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직격탄> 대한민국 룸살롱은 지금…

“손님요? 아가씨들끼리 술마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접대의 메카’였던 룸살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룸살롱은 경기침체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며 룸살롱 업계는 침울 그 자체. 업계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조만간 법망을 피해 편법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고급 룸살롱서 이뤄지던 기업들의 접대 관행이 철퇴를 맞게 됐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흥업소는 2만5000여개(종사자 22만622여명), 서울지역의 유흥업소는 2500여개(3만2605명)에 달한다. 업소가 밀집된 강남의 경우 현재 300여개가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룸살롱·단란주점·스탠드바 등 유흥업소가 경기침체로 이미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며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황이다.

단란, 스탠드바
노래방도 죽을맛

룸살롱 몰락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음주 문화 변화와 성 개방 풍조, 지속적인 단속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음주족이 줄고 독하고 비싼 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룸살롱 업계서 25년간 일했다는 최모씨는 “룸살롱은 부유층 남성들의 성 매수 장소로 수십년간 인기를 끌었다”면서 “요즘은 쉽게 ‘애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룸살롱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이트클럽이나 SNS서 이성을 만나는 남성이 늘어나고 룸살롱을 대체하는 업소가 늘어난 것도 룸살롱 몰락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룸살롱 업계에선 비교적 저가에 성 매수가 가능한 각종 유사 성행위 업소와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들로 룸살롱 손님들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룸살롱의 경우 성매매 가격이 최소 20만원대이지만 신종 업소들은 1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과 연계하고 있는 음료, 위스키 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국내 위스키 수입 및 제조업체들은 각 유흥업소에 직접 영업 인력을 투입해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유흥업소는 위스키 업체들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다. 이미 국내 위스키 산업 규모가 매년 위축되고 있는 상황서 이번 김영란법 시행은 ‘결정타’가 될 수밖에 없다. 위스키 출고량은 2013년 200만 상자 밑으로 떨어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유흥업소 2만5000여개…줄폐업 가시화
연관된 주류업체들도 막대한 피해 예상

지난 상반기 출고량은 약 80만 상자로 올해도 하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위기는 위스키와 와인 등 고가 주류선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위스키는 고급 이미지가 강해 많은 소비자들이 명절 선물용으로 구매한다. 와인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선물로 이용되는데 5만원이라는 제한선이 생겨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룸살롱서 주로 팔고 있는 고급 위스키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008년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2009년 -10%, 2010년 -1.4%, 2011년 -4.8%, 2012년 -11.6%, 2013년 -12.8% 등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독하고 비싼 술은 더 이상 우리 음주 문화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업계서도 도수 낮은 위스키 등 신제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면서 “위스키에 대한 거부감으로 룸살롱 손님 역시 함께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기업 회식 자리서도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은 거의 사라지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단골 메뉴가 된 지도 오래다. 다른 조직보다 ‘양폭’을 더 즐겼던 법조계서도 이제는 ‘소폭’이 대세라고 한다.


또 다른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죽어가는 시장에 김영란법까지 더해져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워졌다”며 “5만원 이하 주류 선물 시장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한 대기업 부장은 “과거엔 국회 보좌관들과 정기적으로 룸살롱을 갔지만 이제는 그들이 먼저 돈 들여 몸 망치지 말고 룸살롱 대신 골프나 치자는 제의를 해온다”고 했다. 등산·자전거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룸살롱서 술 먹는 것보다는 운동과 좋은 음식에 투자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뭘 먹고 사나”
다 문 닫을 판

강남의 한 룸살롱 실장은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매출 감소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빈 룸이 많이 발생할 게 뻔한데 웨이터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역삼동 한 룸살롱 매니저는 “법 시행 전부터 매출이 엉망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면서 “평소 50∼60% 이상을 차지하던 대기업 등의 법인카드 고객들이 대부분 발길을 끊어 하루 매상이 반토막난 업소도 상당수에 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찬열(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 59만1694곳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총 9조9685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접대비는 2008년 7조502억원서 2014년 9조3368억원으로 매년 늘다 지난해 10조원에 근접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중 유흥업소서 쓴 금액은 1조1418억원으로 8년째 1조원을 넘겼다. 유흥업소별로는 룸살롱이 6772억원(59%)으로 전체 유흥업소 1위를 달렸고 단란주점(18%)과 극장식 식당(11%) 요정(9%) 나이트클럽과 카바레(3%)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고급 유흥업소 업주들은 전업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실의에 빠진 상태다. 해마다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다투는 업소 간 경쟁도 룸살롱 영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쟁 업소를 없애기 위해 성매매 등 불법 영업을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논현동의 한 룸살롱 영업담당 전무는 “손님이 좀 있다 싶으면 주변 업소들이 그 업체를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가라앉는 배에서 살아남으려는 업체들 간 치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 단속의 배경엔 업계 내부 고발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박유천 사건 등 룸살롱 내에서 벌어진 일들이 법적 사건으로 쟁점화되는 것도 업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P 룸살롱 영업부장 장모씨는 “최근 단골 중엔 ‘아가씨들 무서워서 룸살롱 못 가겠다’는 손님들이 있다”면서 “불쾌한 행위를 강요당하면 룸을 나와 버리거나 반발하는 여종업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손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이미 침체에 빠진 룸살롱 업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사 어렵다면…
불법·편법 기승


하지만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됐음에도 뿌리 깊은 접대문화가 100%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법망을 피해 각종 편법행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얘기다. 소규모 업소들은 “여태껏 배운 게 이것뿐이라며 어떡하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모습이지만 중·대형 업소들은 법망을 피할 수 있는 편법 접대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룸살롱은 1970년대 초반 서울 광화문 일대에 처음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고 유흥주점은 삼청각·대원각·청운각 등의 요정들이었다. 요정에는 온돌방과 한복 입고 전통춤 추는 여종업원이 있었던 반면 룸살롱에는 소파와 양장을 한 여종업원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 강남 개발과 함께 급격하게 늘어났던 룸살롱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요정들을 밀어내고 유흥업계 정점을 차지했다.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 전후 최대 호황기에는 한 달 1000곳의 룸살롱이 개업할 정도였다고 한다. 논현동의 한 단란주점 전무는 “김영란법 시행 여파로 룸살롱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유흥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앞으로 10년 뒤면 룸살롱은 과거의 요정처럼 일부 업소만 명맥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여종업원 성매매 업소로 대이동
물어뜯기 경쟁…더 퇴폐적으로?

강남의 한 유흥업소서 발렛 파킹 일을 하는 D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밀려드는 손님들 차를 주차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오늘은 정말 한가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그냥 발렛 부스 안에 들어가서 휴대폰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해당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E씨 역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내가 장사하고 1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라며 “보통 화류계는 명절 즈음해서 손님이 끊긴다. 다들 가정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명절 기간의 5분의 1도 안 된다”고 흥분했다. 그는 또 “우리 가게만 이러진 않을 것이다. 주변에 다 연락해봤는데 더하면 더했지 덜한 가게는 없다”고 말했다.


강남서 또 다른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F씨도 “출근한 직원들이 손님이 없자 다 퇴근했다”며 “업주들뿐만 아니라 직원들 수입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는가 하면 F씨는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 기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잠깐이면 된다. 지금 전부 시범케이스에 걸릴까 몸 사리는 것 아닌가”라며 “유흥 없는 사업과 로비가 어디 있나. 곧 어떤 식으로든 다시 가게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의 한 노래바 사장은 “일단 더치페이로 계산한 뒤에 접대하는 측에서 현금 또는 상품권으로 식사비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편법을 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일부 유흥업소들은 단골손님들을 대상으로 금액을 미리 결제하는 ‘선결제 방식’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들었다”면서 “강남과 종로 등 일부 업소 여러 곳에서 이미 몇 백만원씩 선결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도입됐다가 부작용만 키운다는 여론 속에 5년 만에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의 전철을 김영란법이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는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목적과 접대자 이름, 접대 상대방의 상호와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당시 접대비 실명제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 쪼개기’와 함께 ‘카드 나누기’라는 편법이 생겨났을 정도다. 일각에선 “김영란법에서도 식사비 한도인 3만원을 넘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비슷한 편법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3만원 이상 식대비가 지불됐을 때는 접대 대상의 인원수를 부풀릴 수 있고 접대 대상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 시행 초기에 이런 편법을 쓰면서까지 접대를 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나 관가 쪽 반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는 사업 성공을 위해 편법을 쓰더라도 접대 자리를 원할 수 있지만 접대받는 입장에선 ‘시범 케이스’로 걸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미 몰락의 길
종사자들 어디로?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한 지부회장은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법이 본격 시행되도 편법에 기승한 접대문화는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업계의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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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