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직격탄> 대한민국 룸살롱은 지금…

“손님요? 아가씨들끼리 술마셔”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 ‘접대의 메카’였던 룸살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룸살롱은 경기침체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며 룸살롱 업계는 침울 그 자체. 업계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조만간 법망을 피해 편법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고급 룸살롱서 이뤄지던 기업들의 접대 관행이 철퇴를 맞게 됐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흥업소는 2만5000여개(종사자 22만622여명), 서울지역의 유흥업소는 2500여개(3만2605명)에 달한다. 업소가 밀집된 강남의 경우 현재 300여개가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룸살롱·단란주점·스탠드바 등 유흥업소가 경기침체로 이미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며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황이다.

단란, 스탠드바
노래방도 죽을맛

룸살롱 몰락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음주 문화 변화와 성 개방 풍조, 지속적인 단속 등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음주족이 줄고 독하고 비싼 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룸살롱 업계서 25년간 일했다는 최모씨는 “룸살롱은 부유층 남성들의 성 매수 장소로 수십년간 인기를 끌었다”면서 “요즘은 쉽게 ‘애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싼 돈 주고 룸살롱을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이트클럽이나 SNS서 이성을 만나는 남성이 늘어나고 룸살롱을 대체하는 업소가 늘어난 것도 룸살롱 몰락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룸살롱 업계에선 비교적 저가에 성 매수가 가능한 각종 유사 성행위 업소와 오피스텔 성매매 업소들로 룸살롱 손님들이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룸살롱의 경우 성매매 가격이 최소 20만원대이지만 신종 업소들은 1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과 연계하고 있는 음료, 위스키 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국내 위스키 수입 및 제조업체들은 각 유흥업소에 직접 영업 인력을 투입해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유흥업소는 위스키 업체들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다. 이미 국내 위스키 산업 규모가 매년 위축되고 있는 상황서 이번 김영란법 시행은 ‘결정타’가 될 수밖에 없다. 위스키 출고량은 2013년 200만 상자 밑으로 떨어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유흥업소 2만5000여개…줄폐업 가시화
연관된 주류업체들도 막대한 피해 예상

지난 상반기 출고량은 약 80만 상자로 올해도 하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다른 위기는 위스키와 와인 등 고가 주류선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위스키는 고급 이미지가 강해 많은 소비자들이 명절 선물용으로 구매한다. 와인 역시 비슷한 이유에서 선물로 이용되는데 5만원이라는 제한선이 생겨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룸살롱서 주로 팔고 있는 고급 위스키 소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008년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2009년 -10%, 2010년 -1.4%, 2011년 -4.8%, 2012년 -11.6%, 2013년 -12.8% 등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독하고 비싼 술은 더 이상 우리 음주 문화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업계서도 도수 낮은 위스키 등 신제품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면서 “위스키에 대한 거부감으로 룸살롱 손님 역시 함께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기업 회식 자리서도 양주와 맥주를 섞은 ‘양폭’은 거의 사라지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폭’이 단골 메뉴가 된 지도 오래다. 다른 조직보다 ‘양폭’을 더 즐겼던 법조계서도 이제는 ‘소폭’이 대세라고 한다.


또 다른 위스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죽어가는 시장에 김영란법까지 더해져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워졌다”며 “5만원 이하 주류 선물 시장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한 대기업 부장은 “과거엔 국회 보좌관들과 정기적으로 룸살롱을 갔지만 이제는 그들이 먼저 돈 들여 몸 망치지 말고 룸살롱 대신 골프나 치자는 제의를 해온다”고 했다. 등산·자전거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룸살롱서 술 먹는 것보다는 운동과 좋은 음식에 투자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뭘 먹고 사나”
다 문 닫을 판

강남의 한 룸살롱 실장은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매출 감소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빈 룸이 많이 발생할 게 뻔한데 웨이터를 줄여야 할 판”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역삼동 한 룸살롱 매니저는 “법 시행 전부터 매출이 엉망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면서 “평소 50∼60% 이상을 차지하던 대기업 등의 법인카드 고객들이 대부분 발길을 끊어 하루 매상이 반토막난 업소도 상당수에 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이찬열(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 59만1694곳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총 9조9685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접대비는 2008년 7조502억원서 2014년 9조3368억원으로 매년 늘다 지난해 10조원에 근접하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중 유흥업소서 쓴 금액은 1조1418억원으로 8년째 1조원을 넘겼다. 유흥업소별로는 룸살롱이 6772억원(59%)으로 전체 유흥업소 1위를 달렸고 단란주점(18%)과 극장식 식당(11%) 요정(9%) 나이트클럽과 카바레(3%)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손해가 예상되는 만큼 고급 유흥업소 업주들은 전업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실의에 빠진 상태다. 해마다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다투는 업소 간 경쟁도 룸살롱 영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쟁 업소를 없애기 위해 성매매 등 불법 영업을 경찰에 신고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논현동의 한 룸살롱 영업담당 전무는 “손님이 좀 있다 싶으면 주변 업소들이 그 업체를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가라앉는 배에서 살아남으려는 업체들 간 치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 단속의 배경엔 업계 내부 고발이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박유천 사건 등 룸살롱 내에서 벌어진 일들이 법적 사건으로 쟁점화되는 것도 업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P 룸살롱 영업부장 장모씨는 “최근 단골 중엔 ‘아가씨들 무서워서 룸살롱 못 가겠다’는 손님들이 있다”면서 “불쾌한 행위를 강요당하면 룸을 나와 버리거나 반발하는 여종업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손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이미 침체에 빠진 룸살롱 업계는 더욱 빠른 속도로 침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사 어렵다면…
불법·편법 기승


하지만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됐음에도 뿌리 깊은 접대문화가 100% 근절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법망을 피해 각종 편법행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얘기다. 소규모 업소들은 “여태껏 배운 게 이것뿐이라며 어떡하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모습이지만 중·대형 업소들은 법망을 피할 수 있는 편법 접대 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룸살롱은 1970년대 초반 서울 광화문 일대에 처음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고 유흥주점은 삼청각·대원각·청운각 등의 요정들이었다. 요정에는 온돌방과 한복 입고 전통춤 추는 여종업원이 있었던 반면 룸살롱에는 소파와 양장을 한 여종업원이 있었다. 1980년대 초반 강남 개발과 함께 급격하게 늘어났던 룸살롱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요정들을 밀어내고 유흥업계 정점을 차지했다.

벤처 붐이 일었던 2000년 전후 최대 호황기에는 한 달 1000곳의 룸살롱이 개업할 정도였다고 한다. 논현동의 한 단란주점 전무는 “김영란법 시행 여파로 룸살롱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유흥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앞으로 10년 뒤면 룸살롱은 과거의 요정처럼 일부 업소만 명맥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여종업원 성매매 업소로 대이동
물어뜯기 경쟁…더 퇴폐적으로?

강남의 한 유흥업소서 발렛 파킹 일을 하는 D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밀려드는 손님들 차를 주차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오늘은 정말 한가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그냥 발렛 부스 안에 들어가서 휴대폰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해당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E씨 역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내가 장사하고 1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라며 “보통 화류계는 명절 즈음해서 손님이 끊긴다. 다들 가정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명절 기간의 5분의 1도 안 된다”고 흥분했다. 그는 또 “우리 가게만 이러진 않을 것이다. 주변에 다 연락해봤는데 더하면 더했지 덜한 가게는 없다”고 말했다.


강남서 또 다른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F씨도 “출근한 직원들이 손님이 없자 다 퇴근했다”며 “업주들뿐만 아니라 직원들 수입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는가 하면 F씨는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 기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잠깐이면 된다. 지금 전부 시범케이스에 걸릴까 몸 사리는 것 아닌가”라며 “유흥 없는 사업과 로비가 어디 있나. 곧 어떤 식으로든 다시 가게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의 한 노래바 사장은 “일단 더치페이로 계산한 뒤에 접대하는 측에서 현금 또는 상품권으로 식사비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편법을 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일부 유흥업소들은 단골손님들을 대상으로 금액을 미리 결제하는 ‘선결제 방식’도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들었다”면서 “강남과 종로 등 일부 업소 여러 곳에서 이미 몇 백만원씩 선결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도입됐다가 부작용만 키운다는 여론 속에 5년 만에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의 전철을 김영란법이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는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목적과 접대자 이름, 접대 상대방의 상호와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당시 접대비 실명제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 쪼개기’와 함께 ‘카드 나누기’라는 편법이 생겨났을 정도다. 일각에선 “김영란법에서도 식사비 한도인 3만원을 넘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비슷한 편법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3만원 이상 식대비가 지불됐을 때는 접대 대상의 인원수를 부풀릴 수 있고 접대 대상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 시행 초기에 이런 편법을 쓰면서까지 접대를 하려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업계나 관가 쪽 반응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접대를 하는 입장에서는 사업 성공을 위해 편법을 쓰더라도 접대 자리를 원할 수 있지만 접대받는 입장에선 ‘시범 케이스’로 걸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어먹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미 몰락의 길
종사자들 어디로?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한 지부회장은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법이 본격 시행되도 편법에 기승한 접대문화는 사라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업계의 현실이 녹록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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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