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타깃 오리온그룹 3대 의혹 막전막후

위기의 부부오너…코너몰린 담철곤 벼랑끝선 이화경


검찰 그룹 본사·계열사 압수수색 ‘수사 급물살’
오너일가 비자금 추적…내사 끝내고 본격 ‘털기’



검찰이 갈고 간 칼을 뽑아들었다. 한 기업, 한 기업씩 베고 있는 검찰의 예리한 칼날이 재계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한화, 태광, C&에 이은 ‘다음 타깃’에 시선이 쏠렸다. 재계는 숨을 죽였다. 바짝 엎드렸다. 사정의 칼끝이 언제 어디로 향할지 몰라서다. ‘어디가 네 번째 제물이 될까….’폭풍전야의 고요도 잠시, 드디어 그 실체가 드러났다. 바로 오리온그룹이었다.

[검찰 추정 비자금 조성 경위]
▲BW 싸게 매입…지분 팔아 시세차익?
▲땅 헐값 매각…돈세탁 후 다시 받아?
▲갤러리 동원…고가 미술품 빼돌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문배동 오리온그룹 본사와 계열사 사무실 8∼9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뒤지는 것은 부부인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의 비자금이다. 담 회장은 출국금지된 상태. 오리온그룹 측은 “비자금 조성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고 있지만, 이미 사정라인은 가동된 형국이다.

지난해 8월 오리온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국세청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기초적인 자료 검토 등 내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털기’에 나섰다. 검찰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통한 편법 지분 확대 ▲청담동 마크힐스 부지 헐값 매매 ▲미술품 거래로 돈세탁 등 세 가지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두 ‘오리온 비자금’통로로 활용됐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의혹1}
“얼마나 남겼나?”
10년 전 BW 논란

검찰은 담 회장과 그의 부인 이 사장 등 오너일가가 BW(발행회사의 주식을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사채) 발행을 통해 편법으로 지분을 확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BW를 저가에 매입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오리온그룹은 10년째 BW 논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0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리온그룹 계열사였던 온미디어는 7년 만기로 14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다. 당시 발행된 신주인수권(warrant·워런트)은 주당 2만5000원(액면가 5000원)씩 온미디어 주식 56만주를 인수할 수 있는 규모였다.

담 회장은 이중 58.9%인 약 33만주의 신주인수권을 2억원 가량에 사들였고, 2005년 6월 16만5000주(총 41억원)의 권리를 행사해 온미디어 지분을 1.4%로 늘렸다. 온미디어는 이듬해 7월 상장됐는데, 공모가는 액면가 5000원짜리 구주 1주에 5만2000원으로 결정됐다.

상장에 따른 주가 상승을 감안하면 담 회장은 불과 1년 만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본 셈이 됐다. 여기에 담 회장은 지난해 6월 온미디어를 CJ그룹에 매각하면서 보유 주식을 주당 7만9200원으로 총 130억원 가량에 매각해 90억원에 달하는 차익을 남겼다. 5년 만에 200%가 넘는 수익을 올린 것이다.

검찰은 조만간 오리온그룹 임직원과 BW 발행에 관여한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담 회장이 BW 발행으로 지분을 늘리고 시세차익을 거두는 과정에서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오리온그룹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담 회장은) BW를 시세에 따라 적절한 가격으로 구입했다”며 “시세차익을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은 이미 금감원과 국세청 조사 등을 통해 대부분 해명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오리온그룹은 앞서 오리온(구 동양제과) BW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오리온은 1999년 5월 1500만달러 규모(74만4437주)의 분리형(채권·워런트 분리) 해외사모 BW를 발행했다. 그러나 담 회장 일가가 외국인에게 배정된 신주인수권을, 그것도 싼값에 매입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뒀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경제개혁연대는 2008년 대기업들의 부당주식거래 의심 사례를 발표하면서 “오리온 BW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행된 것인데 담 회장 일가가 BW 행사 가능 주식의 72.3%를 취득했다”며 “지배주주가 지분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BW를 발행한 불공정 거래를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 “담 회장과 이 사장은 2004년 4월 신주인수권 행사로 오리온 지분 7.59%를 늘렸다”며 “행사가격은 주당 2만4000원으로 발행 당시 주가 3만원보다 저렴할 뿐더러 행사 당시 주가는 최저 6만1800원에서 최고 7만9500원 수준이었다”고 꼬집었다.

오리온그룹 측은 오리온 BW에 대해서도 “당국의 신고와 허가, 외부 회계 감사를 받는 등 적법한 조치·절차를 거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혹2}
“왜 싸게 넘겼나?”
청담동 땅 미스터리

검찰은 BW 의혹과 함께 부동산 헐값 매매 의혹도 캐고 있다. 오리온그룹이 계열 건설사인 메가마크 소유의 부동산을 시행사에 헐값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메가마크는 지난해 3월 청담동 마크힐스를 완공했다. 19가구 규모의 건물 2개동으로 이뤄진 마크힐스는 분양가만 40억∼70억원에 달하는 초호화 빌라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이혼한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임세령씨가 펜트하우스층을 매입했다가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불법시공 의혹이 제기된데 이어 담 회장의 비자금 조성설이 흘러나왔다. 오리온그룹은 2006년 7월 물류창고 부지로 쓰던 청담동 땅 두 필지(1755.7㎡·약 530평)를 각각 시행사인 A사와 B사에 매각했다. 오리온그룹 부지 외에 주변 개인 소유의 땅을 확보한 A사와 B사는 공동시행을 맡아 대형빌라 건축 사업을 추진했고, 시공권을 메가마크에 넘겼다.

문제는 땅값이다. 오리온그룹은 창고부지를 A사에 115억원에, B사엔 45억원에 매각했다. 총 매각금액은 160억원 정도로, 3.3㎡당 약 3000만원씩에 판 셈이다. 검찰은 오리온그룹이 부지를 매각할 때 인근 부지의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매각하고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보고 있다. 이 지역 부동산 시세는 3.3㎡당 5000만원을 웃돌았다는 게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 실제 당시 인근 땅은 3.3㎡당 보통 4000만∼5000만원대에서 많게는 6000만원에 거래됐었다.

주변 땅값 시세가 이같은 수준으로 형성돼 있던 점을 감안하면 오리온그룹이 헐값에 부지를 판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다. 3.3㎡당 1000만원씩 싸게 팔았다고 가정하면 차익은 53억원이 발생한다. 2000만원으로 계산하면 106억원, 3000만원의 경우 159억원의 차이가 난다.

공시지가도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오리온그룹 부지의 공시지가는 2006년 1월 기준으로 3.3㎡당 2217만원이다. 마크힐스 시행사가 3.3㎡당 3800만원에 매입한 인근 땅의 경우 공시지가가 3.3㎡당 1673만원이었다. 오리온그룹 부지 실거래가가 공시지가의 1.4배에 불과한 반면 다른 부지는 2.3배에 이른다는 결론이다.

검찰 관계자는 “(오리온그룹이) 청담동 금싸라기 땅을 엄청나게 싸게 넘겼다고 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비자금을 챙겼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싸게 넘겼다면 배임 혐의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시행사 A사와 B사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둘 다 오리온그룹과 연관성이 의심된다. A사는 오리온그룹 부지를 매입한 날 사실상 새로 생긴 회사다. 토지를 매입한 당일 사명을 교체하고 사업목적을 바꿨다. B사는 오리온그룹과 인연이 있는 회사다. 지분을 갖고 있는 특수관계인의 친인척이 흑석동 마크힐스 시행사 대표다. 이 대표는 이 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그룹 측은 청담동 부동산 매매에 대해 정상 거래였다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토지 매각은 정상적인 절차대로 이뤄졌다”며 “절대로 싸게 팔지 않았다. 시세에 맞는 가격에 넘겼다”고 부인했다.

{의혹3}
“갤러리 동원됐나?”
수상한 미술품 거래

검찰은 오리온그룹 비자금이 미술품 거래를 통해 세탁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이번에 국내 유명 화랑인 서미갤러리도 압수수색했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집까지 뒤져 미술품 거래내역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끝나는 대로 홍 대표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과 홍 대표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관계다. 검찰은 둘 사이에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오리온그룹이 청담동 부지로 마련한 돈이 서미갤러리와 그림 거래를 하는 형태로 흘러들어간 정황을 파악해 경위를 확인 중이다.

검찰에 따르면 오리온그룹 청담동 부지를 사들인 A사는 한달 뒤 서미갤러리에 40억원을 입금했다. 이 40억원이 미스터리다. 오리온그룹이 헐값에 땅을 판 것처럼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40억원을 빼돌려 서미갤러리를 통해 세탁하지 않았냐는 의혹이다.

A사가 미술품 구입 명목으로 서미갤러리에 돈을 지급했고, 이 돈이 다시 오리온그룹 오너일가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경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서미갤러리는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창구인 셈이다.

서미갤러리는 최근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부하를 시켜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구입한 곳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 특검 수사 당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의 국내 유통경로로 지목되기도 했다.

오리온그룹 측은 그룹이나 오너일가와 전혀 무관한 거래라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서미갤러리와 미술품을 거래한 것은 시행사지 그룹이나 오너일가가 아니다”라며 “돈 거래도 일체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추적하는 또 다른 미술관은 H갤러리다. 오리온그룹이 H갤러리를 통해 60억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다.

오리온에 포장용기를 납품하는 I사는 2005년 3월 55억원에 H갤러리를 설립했다. H갤러리는 서미갤러리에서 80억원 상당의 미술품을 사들인 뒤 이중 20억원어치만 되팔았다. 60억원 상당의 미술품이 H갤러리에 남아 있어야 하지만, H갤러리는 2008년 폐업하면서 청산소득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60억원이 오리온그룹 비자금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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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