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이 밝혔지만, 나는 우리 역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박 전 대통령께서 짧지 않은 기간 이 나라를 경영하면서 그저 그런 백성에 머물 수밖에 없던 내가 인간군에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 즉 맹자의 사상 무항산무항심(無恒産, 無恒心 :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에 따른다.
이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나열해보자. 나보다 인생 오래 사신 분들도 그러하겠지만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당시 주변에 삶의 방식은 고려,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집은 수수에 진흙을 바른 초가였고, 지금은 펑펑 쓰고도 남아도는 전기는 그 실체도 알지 못했고, 연료 또한 나무가 전부였고(그런 연유로 마을서 밥을 짓는 과정에 여러 번 화재 발생했다), 수도는커녕 펌프도 없어 개울서 빨래하고 날이 밝자마자 소 몰고 논밭으로 나가 밤이 돼서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어쩌다 계란 하나 먹으면 여러 날이 든든했고….
그러던 삶의 방식은 박 대통령이 이 국가를 경영하면서 그야말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초가가 기와집으로 변했고 전기란 존재를 접하게 됐고 펌프에 이어 수도가 들어왔고 연탄으로 밥을 짓고 모든 길이 시멘트로 뒤바뀌었고 라디오에 이어 TV도 접하고 계란이 눈앞에 있어도 시큰둥해지고….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했다.
그런데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상기의 급격한 발전 뒤에 많은 부산물이 발생했다. 정치적 독재, 부의 일방으로 편중, 개인 그리고 지역간 이기주의 등 총괄해 천민적 사고방식에 따른 행태의 고착화가 그것이다.
혹자는 이를 부각시켜 박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을 마냥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는 순리에 입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이로울 터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경영하면서 생겨난 부산물들에 대한 치료는 이후 사람들의 몫이었다. 급격한 발전과정에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부정적인 요인들을 치료해 상생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했는가. 지난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 이 시점에도 오히려 그 시절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특히 정신적인 측면서 더욱 부정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을 살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서 벗어난 우리의 방향은 정신으로 치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철저하게 변화의 바람을 외면하고 오히려 물질만능주의로 달려 나갔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정신 혁명, 정치꾼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역설하고 있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 정치 일선서 설쳐대는 인간들 중에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냉철하게 살피면 그들은 혁신의 대상에 불과하다.
혁신의 선결조건은 나를 버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런 연후에 타인들을 납득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혁신을 강요한다.
그러니 혁신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테고 현재 판세로 간다면 이 나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이제는 나처럼 개인 욕심 모두 내려놓은 사람이 나서서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