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상하이 스캔들’ 의혹5 대추적

스파이냐 브로커냐 꽃뱀이냐? 설설 기는 설설설들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33)씨가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의 영사 3명과 잇따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대한민국 정부·여당 고위층 연락처가 덩씨의 USB 메모리에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최초 ‘스파이설’에 무게가 실렸던 이번 파문은 ‘브로커설’에 이은 단순 ‘꽃뱀설’ 등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가 하면 음모론과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까지 거론되고 있다. 중국 당국의 ‘보호설’과 장자연 사건을 터뜨려 진실을 서둘러 덮으려 한다는 ‘무마설’까지 상하이 스캔들을 두고 거론되는 다섯 가지 의혹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외교 하랬더니 외도한 대한민국 영사들…
MB식 보은 인사 지적, 불똥 청와대로 옮아
본질 사라지고 조작·폭로전 혹은 음모론


상하이 스캔들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지만 덩씨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처음 사건을 제보한 덩씨의 남편 진모(37)씨 역시 그녀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당초 덩씨의 USB에서 정부·여당 고위층의 연락처가 발견되면서 스파이설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각종 이권에 개입한 브로커이거나 단순 꽃뱀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파이냐, 브로커냐
중국 보호설까지

스파이로 보기에는 덩씨의 행동 자체가 노출돼 있고 과시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 특히, 국가적 스파이라면 외부로 얼굴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게 보통이지만 덩씨가 얼굴을 맞대거나 껴안다시피 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는 점만 봐도 전문 스파이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덩씨가 성을 매개로 영사들을 유인해 사기를 친 게 중요하다”면서 “사기꾼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정치권에서는 덩씨의 꽃뱀설을 강력 주장했다. 국회 내 대표적인 중국통인 구상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일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상하이 스캔들은 비자 브로커인 덩신밍이 일으킨 전형적인 꽃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덩씨가 이권이 걸린 비자 발급 권한을 달라고 총영사관에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사적인 관계를 악용해 직원들을 공갈 협박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 쪽 인사들과 인맥을 쌓아온 구 의원인 만큼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

구 의원은 이상득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덩씨를 통해 위정성 상하이 당 서기를 만난 것에 대해서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대통령 형님 정도의 인사가 중국에 와서 위정성 상하이 당 서기 정도는 일정만 맞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구 의원은 비외교전문가 출신인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관의 부적절한 대응이 사건을 키웠다고 꼬집었다. 외교관은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사건이 커지니까 스스로 나서 기자회견을 해 쓸데없이 일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상하이 스캔들로 국내가 연일 떠들썩한 것에 비해 중국 정부는 자신들과 덩씨는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 영사들과 중국 여성과의 스캔들을 국가 기밀을 빼내려는 스파이 사건으로 부각시킨 일부 한국 언론 보도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는 것.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중국의 덩씨 보호설이 퍼지기도 했지만 중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덩씨가 간첩일 가능성은 적고 브로커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중국 언론은 “한국 언론의 보도에 엽기적인 내용이 더 많다”면서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자주 등장한 중국 여간첩 소재가 한국에서도 출현한 것은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과 한국 국민 사이의 감정이 나빠지면서 대두한 중국 위협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게 다 MB 때문이다?
레임덕까지 거론

상하이 스캔들의 불똥은 청와대로까지 튀었다. 소위 이명박 대통령의 ‘보은 인사’가 결과적으로 화를 자초했다는 일각의 지적 때문이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주요국 대사나 총영사 등 공관장을 임명할 때 전문성보다는 대선 과정과 BBK 사건 등에서 덕을 본 사람을 우선 고려하는 인사 행태를 되풀이해 비판 여론과 함께 적지 않은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중심 인물로 부상한 김정기 전 주 상하이 총영사도 2008년 5월 부임 당시부터 MB 보은 인사의 대표 사례로 꼽혔던 인물이다. 김 전 총영사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필승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이 대통령 집권 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천한 뒤 보은 인사 차원에서 주 상하이 총영사로 가게 된 것으로 알려져 MB의 보은 인사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런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이번 상하이 스캔들을 ‘레임덕’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다분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레임덕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 말을 무색케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청와대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는 이유에서다. 최근 ‘함바게이트’ ‘인도네시아 특사단 잠입 사건’ ‘정동기 전 감사원장 낙마’ 등 현 정권을 당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었다.

여기에 덧붙여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기강 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하이 스캔들’까지 터지자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이에 정부는 특별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상하이 총영사관 현지 조사는 물론 범정부 차원의 조사를 벌이기로 했지만 총체적인 기강 해이 조짐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각에서는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수 있는 ‘상하이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조작·폭로전에 이어
음모론 ‘모락모락’

상하이 스캔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장자연 친필 편지 기사가 속속 보도됐고, 이후 상하이 스캔들 기사와 함께 장자연 친필 편지의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각의 주장과는 달리 상하이 스캔들은 합조단의 공식 조사가 끝날 때까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스캔들을 둘러싼 각종 소문과 설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주 상하이 총영사관 스캔들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총 9명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지난 13일 상하이에 파견키로 결정했다. 필요할 경우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덩씨에 대한 조사를 중국 당국에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의하면 국가 기밀 유출 내용은 갈수록 모호하기만 하다. 덩씨를 통해 유출됐다는 정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캠프 전화번호, 총영사관 비상 연락망 등 사건 초기에 나왔던 내용에서 추가된 것이 없고, 이 내용들은 나라를 뒤흔들 만한 국가 기밀로 보기에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런가 하면 상하이 스캔들 관련자들은 서로 “상대방이 조작”했다고 주장,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먼저 지난 10일 한 언론 매체는 “덩씨의 남편 진모씨가 9일 밤 이메일을 보내왔다”면서 “진씨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내용 중 제가 제출하지 않은 자료도 섞여 있다. 특히 정관계 인사 200명의 자료는 솔직히 제 와이프의 컴퓨터에 들어있지 않던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다른 매체는 즉각 진씨가 “내가 작성하지도 않은 메일이 언론사에 전달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 누군가 이번 사태를 조작·은폐하려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언론을 대리인 삼아 서로 정보를 흘리며 공방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정관계 인사 200명 자료의 출처로 알려진 김정기 전 총영사 역시 음모론을 내세웠다. 국내 정보 라인이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전 총영사는 유출된 자료에 대해 “2006~2007년 만들어진 쓸모없는 자료로 관저 책상 셋째 칸에 넣어져 있었으며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료는 덩씨가 훔친 게 아니라 나를 음해하는 세력이 훔친 것”이라면서 “이들이 다음 달 4월 분당을 보궐선거에 맞춰서 나를 또 죽이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전 총영사 역시 이후 총리실 조사에서는 “그렇게 의혹을 제기한 것을 잘못한 것”이라고 한 발 뺐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우리 측 영사들이 중국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 중국 여성을 통해 우리 측 기밀이 밖으로 새나갔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 기밀이 유출됐는지, 어떤 정보가 흘러나갔는지에 대한 증거나 정황을 찾기 위한 노력은 사라진 채, 관련 당사자들 간의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짜 맞춰진 듯한 진실 주장만이 난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도 조속한 시일 안에 정부가 실체를 규명해 이 혼란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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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