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 목줄 쥔 ‘오리온 비자금’ 키맨들

가신들 입 ‘근질근질’ 회장님 귀 간질간질

오리온그룹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검찰이 뒤지는 것은 비자금이다. 의심의 눈초리는 담철곤 회장에 쏠린다. 유력한 용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했을 리 없다. 누가 도왔을 게 뻔하다. 제3자의 입에 따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열쇠를 쥔 키맨들은 누구일까.

오너 최측근 조씨…‘검은돈’ 조성 핵심역할 포착
그룹경영 막후실력자 “‘오리온 이학수’로 통해”

지난해 8월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털기’에 나섰다.<본지 794호 참조> 검찰은 오리온그룹 오너일가가 청담동 마크힐스 부지 헐값 매매로 생긴 차액을 미술품 거래를 통해 돈세탁 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오리온 비자금을 뒤지고 있는 검찰의 칼끝은 담철곤 회장을 겨누고 있다. 일단 각종 의혹으로 담 회장을 단단히 옭아맨 모양새다. 큰 줄기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줄줄이 딸린 가지들부터 하나하나 쳐낼 요량으로 보인다.

그 첫 가지가 담 회장의 최측근인 조모씨다. 검찰은 그룹 고위 임원 조씨가 비자금 조성에 핵심역할을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씨를 이번 의혹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보고, 담 회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그를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담 회장을 꽁꽁 묶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검찰 안팎에선 조씨가 ‘검은 돈거래’를 사실상 진두지휘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청담동 마크힐스 부지를 헐값에 매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외에 비자금 조성용으로 의심되는 의문의 토지거래를 하는 등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큰 줄기 잡아두고 
가지들부터 쳐낸다


실제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된 조씨는 비자금 조성에 깊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오리온그룹 세무조사 후 횡령과 탈세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을 당시 조씨를 피고발인으로 적시했다. 검찰은 국세청에서 넘겨받은 조사자료를 통해 조씨의 역할을 일부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참고인 등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오리온그룹의 고위 임원 (조씨가) 그룹의 비자금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비자금 조성 및 운용을 총괄지휘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자금 키맨’으로 의심받고 있는 조씨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씨는 전략통이자 재무통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깊숙이 관여해온 막후 실력자다.

그룹 내부에선 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오리온 집사’로 통한다. 그를 ‘삼성 집사’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에 비교하기도 한다.


‘배달꾼’ 의심 시행사 사장 박씨
‘돈세탁’의혹 갤러리 대표 홍씨
‘미스터리 유령 갤러리’
열쇠 쥔 박·김씨 주목

1980년대부터 오리온에서 근무한 조씨는 그룹 몸집을 늘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오리온그룹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오리온일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구세력’이 대부분 숙청될 당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더 잘나갔다. 한때 10여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겸임하기도 했다.

전직 계열사 한 임원은 “조씨는 그룹 전반의 자금줄을 훤히 알고 있다”며 “그를 털면 ‘검은돈’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오리온 비자금’ 수사의 또 다른 키맨은 시행사 M사 대표 박모씨다. 검찰은 박씨가 오리온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하고 오너일가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핵심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상황에 따라 추가소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내가 잘 아는 오리온 고위 임원이 청담동 마크힐스 시행사 대표에게 회사 소유의 창고 부지를 시세보다 싸게 팔 테니 비자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고, 나중에 갤러리 계좌로 입금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그룹 계열 건설사인 메가마크는 지난해 3월 청담동 마크힐스를 완공했다. 19가구 규모의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마크힐스는 분양가만 40억∼7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다. 이 빌라를 짓는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설이 제기됐다.

오리온그룹이 2006년 7월 물류창고 부지로 쓰던 청담동 땅(1755.7㎡·약 530평)을 시행사인 E사에 인근 부지의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각하고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 돈을 S갤러리에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다. ‘배달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3인방만 털면 
‘검은돈’ 드러난다”

박씨가 대표를 맡은 M사는 메가마크가 시공한 흑석동 마크힐스의 시행사로, 메가마크가 전체 지분의 90%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남편은 유명 중견가수 최모씨다. 최씨는 E사의 지분을 26%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박씨 부부는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 박씨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인물은 국내 유명 화랑인 S갤러리 대표 홍모씨다. 돈세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검찰은 S갤러리와 홍씨 집을 압수수색해 미술품 거래내역 등을 확보했다.

홍씨 역시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관계다. 검찰은 양측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오리온그룹이 헐값에 땅을 판 것처럼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려 S갤러리를 통해 세탁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청담동 부지로 마련한 돈이 S갤러리와 그림 거래를 하는 형태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파악해 경위를 확인 중이다. 이 경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S갤러리는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창구가 되는 것이다. 홍씨는 2006년 7월 서울 신사동 일대 토지를 최씨와 공동으로 사들인 뒤 2007년 5월 이 땅을 조씨에게 되팔은 이상한 매매와 관련해서도 의혹을 받고 있다.

홍씨는 재벌가 비자금과 악연이 깊다. 2004년 해외 미술품 유통 비리와 관련해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데 이어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당시 삼성을 대신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을 해외 경매를 통해 샀다는 의혹을 받았다. 최근엔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부하를 시켜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구입한 곳으로 지목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오리온그룹 비자금에 연루된 핵심인사들을 잇따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이들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언제든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오리온 비자금’열쇠를 쥔 조씨와 박씨, 홍씨 ‘3인방’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명작가의 작품을 놓고 민사소송 중이다. 세 명 모두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 인물들이라 소송 향배가 주목된다. 자칫 비자금 사건으로 불똥이 튈 수 있어 더욱 시선이 쏠린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조씨와 홍씨를 상대로 “앤디 워홀의 1965년 작품 ‘플라워’를 반환하라”며 5억1480만원의 양수금 소송을 제기,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권리다툼이 진행되고 있다. 박씨는 소장에서 “2009년 3월 조씨를 통해 홍씨에게 그림을 팔아달라고 위탁했는데 이후 계약을 해지하고도 그림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S갤러리가 ‘미술품 구매용’이란 이유로 반환하지 않았다며 4억9400만원도 요구했다.

“오너일가와 평소 
친분 두터운 관계”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인 워홀의 1965년 작 ‘플라워’는 가로·세로 20.3㎝의 크기로 거래가가 8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에 조씨와 홍씨는 “워홀의 그림은 박씨가 빌려간 돈에 대한 담보로 받은 것”이라며 박씨를 상대로 1억5000만원의 대여금 관련 반소를 제기한 상태다. 홍씨는 “조씨로부터 위탁받은 미술품이니 조씨에게 반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그림 소유주가 오리온그룹 측이 아니냐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메가마크-시행사-갤러리’ 3각 커넥션 의혹과 별개로 H갤러리 의혹도 수사 중이다. 오리온그룹이 H갤러리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황을 캐고 있다.
오리온에 포장용기를 납품하는 I사는 2005년 3월 55억원에 H갤러리를 설립했다. H갤러리는 S갤러리에서 80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사들인 뒤 이중 20억원어치만 되팔았다. 60억원 상당의 미술품이 H갤러리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H갤러리는 2008년 폐업하면서 청산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0억원이 오리온그룹 비자금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I사의 최대주주는 H갤러리가 폐업하기 전까지 오리온그룹 임원 출신인 박모씨였다. 2대주주도 오리온그룹 임원 출신인 김모씨다. 검찰 주변에선 둘 다 ‘판도라 상자’ 열쇠를 쥔 인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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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