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담배에 손대는 이유

400원 주고 사서 4000원에 푼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담배 수만갑을 밀수입해 들여온 조폭들이 최근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헐값에 들여온 담배를 유흥업소와 시장 등에 팔아넘겼다. 나라마다 각기 다른 세금 정책으로 인해 동남아로 수출되는 국산 담배는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에 돈 냄새를 맡은 조폭들이 하나둘 담배 밀수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해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담배 8만갑을 밀수해 국내에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번 사건은 압수된 수량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조직폭력배까지 개입돼 있어 논란이 가중됐다.

역으로 재판매
청소년에 인기

지난 5월 24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해외로 수출된 담배를 밀수해 판매한 조직폭력배 등 15명을 검거해 조직원 김모(38)씨와 유통총책 정모(48)씨 2명을 관세법 및 담배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조직원 함모(35)씨 등 국내 유통책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경부터 12월까지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홍콩 등으로 수출된 국산 담배 ‘에세’, ‘레종’과 해외 담배 ‘말보로’ 등 10여가지 담배 8만갑, 시가 4억원 상당을 밀수입해 유통했다.

국내 밀수 총책인 김씨는 캄보디아로 출국해 해외 밀수 총책인 용모(38)씨에게 직접 담배 밀수 자금을 전달하고 수출된 국산 담배 등을 인천항 등을 통해 밀수할 것을 지시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정식적으로 수출되는 국산 담배의 가격은 400∼700원가량. 우리나라의 6분의 1 수준이다.

이렇게 국내로 밀수된 담배는 경기 하남의 물류창고에 보관되면서 함씨 등 13명을 통해 강남 유흥업소나 사우나 등에서 한 갑당 3000∼4000원 정도에 판매됐다. 담배 한 갑당 가격은 평균 시중 판매가격인 4500원보다 38%나 저렴하다. 이번 범행에는 밀수부터 보관, 운반, 판매 등 전 단계에 걸쳐 조직폭력배들이 가담했다.


면세 담배 2933만갑(시가 664억원)을 빼돌려 국내에 유통한 일당이 검찰에 적발되는 사건도 있었다. 일당 중에는 면세 담배를 판매하는 담배회사 KT&G 간부와 전주지역 조직폭력배가 끼어 있었다. 2014년 8월 인천지검 외사부(이진동 부장검사)는 선원 용품업자 김모(42)씨와 KT&G 중부지점장 강모(47)씨 등 6명을 관세법 위반과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도·소매업자 등 2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유통총책인 전주 월드컵파 조직폭력배인 김모(39)씨를 지명수배했다.

선원 용품업자 김씨 등은 2010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면세 담배 2933만3500갑을 중국에 수출할 것처럼 신고한 뒤 국내로 반입해 팔았다. 김씨 등은 1갑당 900원인 면세 담배 겉포장에 새겨진 ‘DUTY FREE’ 글씨 위에 KT&G의 위조 바코드를 붙인 뒤 1갑당 2500원에 판매하거나 일부는 면세가격으로 유통했다. 당시 정상 담배 한 갑은 2250원에 출고돼 소비자에게 2500원에 판매됐다. KT&G로부터 면세 담배를 공급받아 빼돌린 김씨는 40억원, 유통총책인 김씨는 150억원을 챙겼다.

KT&G 간부인 강씨는 면세 담배를 건넨 대가로 선원 용품업자 김씨로부터 10차례에 걸쳐 1억3917만원을 받았다. 담배사업법상 면세 담배는 외교사절, 국군, 경찰, 교도대원, 해외취업 근로자, 외항선 선원, 국제항로 항공기, 주한 외국군, 북한 지역을 왕래하는 관광객 등에 한해 공급된다. 하지만 밀수입된 면세 담배는 도매상과 위조책, 소매상 등 점조직 형태로 유통됐으며 이 과정에서 국고로 귀속돼야 할 세금이 밀수 사범과 유통 사범들에게 흘러가 막대한 국고 손실을 초래했다.

해외에서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 담배도 문제다.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불법으로 생산한 뒤 유명 국내외 담배 브랜드를 붙여 국내에서 유통되는 가짜 담배의 적발 액수만도 지난 3년간 12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가짜 담배가 활개 치는 일부 동남아 국가들과 인접해 있으므로 실제 국내 유통량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동남아 수출품 싸게 구입해 국내로 밀수
돈 되니…전국구 형님들 경쟁적으로 개입

최 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힙합’ ‘블랙 데블’ 등 향기 담배도 등장했다.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청소년층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위에서 언급한 사건과 현상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하나같이 조폭들이 연루돼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폭들이 담배밀수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뛰어들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폭들은 여러 가지 밀수사업을 하고 있었다.
 

적발 현황만 살펴봐도 이듬해 10배가량 폭등했고, 지난해에는 60억원을 넘어섰다. 유통 공간도 유흥주점과 PC방 등을 벗어나 일반 소매점까지 뿌리내렸다. 온라인 판매를 활용하면 청소년도 손쉽게 살 수 있다. 경찰은 생산·유통 과정에 각국 조폭이 연계돼 수익금 중 상당 부분이 이들의 운영 자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관계자는 “가짜 담배는 정교하게 위조돼 식별이 곤란한 데다 유통이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뤄져 단속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짜·밀수 담배는 줄잡아 30여종. 서울 N재래시장과 부산 G시장은 물론 경기 안산 등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은 중간유통조직을 쫓고 있지만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 가짜 담배에도 인기품목이 있다. ‘던힐’ ‘마일드세븐’ ‘카멜’ 등 외산 담배와 국산 ‘에세’ ‘레종’ 등이 인기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힙합’ ‘블랙 데블’ 등 향기 담배도 등장했다. 진품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청소년층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위에서 언급한 사건과 현상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하나같이 조폭들이 연루돼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폭들이 담배밀수사업에 흥미를 느끼고 뛰어들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폭들은 여러 가지 밀수사업을 하고 있었다.

날개 돋친 듯…
뒷골목서 팔린다

대표적인 물품이 마약류다. 국내 폭력조직은 미국 마피아, 일본 야쿠자, 중국 삼합회 등 기업형 국제범죄조직과 달리 마약류 범죄 개입을 금기사항으로 여겼지만, 2010년도부터 조폭이 마약밀매와 밀수에 개입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조폭들이 담배사업으로 눈길을 돌린 건 높은 수익률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발됐을 때의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 적발된 담배 밀수는 287건으로, 2014년과 비교해 네 배 이상 뛰었다. 2014년에 적발된 담배 밀수는 40여 건이다. 이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담배사업법에 따라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불법 밀수 담배는 블로그와 해외서버를 이용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도 판매된다. 이들은 KT&G를 비롯해 BAT, JTI 등 국내 유통 중인 담배들 대부분을 판매한다.

불법 밀수 사이트들을 살펴보면 2900원가량에 담배 1갑을 판매하고 있다.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판매되고 있는 담배 가격은 4500원가량이다. 4500원 가격 제품 기준 소비세가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33원, 개별소비세 594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폐기물부담금 841원으로 책정돼 있다.
 

이 같은 불법 면세 담배는 주로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 홍콩을 오가는 보따리상을 통해 밀수입된다. 선내 면세점에서 구매한 담배를 집화장에서 넘겨받은 뒤 세관 신고 없이, 국내에 되파는 방식이다. 이들은 국제여객터미널을 오가며 면세 담배를 밀수입한 뒤 세관 신고 없이 국내로 유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 여행객 등에게 웃돈을 얹어주고 구매한 뒤 되팔아 넘기는 일도 발생한다. 면세 담배 구매 시 1인당 살 수 있는 물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온라인을 이용한 담배 판매는 불법이지만 이들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과 제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들 중 일부는 회원제를 통해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곳도 있으며, 해외사이트에서만 해당 사이트가 검색되도록 하는 방법도 이용하고 있다.

돈냄새 맡고
조직들 연루

이렇다 보니 돈만 떼이고 물건은 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불법인 걸 알면서도 30% 이상 저렴한 가격에 담배를 구매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다 피해를 보는 것이다. 불법 거래 사이트 다수는 계좌 이체를 통한 결제만 가능하게 운영하고 있다.

입금과 물건 도착, 궁금한 점은 홈페이지상에서만 문의할 수 있다. 또 갑작스럽게 사이트를 폐쇄하는 경우도 있어, 돈만 송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판매와 구매 행위 모두 불법이라는 점 때문에 피해자들은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조업체들의 하소연도 늘어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서 거래되는 담배는 모두 불법이지만 수사권이 있다거나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서 “제조사뿐만 아니라 편의점 등 담배를 판매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입을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인상된 담뱃값은 세금 인상이었기 때문에 제조사의 수익이 늘어나는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담배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이런 일들이 늘어나다 보니 업계 내부에서 이례적으로 출시 기념 할인 이벤트 같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고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담배판매인연합회 측은 “명백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활동하다 보니 현재로써는 피해 규모와 불법행위를 모두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일부 지방 판매업자 중에서는 이를 발견해 직접 고발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밀수 담배 판매는 과거에도 암암리에 존재했으나, 지난해 국내 담뱃값 인상을 계기로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막무가내식의 담뱃값 인상이 낳은 부작용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인상된 가격에 포함된 세금이 늘어났지만, 흡연율 감소는 미비한 상태다. 담뱃값 인상 직후에는 담배판매량이 2014년 하반기 대비 8억갑이 줄어든 14억갑 정도였지만, 하반기에는 4억갑을 회복하며 18억6700만갑이 팔렸다. 단순한 가격정책만으로 금연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또 거둬들인 세수로 국민건강증진기금 사업구성에 사용한 예산이 28.4%에 불과해 금연을 이유로 걷은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세수 적자를 메웠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담뱃값 인상으로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2015년 10조53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3% 증가한 수치다.

가짜 담배 판쳐도 속수무책
유흥가·온라인 판매 성행


상황이 이렇게 되자 관세청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관세청에서는 국내 담배제조사인 케이티앤지(KT&G), 비에이티(BAT)코리아, 한국필립모리스와 위조·면세 담배의 밀수 및 불법유통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관세청과 국내 3대 제조사는 업무협의를 위한 전담창구를 지정하고, 상호 정보교류를 통한 단속협력 기반을 마련해 불법행위를 예방할 방침이다.

먼저 제조사는 수출용 담배의 수출 선(기)적 수량을 수출 신고한 대로 적정하게 공급하며, 선(기)용품(당해 선박(항공기)에서만 사용되는 식품, 연료, 소모품 등 ) 면세 담배 취급업체에도 용도에 맞게 적정 수량으로 공급해 부정유출 요인을 해소하기로 했다. 또, 관세청과 수시로 협의회를 개최해 담배 국내외시장 유통동향 등 정보를 교환하고 담배 불법유통 시중 단속 시 서로 협력(제조사의 담배식별 전문가가 현장에서 위조담배 식별)할 계획이다.

“대책이 없다”
관세청 골머리

관세청은 면세 담배 취급업체 현장을 점검하고 그 종사자에 대한 지도 교육을 하며, 밀수 및 불법유통 등을 근절하는 데 이바지한 업체 및 직원에게는 표창 또는 포상하기로 했다. 관계자는 “이번 양해각서(MOU) 체결로 국내 담배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국가재정수입을 확보함으로써, 지하경제 양성화 및 부정부패 척결 등 국정 과제를 달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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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