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홈 구지은 '400일 천하' 풀스토리

다 된 밥에 오빠가 숟가락 ‘푹’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구자학 아워홈 회장 일가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했던 구지은 아워홈 전 부사장. 그는 아워홈 후계 승계 1순위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구 전 부사장이 아워홈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후계구도는 역전됐다. 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구 전 부사장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다.

구지은 전 부사장은 범 LG가에서 유일무이한 여성경영인이다. LG그룹의 창업주이자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아버지인 구인회 회장은 유독 보수적인 윤리관으로 장자승계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왔다. 딸들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기로 유명했다. 구 전 부사장은 1남3녀 중 막내이고 더욱이 딸임에도 불구하고 범 LG가의 틀을 완벽히 뒤집은 인물이었다. 그 만큼 구 전 부사장은 실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자였는데…

구 전 부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와 보스턴대 석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와이트코리아 수석컨설턴트 등을 거쳤다. 2004년 아워홈 등기이사로 선임되고, 구매물류사업부장으로 입사해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돌입했다. 구 전 부사장은 아워홈의 외식사업을 진두지휘하며 2010년 전무로 승진했다.

구 전 부사장은 형제 중 유일하게 12년간 아워홈 경영에 직접 참여했다. 수완이 좋아 업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입사 이후 아워홈 매출을 1조3000억원까지 끌어올렸으며, 인천공항 식음료업장 진출, 외식사업 다각화 등 신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능력도 인정받았다.

또 구 전 부사장은 아워홈 지분을 꾸준히 늘리며 형제들과의 지분관계에서도 우위에 서게됐다. 구 회장의 장남인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은 지분 38.56%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그동안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구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구 전 부사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업계의 관측도 이 때문이었다.


후계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지난해 그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기존 임원진과의 갈등설이 돌았다. 아워홈 사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잇달아 교체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아워홈 사장이었던 이승우씨가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이씨는 2010년 3월 아워홈 기획담당 상무로 영입돼 그해 9월 사장이 됐다. 2013년 연임한 이씨가 임기를 2년 남겨 놓은 상태에서 그만둔 것이다.
 

이씨 자리에 CJ제일제당 부사장이었던 김태준씨가 영입됐다. 하지만 김씨는 재계에서 비운의 CEO로 남게됐다. 김씨는 사장 선임 4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아워홈은 지난해에만 2명의 사장을 갈아치운 셈이다.

뿐만 아니라 외식사업부의 한 임원도 영입 1년 만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새 대표이사에 급식사업부 수장을 담당했던 이종상 상무가 선임되면서 구 전 부사장 체제 구축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두 사람은 일신상의 사유가 아닌 회사에서 압박해 사직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사실상 문책성, 경질성 인사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너일가와의 불화설에 무게가 실렸다.

또 사내 안팎에선 외부인사 영입과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구 전 부사장과 원로 경영진과의 불화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보다 못한 구 회장이 직접 나서 지난해 7월 구 전 부사장을 보직해임했다. 구 회장은 이러한 인사조치 뒤, 공석인 대표자리에 이씨를 복귀시켰다.

‘막내린 공주시대’ 결국 장남 카드 꺼내
회장 결단…1년만에 뒤바뀐 후계구도


이런 인사조치에 대해 뚜렷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결국 구 회장이 막내딸 구 부사장과 원로 임원들의 계속된 갈등을 더이상 두고 보지 못해 직접 경질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로 구 전 부사장은 해임 뒤 개인 SNS에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 변화의 거부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썩게 만든다”는 내부 갈등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구 전 부사장이 지난 2004년부터 진두진휘하던 아워홈 외식사업부가 외형에 비해 이렇다 할 대박 브랜드를 내놓지 못하는 등 부진을 보이자 회사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이러한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아워홈의 후계구도 공식이 깨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구 전 부사장은 올해 1월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복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임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내부갈등설에 또다시 휩싸였다. 사내에서도 구 전 부사장이 작년 7월 보직해임 때문에 보복성 조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아워홈 측에서는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대응했지만 공교롭게도 후계구도는 급변했다. 구 전 부사장은 경영에 복귀한 지 2개월 여 만에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결국 아워홈을 떠나 관계사인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구 전 부사장의 아워홈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사실상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는 게 중론이다.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은 이 시점에 등장한다. 지난 3월 기타 비상무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구 부회장은 이사회를 통해 등기이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아워홈과 관련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던 구 부회장이 아워홈의 경영에 첫발을 내딛는 행보였다.

지난 20일 구 부회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기타 비상무이사로 선임된 이후 3개월 만에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찼다. 구 부회장은 지분 38.56%를 보유한 아워홈의 최대주주여서 구 회장의 뒤를 잇는 최종 승계구도가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 부회장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헬렌 커티스와 체이스맨해튼은행, LG전자, 삼성물산 등에서 근무했으며 동경 법정대 객원 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을 역임했다.

구 부회장은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관련 업무를 해온 만큼 당장 아워홈을 직접 경영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그 동안 범 LG가는 기본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꾸준히 구 부회장이 구 회장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아워홈 관계자는 “최대주주의 책임경영 참여 차원에서 구본성 대표를 선임한 것”이라며 “사업구조의 선진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질적 성장을 이루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구 전 부사장의 아워홈 시대는 끝났다. 지난해 그가 아워홈 부사장으로 선임되고 회사에서 물러나기까지 약 2년 동안 아워홈은 내홍에 시달렸다.

부친에 찍혔나?

지난 6개월새 수장만 3차례나 바뀌고, 실세였던 구 전 부사장의 보직해임과 복귀, 계열사 전출이 반복되는 등 아워홈이 사실상 2년여간 경영공백 상태였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로인해 매출 정체와 임직원의 동요가 뒤따랐다. 구 회장이 꺼내든 장남 카드로 아워홈의 위기를 타계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min1330@ilyosisa.co.kr>


 


[아워홈 상황은?]

아워홈의 매출 그래프는 2011년부터 5년째 멈춰있다. 지난해 아워홈의 매출액은 1조3547억원으로, 2011년 1조2361억을 기록하며 1조원을 돌파한 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2013년 삼성웰스토리는 매출 1조2040억원으로 아워홈을 넘어섰고 지난해 1조6623억원으로 성장했다. 현대그린푸드도 2011년 아워홈을 따라잡은 후 현재 2조1127억원으로 몸집이 커졌다. 업계에서는 구지은 전 부사장이 있는 동안 ‘아워홈의 잃어버린 2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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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