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강진군민장학재단’ 비리수사에 쏟아지는 의혹들

"감사원·경찰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민들이 바쁜 농사철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운집한 인파만도 무려 1000여명. 대형버스를 17대나 대절해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개인차량을 이용해 광주지방경찰청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한데 모인 이들은 "일 잘하는 우리 군수 가만두라"고 목 놓아 부르짖었다. 대체 한적한 시골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들썩이는 강진군을 직접 찾아 울분에 찬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봤다.

인구 4만의 시골마을 강진군이 요즘 떠들썩하다. 강진군민장학재단에 대한 수사를 놓고서다. 장학재단에 대한 이번 수사가 주목받는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무려 5차례나 조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황주홍 현 강진군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장학재단은 194억원의 기금을 모아 한 해 중고생 140여명에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

감사원이 처음 강진군민장학재단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것은 2009년 9월이다. 이틀간 진행된 이 감사에서는 특이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자 감사원은 그해 10월 2차 감사를 실시했다. 여기서도 지적사항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이듬해 3월, 감사원은 한 차례의 감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3차 감사는 특히 강도가 높았다. 감사원은 군수실 바로 옆에 감사실을 마련하고 감사에 돌입했다. 감사는 10일에 걸쳐 진행됐다. 여타 시군 감사에 통상 2~3일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194억원 기금 모아
중고생 140명 후원

이뿐만이 아니다. 강진군에 대한 감사를 마친 뒤에도 타지역으로 강진군 공무원들을 불러내 추가조사를 했다. 장장 4개월에 걸쳐 진행된 조사에 군정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는 전언이다. 조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사직서를 낸 공무원이 있을 정도였다. 이로 인해 감사원은 감사권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뒤인 그해 4월, 이번엔 전남지방경찰청이 강진군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감사원이 장학기금조성 과정에서의 강제모금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요청을 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혐의는 나오지 않았고 전남경찰청은 내사를 종결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지난 2월 24일엔 광주지방경찰청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3월 4일 “장학기금 조성을 놓고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진정과 투서가 있어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혐의점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이후 무려 5차례에 걸쳐 감사·수사 받아
공교육 살린 현 군수 업적 “박수 쳐주진 못할망정”

군 단위 기초자치단체의 장학기금에 관한 문제로 이처럼 전방위적인 압박 감사와 수사가 이뤄진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때문에 이번 수사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엔 물음표가 가득하다. 특히나 장학재단은 공교육을 살린 강진군의 기적으로 찬사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칭찬 받을 일을 했는데 박수는커녕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학기금 조성 전인 2004년, 강진군의 교육은 붕괴 직전이었다. 관내 5개 고등학교가 모두 정원미달 상태로, 매달 약 50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육을 위해 강진군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기금 조성에 나선 지 3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군내의 고등학교 5곳이 모두 정원을 채우며 정상화 됐다. 강진고교는 2006년 개교 25년 만에 처음 서울대 합격자를 낸 데 이어 6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성요셉여고 역시 개교 48년 만인 지난 2008년 처음 서울대 합격생을 냈으며, 전남생명과학고(옛 강진농고)는 농업계로서는 전국 최초로 마이스터고 지정이 유력시되고 있다. 성전면에 있는 성전고는 한개 학급이 증설되는 믿기 어려운 변화를 보여줬다. 이같은 교육성공은 국정감사 모범사례로 보고되면서, 전국 언론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강진군처럼 장학금을 조성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감사·수사 결과 강진장학재단은 단 한 건의 불투명성과 비리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유독 강진군만 표적이 돼 겹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걸까.

지역 내에선 이번 수사의 배경에 황 군수를 ‘찍어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심하게 말하자면 “청부감사나 청부수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수사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발은 불만을 넘어 분노에 달했다. ‘강진군 관계 공무원 일동’은 지난 3월4일 신문광고를 통해 "수사 최종 목표가 강진군수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며 이번 표적이 황 군수임을 시사했다. 또 3월7일 내놓은 감사원 발표에 대한 강진군의 입장이란 보도자료에서도 "1차 감사와 2차 감사가 이 지역 정치세력의 청탁성 압력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강진군민들이 뿔났다
경찰에 분노 폭발

지역주민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강진군 번영회는 지난 3월8일 강진군 입구에 걸어둔 현수막에서 지역 정치인 자숙하라며 감사의 배후가 정치권 인사라고 지적했다. 현재 군민들 사이에선 "이 지역 유력 정치세력이 감사원과 경찰에 압력을 넣어 표적감사와 표적수사가 이뤄졌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정치적 음모론이 나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강진 태생인 황 군수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건국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이른바 엘리트 군수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던 민주당적을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자치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한 인물로, "특유의 열정과 투명성으로 강진군 발전을 주도해 왔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민주당적을 거부한 그가 민주당 입장에서 볼 땐 일종의 ‘눈엣가시’인 셈이다.

특히 황 군수는 2012년 총선 또는 전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리란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강력한 정적(政敵)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누군가가 이번 사태를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5번의 감사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불거진 크고 작은 의혹들은 ‘음모론’에 무게를 더한다.

“정적(政敵) 제거하기 위해 누군가(?) 기획했다?”
45개 시·군 장학재단 조사한다더니 “강진군만!?”

2차 감사 당시 황 군수는 감사원의 한 지인으로부터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지역 정치세력의 청탁성 압력으로 감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혐의 종결하면 (유력정치인이) 화를 낼지 모르니 유야무야 시간을 끌고 가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배려로 감사원의 결과 통보도 없이 사태는 매듭지어졌다.

이어 전수조사라는 명분을 앞세워 전국 145개 시군 장학재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3차 감사는 시늉에 그치고 말았다. 감사서를 통해 감사원은 “시간과 인력의 한계로 다른 곳은 확인이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강진군에 대한 감사만 강도 높게 진행했다는 얘기다. 

민주당 적극 진화 나서
해명에도 여전히 의혹 증폭

뿐만 아니라 3차 감사 결과 감사원은 황 군수 한 명에 대해서만 수사요청을 했다. 30여명에 이르는 강진교육 관련자들을 철저히 감사했으나 시정 요구를 하는데 그치는 등 사실상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한 것과 대조적이다. 결정적 표적감사, 표적수사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2차 수사를 진행한 곳이 광주경찰청이라는 점도 미심쩍다. 강진군 관할청은 전남경찰청이다. 이에 대해 광주경찰청은 강진에 장학금을 낸 회사 소재지가 광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광주경찰청에서 압수수색을 들어온 타이밍도 절묘했다. 황 군수는 지난 2월24일 오후 2시 선거법 위반에 대한 대법원의 긍정적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불과 한 시간 뒤인 이날 오후 3시, 3개월 내내 내사를 해오던 경찰이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황 군수의 판결에 대한 기사는 압수수색에 대한 기사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컨트롤타워’의 압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황 군수 측의 주장이다.

이처럼 의혹이 끊이지 않자 민주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누구도 감사나 수사 청탁을 집행한 적이 없다”고 해명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의혹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살을 더해가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의혹에 군심(郡心)은 물론 도심(道心)까지 사납게 소용돌이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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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