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재필 기자 = 지난 16일, 한국무용 명인 송준영(80) 조선대 무용과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송 교수는 한국 무용의 거장인 한성준(1875∼1941)의 ‘훈령무’를 계승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훈령무는 군대를 지휘 감독하는 장군의 모습을 춤사위로 형상화한 전통 춤이다. 한성준이 만든 작품을 그의 손녀인 한영숙이 고증해 송 교수가 재안무했다.
남도 정서가 담긴 춤을 추고 싶은 건 거역할 수 없는 내림이다.
훈령무는 절도 있는 동작을 통해 절제된 형식을 강조하면서 당당하고 역동적인 춤사위를 통해 남성다운 힘과 기상을 표현하는 춤이다. 여기에 대장부의 용맹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 머리에는 짐승 털을 가공해 만든 전립을 쓰고, 몸에는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의 동다리도 입는다.
훈령무는 군대를 지휘하는 훈령 대장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 한성준 거장이 구한말 군대의 훈련 장면을 보고 착안했다.
송 교수에겐 최고와 단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송 교수는 지난 1936년 전남 고흥 출신으로 한국무용의 불모지였던 호남에 무용의 부흥을 이끌었다.
거장 한성준 ‘훈령무’ 계승자
한국무용 발전 위해 일생 바쳐
그는 최초의 훈령무 발굴자로 이름을 얻었다. 부산시립무용단 상임훈련장을 거쳐 지난 1974년 지역 최초로 설립된 대학인 조선대 무용학과 교수로 부임해 지역 무용 발전에 힘썼다.
그는 호남지역 유일의 남성 한국 무용교수와 성균관대학교 최초의 남성 무용수, 부산 최초의 발레단 ‘프리마 발레단’ 창단 등 전라도를 대표하는 남성 무용가로 활발한 창작 춤 활동을 펼쳤다. 서울국제무용제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광주한국춤연구회 이사장, 광주문화예술회관 운영위원 등도 지냈다.
현재 호남지역의 무용이 조선대 무용과 출신이 많은 배경엔 송 교수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조선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 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 전공별로 학생을 선발하며 교육에 힘쏟았다. 당시 고 송 교수는 미국의 워싱턴발레스쿨서 연출 공부를 하려고 유학 서류까지 갖춰놓은 상태였다.
그는 “전라도 지역에는 남성무용수가 없었다. (나보다) 8년 연상인 이상준 선생이 작고하신 후 나만 남았다. 그 뿐인가 남성, 여성을 통틀어 한국무용 전공생이 거의 없었다. 조선대 전임으로 첫 출근했을 때 한국무용 전공생은 2학년에 2명 1학년에 5명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한국무용을 활성화시켜야겠다는 책임감만 있었다”며 한국무용 발전에 몸을 던지게 된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현재 훈령무의 계보를 잇는 제자는 부산시립단 안무가 홍기태, 삼성무용단 이정수 등 네 사람이다. 대표작으로 열녀문(1982)’ ‘바다는 바다는 울고 있드라(1983)’ 등의 안무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