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콘크리트 시신 미스터리

시체통에 시멘트 붓고 바다 풍덩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조폭 영화에서 자주 다뤄지는 콘크리트 시체 유기. 주로 조직의 배신자를 처벌할 때 사용하는 수법으로 그려진다. 이런 일들은 과연 실제로도 일어날까? 얼마 전 화장실 콘크리트 밑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됐다. 이로 인해 때 지난 콘크리트 시체 유기 사건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콘크리트 관련 사건들. 그 실상을 파헤쳐 본다.

인천의 한 공장 화장실 콘크리트 바닥 밑에서 백골의 시신이 발견됐다. 발견된 시신은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사건이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백골 시신에서 유전자(DNA)를 검출해 DNA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한 결과 일치하는 정보가 없다는 결과를 지난달 23일 경찰에 전달했다.

화장실 바닥에
백골시신 발견

백골 시신은 지난 4월28일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한 공장의 외부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콘크리트 바닥 40㎝ 아래에서 공사 도중 발견됐다. 누워있는 모습으로 나이나 성별을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백골화된 상태였다. 시신에선 두개골 함몰이나 골절이 발견되지 않았고 독극물 검사에서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경찰은 사인이나 사망 시기 등을 밝혀내지 못했다.

소규모 공장 밀집 지역에 있는 3층짜리 이 건물과 화장실은 모두 26년 전 처음 지어졌으며 지난해 12월부터 비어 있었다. 경찰은 백골 시신의 DNA 정보를 확보된 실종자 DNA와 대조하고 공장 관계자에 대한 탐문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출된 시신 DNA를 경찰이 보유한 실종자 DNA 정보와 계속 대조해볼 방침”이라며 “이 근방에는 외국인 근로자도 많이 거주하는 만큼 피해자가 외국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영화에서만 보던 콘크리트 시체 유기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2008년 7월 전북 군산시 만경강 하구에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목에는 4kg짜리 콘크리트 벽돌이 달려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그해 12월, 경북 고령군의 한 저수지에서는 또 다른 여자의 시신과 함께 10kg에 달하는 돌덩이가 들어있는 가방이 발견되기도 했다. 두 남자에게 살해당한 여성들의 경우 발견된 시기에 차이가 많이 났다.

여름에 살해된 후 만경강에 던져진 시신은 3일 후 발견됐지만, 한겨울 저수지 속에 던져진 시신은 6개월 후인 이듬해 5월 초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 차는 있었지만 여자의 몸에 달아 놓은 돌덩이는 부력을 이기지 못했다.

각지 속속 발견되는 오래된 사체들
완전 범죄 노리고…혹시 조폭들이?

여자 택시기사를 성폭행하고 나서 살해한 군산의 살인범(당시 34세)은 각각 택시와 여성의 몸에 지문과 DNA를 남김으로써, 동거녀를 살해한 고령의 살인범(38)은 범행 후 숨어 지내다 검거됐다. 두 사람은 희생자들의 시신이 떠오르고 나서 열흘도 채 되지 않아 검거됐다.

돌덩이보다 튼튼하고 단단한 도구로 좀 더 치밀한 준비를 했던 사람도 있다. 이혼소송 중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국내 유기징역형으로는 법정최고형인 30년형을 받은 대학교수 강모(53)씨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교수 부인 살인사건’. 강씨는 계획대로 내연녀 최모(50)씨와 범행을 저지른 뒤 사망한 부인의 몸에 쇠사슬 2개를 칭칭 감았다. 쇠사슬이 풀릴 것을 걱정했는지 쇠고리로 줄을 엮은 그는 부인 박모(50)씨의 시신을 대형 등산용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 속 시신은 부산 사하구 을숙도대교 위에서 강물에 던져졌다. 경찰은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강 교수가 이곳에 시신을 던지면 해류를 따라 시신이 바다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계산했다”면서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점도 이 다리를 유기장소로 선택한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초기에 강씨의 계산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사건 초기부터 실종이 아닌 ‘시체 없는 살인사건’으로 판단한 경찰은 이례적으로 헬기 6대에 2800명의 인력, 수색견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부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에 강씨는 경찰서를 찾아 “왜 아내를 찾아주지 않느냐. 경찰 수사가 이렇게 진전이 없을 수 있냐”고 항의하는 뻔뻔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후 실종 50일째 되던 날 부인의 시신은 봉사활동차 해안가를 치우러 나온 고등학생들에게 발견됐다.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내연녀를 등장시키고 CCTV가 없는 곳을 고르는 동선을 짜는 등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운 컴퓨터공학 교수는 그렇게 꼬리가 잡혔다.

금전 문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콘크리트에 시체를 매장한 사건들도 있다. 2012년 8월 필리핀에서 실종됐던 40대 한국인 재력가가 암매장돼 숨진 채 발견됐다. 살해 용의자는 모두 한국인들로 돈을 노리고 납치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업차 필리핀으로 출국한 정모(41)씨는 갑자기 연락이 끊겼고 가족들은 실종신고를 했다. 정씨는 보름 만에 필리핀 마닐라 근교의 한 주택가 마당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언젠간 걸린다
떠오르기 마련

필리핀 경찰과의 공조로 현지에서 붙잡힌 용의자 3명은 모두 한국인. 그들은 구덩이를 파고 뒷마당에 사람을 던져 넣고 콘크리트를 위에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김모(33)씨 등 3명은 필리핀 카지노에서 억대의 돈을 잃자 평소 알고 지내던 정씨를 차량으로 납치해 목 졸라 살해했다.

정씨의 집 금고에서 2700여만원을 빼앗은 이들은 시신을 버리기 위해 주택 한 채를 임대한 뒤, 마당에 정씨를 암매장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필리핀 경찰과 공조해 정씨의 통화내역을 분석했고 실종 직전 정씨가 용의자들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덜미를 잡혔다.

이에 강씨는 경찰서를 찾아 “왜 아내를 찾아주지 않느냐. 경찰 수사가 이렇게 진전이 없을 수 있냐”고 항의하는 뻔뻔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후 실종 50일째 되던 날 부인의 시신은 봉사활동차 해안가를 치우러 나온 고등학생들에게 발견됐다.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내연녀를 등장시키고 CCTV가 없는 곳을 고르는 동선을 짜는 등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운 컴퓨터공학 교수는 그렇게 꼬리가 잡혔다.

2012년 11월에는 단란주점 인수 문제로 다투다 주점을 넘긴 70대 노인을 살해한 후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44살 박모씨는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에 있는 자신의 단란주점에서 주점을 넘긴 송모(78)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송씨를 밀쳐 넘어뜨렸다. 이어 송씨의 목을 밟아 정신을 잃게 한 다음 주방에 있던 호스로 목을 감아 살해했다. 박씨는 범행 후 시신을 가방에 담아 8일간 주점 다용도실에 숨겨놓고 버젓이 영업을 했다.

박씨는 시신을 나무상자(가로 113㎝, 세로 40㎝, 높이 80㎝)에 담은 뒤 방수공사를 한다며 업자를 불러 단란주점 홀 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유기, 완전범죄를 꾀했다. 공사를 한 작업자들은 박씨의 지시에 따라 작업했을 뿐 시신이 담긴 상자였는지 몰랐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박씨는 시신을 나무상자에 옮겨 담은 뒤 실리콘을 발라 밀봉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씨는 송씨로부터 단란주점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잔금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박씨의 행적과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추적하던 중 석연치 않은 점을 확인하고 박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콘크리트 시체 매설은 대개 조폭 관련 도시 전설에서 가장 많은 예로 등장한다. 미디어에선 마피아와 일본 야쿠자들을 중심으로 ‘콘크리트 신발’이 애용되며 한국영화 <짝패>에서도 이범수가 비밀누설한 청년회장을 처리할 때도 이렇게 호수에 수장했다.

미제사건으로?
궁금증 증폭

미국의 한 연구진이 사람이 아닌 돼지 시체로 실험한 적이 있다. 지하에 땅을 파고 그 안에 돼지를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버렸는데 시간이 경과해 콘크리트 위로 냄새가 새어나와 ‘이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것을 바보나 생각할 만한 시체 은폐법이라고 일축했다.


그 외에도 <신세계>에서는 사람을 처리할 때 입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고 드럼통에 콘크리트와 함께 메워 넣어서 바다에 던져버리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콘크리트를 사용해도 완전범죄는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 시체를 콘크리트 안에 넣으면 내부에서 시체가 썩으면서 빈 공간이 늘어나고 이 공간을 부패하며 생성된 가스가 채워나간다. 시간이 더 경과되면 가스의 압력으로 시체가 벽을 깨고 튀어나오고 바닥이 함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튀어나오지 않더라도 약간의 금만 가도 그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긴다.

시신이 빠진 곳이 호수인지 강물인지, 바닷물인지에 따라서도 시신이 떠오르기까지 시간이 달라진다. 모든 조건이 같다는 전제에서 시신이 떠오르는 순서는 호수, 강, 바다 순이다. 고여 있는 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빠르지만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더디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한 연구진이 사람이 아닌 돼지 시체로 실험한 적이 있다. 지하에 땅을 파고 그 안에 돼지를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버렸는데 시간이 경과해 콘크리트 위로 냄새가 새어나와 ‘이건 도저히 모를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것을 바보나 생각할 만한 시체 은폐법이라고 일축했다.

부패하며 나오는 가스에 균열
전문가 “바보나 할 은폐 수법”

콘크리트 더미에 매달거나 신체 일부를 굳힌 다음 수장하는 것은 위와 달리 가스와 냄새가 샐 염려도 없고 사람이 보거나 접근하기 힘든 물속이란 이점으로 호수나 저수지 등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다만 국내에선 편의상 혹은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콘크리트가 아닌 차량째 수장시키는 일이 빈번한데 실제로 2006년에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사전에 빠져나가지 못하게 배우자에게 약을 먹이고 승용차째 수장한 일이 유명하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신이 완벽하게 사라져 준다면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살인범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세상과는 격리된 어딘가에 시신을 꼭꼭 숨기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택하는 방법이 수장이다.

하지만 물에 숨긴 시신은 떠오르기 마련이다. 시신이 떠오르는 것은 신체 조직을 이루는 기초 물질들이 부패하면서 가스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공기를 불어 넣은 튜브가 물 밖으로 떠오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헌상으로는 몸을 이루는 기초물질이 가스로 변할 때 각 조직의 부피는 최대 22.4배까지 팽창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죽은 사람은 물에 빠지면 처음에는 가라앉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속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신체 조직이 부패해 가스가 만들어지면 부력을 갖는다. 단 시신이 언제 물 위로 떠오를지를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입수 당시 시신의 부패 정도, 몸무게나 키는 물론이고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시신이 빠진 곳이 호수인지 강물인지, 바닷물인지에 따라서도 시신이 떠오르기까지 시간이 달라진다. 모든 조건이 같다는 전제에서 시신이 떠오르는 순서는 호수, 강, 바다 순이다. 고여 있는 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빠르지만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더디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수온이다. 여름철에 물에 빠진 시신은 2∼3일이면 모습을 드러내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겨울에 빠진 시신은 몇주 또는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떠오른 시신은 한없이 물 위를 떠다니지는 않는다. 튜브에 구멍을 내는 듯한 또 다른 변수가 존재하는 탓이다. 선박의 프로펠러나 갈매기, 바다생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파열 등 훼손이 가해지면 시신은 다시 가라앉게 된다.

국민안전처의 ‘최근 5년간 해경본부 변사자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매년 바다에서 발견되는 변사체의 수는 평균 751구. 그중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는 89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5년간 총 3757구의 시신이 해상에서 발견됐다.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로 발견된 시신은 445구, 신원이 확인된 경우 타살 또는 타살 의혹이 있는 사인불명의 시신은 215구였다.

신발에 시멘트
매달아 수장도

이렇게 시신을 발견한다 해도 부패된 시신을 가지고는 신원파악조차 힘들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다. 경찰 관계자는 “날이 갈수록 시체 유기 방법이 치밀해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하며 “빠른 신고와 적극적인 제보만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니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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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