후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책임져 온 이들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통했다.

이들은 공통으로 ‘성적 욕구를 제한하는 나라’에 분노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관계 영상이 유출돼 고통을 겪고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기까지 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 음란물 규제를 계급 문제로 치환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들 대부분이 ‘가난한’ 내가 모니터를 보고 성적 욕구를 푸는 것을 왜 나라가 제한하느냐는 댓글이었다. 있는 놈들은 안 잡고 ‘건전하게’ 모니터를 보며 욕구를 해소하는 자신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반응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국내서 유통되는 야동은 디지털 성범죄의 산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꿀밤’에 업로드된 성관계 동영상 속 여성들이 가난한 남성들의 성욕 배출을 위해 이용되는 것을 바랐을까? 동영상 삭제 전문 업체 산타크루즈는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을 매달 평균 50건, 1년에 600건 이상씩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 여성들은 매달 200만원씩 최소 3개월에서 1년까지 부담한다. 업체 관계자는 가끔 중간에 의뢰인에게 연락하면 가족이 전화를 대신 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사라졌거나 숨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도 ‘김본좌의 후예들’은 반성은커녕 죄책감조차 크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용돈벌이로 한 일이다. 어차피 내가 안 올려도 인터넷에 넘쳐난다.” 동영상 유포범이 경찰에게 한 말이다.

김본좌의 등장
그리고 후예들

조사를 담당한 수사관은 “피의자들이 인터넷에 음란물을 퍼뜨리는 것을 ‘백사장에 모래 한 삽 더 퍼 넣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며 반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이 넘는 수사관들이 “용의자들은 죄의식이 없었다”고 답했다.

수년간 음란물 수사를 해온 한 경찰은 “인터넷서 음란물 유포자를 장난처럼 띄워 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