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자연 편지 ‘위조 판명’ 미스터리 추적

사건 수사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 있다?

여성 연예인 술접대와 성상납을 폭로한 고(故) 장자연의 친필 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2년 만에 재점화 된 장자연 사건은 정신질환 의심 수감자의 자작극으로 결론 났다. 경기지방경찰청 분당경찰서는 지난 16일 편지 진위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에서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한 편지 내용을 보고 ‘가짜 편지’임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짜로 밝혀진 ‘장자연 편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해 음모론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국과수 “장자연씨 필적 흉내 내 작성한 위작”
경찰 ‘정신분열’ 전씨 자작극…재수사 않기로

 
경기지방경찰청 분당경찰서는 “장자연씨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 원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지문, DNA 분석 결과 장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감자 전씨가 장씨의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위작으로 판단했다”며 “문건 전반에 대해 재수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필승 실종사건>
아닌 <그들이 온다>

경찰이 발표한 위작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 제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자연은 2009년 3월 자살했다. 장씨는 자살 직전 <그들이 온다>라는 영화를 찍었고, 이 영화는 장씨가 자살한 후인 2009년 6월 제목이 <정승필 실종사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개봉됐다. 그런데 전씨가 ‘장자연이 보낸 편지’라며 보관하다 경찰에 압수된 발신일시 미상의 한 편지에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은 “장씨가 살아있을 때는 영화 제목이 <정승필 실종사건>이 아니라 <그들이 온다>였기 때문에 장자연씨가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전씨가 언론에 공개된 편지 내용 외에 장씨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전씨가 작성한 2008년 10월12일자 진정서에 ‘(장씨가) 해외 접대골프를 가지 않아 차를 빼앗겼다’는 부분이 있는데 경찰은 이것이 2009년 2월에 발생한 일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가 장자연씨 편지라고 주장한 50통 230페이지의 편지글을 분석한 결과,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 장자연씨만 알 수 있는 개인적 내용이나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 적힌 편지는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장자연씨 관련 사실을 알아낸 전씨가 언론에 공개된 장씨의 자필 문건을 보고 필적을 연습해 가짜 편지를 만들어 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2009년 6월 부산구치소 교도관이 작성한 전씨의 면회자 접견 내용 기록에 “자연이 편지 온 거 사실 인터넷에서 퍼온 건데”라는 전씨의 말이 나와 있다고 했다.

경찰은 “‘전씨가 시나리오를 쓰는 등 글솜씨가 뛰어났다’ ‘전씨가 하루 5~6통의 편지를 작성하는 모습을 봤다’ 등 동료 재소자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고인과 전씨의 친분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점’도 위작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전북 정읍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장자연과 초·중학교는 전남 강진, 고교는 광주광역시에서 다닌 전씨의 성장 배경이 판이해 친분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장자연씨가 12차례 면회 왔다”는 전씨 주장도 면회 접견부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고, 장씨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우편물 대장을 확인한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또 경찰이 전씨로부터 압수한 물품에서 소인 날짜와 우체국 고유번호 부분을 오려낸 편지봉투 복사본 등이 확인됐다. 경찰은 전씨가 이런 자료를 조합해 ‘가짜 편지봉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성장 배경이 판이해
친분관계 찾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전씨가 과대망상 증상과 사고 과정의 장애를 보이는 등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로 이 같은 편지의 내용을 지어냈다는 동료 재소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전씨가 2006년 1월부터 작년 8월까지 과대망상 증세로 수십 차례 치료를 받았던 병력을 제시했다.

전씨를 면담한 경찰청 프로파일러들은 “전씨가 무분별하게 과시하는 말을 사용했다”며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편지 원본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장자연 편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해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대중들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싸인>이 다룬 스토리처럼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사회 지도층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자 경찰과 국과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음모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엄청난 량의 문건을 혼자 조작했냐’는 것. 50통 231쪽에 해당하는 분량을 조작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범죄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기간 독방을 쓴 망상장애 문제수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죽은 사람의 원혼을 풀어줘야 한다는 사명을 띤 것으로 착각할 수 있고, 독방을 쓰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문제수들이 조작한 편지를 보내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수사가 서둘러 종결됐을 수도 있다’는 것. 경찰은 장자연이 자살했던 2009년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 그러나 SBS가 지난 6일 ‘장자연 편지’를 공개할 때까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가짜 밝혀졌지만 음모론 여전…영향력 행사?
경찰 측 “새로운 단서 확보된다면 수사할 것”

세 번째는 ‘전씨를 도운 제3자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 제3자가 전씨가 쓴 편지를 외부로 유출했거나 직접 편지를 써 법원과 언론에 제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 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에 제3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사라졌다. 경찰 발표에도 음모론이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모론은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때 유포된다. 한 연예 관계자는 “특정 인사에 대한 경찰과 검찰 수사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한 경찰 관계자는 “편지가 위작이라 편지 내용에 대한 재수사를 하지 않지만 새로운 단서가 확보된다면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전씨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될까. 전씨가 자작극을 자백하더라도 형사처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자의 명예훼손죄가 검토될 수 있으나 전씨는 편지를 재판부에 제출했을 뿐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50통 231쪽 분량
혼자 조작 가능(?)


편지는 가짜로 결론 났지만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지난 16일 공동보도자료를 통해 “편지가 가짜라고 해도 2년 전 경찰의 수사가 정당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철저한 재수사를 요청했다. 한 네티즌은 “경찰과 검찰이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이란 전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말고 전반적인 재수사에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며 “등 떠밀려 마지못해 시작하고 서둘러 마무리하는 모습은 이제 지겹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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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