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릴레이 인터뷰> 더민주 정춘숙 의원

“대통령이 물러나야 나라가 산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번 20대 국회는 새로움의 연속이다. 대한민국은 17대 총선 이후 12년 만에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으로 접어들었다. 국회는 3당 체제로 재편됐고 낙선한 의원들의 빈자리는 새로운 얼굴들로 각각 채워졌다. <일요시사>는 독자들을 대신해 의원들을 찾아가는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 새로워진 국회를 알아가는 시간을 준비했다. 그 스물두 번째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을 만나봤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이다. 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 대부분은 대통령의 2선 퇴진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친 현 상황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 촛불집회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일, <일요시사>는 정 의원을 만나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일문일답.

- 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는 처음이다.
▲행정부를 견제·감시하는 국회 본연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됐다. 국민의 입장에서 마땅히 물어볼 만한 사안인데도 국무위원들이 답변을 교묘히 피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또한 피감기관서 자료를 제때 안주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틀린 자료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새누리당이 일주일 동안 국감을 거부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대부분 언론서 이번 국감 성적을 F학점으로 줬는데, 나름 열심히 국감에 임했던 우리(민주당)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선 ‘과연 충분히 검토가 된 것일까’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새로 편성된 예산의 경우 그것이 왜 필요한지 기관에서 설명해줘야 하는데, 무턱대고 가지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 예산에 대해선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예산은 국민의 세금을 쓰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특히 한번 편성된 예산은 엎어지지 않고 계속 집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욱 꼼꼼히 따져봤다.


- 야 3당 원내대표 합의문을 보면 ‘최순실 예산’을 삭감한다는 내용이 있다.
▲최순실·차은택 예산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를 테면 해외 ODA(개도국 개발협력사업)를 주관하는 ‘국제보건의료재단’이 올해 박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 때 갔던 우간다, 케냐 등을 대상으로 ‘아프리카 소녀보건’ 사업을 실시했다.

보건교육 프로그램 영상물 등을 해당 국가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그 영상물을 제작한 곳이 ‘플레이그라운드 커뮤니케이션즈’라고 실질적으로 차은택의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업체였다. 영상물의 수준이 매우 떨어져 도저히 9900만원의 예산을 들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9900만원이 적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단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해당 사업 예산이 이번에 11억9000만원으로 증액됐다. 9900만원이 11억원짜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예산은 적극 삭감하고 신규 예산도 설명이 안 되면 못 들어오게 했다.

최순실·차은택 예산 “절대 못 넘어가”
9900만원이 11억…곳곳에 숨은 그림자

-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취임한지 10개월이 지났다. 여가위원으로서 평가해 주신다면?
▲여가부 장관이 야당을 국정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의혹이 많은데도 끝까지 자신들의 선택이 맞았다고 주장하고 변명한다. 심지어 여가위 국감은 정부·여당의 버티기로 증인·참고인 없이 진행되기도 했다.
 

역사상 이런 일이 없었다. 야당에서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 한 명만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끝까지 반대하더라. 또한 일·가정 양립을 주장하는데, 사실 출산·육아를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오히려 짐을 지우는 정책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4대악과 관련해서도 지표가 전혀 나아진 부분이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도 그렇다. 문제는 여가부가 이런 수많은 여성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적극성, 사명감이 없다. 여가부가 처음 만들어질 때 외부에서 지지하고, 이명박정권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려 할 때 반대 시위도 했지만, 내가 했던 선택들이 과연 옳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여가부는 정말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


- 최근에 스토킹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일명 스토킹방지법)을 발의했다.
▲그동안 발의된 법안들은 ‘가정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을 모델로 삼아 처벌 규정이 약했다. 가정폭력 특례법상 구속률은 0.1%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다. 스토킹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심한 폭력을 당하는가 하면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번 스토킹방지법에는 아주 제한적인 부분을 빼고 기본적으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게 기본 내용이다. 또한 피해자들이 자기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을 넣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소식을 접한 심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사람으로서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들이 뼈빠지게 일해서 낸 세금을 그 사람들이 다 먹은 것 아닌가. 도대체 그 사람들이 노동을 했나, 뭘 했나.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나도 그런데 국민들은 오죽했겠나.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감에 나와서 거짓말 한 사람들 모조리 처벌해야 된다. 국민들의 자부심을 한번에 날려버린 일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토요일날 집회(지난달 29일 촛불집회)에 갔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과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주셨다. 그 사람들의 분노, 허탈감, 수치심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은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 되는 것 같다.

- 결국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과 직접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인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나.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당연히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헌법 71조를 보면 총리의 권한 대행이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과 민정수석이 어떻게 대통령을 수사고 진상규명을 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찌라시가 전부 진짜였다는 걸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됐지 않나. 박 대통령은 어서 2선으로 물러나 조사 받고, ‘책임총리’든 ‘거국내각’이든 해서 정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 지지율이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9∼10% 정도라고 한다. 현 상황을 보면 더 내려가면 내려갔지 올라갈 일은 없다고 본다.


<chm@ilyosisa.co.kr>

 

[정춘숙은?]

▲강남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 졸업
▲전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인권위원장
▲전 서울시성평등위원회 위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
▲제20대 국회의원(비례대표/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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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